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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도 종종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아이를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그를 떠올리면 꽃에게 물을 주고, 화산을 쑤셔주고 활화산에서 밥을 해먹는 어린 왕자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몸을 동그랗게 구부려 아주 작은 별을 껴안은 채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모습만 생각난다. 꼭 그러고 있을 것만 같다.

오늘도 나는 수평선을 향해 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왔다.

-한창훈, <네가 이 별을 떠날 때>(문학동네, 2018)

 

 

*그러고 보니 어린 왕자는 바다를 본 적이 없겠지. 작가는 일만 번 걸어본 바닷가에서 그걸 주운 게 아닐까. 그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는. 수평선으로 사라진 것들의 아련한 것들을. 모래사막의 코끼리 말고 “바다가 뭐야?” 묻는 소년에게 물고기 그림을 그려주는 생텍스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물고기를 만나러 바다로 들어갔던 어린 왕자와 함께 수평선을 오래 바라보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그려지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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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민타스 밤부소이데이아!

사내는 잠든 여자의 귀에 속삭인다.

-아민타스 밤부소이데이아.

여자가 잠꼬대로 답한다. 여자의 잠 속으로 물 소리, 흐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물 소리, 돌부리에 걸리는 물 소리, 돌에 걸려 갈라지는 소리, 갈라져 물 속을 파고드는 소리, 그 위로 날던 물총새 소리, 물총새 머물던 시냇가 섶 풀 꺾이는 소리, 꺾인 풀을 안고 떠오르는 바람 한 점, 바람 지나가는 자리마다 허공에 파이는 무덤들, 무덤들 위로 덮이는 물 소리, 허공의 무덤을 관통하던 수리 한 마리, 허공에 길을 내는 저 먼 소리, 먼 소리들이 돌아와 시냇물에 감기면 발가락 끝에 닿는 물의 혓바닥, 물의 혓바닥이 저녁을 간질인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 괜찮아.

여자가 듣고 싶은 말만 시냇가의 크기로, 시냇가의 물살로, 밀고 차고 파고 흔들며 저녁이 말한다. 물 속에 박힌 돌의 목소리로. 그가 들어올린 돌멩이 아래 보라의 물고기, 모래무지의 목소리로. 물살의 크기로 파고든다. 새는 풀 섶을 뛰어다니며 풀을 건드리고, 시내는 돌을 건드리며 갈라지고, 새는 허공을 끌어올리며 저녁을 만든다. 멀리서 새가 늘려놓은 허공을 따라 어떤 향기가 감긴다. 세탁통 속에서 그가 나온다. 비틀거리며 찌그러진 동전을 내민다. 저녁은 너와 걷고 싶어, 기다리는 건 내가 할게, 사내가 말한다. 여자는 시냇가에 발을 담그고 돌덩이 하나를 들어올린다. 보라의 물고기가 여자를 건드리며 헤엄쳐간다.

  -<저녁의 목소리> 중

 

 https://youtu.be/MswxCuaiV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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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11-29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들었습니다.

돌바람 2018-11-29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
 

망설이다 꺼내놓은 1991년 봄의 기억     

 

<1991, 봄>은 ‘분신 정국’이라 불렸던 1991년 5월에 관한 영화다. 영화를 만든 권경원 감독은 당시를 다룬 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를 읽고 용기를 냈다고 했다. 권경원 감독과 소설의 작가 하명희씨(사진 왼쪽)가 만났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제583호

 

한 편의 영화와 소설이 만났다. 둘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각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공통점이 있었다. 어떤 시간과 기억, 그리고 아무도 말하지 않으려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기억은 각자 다르지만, 그 시간은 1991년이다.

영화는 10월31일 개봉한 <1991, 봄> (권경원 감독)이다. ‘강경대 정국’ 혹은 ‘분신 정국’이라 불렸던 1991년 5월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13명의 시민과 대학생이 정권에 의해 죽임당하거나,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강기훈씨.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 일컬어진 사법 날조극의 피해자였다. 드레퓌스는 12년 만에 무죄가 입증됐지만, 강기훈은 24년 만인 2015년에야 무죄가 되었다.

소설은 하명희 작가의 <나무에게서 온 편지>다. 1991년 거리로 뛰쳐나온 고교생들의 이야기다. 대학생이나 사회운동 진영이 아닌, 고교생의 경험으로 1991년 5월을 말한 유일한 문학작품이다. 그 고교생들은 이른 나이에 사회운동에 뛰어든 죄로 이름 없이 사라져갔다. 학교에서 쫓겨난 이도, 세상을 등진 이도 많았다. 소설은 처음으로 그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하 작가는 이 작품으로 2014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사IN 조남진


영화감독과 소설가는 모두 ‘잊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1991, 봄>은 강기훈의 삶을 따라가지만 강기훈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때 그 시간에 남겨두고 온 수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권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내내 하명희 소설가의 <나무에게서 온 편지>를 꼭 품고 있었다고 한다. 권 감독은 소설을 읽고, 1991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두 사람은 서울 명동성당에서 조우했다. 명동성당은 당시 모든 투쟁의 중심이었다. 구속되기 직전까지 강기훈씨가 농성을 벌이던 곳이기도 했다. 하명희 소설가는 당시 명동성당 옆 계성여고 3학년이었다. 대학 신입생이었던 권경원 감독에게도 명동성당은 잊을 수 없는 공간이다. 따로 사회를 볼 필요도 없이 둘은 만나자마자 말문이 트였다. 낙엽이 비처럼 내리는 11월의 오후였다.



권경원:하명희 작가와 꼭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나무에게서 온 편지>를 두 번 읽었다. 나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고교생 때 전교조 집회에 나갔다가 안동대에서 분신한 김영균 선배를 알게 되었다. 그 선배 역시 고교생 운동을 펼치고 있었고, 나도 이런저런 참여를 했다. 그래서인지 소설이 나에겐 시처럼 읽혔다.

하명희:나도 영화를 세 번 봤다(웃음). 영화에서 울컥했던 부분은 당시 노동자 출신으로 죽음을 택한 이정순씨 동생이 ‘우리는 학생이 아니지 않느냐’라며 흐느끼는 장면이었다. 난 당시 광주에서 고교생 신분으로 분신한 김철수씨 같은 이들이 가장 소외됐다고 생각했는데, 더 많은 이들이 거기 있었다.

권경원:영화에 김철수씨 육성 유언이 나오는데, 하 작가가 유언 녹음본의 존재를 알려주어서 이를 영화에 쓸 수 있었다.

하명희:1991년을 기록하면 영화가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강기훈씨 사건은 ‘5분이면 해결될 일’이 24년이나 걸린 사건이었다. 내가 소설을 쓰는 과정은 내 기억을 소환해서, 기억과 싸우는 것이었다. 권 감독은 이 기억을 현재로 끌어간다.

ⓒ인디 플러그 제공
영화 <1991, 봄>은 강기훈의 삶을 따라가지만 강기훈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위는 영화의 장면들.


권경원:이 영화를 극장에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세월호 때문이었다(강기훈씨 딸이 단원고 희생자와 동갑내기다). 1991년 이후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죽음을 보았다. 삼풍백화점 붕괴가 그랬고, 성수대교 참사 때도 무학여고 학생이 죽었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자연스럽지 못한 죽음들’이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우리가 1991년의 죽음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 아이들도 세월호 친구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명희:우리 삶 전체로 보면 분명 어떤 각성이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당시 사회적 여론 속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어떤 사회적 기억으로도 환원되지 못하고 한순간 소멸됐다. 강기훈씨에 대해서도 당당하면 명동성당에서 제 발로 나가라는 여론이 팽배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명동성당에서 그의 뒷모습을 봤던 기억이 난다. 참 쓸쓸했다.

권경원:영화에서 처음 공개되는 장면이 있다. 강기훈씨가 유서 대필 사건이 조작이라는 성명을 발표한 뒤 고개를 떨구고 흐느끼는 모습이다. 당시 그 장면은 뉴스에 나가지 않았다. 당시 사회는 강씨의 그런 모습을 원치 않았다.

하명희:마지막 장면에서 전율을 느꼈다. 유서를 대필했다는 강기훈이 그 손으로 기타를 치는 모습. 이렇게 삶은 덤덤히 흘러간다. 우리 잠시 서서 그의 음악을 들으며 1991년을 기억하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권경원:촬영을 위해 안동대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김영균 열사가 활동했던 동아리 인근 건물 벽에 ‘타도 노태우’라는 문구가 아직도 남아 있더라. 저 건물 벽 문구처럼 1991년의 흔적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디 플러그 제공
강기훈씨가 유서 대필 사건이 조작이라는 성명을 발표한 뒤 고개를 떨구고 흐느끼고 있다. 영화에서 처음 소개된 장면이다.


하명희:나는 소심해서 한 번도 그런 구호를 외쳐보지 못했다. 어느 날 시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종이에 ‘살인정권 물러가라’라고 썼다.  

권경원:1991년은 1987년과 너무나 달랐다. 1991년 명동성당은 완전히 고립됐다. 강기훈씨가 김수환 추기경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게 전달됐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1987년 민주화는 1990년 3당(민정당·민주당·공화당) 합당을 거쳐 1991년에 철저하게 무너졌다. 나는 3당 합당 체제가 촛불혁명에 와서야 금이 간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내 의문은 이런 것이다. 1987년은 이야기하면서 왜 1991년은 이야기하지 않을까. 1987년은 으스대기 좋은 승리의 역사지만, 1991년은 그렇지 못해서? 1991년이 패배의 역사라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패배다.

하명희:1987년에도 사실 승리하지 못했다. 1987년의 결과가 1991년이었으니까. 그 후 우리는 기억을 멈춘 채 그 시절을 껑충 뛰어넘었다. 사회운동 진영에서도, 학계에서도 1991년에 대한 접근은 활발하지 않았다. 이제야 그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나오는 중이다. 최근 전남대에 박승희 열사를 기리는 ‘승희꽃밭’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권경원:나는 강기훈에게 1991년이라는 딱지를 떨어뜨리고 싶었다. 그 시대가 강기훈이라는 피해자의 이름으로 기억돼선 안 된다고 여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시 잊힌 이들을 충실하게 애도해야 했다. 당시 1991년의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이 영화를 통해 한 번이라도 그때 그 시간에 두고 온 마음과 마주했으면 좋겠다.

하명희:어쩌면 사람들은 그때 그 기억이 불편한지도 모른다. 기껏 지워놨는데 왜 다시 건드리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원히 가둘 수는 없다. (이 영화가 나옴으로써) 다음에는 누군가 더 자유롭게 1991년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권경원: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예를 들면 각 대학 민주동문회 같은 곳에서는 관심이 별로 없다. 오히려 놀랐던 건 젊은 친구들 반응이었다. 어느 학교는 13학번 친구가 민주동문회 선배들에게 영화를 함께 보자고 했다더라.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들 가운데 1988년생, 그리고 1991년생 기자도 있었다(웃음). 어떻게 보면 지금 후배들이 더 외롭지 않을까. 인권운동이나 소수자 운동하는 친구들은 1991년 우리보다 더 고립돼 있는지도 모른다.

하명희:고교생 딸과 함께 영화를 봤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전철에서 노트에 뭘 적더라.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아주 강인해 보였지만, 실은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처럼 그렁그렁한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썼더라. 역사를 몰라도, 어떤 감수성은 통한다고 느꼈다.

권경원:내가 스스로 1991년에 대한 편집증에 갇혀 있지 않나 의심하기도 했다. 혹시 내가 굳이 이야기하지 말았어야 할 걸 이야기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민주화의 흐름에서 1991년을 빼놓는 건 너무나 큰 자기기만이라고 생각한다.

하명희:<나무에게서 온 편지>를 쓴 뒤에 친구에게서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다른 이들은 위로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왜 고이 간직한 자기 경험을 밖으로 드러내느냐는 불만이었다. 그 뒤 학벌없는 사회나 청소년단체에서 반응이 오더라.  

권경원:얼마 전 <1991, 봄>을 체코 프라하에서 상영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왜 프라하일까 했는데 1969년 체코에서도 젊은이들의 연쇄 분신자살이 있었다. 얀 팔라흐라는 대학생이 시작이었는데, ‘프라하의 봄’이 소련의 무력 진압으로 짓밟힌 뒤였다. 체코 경찰은 자살의 배후를 캐내겠다고 했고, 세간에는 비밀 자살조가 있다는 소문까지 번졌다. 그런데 그 후 애도는 달랐다. 체코인들은 얀 팔라흐를 기리는 기념물을 세우고, 당시 슬픈 기억을 계속 재생산하고 있다. 미국 케이블 TV HBO에서는 얀 팔라흐의 이야기를 <타오르는 불씨(Burning Bush)>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다. 자크 데리다도 말했다.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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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가는 길

-이야기가 있는 풍경

 

    

가령 아주 먼 곳을 땅이라고 하지 않고 얼음이라고 해본다. 술래가 나를 잡으려고 할 때, 같이 놀던 친구들이 모두 얼음일 때,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하다 술래의 손끝이 내 몸에 닿기 전, 구원자임을 포기해야 하는 찰라, 그때를 아주 먼 곳, “얼음이라고 발음해본다. 땅은 어쩌면 땡에서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춥고 척박한 땅을 우리는 얼음이라고 배웠다. 얼음의 땅에 씨앗을 심으려면 여름을 훔쳐 와야 하고 여름을 여름답게 하려면 겨울이 필요하다는 균형감을 이야기를 통해 전달해내는 어른들이 있는 땅. 가령 그곳을 숲이라고 발음한다면 그 숲은 얼마나 오래되고 깊을까.

올 봄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같은 길을 지나갔다. 갈 때는 성수역에서 신설동행 전철을 갈아타고 오른쪽 문에 기대어 중랑천에 부서지는 저녁 햇살을 바라보았다. 지하철 2호선의 창에는 저녁의 풍경이 걸려 있었다. 아차산이 있고, 중랑천이 있으며 여러 방향의 철로가 뻗어 있는 지하철의 집, 차량기지도 있다. 성수에서 신설동을 왔다갔다하는 이 구간을 지날 때면 파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 구간에서는 앉아 있기 지겨워질 때까지 책을 보거나 헤어진 옛 애인을 생각해도 좋고, 해결하지 못한 고민들을 짚어보아도 좋다. 전철은 신설동에서 후진해 어느새 출발한 곳으로 다시 와 있을 테니 말이다. 자정이 넘으면 2호선 전철은 기지로 들어와 쉰다. 그 철로가 반짝이는 여러 물결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경험일까. 신설동에서 내려 1호선을 갈아타고 두 정거장을 더 가서 예전엔 언덕이었던 곳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창신동 골목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 길에서 몇 달 동안 글을 쓰고 싶어하는 분들을 만났다. 지역 분들을 대상으로 전태일재단에서 준비한 글쓰기 강좌였다. 8강을 통해 한 편의 글을 완성해보는내 삶의 글쓰기첫 날은 각자가 무엇을 쓰고 싶은지를 꺼내놓는 날이었다. 둘째 날은 쓰고 싶은 그것을 한 문단이라도 써서 쓴 글을 낭독하는 날이었다. 셋째 날은 두 번째 문단으로 넘어가고, 넷째 날은 글의 목소리를 집어넣고, 다섯째 날은 써야 할 것들보다 쓰지 말아야 할 것들을 가지치고, 여섯째 날은 글의 마무리로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썼는지, 다 쓰지 못한 말들은 행간에 남겨 두었는지를 살폈으며, 일곱째 날은 지금까지 쓴 글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지,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첫날 스무 명이 넘는 수강생들은 점점 줄어들어 10여 명이 되었고, 마지막 날에는 여덟 분이 각자 생의 첫 글을 한 편씩 완성했다.

 

 

그중 당신은 글을 잘 쓰는 것은 필요 없다, 다만 살면서 늘 뭔가를 쓰고 싶었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왔다고 고백한 한 분은 매일 조금씩 노트에 쓴 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손자에게 느그집 시원하냐?”고 묻다가 덜컥 에어컨을 할부로 사버린 할머니인 당신의 이야기. 이분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듣는 분이었다. 다른 분들이 창신동에 대한 글을 발표할 때, 이분은 결혼하고 미싱 일을 하며 30여 년 살았던 제2의 고향인 창신동 윗동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전에 창신동 꼭대기에는 조기 말리는 할마시들이 많았어요. 집집마다 조기를 사다가 말려서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조기팔이를 했는데 그게 돈이 좀 됐거든요. 창신동 언덕이 조기 말리기에 좋았던 것 같아요. 이분들은 낮에는 조기를 팔고 밤이면 잣을 깠는데 깐 잣을 잣공장에 가져다주는 부업도 했어요. 이건 봉투붙이기보다 수입이 더 좋아서 윗동네 사람들만 비밀로 하던 부업이었어요.”

 

이분의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전철에서 내려 시장 골목으로 이어지는 창신동 꼭대기 집들이 이전처럼 그냥 집만으로 보이지 않았다. 기억에 묻어두었던 어릴 적 살았던 동네에 왔던 조기팔이 할머니도 되살아났다. 잣 껍데기를 깔고 조기를 말리는 언덕의 풍경도 그려졌다. 어느새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시간, 추억들이 내 속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골목마다 증기를 내뿜으며 문을 열어놓은 가내수공업 공장들이 있고, 창문을 열면 들리는 미싱 돌아가는 소리들과 그 사이를 조기 바구니를 이고 내려왔을 윗동네 사람들. 잣을 깐다는 걸 숨기던 첩보와 같은 정보들을 공유하던 동네의 마당들. 동네의 풍경에 이야기가 들어오니 그분의 글도, 창신동이라는 동네의 풍경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글이란 이런 숨어 있는 기억들, 조각들이 시간을 넘어 종이 위에 집을 짓고 사라진 사람들을 불러와 이야기를 나누는 길이 아닐까.

이누이트들은 자신들을 이누이트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이누이트는 사람이다. “우리는 사람이다.” 얼마나 투박한 단어인가. 얼마나 넓은 단어인가. 얼마나 깊은 단어인가. 그들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이야기라고 한다. 사람들의 작은 무리가 흩어져 살아가다 한 해가 지나기 전 흩어졌던 강줄기로 다시 모이는 때, 그들은 축제를 벌인다고 한다. 다른 영토의 사위와 딸들이 돌아오고, 아들과 손자들이 돌아오고, 딸들과 어머니들이 모여 자신들이 보고 겪은 이야기를 전달하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털실 삼아 모자를 짜듯 이야기를 엮어서 들려준다고 한다.

레미 사바르의 살아 있는 숲에는 하늘이 내린 고아 차카페슈가 사냥꾼의 생활을 접고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하늘다리(은하수)를 만들어 달이 된 이야기, 버려진 아이가 미스타페우 할아버지를 만나 울음으로 여름사냥을 독려하는 이야기, 여름의 끝에 흩어진 가족들이 만나 이야기를 만드는 축제 우에파타우취히카트, 여름아이들과 겨울아이들이 나누어 힘자랑을 하는 이야기, 늙은 부모를 버리자 늙은이가 점차로 젊어져 손녀를 아내로 삼았으나 말라빠진 고추와 다 빠진 이빨 때문에 들통이 나는 심술 맞은 이야기, 하늘로 올라간 동생이 누나를 먼저 올라가라고 하고 밑에서 치마 속을 훔쳐보는 이야기, 하루라도 빨리 축제에 참석하고 싶어 어린 아이를 양말도 안 신기고 얼음 땅에 버리고 도망치는 부모 이야기, 여름을 훔치고 달아나다 여름 무리에게 잡혀 겨울을 나눠주고 여름을 얻기 위해 딱따구리의 발가락을 보고 여름을 여섯 달로 정한 이야기, 버려진 아이의 피를 빨아먹는 머릿니를 모두 잡지 않고 머릿니 가족인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서캐까지 다섯 개는 남겨놓은 이야기들이 있다. 언젠가 얼음의 땅에 숲이 사라지더라도 이야기가 있으면 숲은 되살아날 수 있다는 듯 이야기는 이야기를 통해 자라고 퍼진다. 이야기의 숲은 얼음의 땅을 후대에 전할 수 있는 존재방식인 것이다.

강좌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왜 사람들은 끊임없이 글을 쓰고 싶어할까를 생각하다 가방 속의 책을 뒤적였다. 책 속의 이야기와 단어들을 따라 발음해본다. 가령 봄을 봄이라고 하지 않고 쉬쿠안이라고 해본다. 여름을 여름이라고 하지 않고 니핀이라고 해본다. 가을을 가을이라고 하지 않고 타쿠아췬이라고 해본다. 겨울을 겨울이라 하지 않고 피푼이라고 해본다. 아프리카 어느 곳에 열세 번째 달이 있듯 피푼과 타쿠아췬 사이 초록이 돌아오는 다섯 번째 계절 미니슈카마우를 넣어본다. 타쿠아췬과 피푼 사이에는 초록이 돌아가는 여섯 번째 계절 피취피푼을 넣어본다. 꽃을 우아피쿤이라고 해본다. 이제 아주 먼 나라의 깊은 단어들을 천천히 발음해본다.

저녁이 부서지던 강물에 달빛이 닿고 어둠이 내리는 동안 창신동으로 가고 오는 이 길에는 얼마나 간절한 이야기들이 쌓였던가. 한 번도 꺼내놓지 못한 그 이야기들이 글이 되던 순간 수강자들은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풍경은 풍경에만 있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와 단어들을 통해 더 깊어진다. 그것이 사람들이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풍경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으므로, 추억이 있으므로 그것을 풀어내고 싶은 것은 아닐까. 창신동에서 돌아오는 길은 덥고 습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분들의 목소리는 이미 하나의 의미이며 삶의 표현이 되었다. 이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야기가 없는 풍경은 그림일 뿐, 그곳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스미고 시간이 쌓이면 철거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이야기의 숲이 된다. 살아 있는 숲처럼 이야기는 이야기를 만든다고.(<작은책> 2018. 9월호)

  

  

<사진 1> 창신동으로 가는 길

<사진 2> 창신동 골목

<사진 3> 살아 있는 숲, 레미 사바르(검둥소, 2008)

<사진 4, 5> 수강자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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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여름날 오후에 어딘가 멀리서 아무것도 모른 채 터뜨리는 웃음소리와 같은 소설. 가령 장편의 마지막에 가면 이런 문장을 만난다.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391쪽)

 

빨간색 표지의 책은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고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던 스토너의 책일까? 아니면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주었던 친밀한 우정의 흔적일까. 그것도 아니면 결혼을 통해 열정을 살고 싶었으나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 찾아온 사랑의 이름, 캐서린의 책일까.

하지만 인생의 마무리는 스토너의 몫이다. 그리고 소설의 마무리는 이제는 “그의 것이 아니게 된” 그의 손에서 흘러내린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의 몫이 된다. 이렇게. 우아하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가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끝>”--존 윌리엄스, <스토너>(rhk, 1965/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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