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베트의 만찬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이자크 디네센 지음, 추미옥 옮김,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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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입덧을 겪으면서 음식에 대한 갈망과 회의감을 함께 경험하게 되었다. 음식 냄새가 나를 힘들게 하고 먹는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낄 때, 그런 울렁거리는 나의 속과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을 만나면 큰 위안을 얻게 된다. 입덧이 조금씩 잦아들고 정말 내 입에 딱 맞는 음식을 만날 때의 그 행복감. 입덧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지만 입덧을 경험하지 않을 때보다 경험한 후에 음식에 대한 생각이 더 섬세해졌다. 음식이 나를 위로할 수도 있고 세상을 달리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 임신이 아니었다면 평생가도 느끼지 못할 그런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난 뒤에야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준 음식을 보며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설령 그 음식이 나의 입에 맞지 않더라도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과 노력,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바베트라는 프랑스 여인이 마르티네와 필리파 자매의 아버지, 즉 독실한 교파를 일구고 마을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목사님의 100번째(죽은 후의 100번째 생일) 생일에 완벽한 프랑스식을 차리고자 하는 의지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만 프랑짜리 복권에 당첨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 돈을 자신에게 쓰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죽은 목사의 100번째 생일상을 위해 모두 써버렸으니 그 요리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단박에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재작년 성탄절에 친구가 나를 위해 킹크랩을 사준 적이 있었다. 비싸서 자주 먹지 못한 음식이다 보니 늘 먹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직접 먹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행복감을 그때 처음 맛 본 것처럼 음식을 먹으면서 삐져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행복하다고 느꼈던 경험. 그 강렬함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그랬기에 바베트가 만 프랑을 모두 털어서 완벽한 프랑스식 음식을 차렸을 때는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변화를 보면서 어떤 기분일지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다. 바베트가 차려낸 그 음식들로 하여금 엄청난 변화를 겪은 사람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사랑이 넘쳐나고 축복이 임했음을 경험한 사람들. 내가 맛있는 음식으로 행복감을 느낀 경험이 없었다면 소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바베트의 음식이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것을 더 명확히 알 수 있는 건 마르티네와 필리파의 지나온 삶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사의 딸이라는 이유때문인지 그들의 성정이 원래 그러한 것인지는 몰라도 금욕적이고 검소하다 못해 모든 걸 포기하며 살아가는 듯한 두 자매의 모습은 그녀들에게 찾아 온 사랑에도 여파를 미쳤다. 사랑이 왔을 때 충분히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독실하게 살아 온 그녀들. 그리고 마르티네를 짝사랑했던 청년이 장군이 되어 다시 재회해서 함께 바베트의 만찬을 즐겼을 때 그들 모두가 변화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과거의 일이 현재로 이어지는 어쩌면 뻔한 결말이 아닌,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잊을 수 있을 만큼의 황홀한 음식을 맛 본 일. 어쩌면 평생을 가도 경험하지 못하고 변화를 감지할 수 없었을 그들의 마음을 바꾼 건 바로 음식이었단 사실이다.

  세밀하지만 흑백으로 드러난 삽화가 이 이야기에 더 생동감을 주었다. 마르티네와 필리파 자매는 책 속의 묘사된 인물처럼 금욕적이고 절제하는 모습 그대로 등장했고 마치 고흐의 초기 드로잉 작품을 보는 듯한 인물이나 묘사는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빛을 발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신비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 이야기의 느낌을 어떻게 남겨야 할지 몰라 오랜 시간 고민했었다. 그러다 바베트가 차려 낸 만찬처럼 내가 경험한 음식과 연관 지으니 그제야 할 얘기들이 생겨났다. 음식으로 행복해질 수도 있고 사람의 마음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 내가 겪은 소소한 경험으로 이 이야기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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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5-06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쉐프 박찬일이 음식이야기 강연에서 이 영화를 추천하더군요. 재작년 국제영화제 행사였지요. 책이 있군요. 담아갑니다

안녕반짝 2015-05-07 01:16   좋아요 0 | URL
박찬일 셰프의 강연을 두 번인가? 직접 들었는데도 이 영화를 추천한 줄은 몰랐네요^^
 
한나의 여행 비룡소의 그림동화 136
사라 스튜어트 지음, 김경미 옮김, 데이비드 스몰 그림 / 비룡소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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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메산골에서 자랐다. 하루에 버스가 왕복 10대도 다니지 않는 동네였고 버스에서 내리면 15분 정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걸어가야 우리 집이 나왔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이라 어릴 적에는 그 곳이 세상 전부인양 논과 밭을 뛰어 놀며 다녔는데 조금씩 도시를 경험하고 나서는 이내 내가 자란 산골동네가 시시해져 버렸다. 도시에서 우리 집은 멀리 떨어져 있었고 구멍가게 하나도 없었으며 분교가 되어버린 초등학교마저 멀었다. 그런 나에게 집이란 늘 힘들게 가야 하는 곳으로 인식되었는데 보수적인 교회의 교파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소녀 한나에게 큰 도시의 모습은 어떻게 보였을까?

  한나의 여행을 살펴보기 전 한나가 검은 옷을 입고 다니며 농사일을 늘 도와야 하는 이유를 먼저 알아야 한다. 저자 소개 밑에 작은 글씨로 한나는 아미시 소녀이며, 아미시는 보수적인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교파라는 설명이 있다. 주로 미국의 펜실베니이나 주, 오하이오 주 등에 모여 살며 새로운 문명을 거부하고 18세기 생활 방식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한나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도시를 경험하지 못한 한나는 차치하더라도 그들의 생활방식을 보며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도 있다.

  생일 선물로 큰 도시, 현대문명으로 가득 찬 도시를 경험하는 한나는 일기에 그 모든 일을 기록하고 있다. 엄청난 물건이 쌓인 가게를 둘러보기도 하고, 화려한 분수가 있는 공원을 산책하고 배를 타기도 한다. 그 모든 일을 일기장에 기록하면서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데이비드 스몰의 화려하고 섬세한 그림이 한나가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지 상세히 드러내기도 하고 고향에서는 어떤 생활을 했는지도 알려준다. 대도시와 18세기의 생활 방식을 고집하며 살고 있는 모습이 대조적이면서도 한나에게 이런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졌다.

  도시의 수족관을 보며 고향에서 직접 물고기를 보며 현장학습을 했던 것과 비교하기도 하고, 화려하고 큰 교회와 자신들이 드린 예배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도시를 둘러보며 자신이 살고 있는 고향과 비교하는 한나의 일기를 보며 그렇게 큰 도시를 경험하고서도 결코 자신의 고향을 시시하게 여기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미술관에서 본 그림이 마을 풍경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마을 풍경과 미술관의 그림이 닮아 있어 괜히 마음이 푸근해졌다. 잠깐의 여행이었지만 자신이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낱낱이 보여주는 한나의 일기. 그리고 한나가 본 풍경과 고향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을 보며 내 고향을 시시하게 생각했던 내가 조금은 멋쩍어졌다.

  저자의 책『도서관』이 좋아 다른 작품을 더 읽고 싶어서 구입한 책인데 같은 책이 있는지 모르고 또 구입한 책이다. 읽은 지 한참 됐지만 언제든 다시 펼쳐도 글과 그림이 정겹다. 이런 책은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구입하곤 하는데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함께 읽으며 느낌을 공유하고 싶다. 그러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아이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이라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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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없어서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는 말 한마디
유선경 지음 / 동아일보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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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바라봐야 합니다.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사랑한다고 하면 안 되지요. 그를 사랑하는 내가 들어 있는 눈동자,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해야 합니다. (17쪽)

  결혼을 하면서부터 이성에 대한 사랑은 남편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아픈 사랑도, 힘든 이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에 사로잡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웬걸? 내 사람이라고 단정지어버린 사랑도 미혼일 때의 사랑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나와 결혼해서 함께 산다고 그 사람 전부가 나의 것이고, 상대방도 내 모든 걸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거란 생각은 굉장히 큰 착각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래서 사랑에 관한 문구를 보면 내 사랑은 종착역에 달했으니 더 이상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의 내 모습을 보면 눈앞에 있는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고 있는지, 나에게 사랑을 달라고 징징대고 있진 않은지 진지해져버렸다.

  라디오 코너 속 글을 묶은 이 책은 사랑, 자아, 행복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민과 경험들이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첫 장인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미래에 대한 내 사랑이 아닌 현재 나의 사랑에 대해 많이 돌아보았던 것 같다.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지만 내 사랑이 얼마나 잘못되고 서투른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조금만 속상한 일이 있으면 남편 탓으로 돌리고 이 사랑을 후회하고 그러면서 아이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 깜짝 놀라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내 서투른 사랑을 이 글 속에 대입하니 부끄러워진 것이다. 여러 번의 연애를 거친 후에 남편을 만났기에 어느 정도 사랑을 안다는 것도 착각이었고 살면서 더 사랑하겠다는 맹세도 몰랐기에 할 수 있었던 무모한 다짐이 아니었나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사회가 만들어낸 ‘가짜 욕망’이 그처럼 밑 빠진 독 같습니다. 그럴 바에야 시원하게 발로 걷어차 와장창! 깨버리고 그 자리에 자그마해도 밑이 튼튼해서 부으면 붓는 대로 조금씩 차올라 기분 좋게 출렁이는 달항아리 하나 들여놓고 허전할 때마다 품에 안아 어루만지고 싶습니다. (92쪽)

  그렇게 사랑에 관한 반성과 앞으로의 다짐 아닌 다짐이 지나간 후 맞이하게 되는 글은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글들이었다. 욕망, 특히 세상을 바라볼 때 내게 주어진 욕망을 바라보고 있으면 결혼 전보다 결혼 후에 더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결혼을 할 때부터 조건을 보려하지 않고,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사회가 만들어 낸 ‘가짜 욕망’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쓴 편이었다. 좋은 집, 큰 차, 남편의 직장, 여유로운 경제생활이 결혼 후 내게 채워지려는 욕망인 걸 깨닫고 그것들에 지지 않으려고 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고 현재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종종 불쑥 튀어나오는 욕망들에 나를 빼앗길 때가 있다. 인생의 진정한 만족은 자아라는 족쇄를 제거할 때 온다고 했는데 그런 욕망에 휘둘리는 게 자아가 강해서인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자신의 고통이 어디로부터 연유한 것인지 깊이 사유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고통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것이 없다는 뜻이니까요.(203쪽)

  소제목에 따라 묶여있는 글에 자연스레 나를 맡기니 마치 내 인생을 처음부터 미래까지 훑어본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떤 사랑을 했고 어떻게 사랑하고 있으며 내가 이룩한 것들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세월을 살아오면서 어떤 고통을 겪으며 얼마나 성숙해졌는지, 그리고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원하는지 등 그 모든 것을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수 있었다. 때때로 반성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하는가 하면 여전히 답이 없는 질문에 고민하고 헤매기도 했다. 그 여운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이어졌다. 삶에 진득하게 녹아있는 문제와 고민들을 저자의 글을 통해 다시 되짚어 봤다고 해도 내가 갖고 있던 고민이 단박에 해결된다거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피하고 있었으며, 그 문제에 제대로 다가가지 않았다는 죄책감과 함께 제대로 나를 들여다보고 타인을 들여다보면서 제대로 살아가고 싶다는 희미한 다짐만이 내 마음속에 조금 솟아났을 뿐이다.

삶의 가장 큰 목적은 삶 그 자체니까요.(124쪽)

  어지럽게 내 머릿속을 떠돌던 이런저런 생각들 가운데서도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과 일치하는 문장이었다. 사랑, 욕망, 자아 행복 등 모든 것을 돌아보는 가운데서도 현재 내가 살아있기에, 이 삶을 유지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삶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내 삶을 모두 훑고 지나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되찾은 소중한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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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좋아했던 것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2
미야모토 테루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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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지나온 연애를 떠올려보면 각각 색깔이 달랐음을 알게 된다. 첫사랑은 무조건 주려다보니 너무 서툴렀고 두 번째 사랑은 받기만 했고 그 다음은 들떠서 쉽게 끝나버린 사랑이 주를 이루었다. 그렇게 몇 번의 연애를 거치면서 처음 가졌던 순수했던 마음은 사라져버렸고(그 마음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 같다.) 어느새 능글능글한 사랑을 따지게 되는 30대 중반이 되어 버렸다. 엉뚱한 계기로 함께 살게 된 네 남녀의 이야기를 지켜보면서 나는 내가 경험했던 이런저런 사랑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현재 내 안에 자리 잡힌 능글맞은 시선으로 그 사랑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고 조금은 씁쓸해졌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공단주택에 살게 된 조명 디자이너 요시는 두 명 이상의 가족인 동거자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채울 수 없어 특이한 별명을 가지고 있는 친구 당나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당나귀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며 어머니의 거주지를 옮겨오라고 한 뒤 자신과 함께 살자고 한다. 늘 단칸방 신세를 면하지 못했던 요시나 당나귀에겐 공단주택이 고급맨션처럼 느껴져 놓치기엔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대략 그렇게 서류처리를 하고 이사를 하고 간단하게 한 잔 하러 들른 술집에서 아이코와 요코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술기운에 그들과 함께 살기로 약속했다는 말과 함께 그들의 주택에 짐을 싸들고 온 두 여자와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함께 살게 된 계기란 것이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었지만 겹치지 않고 서로 맘에 드는 짝을 찾아 한 방을 쓰게 된 그들을 보며 과연 이 사랑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됐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시원하게 행복한 결말이 날 것 같지 않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요시는 불안신경증을 앓고 있는 아이코와 연인이 되었고 곤충을 카메라에 담는 사진작가 당나귀는 미용사 요코와 연인이 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함께 살면서부터 금세 하나의 공통점이 드러났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하면 지나치지 못하고 돕는 일이었다. 당나귀가 알게 된 퇴학당한 고등학생 네 명부터 시작해서 머리는 좋지만 등록금 때문에 명문대 입학을 포기하고 평범한 회사를 다니며 불안신경증을 앓고 있는 아이코, 과거에 사귀었던 남자와 우연히 재회해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요코를 위해 그들은 빚을 만들어서라도 도왔다.

  아이코가 앓고 있는 병 때문에 회사를 관두고 의대진학을 적극 권한 그들은 아이코를 위해 등록금 통장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돈이 모이지 않았다. 아이코와 결혼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그녀를 소개하고 등록금을 해결한 요시에게 아이코는 힘든 과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대로 곁에 머물러줄 줄 알았다. 그 사이에 과거의 남자와 사랑에 빠진 요코는 그 남자를 위해 목돈을 이들에게 빌리고 그 남자의 아이를 가지고 낙태까지 하며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침묵하는 당나귀까지, 기묘한 동거의 시작만큼이나 그들이 어떤 사랑의 결실을 맺을 지 알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아이코와 요코는 요시와 당나귀에게 소위 말하는 나쁜 여자였다. 둘에게 상처를 많이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이코와 요시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져버리고 아이코는 의과대학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한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을 용서하고 사랑의 결실을 맺은 건 요시와 당나귀 커플이다. 요코를 용서하고 자신의 사랑을 되돌아보기 위해 오지에 가서 목숨 건 경험을 하고 와서 맺어진 사랑이기에 숱한 과정이 있었지만 더 값져 보였다. 하지만 아이코의 다른 사랑은 쉽게 동조하기 힘들었다. 그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고 특히 요시 어머니의 도움으로 의과대학까지 입학한 그녀였기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나서 자꾸만 아이코와 요코의 행동들이 못마땅했다. 그래선 안 되었다는 생각을 며칠 째 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런 이기적인 사랑을 한 적이 있었다는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제야 그녀들을 비난할 수 없음을, 화도 내지 않는 두 남자들에게 답답함을 느낄 필요조차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찌 되었건 그들 나름대로의 사랑방식이었고, 그 사랑이 옮겨갔기 때문에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었던 것뿐이다. 오로지 받기만 했던 내 사랑을 명확히 따져보자면 그 사람과 헤어져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고마움을 알면서도 내 마음이 변했다는 이유로 그와의 이별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 사람도 내게 비난은커녕 오히려 내 행복을 빌어주었다는 것에 이 두 남녀의 사랑을 그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그나마 순수했던 첫사랑을 하고 있었을 때 이 소설을 읽었더라면 이 네 남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을 것이다. 아무리 다양한 사랑이 있다지만 난 이런 사랑을 하지 않을 거라고 어설픈 결심을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랑은 금세 빛바래고 그런 경험을 통해 나는 세파에 닳고 능글맞아져서 과거의 과오를 통해 이들을 조금은 측은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청춘 소설을 읽는 듯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었지만 이 책을 읽을 때보다 읽고 나서 며칠 동안 곰곰이 곱씹어 보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의미들을 찾은 셈이었다. 책 제목처럼 그들이 함께 살면서 좋아했던 것을 떠올리고 그것을 추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랑을 한 충분한 대가가 되었다는 나름대로의 결론도 낼 수 있었다. 그러자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든, 아니면 미래에 찾아올 사랑이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을 예측하지 말고 과정에 충실한 사랑. 그럴 때 그 사랑이 좋았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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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리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신인섭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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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전 문학에 관심이 생겨 충동적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을 구입하고 이 책을 처음 읽는 순간, 역시 고전의 향기는 이런 것인가 하며 감탄했다. 몇 장만 읽어도 문체의 담백함이 느껴지는 게 일본현대문학에서는 만나지 못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저자의 다른 작품들도 순식간에 탐독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 무렵, 조금씩 문장들이 어긋났다. 문장이 어긋났다는 표현 보다는 묘사나 ‘일본의 감성’이 낯설게 느껴졌다. 2대가 함께 살고 있으며 주인공인 싱고는 노인이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 며느리, 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온 딸과 손주들이 있지만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드러난 일반 정서들이 외국독자인 내가 읽기에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기억력이 감퇴하고 자신의 몸과 정신이 늙어감을 깨닫고, 죽음이 자신에게도 곧 닥쳐올 거란 두려움이 있지만 그런 두려움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문득문득 일상에서 떠오르는 불안감과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씩 떠나가는 상황들로 희화된 그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오히려 유머러스하다. 전쟁직후의 피폐한 일본의 삶을 경제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건, 주인공 싱고의 죽음에 대한 생각과 아들과 딸, 사위의 올바르지 못한 삶의 모습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쟁에 참가한 아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들다는 듯 전쟁미망인과 바람을 피우고, 사위는 술독에 빠져 살다 마약중독자가 되어 자살소동까지 벌인다. 그런 사위의 망가져가는 삶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는지 회의감이 들게 만드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을 잘 못 살았다는 회한을 드러내는 것으로 당시 일본의 배경을 절실하게 밝히고 있는지도 몰랐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도 그려내고 있지만 싱고의 내면에는 사랑했던 여인, 현재 부인의 언니를 동경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한다. 동경했던 여인이 시집가서 일찍 죽자 마음에도 없는 동생과 결혼하고 혹여 자신의 딸이 처형을 닮길 바라는 마음을 가져보지만 오히려 더 외모가 형편없음을 알고 데면데면하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그 결혼자체가 잘못 됐음을 알게 되었다. 처형에 대한 그리움과 풀어내지 못한 욕망을 며느리에게 쏟아내는 것을 보며 이상야릇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옮긴이의 말마따나 이 소설세계의 페어(쌍)는 싱고와 며느리 기쿠코임에 틀림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싱고의 가정에서도 친 딸이 질투하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자신과 며느리 사이가 가장 애틋했으며 아들의 바람기 때문에 상처받고 복수를 위해 낙태까지 한 며느리를 위로해 준 것도 싱고였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답답하고 짜증이 났던 건 외국 독자로써 이해하지 못한 ‘일본의 감성’과 상식은 차치하더라도 그런 아들과 딸에게 똑 부러진 훈계와 아버지로써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들이 바람을 피우고 며느리도 그 사실을 알고 복수로 낙태하며 바람을 피운 상대가 임신을 한 상황에서도 아들을 불러다 뭐라 하지 않는 모습이 답답했다. 혼외 손주일지 모를 아이를 품고 있는 여인에게 모욕을 당하고 위자료를 건네주면서도 아들과 그 문제를 가지고 정면으로 나서지 못한 모습. 사위가 잘못 된 길을 가고 있음에도 그 사위를 불러서 어떠한 훈계도 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모든 것을 혼자서 끌고 가야 했던 상황들이 때때로 싱고가 마주하는 기억력 감퇴와 나이듦에 대한 회한처럼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 싱고는 기력도 능력도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애잔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가 자꾸만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고 현실에서 풀어내지 못한 욕망과 생각들을 꿈속에서 드러내는 것을 보며 이제 곧 이 세상을 떠나야 할 평범한 노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늘 되풀이되는 일상을 꿋꿋이 살아가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문제들 한가운데 서 있는 싱고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단 생각에 기운이 빠져버렸다. 늙음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자신의 삶은 물론 자신이 이룬 가정과 하물며 자식의 삶이 맘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무언가 평탄하지 않다는 이유로 싱고를 탓할 수도 어떠한 문제가 불거지게 만든 당사자를 비난할 수도 없는 것이 어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이라고 생각하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하다. 그렇기에 저자가 풀어낸 담백하면서도 짜증스럽기도 했던 이 이야기를 끝으로 저자와의 만남을 단절시키고 싶지 않다. 다른 작품을 더 읽어보며 저자의 문학세계의 변화를 더 느껴보고 싶은 게 이 책을 읽고 난 후 허무함 뒤로 찾아온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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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2-04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까지나 남의 얘기니까..짜증도 나고
감정도 내보일 수있는 거라고..욕하며 본다는 막장 드라마처럼...브라운관의 이쪽 편이 되서 욕은 할수있는데 정작 자신의 집안 일엔 무감각한 ..사람들 처럼요... 그게 죽도 밥도 아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함..이 아닐까...생각한다고..답답하고 화는 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