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에세이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부희령 지음 / 사월의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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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에 나는 네팔의 포카라에 머물고 있었다.” -부희령, <무정에세이-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사월의책, 2019)

나는 아직 이 나라 밖으로 발가락을 옮겨본 적이 없다. 그러해서 이런 문장을 만나면 기사나 책에서 접했던 네팔을, 포카라를 상상해보게 된다. 4월의 포카라는 어떨까. 그 노란 겨자꽃은 피었을까. 공기는 어떨까. 폐를 얼얼하게 하는 차가운 맛일까.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콧구멍이 달라붙을까. 사람들은 무슨 옷을 입었을까...
일주일 전에 마산행 열차를 끊어놓기는 했으나 만나려고 했던 그는 어제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 하다 그냥 기차를 탄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열네 살 때 자장면 배달을 하다 경남대에서 몰려온 시위 행렬을 따라 구경하다 파출소 방화범으로 몰려 42일 동안 고문을 받았으니까. 그가 어리기 때문에, 주변에 그를 보호할 사람이 없는 가출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그저 중국집 배달원이었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문의 휴유증은 묻지 않을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그가 시위대를 따라 걸었던 중화동에서 오동동으로 이어진 그 길을 같이 걸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그의 선택이어야겠지. 사람 하나를 만나는 건 “무정한 세상을 건너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 생기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마산역에 닿을 땐 이 책 귀퉁이를 접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와 연락이 되면 좋겠다. 그렇게 무정한 세상을 건너는 방법 하나 얻어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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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9-10-1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8년 5월에 저는 네팔의 포카라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5월의 포카라는 폐를 얼얼하게 하지도 숨을 들이마실때마다 콧구멍이 달라붙지도 않는 그냥 평범한 한국의 봄 날씨와 같았습니다.
안나푸르나 산행시 낮에는 봄날의 따스함이 전해지지만 저녁 무렵부터는 골짜기에서 몰려든 먹구름이 한바탕 비를 몰고 와 언제나 잠자리는 눅눅했었죠.

돌바람 2019-10-19 14:57   좋아요 0 | URL
포카라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남았어요. 낮에는 우리의 봄날을, 저녁에는 가을날을 상상하면 되겠군요. 잉크냄새냄, 혹시 <트리술리의 물소리> 읽어보셨나요? 꿀사냥꾼들의 여정이 사진과 함께 실린 글인데 잉크냄새님이라면 분명 아주 반가워하실 듯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