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여름날 오후에 어딘가 멀리서 아무것도 모른 채 터뜨리는 웃음소리와 같은 소설. 가령 장편의 마지막에 가면 이런 문장을 만난다.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391쪽)

 

빨간색 표지의 책은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고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던 스토너의 책일까? 아니면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주었던 친밀한 우정의 흔적일까. 그것도 아니면 결혼을 통해 열정을 살고 싶었으나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 찾아온 사랑의 이름, 캐서린의 책일까.

하지만 인생의 마무리는 스토너의 몫이다. 그리고 소설의 마무리는 이제는 “그의 것이 아니게 된” 그의 손에서 흘러내린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의 몫이 된다. 이렇게. 우아하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가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끝>”--존 윌리엄스, <스토너>(rhk, 1965/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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