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어떤 사회든 따라야할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을 잘 따르는 한 말썽 날 일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핀트가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고 어느순간 꼼짝없이 '문제아'가 되고 만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2007)는 한번의 어긋남으로 결국 안좋은 추억으로 남고 말았다. 먼저 '규칙'을 어긴 건 내쪽이니까 불평해봤자 소용없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나 같은 악의적이지않은 몇몇 '문제아'들도 포용할 줄 아는 배려있는 영화제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대여섯살도 아니고 벌써 11살이나 먹은 중견 영화제이기에 더 그렇다.

어제는 아내와 함께 피판에 가는 날. 우선 11시 조조로 프리머스에서 '철인28호'를 2주전에 예매했다. 하지만 용산발 급행전철만 믿은 탓에 '완행전철'로 부천역에 도착했을 땐 이미 11시를 갓 넘겼다.

'상영 5분 이후 입장불가'라는 첫번째 규칙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내와 함께 였기에 좀 늦게라도 봐주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막상 프리머스까지 가려해도 방법이 없었다. 이미 11시편을 끝으로 무료셔틀버스 운행을 12시 30분까지 중단했기 때문이다. 혼자 같았으면 택시나 노선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했겠지만 아내도 챙겨야 하고 경황도 없어 결국 관람을 포기했다.

그래도 볼 작품이 아직 두 편 남았다. 역시 2주 전 어렵게 예매한 '달려'와 '별빛속으로'. 모두 매진을 기록한 작품이어서 기대도 컸다. 하지만 막상 임신한 아내가 밤 10시 넘어 끝나는 저녁 상영작을 부담스러워 해 '별빛속으로'는 취소해야 했다. 티켓발급할 때 취소를 요청해 봤지만 일단 '상영 전날 저녁 8시 이후 예매 취소 불가'라는 두번째 규칙에 걸렸다. 피판홀릭 회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극장에선, 심지어 부천영화제 상영관중 하나인 CGV조차 '교환및환불은 상영시간 전까지 가능합니다'라고 티켓에 표기돼 있는데, 왜 유독 부천영화제 티켓은 10년 넘게 '당일 취소 및 환불 불가'냔 말이다. 부천영화제도 실시간 인터넷예매가 가능한 지금 프로그램만 추가해도 간단히 해결될 일을, 아직 구시대적인 '티켓나눔터'에 의존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

할 수 없이 피판의 '자랑'인 티켓나눔터를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별빛속으로'를 상영하는 CGV부천에는 정작 '티켓나눔터'가 없었다(이 규칙은 주최측이 어긴 셈이다). 조조표 2장에 이어 꼼짝없이 티켓 2장을 또 공중부양 시켜야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열성적인 자원봉사자 덕분에 어렵사리 표 2장을 다른 분께 처분할 수 있었다.

여기에 영화상영 도중 관람을 포기한 영화까지 포함해 이날 결국 영화 2편, 표 4장을 놓치고 말았다. 3만원짜리 '피판홀릭' 손익분기점을 따져보니 차라리 일반예매로 했을 때보다 손해다. 물풍선(?) 하나 건진 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지...

이날 잠시 '문제아'가 된 덕에 지금 피판의 문제를 분명히 깨달았다. 2007년 피판은 내용상 3년 전 전성기의 영광을 되찾는데 성공했다고 자평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예매취소시스템을 비롯해 관객 배려 만큼은 오히려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과거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 당일 취소는 물론 1~2시간 전 실시간 예매까지 가능해진 요즘 관객들의 눈높이에서 보면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티켓나눔터. 인터넷 예매가 활성화되지 않은 10년 전엔 분명 진일보한 시스템이었지만 이제 '부천영화제의 자랑거리'라고 하기엔 무색한 구식이 돼 버렸다. 제발 내년에는 당일 예매 취소라도 가능하게 만들어 사장되는 티켓을 최소화하고 애꿎은 자원봉사자의 노동력만 착취하는 '티켓나눔터'가 필요 없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전석 매진'이란 말이 무색하게 듬성듬성 빈 좌석을 보는 이들의 안타까운 심정도 함께 헤아려 줄 수 있을 것이다.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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