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
-삼례 나라슈퍼 삼인조*
임명선(37세)
나는 여태껏 누구도 때려본 적이 없다. 집에서는 아버지,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맞았고, 경찰관에겐 경찰봉으로, 교도소에선 수감자들에게 맞았다. 나는 어릴 때 술 취한 아버지를 피해 여동생들과 도망다녔다. 폐가나 다리 밑이 우리 집보다 좋았다. 아버지가 아침에도 술을 마실 땐 책가방 없이 학교에 갔다. 친구들이 놀려 거리를 배회했다. 스무 살에 살인죄로 내가 체포되었을 때,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있었고 정신질환을 앓던 어머니는 내가 몇 년 형을 언제 선고받았는지 모른다.
강인구(36세)
왼팔에 장애가 있던 엄마는 노점에서 과일을 팔았다. 십만 원짜리 월세방,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엄마를 괴롭혔다. 일곱 살 때다. 아파서 괴롭게 누워 있던 엄마가 흰 종이에 뭔가를 써서 나한테 주었다. 신나게 가게로 달려가 쪽지를 내밀었다. 내가 사온 것을 털어 넣은 엄마 입에서 자꾸만 하얀 게 나왔다. 뽀글뽀글 나오는 거품을 옷소매로 닦아주며 나는 어머니 품에서 잠들었다. 어머니가 날 끌어안고 잔 그날은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이상한 약을 사다 줘 엄마가 죽었다며 아버지는 없는 엄마 대신 나를 쥐어박았다. 나는 열아홉 살에 살인범이 됐다. 세상은 아버지를 지적 장애인이라 부른다. 나도 똑같다고 한다. 아버지처럼 나도 한글을 모른다. 조서도 진술서도 모르고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
최대열(36세)
하반신 마비 1급 장애인 어머니와 척추 장애 5급 장애인인 아버지 대신 나는 일찍부터 가장 노릇을 했다. 누나는 중학교 졸업하고 열아홉 살에 시집갔다. 나는 지적 장애라 읽고 쓸 줄 모르지만 동생만큼은 공부시켜 주고 싶었다. 어린 동생과 부모님을 돌보며 중학교를 졸업한 나는 매형이 다니는 공사판에서 일하던 중 경찰한테 끌려갔다. 부모님도 돌봐야 하고, 돈 벌어 집도 사야 하고, 동생 학교도 보내야 하는데… 나 없는 동안 식구들이 어찌 살까 그것만 걱정됐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불었다.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쯤 전북 삼례읍 나라슈퍼에 침입해, 할머니 유모 씨(당시 76세)의 입을 테이프로 막고 숨지게 했다는 이유로, 세 명은 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을 마쳤다. 이들은 2015년 3월 “경찰의 강압수사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부실, 조작 수사의혹이 있었던 이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삼례 3인조가 처벌을 받았지만, 2016년 3월, 이모 씨(48세)가 자신이 범인이라며 자백하고 피해자의 묘소를 찾아가 참회하며 용서를 구한 데다, 유족이 촬영한 경찰 현장검증 영상 등을 토대로 무죄로 인정할 만하다고 판단해 재심을 결정했으며, 2016년 10월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김해자, 「모른다-삼례 나라슈퍼 삼인조」 전문, 『해자네 점집』(걷는사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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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 달린 주는 2018년 12월 22일 한 줄이 더 첨가되어야 한다. “조사5팀은 진범이 자백을 한 이 사건에서 당시 수사 검사였던 최성우 전 검사에게 부실 수사 책임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고, 최성우 검사는 억울한 누명을 쓴 삼례 3인조를 기소하고, 피해자 세 사람을 상대로 3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라고. 이것이 그들의 법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