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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약 일 년여 만에 하루키 에세이를 다시 읽었다. 터키의 옛 노래처럼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리듯, 어느 날 문득 ‘하루키 에세이를 읽어야겠다.’란 생각이 떠올라 에세이를 집어든 것이다. 그렇게 하루만에『해 뜨는 나라의 공장』을 읽고 작년 3월에 읽다 만『먼 북소리』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다시 하루키 에세이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재밌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린 채 책을 읽고 있었고 아이는 막 잠이 들락말락한 몽롱한 상태였다. 그때 읽고 있던 부분이 ‘로마의 주차 사정’ 부분이었는데 앞뒤로 외제차를 세 번이나 쾅쾅쾅 박고도 콧노래를 부르며 사라지는 사람을 묘사한 부분이었다. 그 상황이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지면서 차분하게(?) 그 상황을 전하는 하루키의 글이 너무 웃겼다. 그래서 막 잠들려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 채 최대한 소리를 죽여가며 웃었는데도 내 몸이 흔들거렸다. 덩달아 아이도 젖을 먹다 꼭꼭 참아내는 내 웃음의 몸 떨림에 함께 흔들렸고 아이가 깨겠다는 걱정 때문에 웃음을 누르느라 너무 힘들었다. 다행히 아이는 깨지 않고 잠이 들었지만 태연자약한 로마시민의 태도가 어이가 없으면서도 황당했다. 저자의 말마따나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였대도 그 운전자는 사지가 멀쩡하게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사진보다 글이 더 많은 여행서, 너는 일상에 찌들어 있지만 나는 멀리 여행을 왔다는 감상이 뒤범벅대지 않은 여행서, 그리고 지금 읽기엔 가장 큰 약점이 될 수도 있는 1980년 중후반이 배경인 여행서를 이렇게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까? 하루키 에세이에 익숙하지 않거나 뭔가 내 마음을 위로해줄 여행서를 찾아서 이 책을 펼쳤다면 실망하거나 쉽게 지루해할 수도 있다. 지인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지만 나 역시 이 책을 꺼내들 당시에 하루키 에세이를 연달아 4권이나 읽고 난 뒤라 그 분위기를 이어가고자 읽었던 이유가 컸다. 그래서 초반은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었다. 책 제목도 너무 추상적이란 생각이 들었고 세세하고 시시콜콜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들, 그리고 판본이 조금 작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을 쥐고 있으니 끝이 보이지 않아 막막했던 것이다.
그렇게 절반도 읽지 못한 채 일 년을 묵혀두었던 책을 꺼내들었다. 앞부분의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고 어렴풋이 흐름 정도만 떠올라 그냥 꾸역꾸역 이어 붙여서 읽어나갔다. 그런데 웬걸? 읽으면 읽을수록 착착 달라붙는 문체가 단박에 나를 사로잡았다.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여행의 동선도, 지금은 이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인지, 사람들의 성향은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궁금함을 누를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다. 약 3년을 해외에서 보내면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옮겨놔서 그런지 단기 여행의 급함은 없었다. 오히려 짧은 여행의 이도저도 아닌 맛보기가 아닌, 장기체류(?)해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아 신선했다고 해야 하나? 낯선 곳에서의 여행, 소설쓰기와 번역을 병행하며 타국에 머무르는 상황들이 묘하게 잘 얽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자기 눈으로 본 것처럼 쓴다. 이것이 기본저인 자세이다. 자신이 느낀 것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다. 안이한 감동이나 일반화된 논점에서 벗어나, 되도록 간단하고 사실적으로 쓸 것. 다양하게 변해 가는 정경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든 계속 상대화할 것. (21쪽)
저자는 새삼스레 유럽 여행기 어쩌고 하는 것도 우습다고 생각해 계몽적인 요소도 거의 없고 유익한 비교문화론 같은 것도 없는 글을 썼다고 했다. 물론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써질 수도 있고 안 써질 수도 있다는 염려도 덧붙였지만 저자의 의도된 목적을 따지기 전에 새삼스런 유럽 여행기가 아니어서 더 좋았다.
약 3년 동안 유럽을 이리저리 떠돈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나중에 고백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그것이 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이상하게 이 여행이 마냥 부럽지 않은 차분함을 가져다주었다. 타인의 글을 통해 금세 사라져버릴 흥분과 충동이 일지 않는 것. 20대 때는 그런 여행서만 찾아서 읽었지만 30대가 되어보니 오히려 이런 글이 더 마음을 자극하고 오래 남는다는 것을 깨달아 간다. 여행서를 읽으면서 킥킥댈 수 있어 오랜만에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고 저자의 다짐처럼 스스로 본 것을 본 것처럼 썼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더 갔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자유로운(?)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 소설을 읽으면 뭔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조급함이 인다. 창작물이라는 틀 안에서 하루키의 내면을 읽을 수 없으니(등장인물로 읽어내는 추상적인 것 말고) 그럴 수밖에. 한동안 하루키 에세이에 빠져 지내겠지만 언젠가 소설로 돌아가야 함을 안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해준 지인이 하루키 에세이와 소설을 번갈아가며 읽어야 쉽게 질리지 않고 글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지인의 말을 따라 순차적으로 보려는 노력은 하겠지만 왠지 자신이 없어진다. 에세이만 몰아서 읽고 그 다음에 소설만 몰아서 읽을 것 같은 느낌.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자. 이러나저러나 다 하루키 글들 아닌가. 괜히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는 하루키보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하루키가 마냥 부러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