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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날들 ㅣ 장 자끄 상뻬의 그림 이야기 2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황금연휴인 오늘,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었다. 공휴일밖에 늦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라 오랜만에 늘어지게 잠을 잤다. 아침 일찍 언니와 형부는 조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고, 덕분에 조용히 늦잠을 잤다. 깨어보니 12시. 집은 그야말로 적막했고,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날씨가 무척 화창했다. 잠시 잠으로 오전을 보내버린 시간이 아깝기도 했지만 허리가 아플 정도로 잠을 잔 뒤라 기분은 그럭저럭 상쾌했다. 화장한 날씨에 집에 있는 내 신세가 조금 처량하기도 했지만 그런 푸념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어서 부랴부랴 책을 펼쳤다. 그 동안 게으름을 부리느라 읽지 못한 책이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가장 먼저 꺼내든 책은 상뻬 책이었다. 읽을 순서를 재촉하는 책들이 여전히 많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상뻬 책으로 워밍업을 하고 싶었다. 제풀에 꺾여 지치는 것보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다른 책들을 즐겁게 읽고 싶었다. 최근에 구입한 상뻬의 큼지막한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졌다. 똑같은 데생일지라도 큰 책에 그려진 상뻬의 데생이 더 마음에 든다. 시각 더 트이고 그 순간만큼은 데생 속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색色도 없이 펼쳐지는 선의 향연은 데생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상뻬의 데생을 보아온 사람들은 한 페이지만 보더라도 이것이 상뻬 데생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데생이던 간에 상뻬만의 독특한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다.
상뻬의 여러 작품을 보았지만, <아름다운 날들>은 그 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늘 대하는 상뻬의 데생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며 지나칠 뻔 했는데, 기존의 작품보다 더 발랄해진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어지럽고 빽빽이 들어찬 데생 속에는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즐거움일 수도 있고, 오늘 내가 맞이한 휴일의 화장함과 같은 흥분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얘기하는 인물들은 주변과 상반되는 경우도 있었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분위기 속에서 몇 줄의 대사 같은 글을 던져주는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기도 했고, 모두가 어두운 표정에 혼자만 유쾌한 표정을 짓고 있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는 상뻬의 의도를 돋보여 주었다. 유머에 더 빛을 발했고, 생뚱맞음에 날개를 달아 주었으며, 당황스러움의 능숙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제목 때문인지 배경이 좀 더 풍부한 상뻬의 데생 집은 눈요깃거리가 풍부했다. 배경을 실컷 보다 대화하는 사람들을 찾기도 했고, 대화하는 사람들을 찾다 배경을 보는 시각을 넓혀가기도 했다. 무엇보다 데생을 보면서 그 상황에 나를 대입시킬 수 있는 점이 좋았다. 때로 상뻬의 의도가 이해가 안가는 데생을 만나기도 하지만, 보고만 있어도 그 안에 몰두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이다. 이해가 안가는 데생을 만날 때면 한참을 바라보다 상황 속으로 나를 들여보내기도 하고, 이해가 안가면 그냥 넘기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오늘 같이 날씨가 좋은 날에는 좀 무겁더라도 야외에서 상뻬의 데생집을 펴놓고 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햇살이 좋은 곳에서 봐도 좋고, 커피향이 그윽한 카페에서 봐도 좋았을 것이다.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은 상뻬의 데생집을 그렇게 어느 곳에나 어울린다. 그래서 더욱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데생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말하는 것도 힘이 들지만 소소한 일상과 함께 얘기하는 것이 좋다. 큼지막한 도화지 속에 펼쳐진 그의 데생은 그렇게 나를 또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 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