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들 장 자끄 상뻬의 그림 이야기 2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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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황금연휴인 오늘,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었다. 공휴일밖에 늦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라 오랜만에 늘어지게 잠을 잤다. 아침 일찍 언니와 형부는 조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고, 덕분에 조용히 늦잠을 잤다. 깨어보니 12시. 집은 그야말로 적막했고,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날씨가 무척 화창했다. 잠시 잠으로 오전을 보내버린 시간이 아깝기도 했지만 허리가 아플 정도로 잠을 잔 뒤라 기분은 그럭저럭 상쾌했다. 화장한 날씨에 집에 있는 내 신세가 조금 처량하기도 했지만 그런 푸념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어서 부랴부랴 책을 펼쳤다. 그 동안 게으름을 부리느라 읽지 못한 책이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가장 먼저 꺼내든 책은 상뻬 책이었다. 읽을 순서를 재촉하는 책들이 여전히 많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상뻬 책으로 워밍업을 하고 싶었다. 제풀에 꺾여 지치는 것보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다른 책들을 즐겁게 읽고 싶었다. 최근에 구입한 상뻬의 큼지막한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졌다. 똑같은 데생일지라도 큰 책에 그려진 상뻬의 데생이 더 마음에 든다. 시각 더 트이고 그 순간만큼은 데생 속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색色도 없이 펼쳐지는 선의 향연은 데생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상뻬의 데생을 보아온 사람들은 한 페이지만 보더라도 이것이 상뻬 데생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데생이던 간에 상뻬만의 독특한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다.

 

  상뻬의 여러 작품을 보았지만, <아름다운 날들>은 그 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늘 대하는 상뻬의 데생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며 지나칠 뻔 했는데, 기존의 작품보다 더 발랄해진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어지럽고 빽빽이 들어찬 데생 속에는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즐거움일 수도 있고, 오늘 내가 맞이한 휴일의 화장함과 같은 흥분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얘기하는 인물들은 주변과 상반되는 경우도 있었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분위기 속에서 몇 줄의 대사 같은 글을 던져주는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기도 했고, 모두가 어두운 표정에 혼자만 유쾌한 표정을 짓고 있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는 상뻬의 의도를 돋보여 주었다. 유머에 더 빛을 발했고, 생뚱맞음에 날개를 달아 주었으며, 당황스러움의 능숙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제목 때문인지 배경이 좀 더 풍부한 상뻬의 데생 집은 눈요깃거리가 풍부했다. 배경을 실컷 보다 대화하는 사람들을 찾기도 했고, 대화하는 사람들을 찾다 배경을 보는 시각을 넓혀가기도 했다. 무엇보다 데생을 보면서 그 상황에 나를 대입시킬 수 있는 점이 좋았다. 때로 상뻬의 의도가 이해가 안가는 데생을 만나기도 하지만, 보고만 있어도 그 안에 몰두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이다. 이해가 안가는 데생을 만날 때면 한참을 바라보다 상황 속으로 나를 들여보내기도 하고, 이해가 안가면 그냥 넘기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오늘 같이 날씨가 좋은 날에는 좀 무겁더라도 야외에서 상뻬의 데생집을 펴놓고 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햇살이 좋은 곳에서 봐도 좋고, 커피향이 그윽한 카페에서 봐도 좋았을 것이다.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은 상뻬의 데생집을 그렇게 어느 곳에나 어울린다. 그래서 더욱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데생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말하는 것도 힘이 들지만 소소한 일상과 함께 얘기하는 것이 좋다. 큼지막한 도화지 속에 펼쳐진 그의 데생은 그렇게 나를 또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 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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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 - 화보와 비하인드 스토리 트와일라잇
마크 코타 바즈 지음 / 북폴리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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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트와일라잇 소설을 접한 시점은 영화관에서 상영이 끝난 후였다. 책을 읽으니 미치도록 영화가 보고 싶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영화를 찜찜한 기분으로 보았다. 영화는 내가 만들어 놓은 세계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고 찜찜한 기분은 실망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화질이 엉망이라(불법 루트로 촬영된 영화였기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불쾌해 하고 말았다. 나의 불만에 영화를 본 사람들은 나름 괜찮았다고 하니 더욱 더 영화가 궁금해 DVD 발매일 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 도중에 이 책이 나왔으니 어찌나 반갑던지. 제대로 된 영화를 보지 못한 아쉬움과 DVD 발매일의 기다림 가운데 딱 맞게 내게 온 책이었다. 
 

  아무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 눈에 불을 켜고 책장을 넘길 정도지만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였고, 소설의 이미지만 가득히 남아 있어 이 책 또한 나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소설 속의 인물들을 더 부각시켜 주는 일이었다. 제목에서도 나와 있듯이 '화보와 비하인드 스토리'이기 때문에 욕구충족은 점점 멀어지고 말았다. 영화 촬영 현장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아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적었다. 영화 촬영에 대해선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다만 '저 장면은 이렇게 만들었겠지'라며 추측할 뿐이었기에 상세한 설명은 나의 관심을 더 밀어내고 있었다. 오로지 화질이 좋은 DVD가 도착하길 바랐기에, 이 책의 존재는 조금 묻혀진 듯 했다.

 

  그렇게 읽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을 때, 드디어 트와일라잇 DVD가 발매되었고 책은 잠시 제쳐둔 채 DVD를 보다 경악하고 말았다. 이렇게 화질이 좋고, 괜찮은 영화를 인터넷으로 떠도는 화질이 낮은 영화를 보고 판단해 버린 섣부름 때문이었다. 화질이 낮은 영화를 보며 온갖 험담을 했는데, DVD의 영화는 그야말로 새로운 영화를 보는 듯 한 느낌이 들 정도로 훌륭했다. 거기다 '화보와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보았던 세세한 장면 묘사가 기억이 나서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장면 비교에 매력을 느껴 다시 책을 꺼내 들어 읽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영화장면을 각인시키고 책을 보니 탄생배경이 무척 흥미로웠다. 영화 촬영에 대한 문외한은 여전했지만 영화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되어 색다른 묘미를 발견해가고 있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려면 책과 영화를 모두 봐야 한다.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이 책을 보고 영화를 한 번 더 본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독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상속의 트와일라잇을 영화와 비교해보며, 촬영진들은 그 내용을 어떻게 녹여내려 했는지 애쓰는 모습을 본다면 영화에도 애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에 대해 높은 평을 주지 않았던 이유는, 책 속의 묘사와 내가 간직한 상상속의 세계를 늘 영화는 제대로 끌어내어 주지 못한 데서 오는 불만이었다.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늘 원작에 멀어지고 변형되어 지는 영화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트와일라잇은 달랐다. 캐서린 하드윅 감독은 원작에 충실하려 애썼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들을 존중하며 소설의 트와일라잇을 영상으로 옮기는데 온 힘을 다했다. 여 감독이어서 더 꼼꼼했다는 편견보다 같은 여자이기에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잘 이해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책과 영화만 봤더라면 여전히 트와일라잇의 환상속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접하고 나니 영화 밖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트와일라잇을 읽고 환상에 빠져 지낸 시간이 무척 길었는데, DVD를 보고 나서 또 다시 병이 도지려 할 때 '비하인드 스토리'가 적정선을 유지시켜 주었다. DVD를 보고 있으면 촬영 현장의 뒷얘기가 생각나고,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영화장면이 생각이 나 현실과 환상세계를 부지런히 오갔다. 그러나 트와일라잇의 환상속에 갇히고 싶어 하고 자신의 환상을 깨트릴 생각이 없다면 이 책의 존재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 촬영 현장을 보면서 얼마나 원작에 충실했는지, 책 속의 분위기와 같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을 알고 나면 소설이라는 사실을 자각함에도 환상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트와일라잇의 저자도 꿈속에서 힌트를 얻어 소설을 썼다고 할 정도였으니, 독자들이 갖고 있는 환상이 어떨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 환상을 깨어주는 동시에 현실로 끌어내는 작업을 한 트와일라잇 화보와 비하인드 스토리는 열렬한 팬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니 선택은 각자가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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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를 리뷰해주세요.
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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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고 나니 괜히 빵을 먹기 전에 요리조리 살펴보게 된다. 지금껏 먹어왔던 평범한 빵과 별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독특한 빵집을 알고 나니 미심쩍은 생각이 든다. 우리 동네에서 파는 빵을 먹어 보았지만 뭔가가 달라지는 일 없이 포만감만 느껴졌으므로 미심쩍은 생각은 떨쳐 버렸다. 빵의 맛과 빵의 효과로만 가늠할 수 없는 '위저드 베이커리'의 특별함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빵집이 빵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 이외의 목적이 있다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적어도 한 소년에게는 피난처가 되어 주었던 위저드 베이커리. 그곳에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무희라는 이복동생을 성추행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소년은 집을 뛰쳐나왔다. 말더듬이에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존재감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는 소년이었다. 어릴 적 친 엄마에 의해 버려지기도 했고, 그런 엄마가 자살을 하자 아빠는 결혼 정보 업체를 통해 배 선생과 결혼했다. 겉으로 보기에 적당한 사회적 위치의 사람들끼리 결혼한 것처럼 보였지만, 가면을 뒤집어 쓴 채 서서히 드러나는 실체는 끔찍했다. 소년이 집에서 밥 한 끼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할 정도로 눈치를 주었고, 아빠와 새엄마의 관계도 의심스러웠다. 그런 형편이다 보니 소년은 매일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다 먹었고, 누명을 뒤집어쓰고 빵집으로 도피했을 때 점장은 단골이라는 이유로 머물게 해 주었다.

 

  소년의 처지도 처지지만, 위저드 베이커리는 더 기이한 곳이었다. 손님이 그다지 많이 오는 것 같지도 않은데, 24시간 문을 열었고 빵을 만드는 양도 엄청났다. 빵집 점장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녀의 정체는 물론 빵의 재료, 빵이 팔리는 노선도 독특했다. 매장의 빵은 평범했지만, 점장의 마법이 들어가 있는 빵들은 온라인을 통해 비밀스런 목적으로 팔려 나갔다.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는 쿠키, 사과하는 사람에 주는 스콘, 실연의 상처를 잊게 해주는 마들렌, 부두인형등 다양한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 빵은 주문 제작이었다. 소년이 위저드 베이커리에 머물면서 주문서를 정리해 주자 덕분에 빵은 순조롭게 만들어졌지만 부작용이 따라오기도 했다. 긍정적인 의도로 쓰이는 것보다 부정적인 용도로 쓰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종종 빵집에 찾아와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효능을 가진 듯 하지만 결국은 그 욕망을 무너뜨리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빵집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 소년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 계속 빵집에서 신세를 질 수도 없었고, 점장과 밤이면 새鳥로 변하는 소녀는 특성상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때가 되면 돌아가라고 했지만, 최악의 상황에서 집을 나온 소년의 미래는 막막하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도저히 끼어들 수 없는 그들의 세계 속에 머물 수도 없었다. 서서히 빵집과의 헤어짐의 시간은 다가왔고, 그즈음 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쿠키가 점장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시간을 되감는 타임 리와인더였다. 시간을 설정하고 쿠키를 먹으면 자신이 원하던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개발 중인 쿠키였고, 먼 과거로 갈수록 가격은 엄청났다. 소년은 자신이 시간을 되돌린다면 언제로 돌아갈지를 생각해 보았다. 엄마가 자살하기 전? 아니면 새엄마인 배 선생이 아빠와 결혼하기 전? 여러 시점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언가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결국 경찰의 추적을 받던 빵집은 문을 닫았고, 소년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집은 자신이 나왔을 때보다 더 최악이었다. 점장은 소년에게 타임 리더와인을 주었지만, 효력을 발휘하는 결말이 아닌 두 가지의 상황 설정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무언가가 아쉽고 미심쩍은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겉핥기만 한 느낌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정체와 빵의 효능들이 그랬고, 소년이 처해진 상황도, 진척되어가는 흐름도 무언가를 말할 듯 하다 끊긴 기분이다. 흡인력 있게 읽히는 문체는 읽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들었지만, 예측할 수 없는 성장의 혼란을 그리듯 복잡 미묘한 상황에 비해 싱겁게 끝난 느낌이다.

 

  결말로 내용을 단정 짓긴 힘들다. 하지만 결말에서의 두 가지의 상황설정도 그렇고, 더욱 나빠져 가는 현실은 차라리 위저드 베이커리의 판타지적인 면과 뒤바꾸고 싶을 정도로 엉망이 된 것 같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현실로부터 도피를 하고도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소년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다는 점? 소년은 최악의 상태에서도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소년 자신에게 시간을 주었던 곳이었다. 어쩔 수 없는 도피였다 하더라도 가식적인 가족과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쿠키를 사가는 사람들 틈에서도 어찌어찌 버텨냈으니 최소한 그런 행보를 밟지 않기를 바랄 뿐, 욕망으로 점철된 나의 시선은 소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무기력해 지고 말았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독특한 성장소설이자 판타지 소설이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청소년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 권하고 싶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언제나 옳은 답지만 고르면서 살아온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은 인생에서 한 번도 잘못된 선택을 한 적이 없나요?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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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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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한 번 읽을 책은 두 번 읽지 않는다. 그러다 종종 한 번 더 읽고 싶은 책을 만나지만, 다시 읽을 기회는 좀처럼 쉽게 오지 않는다.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도 그랬다. 2004년에 읽고,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볼 때마다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생각은 간절했지만 이제야 겨우 기회가 닿았다. 두 번을 읽고 보니, 진작 다시 꺼내 읽을 걸 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감흥이 새로웠다. 처음 읽었을 때도 강렬한 느낌을 주었지만 차근차근 다시 읽어보니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어 더 빠져들고 말았다.
 

  처음 이 책을 마주할 때는 경계심이 많았었다. 의학과 의사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이었지만, 고운 시선은 아니었다. 그러나 의외로 진솔하고 담담한 글에 빠져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는 의사가 있다면, 의학에 대한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이가 있다면 내가 갖는 일반적인 편견도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외과 의사인 저자의 글은 고백이라고 볼 수 있었다. 지금껏 어느 누구도 얘기하기 껄끄러워 하는 문제들을 과감히 드러내지만, 힐난조가 아닌 담담한 고백으로 이어진다. 그의 고백을 듣다보면 시각과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확장의 범위가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확연히 볼 수 있었다. 큰 틀에 의학의 불확실성을 두고 조금씩 구체화 시켜가며 여러 가지를 되짚어 보는 일. 그 일에 저자의 문체가 독자를 끌어당겼고,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하고 있었다.

 

  첫 단락 ‘오류가능성’은 저자가 인턴생활을 하면서 의사가 되는 과정과 의사들의 세계, 의사가 범하는 ‘오류’에 대해 담담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담아냈다. 인턴과정을 밟고 있더라도 초보 의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새로 익혀야 했다. 우리가 회사에 입사해서 일을 배우는 것처럼 의사도 마찬가지였고, 다만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모든 것이 완벽할 거라 사람들은 착각하게 된다. 인간의 몸을 치료하고 목숨을 다루기에 더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지만 의사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범하게 되는 오류와 실수를 숨기지 않는다. 그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너무 진솔해 겁을 먹기도 하지만, 오히려 실수를 하는 모습, 경험을 익혀가는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끼기도 했다. 의사를 한 인간으로 보는 마음, 환자에게 최선을 다 하고자 하는 의사를 재발견하게 된 셈이었다.




  두 번째 단락인 ‘불가사의’에서는 자신이 치료했던 환자들을 좀 더 부각시켜 의학의 불가사의에 대해 얘기한다. 저자가 주로 책에서 다루고 있는 환자들은 일반적인 치료가 먹히지 않는 의학의 경계를 뛰어넘는 다고 할 수 있는 사례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그들이 겪는 고초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례가 없었던 환자들의 경우가 더 많아 의학으로 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서 도리어 의아하면서도 현실감 있게 다가왔던 부분이었다. 그들을 단순히 치료해 가는 것뿐만 아니라 '불가사의'한 사례들을 어떻게 의학으로 해결해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끊임없이 한다. '불가사의' 자체가 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일지 몰라도 어떻게 대응하고 해결해 나가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단락 ‘불확실성’은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의학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감추고 싶은 실수, 미스터리, 증명되지 않은 것들을 숨기지 않는다. 의사들이 가장 많이 좌절하는 단계로 비추기도 하는 '불확실성'은 의학에 대한 신념을 깨트리기도 한다. '의사로서 환자들을 돌보다 보면 아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과 싸우는 일이 더 많음을 깨닫게 된다.' 라고 말했듯이 그만큼 어려움도 따르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불확실성을 고백하고 인정하므로 일반인들이 갖는 일반적인 편견,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불신을 조금은 녹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불완전한 과학으로 우리를 이끈 것, 의사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나름대로 정말 바라는 것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이다.' 란 확신으로 의학에 몸담고 있는 저자. 그런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좀 더 기댈 곳이 많아짐에 희망을 갖고 싶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책이었다. 의학책이 이렇게도 씌일 수 있다는 사실과 감성이 적절히 내포된 글은 문인들의 산문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무엇보다 의사로써 글쓴이로써도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의학이 감추고 있고, 곡해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오해가 풀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기보다 덜 완벽하며, 동시에 보기보다 더 특별’한 의학에 관해 있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다. 그 내면이 궁금하다면 편견은 조금 내려놓은 채 매력적인 저자의 글에 빠져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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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토르소맨>을 리뷰해주세요.
꿈꾸는 토르소맨 - 팔다리 없는 운명에 맞서 승리한 소년 레슬러 이야기
KBS 스페셜 제작팀 지음, 최석순 감수 / 글담출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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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에 가서 아주 값진 경험을 안고 돌아왔다. 처음 나가본 해외에 대한 감격도, 일본의 아름다웠던 야경도 좋았지만 밤을 새워가며 나의 앞날에 대해 조언을 들은 경험이었다. 일행 중 우연히 어느 교수님과 책 이야기로 말을 트게 되었고, 그렇게 이어진 궁금증은 밤이 새도록 이어졌다. 책에 대한 궁금증, 앞으로의 행보, 나의 고민들을 어느새 줄줄이 털어놓게 되었고 소중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뜨거웠던 열기를 안고 한국에 도착하니, 이 책이 도착해 있었다. 겉표지만 보고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싶다면' 의 문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식상하게 비추기만 했던 흔한 문구였지만, 일본에서의 뜨거웠던 밤에 나누었던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았다. 화면이 작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이 소년이 레슬링을 하는 장면에서는 감격하다 못해 눈물이 났다. 팔다리가 없는 소년이 레슬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문이었는데 격렬한 움직임과 힘이 여느 선수 못지않아 놀라고 말았다. 거기다 짧은 팔과 다리로 상대 선수를 제압하는 모습은 그를 과소평가 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무엇이 팔 다리가 불편한 18살의 소년을 저렇게 불타오르도록 만들었을까. 그의 사연과 내면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몸통밖에 없는 더스틴의 별명은 토르소다. 미술시간에 흔히 보고 그리는 토르소와 닮았다고 해서 더스틴의 별명이 되었다. 그러나 그냥 토르소가 아니라 '날아다니는 토르소'로 불리는 더스틴은 늘 활기차 장애가 느껴지지 않는다. 다섯 살 때 '수막구균혈증'에 걸려 팔 다리를 잘라 냈고, 겨우 목숨만 건진 더스틴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화장실을 혼자 가는데 2년이 걸리고, 글씨는 쓰는데 5년이 걸리고, 계단을 오르는데 수 없이 넘어져야 했던 더스틴. 가족과 주변의 도움이 있었지만, 자신의 내면에 갇혀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화만 내고 있던 그에게 아버지는 단호했다. "나중에 네가 혼자 해야 할 때는 어떡할 거니?" 란 말에 더스틴은 스스로 하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과 노력 끝에 지금의 모습을 만든 것이었다. 평소에 운동을 좋아했던 더스틴은 형을 따라갔다 레슬링을 하게 되었고, 매력을 느껴 흠뻑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더스틴의 제 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더스틴이 짧은 팔 다리로 생활에 많은 부분을 새로운 방식으로 익혀 갔지만, 그것은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목표가 되지 않았다. 의지를 키워주고, 자신을 비관하지 않는 행위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더스틴 자신을 끌어낼 수 있는 활력소는 아니었다. 더스틴은 그런 활력소를 레슬링에서 찾았다. 그에게 레슬링이 없었다면 삶을 사랑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통 사람보다 판이하게 다른 신체조건으로 레슬링을 하자면 남들보다 수 없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다. 그를 지도해주는 훌륭한 코치를 많이 만나서 더스틴은 성장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은 혹독하다 못해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의 연속이었다. 상대방을 잡을 팔이 없고, 버틸 다리가 없기에 목과 어깨, 엉덩이 근육을 키우는 일과 자신의 신체에 맞는 기술을 익히는 일들이 그랬다. 그래도 더스틴은 열심히 해 주었고, '더스틴 자체가 희망'이 될 정도로 코치진과 다른 선수들에게 많은 용기가 되어 주었다.

 

  더스틴에게도 목표가 있었다. 레슬링으로 유서 깊은 오하이오 주 대표가 되는 것이었다. 5년을 준비해 그렇게 고대하던 경기에서 아깝게 8강에서 탈락했지만, 더스틴이 거기까지 간 것만 해도 보통 사람인 나에겐 큰 용기가 되어 주었다. 8강전에서 종료 휘슬이 울리자 망연자실하게 허공을 보는 더스틴을 향해 천여 명의 관중이 일어나 박수를 쳐주는 장면은 아름다웠다.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모습이었고, 더스틴이 그동안 흘려온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음을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나도 한참을 눈시울을 붉혔지만, 마음속으로 '장하다'를 얼마나 연발했는지 모른다. 내 손과 발을 내려다보며 '더스틴이 없는 것을 가진 것에 대한 우월함이나 자책'이 아닌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샘솟았다. 꼭 손과 발로해야 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갈망의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더스틴은 명랑한 아이다. 쾌활하고 도전하기 좋아하고, 그의 곁에 있으면 즐거워 질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 빛을 발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대답은 간단했다. 더스틴은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신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팔 다리가 다시 생기는 것을 원치 않을 정도로 현재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가 모든 것에 불만족스러워 하고, 지지부진한 일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과 대화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무관심이었다. 일본에서의 어느 뜨거웠던 밤에 그 얘기를 들었다. 자신만 잘 다스리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달리 보일 수 있다고. 더스틴이 가장 모범적인 일례였다. 자신을 사랑하고, 만족하며, 세상을 향해 뚜렷한 발걸음을 떼는 모습. 더스틴을 보면서 나 역시 많은 용기를 얻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더라면 스쳐 지나쳤을 더스틴의 이야기는, 나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만든 후에 만나니 더욱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교묘하게 연결이 된 일본여행과 더스틴과의 만남. 그 둘의 연속 속에서 나의 삶의 방향을 가늠해 보려 한다.

 

  더스틴이 가족의 허락을 겨우 받고 레슬링 부에 들어가고자 할 때, 교장선생님이 브라이언 코치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레슬링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있는데 문제가 있어요. 팔 다리가 없어요." 막상 더스틴을 만나고 나니 브라이언 코치는 더 당황스러웠단다. 그러나 오랜 침묵 끝에 왜 안 되는지에 대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말을 곱씹어 보며 평소에 많은 것들을 해보지 않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연 그것들이 왜 안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의 차이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거기다 나의 인생이 바뀔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용기를 얻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삶을 연명하는 나에게 큰 용기가 되어 주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오체불만족>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나 용기를 얻고 위로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 그 당시 교장선생님이 제게 말했죠. 레슬링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이 있는데, 문제가 있어요. 팔과 다리가 없어요. <중략> 꽤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전 곧 생각했어요. '왜 안되지?'라고요.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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