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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린씨의 서재 어딘가에서 '쇼팽을 듣는 것은 유약함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는 구절을 보았다. 실로 절묘한 표현이다. 쇼팽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런 기분은 다들 느껴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쇼팽을 좋아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였다.
주위에 클래식을 듣는 친구가 꽤 있어서기도 하지만, 내가 쇼팽을 들었던 까닭은 무엇보다도 피아노 음악이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잘 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연습곡이 아닌 곡을 연주하라면 할 수 있는 건 녹턴 정도 밖에 없었으니까, 피아노 소나타는 공감하며 들을 수 없어도 녹턴이나 폴로네즈 정도는 공감하며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쇼팽은 피아노협주곡 1, 2의 쇼팽이다. 협주곡으로서 쇼팽의 것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 후하지는 않으리라고 짐작한다.
나는 원체 협주곡을 좋아하는데, 특히나 쇼팽의 것에서 느껴지는 그 아슬아슬한 신경증이 좋다. 다른 협주곡에서 피아노가 오케스트라를 압도하거나 팽팽한 경쟁을 펼친다면, 쇼팽의 것에서 피아노는 뭇 남성들의 시선에 둘러싸여 홀로 춤을 추는 여자 무희와 같은 안타까운 매력을 발한다. 오케스트라가 마치 "저 피아노 대단히 신경이 날카롭군"이라고 동정하는 기분이다.
고등학교 때 마침 부산에서 누군가가 쇼팽 피아노협주곡을 레퍼토리로 한 연주회를 가졌다. 꽤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는데 이름을 잊었다. -_-;; 당시 기숙사에 살고 있어서 2주에 한번 주말 외에는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나는 이 공연에 가기 위해서 그야말로 별별 변명을 다 상상해보았다. 결국에는 좋은 계략이 생각나지 않아서, 솔직하게 "정말 보고 싶은 공연이 있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허락해주셨다. 그래서 고등학생 주제에 혼자 공연을 보러갔다. (여담이지만, 고 2때는 당시 나의 또 다른 우상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공연이 서울에서 있었는데 - 아 이러면 나의 나이가 탄로나는 것인가? - 이 때도 역시 솔직히 보러 가고 싶다고 말해볼까, 고민했지만 "미쳤냐?"고 하실 것 같아 관뒀다.)
위의 사진은 당시 친구 한 명이 선물로 준 손가락 크기만한 높이의 쇼팽이다. 지금 그 친구는 핀란드에 살면서 connecting people을 한다는 노키아에서 열심히 디자인을 하고 있다.
갑자기 쇼팽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어 위의 쇼팽상을 뒤져 찾아내고 그 선물을 준 친구 생각까지 무연히 해 본 것은, 어제 TV에서 본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쇼팽 사랑에 대한 프로 때문이다.
쇼팽의 유약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자면, 나는 그의 곡만한 대중음악은 또 있기 어려울 정도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나는 녹턴의 몇몇 곡들을 들을 때마다 운다. (!!!) 그 때의 작곡가라는 것은 지금의 클래식 작곡가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높은 별자리에 올라앉은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뭐라 해도 누구나 살롱에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여가를 즐겼던 시절이니까. 특히나 살롱에 잘 맞았던 쇼팽이니까. 대중가요의 발라드 전부가 유약하듯, 쇼팽은 조금 유약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