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래빗 시리즈 10 : 티미 팁토스 이야기 베아트릭스 포터 베스트 콜렉션 10
베아트릭스 포터 글.그림, 김동근 옮김 / 소와다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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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며칠 전 아이에다 조카 둘을 데리고 일이 있어 당일치기로 먼 거리를 다녀왔다. 혼자 다녀오는 것도 힘든데 아이 셋과 함께 움직이려니 더 힘이 들고 체력이 달렸다. 볼일을 보면서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고 14시간 만에 도착한 집에 오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 가장 편한 곳은 우리집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집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낀 그런 외출이었다.

 

  여기 아주 사이좋은 다람쥐 부부가 있다. 다람쥐 부부는 겨울이 지나고 먹을 열매를 저장하기 위해 열심히 모으고 있다. 나무 밑동에 열심히 열매를 저장하다 그곳이 꽉 차자 딱따구리 할아버지가 살던 빈 나무 구멍에 열매를 저장하기 시작한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열매를 보면서 다람쥐 아줌마는 구멍이 작아 열매를 꺼내지 못할까 걱정을 한다. 티미 팁토스 아저씨는 겨울이 지나면 배가 홀쭉해져 있어 충분히 열매를 꺼낼 수 있을 거라 안심을 시키지만 정작 그곳에 자신이 갇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새들의 노래 때문에 오해를 받고 다른 다람쥐들에 의해 나무 구멍에 갇힌 티미 팁토스 아저씨. 자신이 열매를 쌓은 구멍에 떨어진 아저씨는 정신을 잃고 그 사실을 전혀 알 리 없는 아줌마는 돌아오지 않는 아저씨를 기다린다. 숲으로 아저씨를 찾으러 갔지만 다른 다람쥐들은 아저씨를 여전히 오해하고 아줌마를 쫓아 버린다. 온 숲을 뒤지며 아저씨를 찾아다니지만 정신을 잃고 쓰러진 아저씨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편 티미 팁토스 아저씨는 정신을 차려보니 줄무니 다람쥐 치피하키 아저씨에 의해 침대로 옮겨져 있었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자 살이 찌면 구멍을 통과 못할 거라 염려했지만 자꾸 권하는 음식을 거절할 수 없어 계속 먹게 된다.

 

  한편 돌아오지 않는 아저씨를 마냥 기다릴 수 없어 혼자서 열매를 모으기 시작한 다람쥐 아줌마는 아저씨가 있는 나무 구멍에는 열매를 넣지 않았다. 다음에 꺼낼 수 없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여전히 나무 밑동에 열매를 가득 넣었는데 그곳에서 치피하키 아저씨의 부인을 만났다. 그리고 서로의 남편이 소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새의 도움으로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어 함께 찾으러 간다. 한바탕 그곳에서 남편의 확인작업(?)을 하게 되지만 티미 팁토스 아저씨는 그 사이 살이 쪄 구멍을 빠져 나오지 못한다. 치피하키 아저씨는 충분히 빠져 나올 수 있었지만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는지 여전히 그곳에 머무르고 비가 들이닥친 어느 날 다람쥐 아줌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람쥐 부부는 열매저장고에 열쇠를 채운다. 새들의 노래 때문에 오해를 받았기 때문에 새들이 노래를 불러도 훠이 훠이 쫓아 버릴 뿐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수리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노래 가사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베아트릭스 포터 베스트 콜렉션 마지막 권이라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10권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이 이야기는 개연성이 조금 부족해 그렇게 재밌게 읽지는 못한 것 같다. 문득문득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 노래로 오해를 해 티미 팁토스 아저씨를 가두고 그곳에서 만난 치피하키 아저씨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이유들이 조금 의아했다. 내 시선에서가 아닌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지 못해생긴 느낌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조금 아쉬움이 들지만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상상력은 참 신선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아닌 다른 존재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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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카페
프란세스크 미랄례스.카레 산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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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혼자라고 느낄 때가 있다. 긍정적인 느낌도 있지만 혼자라는 건 왠지 쓸쓸하고 고독한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런 느낌에 절망이 곁들어지면 이 세상의 어느 것도 다 쓸모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내가 잃을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드는데, 내 곁에 사랑하는 가족마저 없다면 정말 세상을 살아갈 힘이 날 것 같지 않다. 반대로 가족이 있기에 쓰잘데기 없고 섣부른 생각, 즉 나는 이 세상에 혼자이기 때문에 외롭고 쓸쓸하고 쓸모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적어도 내가 속한 가족 구성원을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순간 이 세상을 등지려했던 이 책의 주인공 이리스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녀가 저지르려했던 행동에는 결코 동조할 수 없지만 그녀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감은 충분히 느껴졌다. 갑자기 사고로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부모님, 사랑하는 사람은커녕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보고 하고 있는 일은 전혀 보람이 없는 그런 상황에서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그녀에게 우연히 '이 세상 최고의 장소는 바로 이곳입니다'란 이름을 가진 카페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그곳에서 루카라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리스의 삶은 이전보다 더 팍팍한 삶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루카라고만 소개하고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남자. 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읽고 편안하게 해주는 그 남자에게 이리스는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신비스러운 카페, 마법사 같은 주인장이 있어 뭔가 석연치 않으면서도 이리스는 그 만남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퇴근길에도 매일 들를 만큼 루카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그가 안내하는 카페 안의 테이블의 사연과 이리스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생각들에게서도 매력을 느낀다.

 

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육만 가지 생각을 한다고 해. 긍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 하찮은 생각, 심오한 생각, 그걸 이렇다저렇다 판단해선 안 되지. 생각은 흘러가는 구름 같은 거야. 우린 행동에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생각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어떤 생각 때문에 괴로울 땐 그냥 ‘생각’일 뿐이라고 마음먹고 흘려버리는 거야. (24쪽)

 

  루카의 말은 이리스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나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그렇게 많은 생각들 가운데 부정적인 게 하나라도 걸려 나를 휘어잡을 땐 그 여파가 여러 모습으로 다가오기에, 생각을 생각이라고 치부하지 않으면 늘 삶이 팍팍하다고 느낀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는 루카라는 남자에게 끌리는 이리스는 그가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줄 거라 생각하지만 루카는 가타부타 확실한 말이 없었다. 이리스가 꿈꿔온 이상형에 가까운 남자지만 꼭 어딘가 떠나야 하는 사람처럼 구는 루카. 루카의 정체를 알고 나자 왜 자신에게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또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아 왔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를 이리스는 그제야 깨닫게 된다.

 

  삶은 행복보다 시련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느끼게 된다. 특히나 시련은 꼭 다른 시련과 겹쳐서 행복은 나와 거리가 멀다고 느낄 때가 많다. 이리스에게도 그랬다. 혼자 남겨지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나날들. 하지만 루카를 만나고 새로운 생각과 마음가짐을 통해 조금씩 자신에게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추억이 깃든 집을 팔기로 용기를 얻고, 직장을 관두고, 연애도 하고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루카를 그리워하면서 떠나보내는 등 이리스에게 절망만이 다가온 건 아니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잘 견딜 수 있었던 계기에 루카의 영향이 컸지만 루카가 왜 자신에게 오게 되었는지를 깨닫는 순간부터 이리스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은 매우 중요해서 바닥난 것 같은 삶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힘을 가질 정도였다.

 

  내가 이리스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이리스의 상황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땠을까? 무조건 힘을 내라는 말도, 혹은 영화처럼 펼쳐지는 희망찬 미래가 있다고 보장할 순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평소에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사랑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곁을 떠났지만 자신을 사랑했던 가족, 그리고 앞으로 사랑하게 될 누군가를 만날 가능성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이 절망으로 그득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일단은 머릿속에 드는 온갖 생각들. 특히 쓰잘데기 없고 도움이 안 되는 생각들은 생각으로 치부해버리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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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입맛도 없도 먹고 싶은 게 없다가 갑자기 햄버거가 먹고 싶어서 남편을 졸라 버거킹에 갔다. 옆동네라 차를 타고 나갔는데 칼바람에 몸이 오소소 떨렸다. 햄버거를 먹으니 속이 든든해서 벼르고 있던 아이 머리카락도 자르고 집 앞에서 내려 남편과 아이는 집으로 돌려 보내고 나는 간만에 카페에 왔다.

얼마만의 여유인지! 오늘은 리뷰를 쓰려고 무거운 노트북까지 챙겨왔다. 리뷰 쓰고 시간이 되면 책도 좀 읽다 가야지! 아이랑 헤어질때 아이가 좀 찡찡대서 맘에 걸리지만 심하게 찡찡대면 남편이 전화하겠지 뭐^^

둘째 낳으면 이런 여유는 더 갖기 힘드니 실컷 즐겨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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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을 다 읽고 <산소리>를 읽을까 <쓰가루>를 읽을까 고민하다 한 권을 빨리 끝내고 다른 책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 싶어 <쓰가루>를 펼쳤다. 200페이지만 읽으면 되기에 이 책을 먼저 읽고 <산소리>를 읽는 게 집중이 더 잘 될 것 같다.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도 남아 있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가 있으니 번갈아 가면서 한 권씩 읽으면 될 것 같다. 그 책들도 다 읽으면 문동세문에서 일본문학을 꺼내서 읽을 생각이다. 일본 고전문학에 대한 열기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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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4-12-19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상하게 일본 문학을 잘 안 읽을 정도로 독서 편식이 심한 편이에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도 아직 안 읽어봤어요. 반짝님을 보면서 저도 일본 고전문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일본 문학에 적응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안녕반짝 2014-12-19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본 현대문학만 읽다가 질려버렸는데 그래도 틈틈이 읽다가 고전에 손을 댔는데 이게 또 매력적이라 계속 손이 가요^^책도 시기가 있어서 관심 없다가도 읽게 되는 시기가 있더라고요^^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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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약 일 년여 만에 하루키 에세이를 다시 읽었다. 터키의 옛 노래처럼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리듯, 어느 날 문득 ‘하루키 에세이를 읽어야겠다.’란 생각이 떠올라 에세이를 집어든 것이다. 그렇게 하루만에『해 뜨는 나라의 공장』을 읽고 작년 3월에 읽다 만『먼 북소리』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다시 하루키 에세이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재밌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린 채 책을 읽고 있었고 아이는 막 잠이 들락말락한 몽롱한 상태였다. 그때 읽고 있던 부분이 ‘로마의 주차 사정’ 부분이었는데 앞뒤로 외제차를 세 번이나 쾅쾅쾅 박고도 콧노래를 부르며 사라지는 사람을 묘사한 부분이었다. 그 상황이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지면서 차분하게(?) 그 상황을 전하는 하루키의 글이 너무 웃겼다. 그래서 막 잠들려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 채 최대한 소리를 죽여가며 웃었는데도 내 몸이 흔들거렸다. 덩달아 아이도 젖을 먹다 꼭꼭 참아내는 내 웃음의 몸 떨림에 함께 흔들렸고 아이가 깨겠다는 걱정 때문에 웃음을 누르느라 너무 힘들었다. 다행히 아이는 깨지 않고 잠이 들었지만 태연자약한 로마시민의 태도가 어이가 없으면서도 황당했다. 저자의 말마따나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였대도 그 운전자는 사지가 멀쩡하게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사진보다 글이 더 많은 여행서, 너는 일상에 찌들어 있지만 나는 멀리 여행을 왔다는 감상이 뒤범벅대지 않은 여행서, 그리고 지금 읽기엔 가장 큰 약점이 될 수도 있는 1980년 중후반이 배경인 여행서를 이렇게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까? 하루키 에세이에 익숙하지 않거나 뭔가 내 마음을 위로해줄 여행서를 찾아서 이 책을 펼쳤다면 실망하거나 쉽게 지루해할 수도 있다. 지인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지만 나 역시 이 책을 꺼내들 당시에 하루키 에세이를 연달아 4권이나 읽고 난 뒤라 그 분위기를 이어가고자 읽었던 이유가 컸다. 그래서 초반은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었다. 책 제목도 너무 추상적이란 생각이 들었고 세세하고 시시콜콜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들, 그리고 판본이 조금 작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을 쥐고 있으니 끝이 보이지 않아 막막했던 것이다.

 

  그렇게 절반도 읽지 못한 채 일 년을 묵혀두었던 책을 꺼내들었다. 앞부분의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고 어렴풋이 흐름 정도만 떠올라 그냥 꾸역꾸역 이어 붙여서 읽어나갔다. 그런데 웬걸? 읽으면 읽을수록 착착 달라붙는 문체가 단박에 나를 사로잡았다.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여행의 동선도, 지금은 이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인지, 사람들의 성향은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궁금함을 누를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다. 약 3년을 해외에서 보내면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옮겨놔서 그런지 단기 여행의 급함은 없었다. 오히려 짧은 여행의 이도저도 아닌 맛보기가 아닌, 장기체류(?)해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아 신선했다고 해야 하나? 낯선 곳에서의 여행, 소설쓰기와 번역을 병행하며 타국에 머무르는 상황들이 묘하게 잘 얽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자기 눈으로 본 것처럼 쓴다. 이것이 기본저인 자세이다. 자신이 느낀 것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다. 안이한 감동이나 일반화된 논점에서 벗어나, 되도록 간단하고 사실적으로 쓸 것. 다양하게 변해 가는 정경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든 계속 상대화할 것. (21쪽)

 

  저자는 새삼스레 유럽 여행기 어쩌고 하는 것도 우습다고 생각해 계몽적인 요소도 거의 없고 유익한 비교문화론 같은 것도 없는 글을 썼다고 했다. 물론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써질 수도 있고 안 써질 수도 있다는 염려도 덧붙였지만 저자의 의도된 목적을 따지기 전에 새삼스런 유럽 여행기가 아니어서 더 좋았다.

 

  약 3년 동안 유럽을 이리저리 떠돈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나중에 고백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그것이 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이상하게 이 여행이 마냥 부럽지 않은 차분함을 가져다주었다. 타인의 글을 통해 금세 사라져버릴 흥분과 충동이 일지 않는 것. 20대 때는 그런 여행서만 찾아서 읽었지만 30대가 되어보니 오히려 이런 글이 더 마음을 자극하고 오래 남는다는 것을 깨달아 간다. 여행서를 읽으면서 킥킥댈 수 있어 오랜만에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고 저자의 다짐처럼 스스로 본 것을 본 것처럼 썼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더 갔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자유로운(?)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 소설을 읽으면 뭔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조급함이 인다. 창작물이라는 틀 안에서 하루키의 내면을 읽을 수 없으니(등장인물로 읽어내는 추상적인 것 말고) 그럴 수밖에. 한동안 하루키 에세이에 빠져 지내겠지만 언젠가 소설로 돌아가야 함을 안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해준 지인이 하루키 에세이와 소설을 번갈아가며 읽어야 쉽게 질리지 않고 글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지인의 말을 따라 순차적으로 보려는 노력은 하겠지만 왠지 자신이 없어진다. 에세이만 몰아서 읽고 그 다음에 소설만 몰아서 읽을 것 같은 느낌.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자. 이러나저러나 다 하루키 글들 아닌가. 괜히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는 하루키보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하루키가 마냥 부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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