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링크로스 84번지>에 대한 기억이 좋게 남아 있어서, 단지 그 이유로 이 책을 샀다. 너무 많은 정보를 보지 않으려고 책 소개를 읽어보지 않은 채로. 막연히 <건지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처럼 편지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만나서 일어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채링크로스 84번지> 를 읽은 지도 오래되어 내용이 가물가물했지만, 다시 읽어보지 않고 그냥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짐을 늘리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리스본 서점'의 정현주 점장 (이자 라디오 방송작가)가 추천사를 썼는데, 내가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안 것도 그 서점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다. 추천사에는 책을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 책의 번역자는 심혜경 님인데,
얼마 전 서재 이웃 누군가 '읽어보고 싶은 책' 으로 담아서 보니 같은 이름이라 혹시? 했는데 이 책의 저자가 맞았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라니. 꼭 카페에서 공부할 필요는 없지만, 공부하는 할머니라니. 멋지다.
이 책의 제목은 무루 님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떠올리게 한다. 요즘 멋진 할머니들이 많지만 꼭 멋지지 않아도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하고싶은 일을 한다는 건 좋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그동안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앞으로는 할 수 있는 할머니가 많아지면 좋겠다. 나의 엄마도 취미로 시작한 일을 계속 하고 계시는데, 내가 그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지지해드리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방해를 많이 했지만) 계속 하고 계신다는게 참 좋다.
올해 재택근무를 하면서 자주 갔던 카페가 있다. 집에서는 해야 할 집안일도 눈에 밟히고, 고양이들도 와서 한 번씩 건드리고 가고, 사놓고 못 읽은 그러나 읽고 싶은 책들이 있고, 나를 유혹하는 침대가 있고.... 그래서 일이 급할 때는 특히 카페에 가서 많이 했다. 나는 공부도 집에서 했던 사람이라, 전에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에게 맞는 카페를 찾은 건지 거기서는 능률이 꽤 좋았다.
그 카페에는 11시쯤 되면 오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내가 갈 때마다 매번 그 할머니를 만났다. 근처에 사시는 모양이다. 음료를 한 잔 주문하고 안경을 쓰고 자리에 앉아 신문을 펼쳐 읽는 것이 할머니의 일과인 듯했다. 일하다 보면 어느새 사라지셨던 걸로 보아 할머니의 오전 일과가 카페에서 신문 읽기인 것 같았다. 집에서 읽어도 될텐데 굳이 카페에 와서 읽는 것이 (나도 그 카페에서 능률이 좋았기 때문에) 신문을 대하는 할머니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고, 나중에 은퇴하고 저렇게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은퇴하고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고도 매일 카페에서 커피 한 잔, 그리고 사고싶은 책도 꽤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이 이야기는 평생 런던에 가고싶었지만 경제적인 사정상 가지 못했던 헬레인 한프가 <채링크로스 84번지> 가 영국에서 출간되면서 초대를 받아, 결국 런던을 방문하여 가고싶은 곳을 만나고 여러 사람을 만났다는 런던 여행기에 가까웠다. 저자는 블룸스버리 가 근처의 호텔에 묵었는데, <채링크로스 84번지>를 읽은 사람들이 워낙 그를 만나고 싶어하고 환대하는 바람에 블룸스버리 공작부인이 된 느낌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는 <The Duchess of Bloomsburry Street> 이다. 사연을 아는 나는 이 책의 원제가 더 맘에 든다. 번역서를 읽을 때 자주 느끼는 것인데, 이건 번역의 문제가 아니고 출판계에서 혹은 독자들이 선호하는 책 제목의 분위기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읽고나면 아쉬울 때도 많지만, 왜 그런 제목을 선택하는 지는 이해가 되기도 하고.
처음에는 그 호텔이 어딘지 찾아보았다가 대영 박물관 바로 옆이라 신나서 거리뷰도 찾아보고.. 했었는데 읽다보니 너무나 많은 유명한 지명이 등장하여 (...) 더이상 찾기를 포기하고 읽었다. 작년에 런던에 가보려고 계획했던 것이 무산되어 아쉬웠는데 책에서 런던을 만나니 들떴는지도 모르겠다. 런던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얼른 연락을 하여 이 책을 사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알라딘에서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카톡으로 선물하기는 참 편리한 기능이다)
(선조들의 나라인) 영국을 방문한 미국인의 감상, 같은 언어로 쓰여진 문학을 공유하는 입장에서 셰익스피어와 디킨스 등 영국 작가에 대한 생각, 뉴욕과 런던, 나아가 미국인과 영국인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야기 등 작가 개인의 이야기가 많았다.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내용도 많았으나 그녀의 글은 좋았고 그녀의 자유로운 생각과 유머감각도 좋았다. 부수적으로 런던과 그 주변의 유명한 지명과 이야기들이 따라오는 것도 좋았다. 가봤던 곳은 가봐서 좋았고 안 가본 곳은 나중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러나 <채링크로스 84번지>가 책에 관한 이야기라서 좋아했던 사람들 누구에게나 이 책을 쉽게 권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이제 이 곳에서 머문지 6일이 되었다. 몸은 갇혀있는 상황이지만 마음은 일상으로부터 고삐풀린 망아지가 되어 이곳 저곳을 헤맸던 것 같다. 일하고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고 남는 시간에는 인터넷을 떠돌고 못보던 넷플릭스 드라마도 기웃거리고 유튜브 동영상도 봤다. 밥을 먹으면서도 꼭 시간을 아껴 영상을 보려고 노력했다. 책상이 없어 1인용 소파와 테이블에서 일을 하며 자세가 불편하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계속되는 검사, 불확실해지는 일정에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인지 책은 도통 손에 잡히질 않았다.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낸 적이 있었나,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온전히 혼자 보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에는 일도 안해도 되고 그냥 편하게 쉬자는 생각에 책을 집어들었는데, 낯선 곳에서 겪는 이야기라 그런지 몰입이 되기 시작했고 재미있게 읽었다. 결국 여유시간이 많아진지 6일째 되어서야 겨우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불편하다고 투덜거렸던 1인용 소파가 책을 읽기에는 (등에 베개 하나를 받치기만 한다면) 아주 좋은 의자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지만 여기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야겠다.
+ 나는 아직도 어떤 걸 마이리뷰에 어떤걸 마이페이퍼에 쓰는 게 적당한지 잘 모르겠다 (...) 리뷰에는 책 정보를 하나밖에 넣을 수 없어서 페이퍼에 쓴다.
++ 셰익스피어와 디킨스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한국 사람들의 대다수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는 누구일까. 그런 사람이 있나...?
있다 하더라도 누구나 많이 인용하고 그런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굳이 꼽는다면 누구일까.
책 읽는 사람들은 편견과 차별 없이 상대를 받아들이고 끄덕이며 이해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너그러워진다. 불편과 부당에 대해서 분노하는 지점도 닮아 있다. 우리는 서로를 정서적 안전망이라고 부른다. 상처받고 날아들었다가 다시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새들 같다. 독서실 끝나고 집에 갈 때 그들은 재잘대며 웃고 있다. 책이 이어 주는 사람들은 틀림이 없다. (추천사 중)
노인들이 죽기 전에 고향을 보고 싶어 하듯 나는 런던을 보고 싶어 했다. 셰익스피어와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태어난 작가와 애서가들에게는 이런 일이 자연스러울 거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되뇌곤 했다.
내가 마크스 서점에서 샀던 책들은 뉴욕에서도 구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친구들은 오랫동안 내게 ‘오몰리 (O‘Malley‘s) 서점에 가 봐.". "도버 & 파인 (Dauber & Pine) 에 한번 가보라니까."라는 조언을 해 줬다. 나는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런던과 이어지기를 원했기에 어떻게든 그 연결고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여왕을 알현하기 위해 17세기 마차가 20세기 러시아나 아프리카 외교관들을 태우고 버킹엄궁의 문들을 지날 때 ‘시대착오(anachronism)’라는 단어를 쓰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시대착오’는 오래전에 죽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죽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런던에서 이른바 역사는 살아 있고, 잘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영국인들은 유럽의 일부가 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분리되고, 다르고, 따로 떨어져 있기를 원한다. 이때 켄은 영국에서는 이제 진부한 농담이 되어 버린 오래된 신문기사를 인용하면서 이를 설명했다. 섬 전체가 안개에 뒤덮인 악천후 기간에 한 영국 신문은 머리기사 제목을 "안개가 대륙을 고립시키다"라고 달았다.
디킨스를 좋아하지 않으면 이단아가 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디킨스는 영국 모든 가정의 성주신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행운을 빌었다. 그는 "당신에게도 행운이 있기를, 라브!"라고 말하고는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가던 길을 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에 눈길을 보내며 그의 이름을 물어보려고도 하지 않은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사람들이 이름조차 남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인생에 불쑥 들어왔다가 10초 만에 나가 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 디킨스 선생님이 언젠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모두 함께 무덤을 향해 가는 존재들이다.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를 더 존경할지라도, 그들이 사랑하는 작가는 디킨스다. 왕도 아니고 농민도 아닌 보통의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 극의 왕족과 농민들보다는 디킨스의 작품에 나오는 하층민 및 중산층 계급에서 신분 상승을 꿈꾸는 유형들에게 좀 더 일체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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