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기의 역사 - 튤립투기에서 인터넷 버블까지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강남규 옮김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두툼한 책을 집었을 땐 쉽게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하지만 첫 장에 실린 네덜란드 튤립투기에 관한 생생한 기록들을 읽으면서 요즘 주식투기의 기원을 파헤치는 재미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 영국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챈슬러가 쓴 이 책의 원제인 'devil take the hindmost'는 '먼저 온 사람이 제일'이란 의미를 지닌 영국 속담이다. 즉 남보다 한 발 빠른 소수만이 일확천금할 수 있는 금융 투기꾼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말이다.순식간에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가난한 서민들과 같은 '얼치기 투기꾼'들이 버블 속에 뛰어들면 곧 공황이 발생하고 그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루게 된다.

현대경제학에서 '투기'는 '투자'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돼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미덕으로 여겨져 왔다. 수십 년 주기로 반복되는 버블과 공황 역시 '정상적인 경제흐름'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에드워드 챈슬러는 이처럼 4세기를 반복해온 투기 열풍을 권력과 야합한 부도덕한 투기꾼 군상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또 이를 토대로 '현재진행형'인 인터넷 버블의 허상을 공격한다. 이 책이 발표된 시점이 인터넷버블 논쟁이 한창이던 1999년이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 크다. 결국 챈슬러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일확천금을 노리는 인간의 투기 심리와 승자 뒤엔 반드시 패자가 존재하게 마련인 제로섬게임의 원칙은 변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금융시스템이 점차 발달하고 투기 대상 역시 첨단을 걷게 되면서 금융투기의 결과가 전세계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머징마켓 투기가 부른 97년 아시아 외환위기로 애꿎은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이 대가를 치룬 것처럼 이제 투기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조차 투기열풍의 그늘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결국 금융투기의 수레바퀴는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계속 돌고 돌겠지만 그와 함께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투기꾼의 모럴해저드도 영원한 숙제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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