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unnyside > 언제나 믿음으로 우릴 이끈 자네였는데...

레골라스 : 우리를 믿음으로 이끈 자네였는데... 용서하게. 내가 그만 일순간 흔들렸어.

아라곤 : 용서할게 어디 있나 레골라스.

[반지의 제왕 : 두 개의 탑]에서 헬름계곡의 전투를 앞두고 레골라스와 아라곤이 나눈 대화이다.

만명의 오크족이 헬름계곡의 요새를 향해 쳐들어오고, 로한의 백성과 반지원정대는 이들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병사는 몇 되지 않고, 어리거나 늙은 촌부들만이 낯선 갑옷과 칼을 받아들고서 두려워하고 있다.

누가 보아도 전력의 차는 뚜렷했고, 희망은 보이지 않는 상황.. 여기에서 레골라스는 그만 아라곤을 향해 절망의 맡을 내뱉었던 것이다. 그리고 위의 대사는 이에 대해 사과하며, 다시금 서로에게 믿음을 주는 장면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희망을 지켜간다는 것은 힘들다. 내 한 마음 다잡는 것도 그러한데, 하물며 주변에까지 믿음과 희망을 전파한다는  것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믿음을 주는 사람과, 회의(懷疑)와 절망을 퍼뜨리는 사람... 난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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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성 2003-12-31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레골라스만한 엘프 역활을 앞으로도 구하기는 힘들거라고 생각됩니다.
반지의 제왕을 보면서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역시 레골라스더군요...
엘프전사로 그만한 케스팅은 앞으로도 힘들듯...

starla 2003-12-31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그런데 레골라스역의 올랜도 블룸은 영화 바깥에서는 너무 깨는 모습이더군요 ㅠ.ㅠ
엘프는 우아함, 처연함, 언제나 안개 너머를 바라보는 듯한 그런 분위기를 풍겨야 제맛(?)인데;;; 레골라스는 참 어울렸죠. 친구들끼리는 "그렇게 쏘아댄 화살은 도대체 언제 줍는거야?"라고 농담도 했습니다만... 아무튼 북두성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왕의 귀환]을 개봉일에 본 이후 내내 올인상태;;

영화를 좋아하게 된 이후 한가지 달라진 점이라면, 씨앗판 번역 원칙보다 황금가지판 원칙에 조금 더 익숙해졌다는 거다. -_-; 덕택에 3년이 즐거웠는데, 이제 내년부턴 뭘 기다리며 사나...

감독으로서의 역량에 있어서 천재가 분명한 피터 잭슨과(아 이자의 초기작을 문화원 같은 데서 보고 다닐 때만 해도 이자가 이런 영화를 이렇게 만들어내리라는 건 꿈도 못 꿨다) 나이가 믿기지 않는 열연의 일리야 우드, 존재만으로도 영광인 간달프 빌보 사루만 아저씨, 캐스팅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를 보여준 샘 와이즈감지, 메리아독, 페레그린 툭, 김리, 갈라드리엘, 기타 등등, 그리고 엘프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준 레골라스 ㅠ.ㅠ 아르웬, 무릇 스트라이더는 이렇게 humble하되 아라곤은 이렇게 고귀하다는 것을 보여준 비고 모르텐센, 그리고 [왕의 귀환]에서 가장 멋진 대사의 주인공 에오윈! (파라미르랑 잘 됐으니까 불만없지?) 심지어는 뉴라인 시네마와 웨타 디지털에게까지 감사의 작별인사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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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 없이 바빴던 12월 12일의 저녁. 밀린 일을 하려고 사무실에 남은 나는, 1시간만 독서를 하면 머리가 맑아질 거라는 근거없는 계산으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찾아 들었다...만....

애초에 1시간만 읽자고 하면서 어떻게 이 책을 집었단 말인가. 정신없이 읽다보니 시각은 현재에 이르러 -_-; 나는 3시간째 책을 읽고 있고, 야근은 물 건너갔다.

아직 다 읽진 못했으니, 이 훌륭한 저널리스트의 입담이 마지막 장까지 지치지 않을 것인지는 다음 기회에 확인해드리도록 하겠다. 이미 <나를 부르는 숲>으로 알라딘 편집팀 거의 전원의 무차별적 애정공세를 받은 적 있는 빌 브라이슨이다. <나를 부르는 숲>을 읽고 비밀결사에 가입하는 기분으로 조용히 빌 브라이슨을 좋아하기로 했다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은 지금 나는 한국 빌 브라이슨 팬클럽 창단을 선포한다. 선착순 1,000명 한정. 가입비 없음. 회원으로 의심되는 사람과 마주치면 "거의 모든 것을 아십니까"라고 암호를 댈 것.

작년 한 해 애정을 흠뻑 받았던 <엘러건트 유니버스>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좋은 책이다.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서술이 깔끔하게 전개되는 꼼꼼한 책이라 전문가 사이에서도 좋은 개론서로 인정받을 만한 격조가 있었다.

반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의도적으로 복잡한 부분을 슬쩍 뛰어넘되 그것이 논리의 엉성함을 자초하지 않을 정도라, 전체적으로 빈틈 적은(없는, 이라고 말하기엔 내가 다 모르니까), 그러나 쾌활함이 넘치는 책이 되었다. 엄청나게 공을 들인 것이 분명한 - 그래서 너무 고마운 - 기발한 비유들과 과학자의 사생활이라는 양념을 가한 과학사 서술은 누군가에게는 서비스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갱이다. 그건 읽는 사람 마음.

이런 책들을 만날 때마다 '과학을 계속 할 걸 그랬나' 조금 후회도 해 본다. 주제넘은 생각이지.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같은 재미난 책을 읽는 이라면 전공에 무관하게 그 누구라도 과학에 매료될 것이고, 진지한 과학자가 되었어도 삶이 즐거웠으리라는 착각 아닌 착각을 하는 법일 테니까.

* 참고: 본문만 500쪽에 육박하는 이 책에는 삽화나 사진이나 표 따위가 하/나/도 없다. 진짜다. 하/나/도 없다. 까치글방 출판사 특유의 가독성은 높되 지극히 평범한 본문 편집에, 그림자료 하나도 없이 글자만 빽빽한 560쪽의 책을 상상하시면 된다. 그러나 그 빡빡한 책이 기똥차게 재미있다는 것도 진짜다.

아, 물론 과학책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재미 같은 것을 찾는 것이 아닌 분에게 말이다. 이름 외우기 어려워도 조금만 참고 읽으면 감동을 얻을 수 있는 러시아 작가들의 소설처럼, 나열되는 과학적 서술들에 한 줌의 인내만 베풀어주시면 우주와 지구와 생명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일별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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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la 2003-12-15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과 얘기를 나누다가, 이 책의 홍보문구에 <시간의 역사>가 언급되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시간의 역사>는 이 책에 비하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말로 일반인을 위한 책이다. <시간의 역사>나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사실 일반인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최소한 고등학교 과학시간에 배운 것을 잊지 않고 있거나 과학 언저리를 전공한 사람들이라야 편하게 몰입할 수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정말 쉬운 책이다. 뒤로 갈수록 짜임이 흐트러진 곳도 보이긴 하는데 (<대부> 이야기에서도 적었던 것과 같은 '너무 많은 취재의 오류'가 간혹 있다) 어쨌든 침대에 누워서 자기 전에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읽는 기분은 너무나 신비롭다.

배바위 2003-12-24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팬클럽 가입 지원합니다. 내일모레 라디오방송국에 나가서 올해의 책 한 권을 추천해야 하는데 이 책을 추천하렵니다.

starla 2003-12-27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조선일보 선정 2003년 올해의 책에 꼽혔네요. 음 의외이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뭐 좋네요 하하하 ^^

Smila 2004-01-02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다놓고 아직 읽지 않았는데, 이 책이 <이브의 일곱딸들>에 비판적이라면서요? (명남님이 리스트에 적어놓으신 코멘트는 보았거든요.) <이브의 일곱딸들>은 제가 너무 좋아했던 책이라,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집니다...

starla 2004-01-03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스밀라님. 뒷부분 생명에 관한 이야기에서 유전자에 대해 얘기할 때 거론이 됩니다. 어여 보세요~ ^^ <이브의 일곱 딸들>은 제 생각에도 조금은 '신화적'으로 내지는 '감동받을 마음가짐'으로 읽게 되는 책인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저는 쓴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러한 형태의 책을 썼을까 참 궁금했었죠. 아무튼 재미있는 책인데, 조오금 어려웠어요. ^^

그러고보면, 어떤 책이 어떤 출판사를 만나느냐도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브의 일곱 딸들>은 따님에서 나왔죠? (아마;;; 대략 기억 정확치 않습니다만) 만약 사이언스북스에서 나왔다면 어땠을까 갑자기 상상해보게 되네요. 책의 내용 자체가 달라질 리야 없겠지만, 홍보의 포커스가 확 달라졌겠죠, 아마... 따님은 당연하게도 유전학 연구에서의 여성주의적 경향 (사실 특정 유전형질의 - 설령 그것이 유전학의 역사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중요한 것이고, 지질학으로 따지자면 방사성동위원소 기법과 맞먹을 혁신을 가져오는 것이라 하더라도 - 모계유전이라는 팩트에서 모종의 여성주의적 함의를 끌어내려는 것 자체가 노골적으로 주장될 경우 '오버'일 위험이 있습니다만) 을 은근히 강조하며 프로모션했는데요, 사이언스북스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같군요. 흐흐...

저는 <이브의 일곱딸들> 중에서 동아시아 인에 대한 유전적 분석 얘기가 한 문단인가 -_-;;; 나왔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헉, 아닐지도 -_- 대략 이 대목에서도 기억이 가물가물 ㅠ.ㅠ) 스밀라님의 글을 본 김에 집에 가서 오늘 다시 읽으렵니다 ^^ 스밀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Smila 2004-01-04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아시아 인에 대한 유전적 분석 얘기 나왔던거 맞아요^^ 따님에서 그런 쪽을 강조하며 홍보했었다면 어쩐지 오버같군요.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제 입장에서는) 전혀 그런 식으로 생각 안했었으니까요. 전 그저 남자이건 여자이건 '먼 조상'의 존재란 걸 그렇게 실감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전까진 조상이란 걸 정말 우습게 알았는데... 나의 조상 누군가가 그 험한 시절을 살아내고 씨를 뿌렸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감동이었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책두께 땜에 엄두를 안내고 있었는데,(저 두꺼운 책 무지 싫어해요^^;;) 어여 읽어봐야 겠네요.
 


예린씨의 서재 어딘가에서 '쇼팽을 듣는 것은 유약함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는 구절을 보았다. 실로 절묘한 표현이다. 쇼팽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런 기분은 다들 느껴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쇼팽을 좋아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였다.

주위에 클래식을 듣는 친구가 꽤 있어서기도 하지만, 내가 쇼팽을 들었던 까닭은 무엇보다도 피아노 음악이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잘 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연습곡이 아닌 곡을 연주하라면 할 수 있는 건 녹턴 정도 밖에 없었으니까, 피아노 소나타는 공감하며 들을 수 없어도 녹턴이나 폴로네즈 정도는 공감하며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쇼팽은 피아노협주곡 1, 2의 쇼팽이다. 협주곡으로서 쇼팽의 것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 후하지는 않으리라고 짐작한다.

나는 원체 협주곡을 좋아하는데, 특히나 쇼팽의 것에서 느껴지는 그 아슬아슬한 신경증이 좋다. 다른 협주곡에서 피아노가 오케스트라를 압도하거나 팽팽한 경쟁을 펼친다면, 쇼팽의 것에서 피아노는 뭇 남성들의 시선에 둘러싸여 홀로 춤을 추는 여자 무희와 같은 안타까운 매력을 발한다. 오케스트라가 마치 "저 피아노 대단히 신경이 날카롭군"이라고 동정하는 기분이다.

고등학교 때 마침 부산에서 누군가가 쇼팽 피아노협주곡을 레퍼토리로 한 연주회를 가졌다. 꽤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는데 이름을 잊었다. -_-;; 당시 기숙사에 살고 있어서 2주에 한번 주말 외에는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나는 이 공연에 가기 위해서 그야말로 별별 변명을 다 상상해보았다. 결국에는 좋은 계략이 생각나지 않아서, 솔직하게 "정말 보고 싶은 공연이 있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허락해주셨다. 그래서 고등학생 주제에 혼자 공연을 보러갔다. (여담이지만, 고 2때는 당시 나의 또 다른 우상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공연이 서울에서 있었는데 - 아 이러면 나의 나이가 탄로나는 것인가? - 이 때도 역시 솔직히 보러 가고 싶다고 말해볼까, 고민했지만 "미쳤냐?"고 하실 것 같아 관뒀다.)

위의 사진은 당시 친구 한 명이 선물로 준 손가락 크기만한 높이의 쇼팽이다. 지금 그 친구는 핀란드에 살면서 connecting people을 한다는 노키아에서 열심히 디자인을 하고 있다.

갑자기 쇼팽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어 위의 쇼팽상을 뒤져 찾아내고 그 선물을 준 친구 생각까지 무연히 해 본 것은, 어제 TV에서 본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쇼팽 사랑에 대한 프로 때문이다.

쇼팽의 유약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자면, 나는 그의 곡만한 대중음악은 또 있기 어려울 정도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나는 녹턴의 몇몇 곡들을 들을 때마다 운다. (!!!) 그 때의 작곡가라는 것은 지금의 클래식 작곡가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높은 별자리에 올라앉은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뭐라 해도 누구나 살롱에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여가를 즐겼던 시절이니까. 특히나 살롱에 잘 맞았던 쇼팽이니까. 대중가요의 발라드 전부가 유약하듯, 쇼팽은 조금 유약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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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zooey > <하늘과 땅> 중에서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산다. 불멸의 신神적인 것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 방 안에 혼자 있으면 코를 후빈다. 내 영혼 안에는 인도印度의 온갖 지혜가 자리하고 있지만, 한번은 카페에서 술 취한 돈 많은 사업가와 주먹질하며 싸웠다. 나는 몇 시간씩 물을 응시하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뒤좇을 수 있지만, 어느 주간 신문에 내 책에 대한 파렴치한 논평이 실렸을 때는 자살을 생각했다. 세상만사를 이해하고 슬기롭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때는 공자孔子의 형제지만, 신문에 오른 참석 인사의 명단에 내 이름이 빠져 있으면 울분을 참지 못한다. 나는 숲 가에 서서 가을 단풍에 감탄하면서도 자연에 의혹의 눈으로 꼭 조건을 붙인다. 이성의 보다 고귀한 힘을 믿으면서도 공허한 잡담을 늘어놓는 아둔한 모임에 휩쓸려 내 인생의 저녁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리고 사랑을 믿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여인들과 함께 지낸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의 인간인 탓에 하늘을 믿고 땅을 믿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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