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없길 바라며...

일부러 회사 휴무까지 내고 12일 저녁 공연을 봤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공연이라고 하기에 절대 놓칠 수 없었습니다. 96년 이후 8년여 동안 계속 이어졌던 공연을 스스로 마무리짓는 마지막 공연...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40여년이 흐른 지금 '중동에서 돌아올 김상사'로 되풀이되는 역사의 암담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내일(13일) 이라크 파병 여부가 국회 본회의에서 결정된다고 합니다. 통과가 확실시 된 답니다.

이런 현실 분위기 탓인지 이날 공연 도입부의 암울한 분위기는 더욱 관객의 마음을 울적하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주문과도 같은 '가수'의 노래에 맞춰 점점 옥죄 들어오는 '죽은 혼령들'에 시달림 당하는 '김상사'의 모습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머잖아 우리에게도 닥쳐올 수 있는 모습이니까요.

행진곡에 맞춰 월남 파병의 당위성을 외치는 '위정자'의 모습은 이라크 파병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지금의 위정자들의 모습 그대로였고, 태극기를 흔들며 떠나는 군인들을 열렬히 환송하는 국민들의 모습은 앞으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모른 채 이라크 파병을 남의 일처럼 지켜보는 국민 대다수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이공의 창부촌에서 술취한 채 행패를 부리던 미군병사의 총구 앞에 두 손 쳐드는 김상사의 모습에서 미국과 부시 대통령의 압력에 굴복하고만 우리 정부의 모습이 떠올랐다면 지나친 걸까요?

하지만 뮤지컬 '블루사이공'이 지금 우리의 현실을 투영하고 있다기보다는, 우리의 현실이 '블루사이공' 속의 현실을 그대로 빼닮아가고 있다고 봐야겠죠. 더 나아가 적어도 국제관계에 있어 우리의 현실이 월남 파병을 앞둔 40여년전의 상황에서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는 얘기도 되고요.

우울한 분위기에서 시작해 안타까운 결말로 끝맺는 '블루사이공'이지만 꼭 절망적인 상황만을 담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김상사'와 어린시절 기억과의 화해, 그의 배다른 자식인 '북청'과 '신창'의 만남에서 작지만 '희망'의 풀씨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끝까지 멋진 공연 보여주신 배우와 스태프들, 특히 '마지막 공연'이라는 쉽지 않은 결단을 통해 '파병 반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김정숙 대표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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