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라디오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그레그 베어 지음, 최필원 옮김 / 시공사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모처럼 접한 SF소설이다. 700쪽에 가까운 묵직함도 맘에 들었지만 공교롭게 임신과 출산을 소재로 했다는 것도 왠지 끌렸다. 이제 출산 문제가 내 현실이 된 상황이어서 더욱...

<쿼런틴>에서도 느꼈지만 하드 과학소설의 매력은 역시 탄탄한 과학적 이론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 유전자, DNA, RNA, 게놈, 염색체 염기서열... 황우석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 놀랍게 보편화(?)된 낯익을 용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인간 내생적인 급격한 진화와 신인류 탄생이란, 다소 허황되고 다루기 쉽지않은 소재지만 도입부부터 놀라운 복선들이 강한 흡인력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인류학자 미치 라펠슨이 알프스 산맥에서 발견한 1만년도 훨씬 더 된 네안데르탈인 가족 미라. 현인류와는 얼굴 생김새가 많이 다른 네안데르탈인 부모에게서 어떻게 현인류와 흡사한 아기가 태어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아기엄마와 아기는 왜 배와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 죽어있었을까?

그리고 인간 내생적 RNA 종양 바이러스 이론을 통해 급격한 인류 진화를 가져올 수도 있음을 예고한 생물학자 케이 랭은 그루지아에서 수십년 전 살해후 암매장된 임신한 여자와 그 남편들의 시신들을 발견한다.

미 질병관리센터 요원 크리스토퍼 디킨은 임신여성에게 나타나 유산과 기형아 출산을 유도하는 '헤롯독감'을 발견하고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에 나서게 된다. 흡사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을 다룬 영화 <바이러스> 등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이 세 사람이 서로 다른 시각에서 소설을 끌어가는 세 축이다.

'헤롯'은 새로운 왕 예수의 탄생을 막기 위해 유대인의 모든 첫 아이를 살해한 성경 속 인물이다. 헤롯독감이란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질병'은 남편을 통해 감염돼 첫아이를 유산하게 되고 처녀임신을 통해 기형아를 출산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인류의 씨를 말려버릴 수 있는 이런 사태에 세계는 큰 혼란에 빠지고 정부는 백신개발이나 임신중절 등을 통해 사태 확산을 막으려고 나선다. 하지만 미치와 케이는 이것이 단순한 질병이 아닌 현 인류가 새 인류로 바뀌는 급격한 진화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충격적인 스토리의 바탕에 깔린 것은 바로 임신과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이란 이중적인 면이 아닐까 싶다. 의학이 발달한 탓에 요즘 임부들은 산부인과를 수시로 오가며 태아에게 장애는 없는지, 혹시 기형아가 태어나는 건 아닌지, 하는 조바심 속에 살아간다. 때론 다운증후군 등이 조기 발견돼 '합법적' 유산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생명체로서 태아의 인격은 논쟁 속으로 빠져든다.

극단적으로 헤롯독감이 두려움을 상징한다면 신인류의 탄생은 곧 희망이다. 책을 읽는 내내 소설로만 받아들이지 못하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임신 부부의 두 가지 상반된 정서를 정확히 관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속편 <다윈의 아이들>이 속히 국내에도 출간되기를... 그리고 절판된 그레그 베어의 초기작 <블러드 뮤직>도 다시 나오길 기대해 본다. 첫 출산의 경험과 함께 묶여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책이다.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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