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판으로 읽고 있어 페이지와 표현에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4장에서는 제인 오스틴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 <사랑과 우정> <노생거 사원> 그리고 다른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이 언급된다. 


제인 오스틴은 '항상 잽싸게 익명성을 주장하거나, 자신의 재능에는 한계가 있으며 단지 "시골 마을의 서너 가족"을 묘사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고 주장' 한 모양이다. 


오스틴의 말이 예의 바르게 보일지라도, 자기를 지우는 익명성과 자신의 예술은 그저 세밀화일 뿐이라는 겸손한 묘사는 또한 일반적인 세계에 대한 비판이다. 심지어는 거부를 암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가스통 바슐라르가 설명하고 있듯이, 세밀화란 "우리를 작은 위험도 알아채는 존재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223쪽)


그러나 오스틴에 대해서 가장 많은 목소리를 냈던 비평가들이 칭찬과 비난과 함께 늘 언급했던 것은 정확하게 그녀 예술의 한계였다. ... 다시 말해 오스틴의 소설들은 너무 젠체하지 않아서 쉽게 잊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 (225쪽)


..반복해서 말하자면, 오스틴은 자신이 소설 속에서 그토록 설득력 있게 극화하고 있는 이중의 구속에 놓여 있었다. 왜냐하면 인위적이고 관습에 묶여 있는 작가로 폄하되지 않을 때는 "타고난,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된 작가"라고 경멸당했기 때문이다. (226쪽) 


그러나 오스틴이 자신의 한계나 경계선을 인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녀 편을 드는 척하거나 혹평하는 비평가들은 오스틴의 초기 작품들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는 전복적인 특질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오스틴이 말하는 용기 있는 "압박하에서의 우아함"이란, 위험한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 현실에 대한 논평인 것이다. (229쪽)

이러한 오스틴의 초기 작품이 중요한 것은 작가가 표현을 저하시키는 잘못된 문학적 인습을 조롱함으로써 기대, 특히 여성 독자의 기대를 위험할 정도로 저버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인습이 바로 여성의 삶을 확고하게 형성하였다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이 문학적 인습을 노골적으로 패러디한 것은 여성을 지속적으로 그러한 판타지의 희생물이 되게 만드는 문화에 대한 공격이었다. (230쪽)



얼마 전 <사랑과 우정>을 읽고 도대체 이건 뭐지? 이게 제인 오스틴이 (열네 살 때이긴 하지만) 쓴 거라고? 대체 왜 이런 걸 썼지? 하며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늘어놓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떠올렸던 것이 장소를 계속 바꾸며 우연적인 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졌던 <돈키호테> 였는데.. (물론 돈키호테가 훨씬 더 나았다)



"확실한 이성"이 부족한 오스틴의 초기 소설은 우리가 처음 기대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삶의 조각"을 포함하고 있다. ... 더욱이 이 소설의 풍자적인 멜로드라마는 분주하게 이동하는 책략을 세워 오스틴의 더 성숙한 소설에서 나타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여성의 도망과 탈선을 통해 전개되고 있다. (230쪽) 


오스틴 식 패러디의 요점은 로라 같은 여주인공을 (그리고 <사랑과 우정> 같은 이야기들을) 현실의 모델로 진지하게 제시하는 소설의 위험한 속임수를 보여 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우스꽝스러운 문학적 인습을 조롱하면서, 오스틴은 또한 낭만적 이야기들이 터무니없이 잘못된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233쪽)



이것은 풍자적 소설, 패러디였다...;;



오스틴이 <사랑과 우정> 같은 패러디에서 자신이 속한 문화의 낭만적인 전통을 거부한다면, 그 거부는 규범 문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여성의 경솔함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무언가 다른 요점을 감추기 위해서 그 모티프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과 우정>은 오스틴이 속한 문화에서 그녀가 느꼈던 심한 낯설음에 대한 최초의 암시다. (238쪽)


오스틴은 여성은 남자를 사랑하는 것 이외의 어떤 타당한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전통적인 생각에 대중적인 로맨스 소설이 어떻게 기여했으며, 이러한 가정이 "여성의" 자기도취, 마조히즘, 그리고 망상의 뿌리에 어떤 방식으로 닿아 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239쪽)

숙녀다운 분별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오스틴은 자신의 물려받은 인습에 가열차게 반항하고 있다. 그러나 오스틴은 당시 대부분의 보수적인 작가들이 인정한 패러디 전략이라는 보호막 아래에서 자신의 반항을 표현했다. (241쪽)

오스틴이 자신이 읽었던 문학의 신비를 벗겨 내는 이유는 .... 그러한 소설들이 여성을 약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 작가들의 절대적인 창조물이라는 점을 예증하고자 했던 것이다. (242-243쪽)


오스틴은 자신이 부적절한 것으로 폭로한 바로 그 인습을 이용해서 가부장제의 권력뿐만 아니라 여성 작가의 한계와 양면성을 보여 주고 있다. (243쪽)



밑줄의 범람이다. 읽는 게 어렵지만 재미있다. (내 생각은 별로 할 겨를이 없다) 


한 페이퍼에 다 쓰려 했지만, 여기까지 <사랑과 우정> 그리고 다음부터는 <노생거 사원> 혹은 수도원 혹은 애비 .. 를 다루고 있어 두 개로 나누려 한다. 











노생거 사원, 거의 다 읽었는데.. 약간 B급 소설 같은 느낌이 있지만 아주 재미있다. 개인적인 이유로 재미있게 읽기도 했다. 

성숙하고 노련하진 않지만,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설득> 등 과는 좀 결이 달라 

(제인 오스틴의 좀더 솔직한 면모를 볼 수 있다고 할까) 

시간이 있으시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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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10-25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저 읽어 미안해요.
아무렴요, 미안해야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몇 일 안 남아서 저도 11월만 시작해봐라! 벼르고 있지만 실제로 시작하면 얼마나 더디갈지 걱정이 태산 ㅋㅋㅋㅋㅋㅋㅋㅋ
느닷없이 뽜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2-10-25 14:10   좋아요 1 | URL
저는 이번주 5장 읽을 차례거든요.
단발머리님이 곧 추월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ㅋㅋ

거리의화가 2022-10-25 13: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노생거 사원>, 다른 장편들과는 느낌이 확실히 달랐던 것 같아요. <사랑과 우정> 그런 뜻이 있는줄은 몰랐네요. 근데 읽어봐도 사실 이해는 잘 안되는 건...ㅎㅎㅎ
다음달부터 이 책 읽을 일이 걱정이네요. 암튼 수하님이 앞서 읽어주시고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수하 2022-10-25 14:21   좋아요 2 | URL
저도 <노생거> 굳이 읽어야 할까? 하다가 4장 읽고 다르다길래 읽기 시작했는데
평이 그렇게 좋기만 하진 않았던 것 같거든요..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아요.
저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

이 책이 조금 어렵기도 하지만 (정확한 뜻을 파악하긴 어렵지만) 재미있네요. 11월부터 다같이 읽고 나눌 일이 기대됩니다 ^^

얄라알라 2022-10-25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의 범람^^

수하님, 정희진 선생님께서 음악, 미술 등 다른 장르에서는 어린 천재들의 작품이 있지만 문학에서만큼은 없다, 왜 일까?를 질문하셨던데, 제인 오스틴이 열 네 살 때 <사랑과 우정>을 썼다면, 그 질문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거겠어요^^

건수하 2022-10-25 16:38   좋아요 1 | URL
음… <사랑과 우정>이 위에 제가 발췌한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은 훌륭한 것 같으나…

문학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좀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패러디라서 그럴까요? 그래서 그 질문을 굳이 다시 생각하진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요) ^^;;

독서괭 2022-10-26 14: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열네살에 쓴 소설에 그렇게 깊은 뜻이??!! 오스틴 소설을 더 읽어봐야겠는데.. 겠는데!! 선행하는 수하님 천천히 가셔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