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5
김형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 새내기 때로 기억한다. 93년 5월 성대 금잔디광장, 김귀정 열사 2주기 추모식에서 문익환 목사님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뵀던 것이. 하지만 그 새내기가 '민주화'와 '문익환'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기도 전인 그 이듬해 목사님은 훌쩍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문익환 평전'이 나온다는 소식에 우선 기뻤다. 최소한 추상적이었던 문 목사님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그나마 문 목사님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너무나 단편적이었다는 걸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평전의 매력은 문 목사님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역정뿐 아니라 글쓴이 김형수 시인의 화려한 문체에 있다. 마치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그의 문체는 딱딱한 글이란 편견을 없애기에 충분했다. 간혹 '미화'로 여겨질 정도로 감상적으로 흐른 부분이 없지 않지만 5년여에 걸쳐 사전 취재한 글쓴이의 땀과 노력이 이를 상쇄하기에 충분했다.

늦봄처럼, 거의 인생 막바지에 와서야 세상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문 목사님이기에 거의 베일에 가려진 그의 인생 초중반부를 다룬다는 것은 거의 맨땅에 헤딩하기에 가까웠으리라. 더구나 일제강점기부터 8.15해방, 6.25전쟁, 4.19혁명, 5.16쿠데타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로 가득 찬 한반도 격동기를 상대적으로 조용히 보낸 문 목사님의 감춰진 인생 행로를 쫓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바로 이 부분이 국내외를 넘나든 필자의 취재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특히 유년기와 청년기는 시인 윤동주, 중장년기는 장준하의 삶을 각각 문 목사님과 대비시키며 풀어나간 부분은 정말 감탄스러울 정도다. 이를 통해 문 목사님이 민주화 운동 진영의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가 된 76년 3.1민주구국선언사건이 결코 충동적이거나 우연의 결과물이 아니며, 이미 오랜 기간 쌓아온 민족주의 의식이 바닥에 깔렸음을 강조한다.

아직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간 인물을 제대로 다룬 평전이나 전기가 많지 않은 현실이지만, 적어도 '문익환 평전'은 '전태일 평전'과 더불어 뛰어난 수작으로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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