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문학동네로 시작해서 다른 책으로 다 읽었다. 음.. 여전히 이 소설이 왜 그렇게 많이 회자되는지, 어떤 점이 영문학에서 그렇게 중요한 작품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소설의 인상이 매우 강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어릴 때 (아마도 중학생 때?) 읽었던 것도 기억하고 있을테고. 나는 이 책을 읽고 '사랑에 빠진다는 건 위험하고 고달픈 일이고 사랑이 좌절되는 경우 매우 곤란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다시 읽어도 여전히 좀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나오는 것 같은 사랑은 (사양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양이다. 다만 지금은 사랑이란 게 다 여기 나오는 것처럼 격정적이고 괴롭고 사람을 주체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특이하다는 걸 이해한다는 뜻이다. 살면서 이렇게 감정이 격한 사람을 얼마나 만나보았는가..
브론테 자매들과 자주 함께 언급되는 작가인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생각하면 그녀가 조금 더 앞선 시기의 사람이기는 하지만 사람을 관찰하며 그의 표정과 말을 통해 인물을 조곤조곤 설명하는 그녀의 소설에 비해 <폭풍의 언덕>이 감정을 묘사하는 방식은 조금 더 직접적이고 강렬하다. 그런 점이 다른 걸까? 영국 소설, 그것도 그 시기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으니 잘 알 수가 없다. <폭풍의 언덕>이 왜 그렇게 이슈가 되는 작품인지를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으며 알게 되기를 바랬으나, 2장까지 읽은 바론 별로 그런 내용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다만 <폭풍의 언덕>을 읽고 내가 왜 이해하기가 힘들고 이상하다고 느꼈는지에 대한 힌트는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상 그러한 여성들은 표면 밑에 의미를 숨겨 놓았다. … 이들 여성의 작품은 빈번하게 ‘이상해’ 보인다. … 18세기 후반과 19세기 대부분의 뛰어난 영미 여성 작가들은 문학사가들이 만들어 놓은 우리에게 익숙한 범주 중 어떤 것에도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
제인 오스틴과 메리 셸리 에서부터 에밀리 브론테와 에밀리 디킨슨에 이르는 여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양피지에 썼다 지우고 다시 쓴 것과 같은 문학작품, 즉 그 표면적인 무늬가 더 깊어 접근하기 어려운 층위의, 의미를 감추거나 모호하게 하는 작품을 생산하였다. … 이들 여성의 작품은 모두, 일반적으로 천사 같은 순종의 본보기라고 생각되어지는 작가의 작품까지도, 풍자적이고 이중적이며 극도로 교묘하게, 수정적이며 혁명적이다.
- <다락방의 미친 여자> 2장 중 발췌
이들 여성들이 작품에 도대체 무엇을 숨겨놓았다는 것인가.. 어떻게 다른 시기 다른 장소에 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저런 작품을 쓸 수 있는가.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
한편, <맨스필드 파크>를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나는 제인 오스틴을 읽으며 '익숙한 범주 중 어떤 것에도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점을 느낀 적은 없고 대체로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고 있다. <맨스필드 파크>에서는 그동안 읽었던 다른 소설에서보다 한층 인물들의 언행 (특히 말)을 통해 인물을 간접적으로 (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자세히 그려내는 점에 많은 지면과 노력을 할애하고 있는 것 같다.
<레이디 수전> 외에 미완성 소설들이 실려있는 이 책에는 완성되지 않은 <왓슨 가족> 과 <샌디턴> 이란 소설이 실려있는데, 두 소설 모두 <오만과 편견>에 비해 등장인물들이 훨씬 개성있고 다양하고, 이 인물들을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묘사한다. <맨스필드 파크>의 자세한 인물 묘사는 비슷한 상황에서의 내 경험을 떠올리는 즐거움을 주었으나 한참 읽다보니 유사한 상황이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아직 1/3밖에 지나지 않아 언제까지 계속 이 묘사들을 상세하게 신경쓰며 읽어야 하나 고민이 된다. 뒤에 가면 또 다른 재미가 있겠지? 이 작품들을 언제 썼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비슷한 시기에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왓슨 가족>과 <샌디턴>이 <맨스필드 파크>와 맥을 같이 하는 작품인 것 같다. 마지막 완성작인 <설득>처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한 것 같지는 않지만 느릿느릿 인물이 성장해나가는 걸 보는 재미가 있달까... 남은 2/3을 다 읽으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맨스필드 파크>를 다 읽고 나면 샬롯 브론테의 <교수>를 읽을 예정이다. 전에 <교수>를 잠깐 읽다 말았는데 그닥 재미있는 도입부는 아니었던 기억이 나고 사실 <제인 에어>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지라 크게 기대는 하지 않고 있지만 <폭풍의 언덕>을 다시 읽어보니 <제인 에어>를 다시 읽는 것보다는 다른 걸 시도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교수라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내가 조금 아니까? 에밀리 브론테는 더 시도해볼 다른 작품이 없어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