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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옥루몽 1 - 대한민국 대표 고전소설
남영로 지음, 김풍기 옮김 / 그린비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고전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읽는 이의 영혼을 울리는 것' 이라고 한다.

그런 연유에 부쩍 고전이 좋아진 요즘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읽게 되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특히 좋아하는 나로써 그런 문학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무척 뿌듯해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렇게 고전을 즐기고만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국의 고전은 이렇게 많고 다양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은 무엇이고 즐기는 고전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안타까웠다.

우리의 고전을 나열해 보려해도 선뜻 선뜻 나오지가 않았고 어느시대 무엇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또 제대로 읽은 적이 있는지 어느 것 하나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고전은 알지 못한채 외국의 고전을 탐독하고 있는 내가 조금은 씁쓸해져 갔다. 그러던 중 옥루몽이라는 제목만 들어본 적이 있는 고전이 완역이 되어 발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씁쓸함을 조금은 날려 주는 것 같아 반가웠다. 우리에게도 훌륭한 고전이 있다고 자랑하고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 그득했다.

 

고전의 첫 어려움이라 하면 아무래도 언어가 아닌가 싶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휘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언어에서 그런 말의 어려움은 더 커져가는 것이다. 그러나 저번달에 홍석중의 '황진이'를 읽어서인지 꼼꼼히 정리된 주석과 함께 읽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 안에는 재미가 가미되었기 때문에 훨씬 수월했던 면도 있었다.

그리고 반가웠던건 현대인이 쓴 고전이 아닌 말 그대로의 고전이기에 생소한 언어속에서 그 시대의 언어가 배어나와 고전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는 것이다. 현대의 고전이 아닌 고전속의 고전...

말장난 같지만 그렇게 옥루몽의 매력에 빠져갔다.

 

옥루몽에서 주요 인물은 양창곡이다. 양창곡과 맺어진 인연이든 아니든 많은 인물이 나타나지만 양창곡이 중심이 되어 점점 스케일이 커져간다. 범상치 않은 양창곡의 출생.. 뛰어난 재능.. 그리고 장원급제하여 펼쳐지는 활약상이 그려져 있다. 1권에서는 그의 활약상이 전부 드러나지 않고 시작에 불과해 다음 이야기가 몹시 궁금해졌다.

그러나 1권에서 양창곡이 주요인물이긴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앞으로 스토리를 이끌어 갈 인물들도 등장한다. 양창곡 같은 인재에게는 많은 인연이 따르는 법...

처음 마음을 열고 사랑을 나눈 강남홍을 두고라도 1권에서 세명의 부인을 맞이하게 된다. 앞으로 한명의 여인을 부인으로 더 맞을테고 강남홍과의 재회를 앞두고 있으니 옛날에는 자연스럽고 당연했던 풍속이였으나 고전에 대한 어쩔 수 없음이 드러나 질투가 나기도 했고 괜히 실망스럽다는 둥 그러면 그렇지 라는 둥 ... 그쪽에 관한 양창곡의 면모에 대해서 투덜대고 있었다. 진한 로멘스라도 바라는 것이였을까? 왜 나는 앞길을 보지 못하고 여기서 머뭇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자기의 의지와는 다르게 부인으로 맞은 황소저를 보며 여러 부인들 사이에서 꼭 이런 사람은 한명쯤 있다는 생각에 양창곡과 다른 부인들과의 어려움이 훤히 그려져 이 문제는 이만 여기서 접기로 했다.

이것 말고도 조금씩 조금씩 고전이라는 매력에 빠져가는 것이 많았으므로..

그 매력중에 단연 돋보였던건 시조가 아닌가 싶다.

강남홍과 벽성선이 기생이라는 신분도 있었지만 양창곡과의 정을 나눔에 있어 시로 마음을 주고 받는 것에 대해 고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지식과 배움의 산물이며 가장 보편화된 드러남이 시조이듯 범위가 너무 한정되어 있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 시대 상의 특징을 따라 즐기다 보니 외국의 명시에도 견줌에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주고 받는 시가 대부분이라 배경을 알고 읽으며 마음에 더 와닿듯 따로 떼어 놓으면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 들더라도 말이다.

 

또한 현명함과 인과 덕을 중시하는 면모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책 속의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이라 고리타분하게 생각되어질지 몰라도 우리는 그런 면에 익숙함으로 시나브로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면을 1권의 끝부분에 나오는 양창곡과 나탁과의 싸움에서 볼 수 있듯이 전쟁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역시나 흥미진진했고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그 부분이 아니더라도 그런 면모는 책 전체에서 자주 볼수 있었기에 그 시개속의 빠짐이 짙어져갔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처음 기대 했던 우리의 고전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기도 했었다. 다소 익숙한 스토리며 순수한 우리 고전이 아닌 중국이 무대가 되었고 많은 현인들이나 가르침이 다 중국에서 비롯된 것이였다. 그 당시 중국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을 보면 당연한 결과였겠으나 왠지 우리나라만의 순수한(?) 고전을 바란터라 터무니없는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확실하게 느꼈던건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19세기 러시아문학을 읽으면서 느꼈던 즐거움과 만족감이 옥루몽에서도 드러났다는 것이다. 고전이라는 장르의 틀속에 담으려 했던 나의 편견을 깨어주듯 옥루몽은 그 매력을 안은채 편하게 재미나게 많은 가르침을 담은채 그렇게 다가왔다.

우리의 고전...

옥루몽을 읽는 것 하나만으로 자랑하고 싶고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제야 우리의 고전이라고 떳떳이 내 놓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작품을 만난 것 같아 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써 한없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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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읽는 멋진 인간관계 만들기
최준호 지음 / 대경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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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라 함은 누구나 돈독히 만들고 싶을 것이다.

문제없이 원만하게 그리고 유쾌하고 정이 담뿍 넘치도록 말이다.

학창시절 성격이 유쾌했던 편이라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는데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내가 내키는 대로만 할 수 없는게 인간관계인 것을 알았다. 특히 아부성 발언이 거의 없고 아쉬운 소리 싫어하는 내가(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나가 해당되겠다..)정말 상대하고 싶지 않는 사람을 만났을때 곤역스러웠다.

그리고 요즘은 인터넷으로 뜻이 맞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넓히다 보니 인터넷 안에서와 밖에서의 관계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는 뜻이 맞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터라 온라인에 너무 치우치다 보니 주변의 친구들은 잊은채 너무 고립되는 건 아닌가 하는 자기 진단이 내려졌다. 그래서 나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점검해 보고 싶었다.

 

인런 실용서들의 특성상 조금은 딱딱하고 재미 없게 읽을 수 있고 또한 정말 마음을 연 채 읽기가 힘들다. 남들에겐 철두철미 하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이런 책들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은 어찌 하면서도 수용하고 고쳐나가기는 만만치가 않다. 나에게 한없이 관대한 탓에 가장 관심이 가는건 9가지 성향중에서 어느 것에 가장 가까운지 파악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책을 읽기만 하면 스르륵 바뀌기라도 바랬는지 많은 충고와 조언 속에서 완전한 수용을 하지 않아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상태는 잠시 멍했다. 제대로 마음을 열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래서 나의 성향이라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다시 들춰보는 사태까지 갔는데.. 이 작은 경험을 빌어 보건대 아무리 좋은 조언들이 많이 들어 있더라도 자신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책 읽는 시간만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이 좋고 나쁘고를 따지기 전에 우선 마음을 열어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부분 마음을 닫고 읽었더라도 마음을 툭 터놓고 생각해 보려 한다.

 

우선 아쉬웠던건 시각적인 효과였다. 실용서의 딱딱한 부분을 날려주기 위해 중간 중간 주위에서 접할 수 있는 예들을 재미나게 그려 보았지만 그런 예들에 센스가 후하지 않았고 책 속의 컬러와 구성 그리고 애니메이션들은 조금은 오래 되었다라는 생각이 들어 시선을 분산시켜 책으로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데는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이 중요한 것이겠지만 내가 꼭 필요해서 읽는 책이 아닌 한번쯤 보면 좋을책이라는 이미지를 여는데 끌림이 적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9가지 성향을 끊임없이 들추어 내는데 반해 내가 자각하지 못했던 9가지의 유형을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보는데 귀찮음과 약간의 진부함까지 느꼈다.

부록에 있는 에니어그램에 간단하게나마 유형의 설명이 정리 되어 있어 책을 읽으면서 펼쳐볼 수 있었더라면 이해하는데 많은 되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줄을 읽어나가기도 전에 몇번 성향, 두 성향의 맞부딪힘의 결과를 나열해 놓으니 나의 성향은 파악했으나 그 성향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나에겐 힘겨웠다. 이 부분만 보더라도 이 책은 읽기가 아닌 노력과 연구의 산물이란걸 알 수 있었다. 나의 성향 및 그리고 누구에게나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성향들을 읽으려고만 했으니 힘겨웠을 밖에..

또한 두리뭉실하게 광범위한 마음을 움직이려는 시도가 아닌 분석적인 성향이 강해 이런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당장 나만 보더라도 이기적인 성향이 강해 진지한 분석이 부족하여 내 자신에 가까운 성향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보며 묵묵히 연구하며 분석했을 저자의 노고가 느껴져 푸념들을 털어 버리기도 했다.

 

중간 중간의 약간 과장된 예들을 보면서 딱딱함을 없애고 재미나게 꾸미려 한 흔적과 나또한 그런 부분은 재미나게 읽었고 누구에게나 조금씩 들어 있다는 9가지 성향 테스트도 진지하게 나를 파악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놀라웠던건 5번 유형 관찰자,사색가를 테스트 하면서 20가지의 예시에서 무려 16가지나 해당되는 결과였다.

거의 80센트 이상 나와 맞아 떨어져 뜨끔 하면서도 5번 성향만 보면 눈에 불을 켜고 봤던게 사실이였다.

그러나 80퍼센트 이상 맞아 떨어진 유형속에서 당장 내가 얻어낸건 없다. 우선 나를 진지하게 파악했다는 것.. 그리고 그 파악안에서 좀 더 나에게 솔직해지는건 앞으로의 나의 숙제라 생각된다.

 

이상하게도 유형 테스트는 너무 진지하고 애매모호해서 정말 이 사람과의 충돌을 피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해 파악해보려 해도 섬세하게 파악이 안되었다.

내가 자세히 몰라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내 자신을 내가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파악하기 보단 다른 사람들에게 에니어그램을 테스트해본 후 대처하는게 낫겠다라는 얄팍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걸 보면서 나의 소소한 푸념 가운데 오랜 준비 과정을 거쳐 내가 뜨끔할 정도의 분석을 해준 저자의 노고가 깊다는걸 다시 한번 깨달으며 또 다시 우선 나부터 파악해보는 들춰짐이 반복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들춰짐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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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배자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정란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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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바타이유의 처녀작 '다다를 수 없는 나라'가 너무 강렬해 이 작가의 책을 검색해 보았지만 '시간의 지배자'와 '지옥만세'밖에 없었다. 지옥만세를 읽고 또 다른 변신에 감탄사를 던졌는데 우리 나라에 번역된 마지막 책 '시간의 지배자'를 마주하고는 아쉬움이 앞섰다.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는다는건 흔한 것 같으면서도 흔치 않은데 번역된 책이 없어 읽지 못한다는 건 흔치 않음을 떠나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래서 진즉 사놓고도 읽기가 아쉬워 오랫동안 읽지 않았는데 단 하루만에 다 읽어 버렸다.

 

밤마다 218개의 시계를 찾아 다니면서 시계를 고치는 시계공.. 그 환상의 공간속에서의 시계공과 그 주변의 이야기는 저자의 독특한 상상력을 이번에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전작에서 보여 주었던 언어의 마술, 절제, 그리고 글쓰기가 철저히 계산적이라다라는 옮긴이의 말을 굳이 빌지 않더라고 이 모든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시계공이라는 의미보다 제목처럼 시간의 지배자, 시간의 달인이라는 의미가 더 가까운 이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단순히 시간을 맞춘다라는 의미만으로 결정 지을 수 없을 것이다.

직업의 특성상 밤에 일하는 이들은(제르당->주제페->아르투로 옮겨간다) 밤의 지배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궁을 누비며 시계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고 하루에 한번 꼬박 꼬박 해야 하는 일은 지치고 의미없어 보이면서도 왕궁에 작은 생기를 불어 넣어 주는 것이다. 특히 아르투로와 공작의 이런 밤의 나들이는 그들이 정말 시간을 찾으려고 하는 진지한 행위로 보였다. 아르투로는 자기의 일을 성실하게 했고 공작과의 밤 나들이에서 충분히 많은 교감을 나누었음에도 후일 태어난 아루투로의 딸 로도이프스까를 범하고 삶의 종지부를 찍어준 일은 공작 다우면서도 끔찍했다.

아르투로의 결혼이 그에게 밤 나들이의 흥분과 묘한 감정을 뺏앗아 갔지만 진정 그렇게 쉽게 공작과 우리들은 로도이프스까를 잊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아르투로는 그렇게 고치던 시간과 삶을 잃어버렸다.

공작에게는 원래 시간과 삶이라는 것이 무의미하고 진부할 뿐이였지만 아르투로는 소중했다. 공작이 쉽게 놓아버리는 것들이...

딸의 죽음 이후 성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아르투로를 두고 부인 헬렌은 몇년 후 사내아이를 낳는다. 헬렌은 성에 잘 적응했고 어울리는 인물이였다. 세탁을 하는 그녀의 직업에서 아르투로를 만나 묘한 신분상승을 통해그녀는 그렇게 성에 흡수되어 버린다. 마치 고쳐지지 않는 시계처럼 당연한 듯이...

 

저자는 이 모든 이야기에 분명 철저한 냉정과 여백을 두고 있음에도 그 여백은 전작처럼 그렇게 백지가 아니다. 끊임없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상과 감정들의 멈춤을 형식을 빌어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일뿐 그의 여백 가운데는 끊임없이 생각과 느낌들이 솟아난다.

환상의 세계를 말하고는 있지마 상처는 생생이 느껴지는 일관성이, 더 깊은 블랙홀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21살엔 '이방인'이후의 최대의 처녀작으라 불리우던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쓰고 25살엔 이 작품을 썼다. 그러나 이런 결과가 결코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천재는 만들어 진다라는 말처럼.. 저자도 자신을 하루 하루 만들어가 이런 작품을 쓰지 않았나 싶다.

그렇기에 더더욱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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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유전자 1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코디 지음, 오현수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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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벤트 응모할때 만약 신의 유전자를 지녀서 예수와 같은 능력을 갖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정말 예수와 같은 능력이라면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구원의 길을 더 넓혀서 많은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중에서 정답이 나왔다. 이 책에서는 신의 유전자로 병을 고쳤다. 주는게 더 행복하다는 진리와 함께...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로 왓다는 주님...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힘입어 신의 유전자는 불치병을 고친것이다.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는 나사로의 예언을 발견한 형제단은 자기네들 사명에 거슬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의사 톰을 죽이려다 톰의 부인을 죽이고 만다. 부인인 올리비아가 살아있더라도 뇌종양으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과 유전이라는 걸 알기에 자신이 딸 홀리의 유전자를 검사하니 홀리도 곧 뇌종양으로 목숨을 잃을 위기다.

톰은 딸을 살리기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그러다 예수의 유전자를 지닌사람을 찾기 위해 교주 에스겔은 톰과 거래를 하고 2천년전의 예수의 치아를 통해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를 추출하고 에스겔의 찾는 신의 유전자를 지닌 사람을 발견하지만 그는 바로 톰의 암살범이자 종교집단의 살인마라 불리우는 네메시스, 마리아이다.

마리아는 살인죄가 밝혀져 사형이 선고되고 톰은 신의 유전자를 직접 주입해야 낫는 것이 아닌 주입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다. 마리아는 독약 주입 방식의 사형에서 자신이 죽더라도 부활할 것이라 믿고 톰은 남은 유전자 샘플을 두고 세계의 존경받는 사람들을 뽑아 주입한다. 형제단의 본부를 습격해 에스겔 일행과 마리아의 시신을 없애지만 책의 말미에서는 마리아가 분명 불에 탔음에도 시신은 사라진다. 우리에겐 아직 남은 질문이 있다. 마리아는 과연 어디로 간걸까..

 

줄거리를 대충 훑터 보더라도 소설이지만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러니깐 소설이 아니겠느냐고 말할지는 몰라도 책 속으로의 스며듬이 얕았다. 그리고 책 속에서 홀리가 '라이온킹'을 봤다고 하는 장면에서 이 책이 나온지 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거리감을 더 넓혀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과학책은 최신것을 읽고 문학은 고전을 읽으라는 말이 있는데 최신을 요구하는 과학부분이 약 10년이나 됐으니(책의 내용이 현재와는 거리가 멀다 해도...) 이렇게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닌가 싶다.

여튼 아쉬움이 남는건 제대로 뒤집기를 못해준 것이다.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그 사실을 믿는 무리가 제대로 된 신념을 가진 집단이 아니라는 것과 신의 유전자를 체취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상대방이 치료해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마리아의 행방이 이런 헛점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신의 유전자를 가졌다고 해도 어찌 한 인간이 인간을 두고 살릴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전 세계에 10명 남짓 하는 사람들에게 주입시켜 다른 사람들을 살린다 해도 예수를 부인해 지옥을 가는 것과 그 사람들을 만나지 못해 죽는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읽기는 그럭 저럭 재미나게 읽었음에도 이렇게 투덜 거리고 있다.

이런 사실부터가 아이러니일까..

소설을 소설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에서 밝혀내는 헛점들이?

그래서 소설이지만 삶과의 연관성이 부족하다고 푸념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 연관성이라는 걸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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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스케치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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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이끌려 '사치와 평온과 쾌락'을 읽은 적이 있다.

스케치를 참 꼼꼼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뒤로 상뻬의 책을 읽을 기회는 자주 없었다. 이 책이 상뻬의 두번째 책이다.

아는 언니의 생일 선물로 주려고 샀다가 궁금해서 들추다 보니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스케치도 있으니 무조건 읽어다라는 표현은 단순하군..)

프랑스인으로 보게 된 뉴욕의 모습을 표현한 책인데 왠지 뉴욕을 가보지 않았음에도 뉴욕답다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도...

상뻬는 이런 뉴욕과 뉴욕커들을 이해를 해 버렸다고 했는데 그의 글과 그림에서 상뻬가 말한 것처럼 비난이 아니라는게 느껴진다.

창조적인 일을 하려는 사람들, 늘 긍정적이고 약간의 과장이 베어 나오고 뉴욕에 물들어 가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나도 단순해지는 느낌이였다. 복잡한 뉴욕에서 왜 난 그런 생각을 하게 된걸까....

분명 상뻬의 글만으로는 이런 감정을 쉽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스케치가 있기에 가능했다. 글이 있음에도 글의 상상력을 훨씬 더해주는 그의 스케치는 낯선 뉴욕을 그림에도 저자처럼 그들을 이해해 버리는 마력이 있었다. 어느날 꿈에서 보았던 뉴욕의 어두운 거리의 면묘가 아닌 지극히 흔한 모습에 꿈에서 보았던 뉴욕의 두려움이 아닌 늘 내게도 존재하는 일상을 본 것이다. 그런 모습이 프랑스인인 상뻬의 시선으로 그려지는게 어쩜 내가 수긍하고 이해하고 느끼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뉴욕이 친근해진 느낌이다.

조금만 가면 만날 수 있는 다른 도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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