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베트의 만찬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이자크 디네센 지음, 추미옥 옮김,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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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덧을 겪으면서 음식에 대한 갈망과 회의감을 함께 경험하게 되었다. 음식 냄새가 나를 힘들게 하고 먹는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낄 때, 그런 울렁거리는 나의 속과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을 만나면 큰 위안을 얻게 된다. 입덧이 조금씩 잦아들고 정말 내 입에 딱 맞는 음식을 만날 때의 그 행복감. 입덧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지만 입덧을 경험하지 않을 때보다 경험한 후에 음식에 대한 생각이 더 섬세해졌다. 음식이 나를 위로할 수도 있고 세상을 달리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 임신이 아니었다면 평생가도 느끼지 못할 그런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난 뒤에야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준 음식을 보며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설령 그 음식이 나의 입에 맞지 않더라도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과 노력,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바베트라는 프랑스 여인이 마르티네와 필리파 자매의 아버지, 즉 독실한 교파를 일구고 마을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목사님의 100번째(죽은 후의 100번째 생일) 생일에 완벽한 프랑스식을 차리고자 하는 의지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만 프랑짜리 복권에 당첨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 돈을 자신에게 쓰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죽은 목사의 100번째 생일상을 위해 모두 써버렸으니 그 요리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단박에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재작년 성탄절에 친구가 나를 위해 킹크랩을 사준 적이 있었다. 비싸서 자주 먹지 못한 음식이다 보니 늘 먹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직접 먹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행복감을 그때 처음 맛 본 것처럼 음식을 먹으면서 삐져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행복하다고 느꼈던 경험. 그 강렬함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그랬기에 바베트가 만 프랑을 모두 털어서 완벽한 프랑스식 음식을 차렸을 때는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변화를 보면서 어떤 기분일지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다. 바베트가 차려낸 그 음식들로 하여금 엄청난 변화를 겪은 사람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사랑이 넘쳐나고 축복이 임했음을 경험한 사람들. 내가 맛있는 음식으로 행복감을 느낀 경험이 없었다면 소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바베트의 음식이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것을 더 명확히 알 수 있는 건 마르티네와 필리파의 지나온 삶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사의 딸이라는 이유때문인지 그들의 성정이 원래 그러한 것인지는 몰라도 금욕적이고 검소하다 못해 모든 걸 포기하며 살아가는 듯한 두 자매의 모습은 그녀들에게 찾아 온 사랑에도 여파를 미쳤다. 사랑이 왔을 때 충분히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독실하게 살아 온 그녀들. 그리고 마르티네를 짝사랑했던 청년이 장군이 되어 다시 재회해서 함께 바베트의 만찬을 즐겼을 때 그들 모두가 변화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과거의 일이 현재로 이어지는 어쩌면 뻔한 결말이 아닌,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잊을 수 있을 만큼의 황홀한 음식을 맛 본 일. 어쩌면 평생을 가도 경험하지 못하고 변화를 감지할 수 없었을 그들의 마음을 바꾼 건 바로 음식이었단 사실이다.

  세밀하지만 흑백으로 드러난 삽화가 이 이야기에 더 생동감을 주었다. 마르티네와 필리파 자매는 책 속의 묘사된 인물처럼 금욕적이고 절제하는 모습 그대로 등장했고 마치 고흐의 초기 드로잉 작품을 보는 듯한 인물이나 묘사는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빛을 발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신비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 이야기의 느낌을 어떻게 남겨야 할지 몰라 오랜 시간 고민했었다. 그러다 바베트가 차려 낸 만찬처럼 내가 경험한 음식과 연관 지으니 그제야 할 얘기들이 생겨났다. 음식으로 행복해질 수도 있고 사람의 마음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 내가 겪은 소소한 경험으로 이 이야기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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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5-06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쉐프 박찬일이 음식이야기 강연에서 이 영화를 추천하더군요. 재작년 국제영화제 행사였지요. 책이 있군요. 담아갑니다

안녕반짝 2015-05-07 01:16   좋아요 0 | URL
박찬일 셰프의 강연을 두 번인가? 직접 들었는데도 이 영화를 추천한 줄은 몰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