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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평점 :
보통, 한 번 읽을 책은 두 번 읽지 않는다. 그러다 종종 한 번 더 읽고 싶은 책을 만나지만, 다시 읽을 기회는 좀처럼 쉽게 오지 않는다.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도 그랬다. 2004년에 읽고,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볼 때마다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생각은 간절했지만 이제야 겨우 기회가 닿았다. 두 번을 읽고 보니, 진작 다시 꺼내 읽을 걸 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감흥이 새로웠다. 처음 읽었을 때도 강렬한 느낌을 주었지만 차근차근 다시 읽어보니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어 더 빠져들고 말았다.
처음 이 책을 마주할 때는 경계심이 많았었다. 의학과 의사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이었지만, 고운 시선은 아니었다. 그러나 의외로 진솔하고 담담한 글에 빠져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는 의사가 있다면, 의학에 대한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이가 있다면 내가 갖는 일반적인 편견도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외과 의사인 저자의 글은 고백이라고 볼 수 있었다. 지금껏 어느 누구도 얘기하기 껄끄러워 하는 문제들을 과감히 드러내지만, 힐난조가 아닌 담담한 고백으로 이어진다. 그의 고백을 듣다보면 시각과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확장의 범위가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확연히 볼 수 있었다. 큰 틀에 의학의 불확실성을 두고 조금씩 구체화 시켜가며 여러 가지를 되짚어 보는 일. 그 일에 저자의 문체가 독자를 끌어당겼고,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하고 있었다.
첫 단락 ‘오류가능성’은 저자가 인턴생활을 하면서 의사가 되는 과정과 의사들의 세계, 의사가 범하는 ‘오류’에 대해 담담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담아냈다. 인턴과정을 밟고 있더라도 초보 의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새로 익혀야 했다. 우리가 회사에 입사해서 일을 배우는 것처럼 의사도 마찬가지였고, 다만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모든 것이 완벽할 거라 사람들은 착각하게 된다. 인간의 몸을 치료하고 목숨을 다루기에 더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지만 의사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범하게 되는 오류와 실수를 숨기지 않는다. 그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너무 진솔해 겁을 먹기도 하지만, 오히려 실수를 하는 모습, 경험을 익혀가는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끼기도 했다. 의사를 한 인간으로 보는 마음, 환자에게 최선을 다 하고자 하는 의사를 재발견하게 된 셈이었다.
두 번째 단락인 ‘불가사의’에서는 자신이 치료했던 환자들을 좀 더 부각시켜 의학의 불가사의에 대해 얘기한다. 저자가 주로 책에서 다루고 있는 환자들은 일반적인 치료가 먹히지 않는 의학의 경계를 뛰어넘는 다고 할 수 있는 사례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그들이 겪는 고초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례가 없었던 환자들의 경우가 더 많아 의학으로 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서 도리어 의아하면서도 현실감 있게 다가왔던 부분이었다. 그들을 단순히 치료해 가는 것뿐만 아니라 '불가사의'한 사례들을 어떻게 의학으로 해결해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끊임없이 한다. '불가사의' 자체가 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일지 몰라도 어떻게 대응하고 해결해 나가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단락 ‘불확실성’은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의학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감추고 싶은 실수, 미스터리, 증명되지 않은 것들을 숨기지 않는다. 의사들이 가장 많이 좌절하는 단계로 비추기도 하는 '불확실성'은 의학에 대한 신념을 깨트리기도 한다. '의사로서 환자들을 돌보다 보면 아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과 싸우는 일이 더 많음을 깨닫게 된다.' 라고 말했듯이 그만큼 어려움도 따르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불확실성을 고백하고 인정하므로 일반인들이 갖는 일반적인 편견,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불신을 조금은 녹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불완전한 과학으로 우리를 이끈 것, 의사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나름대로 정말 바라는 것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이다.' 란 확신으로 의학에 몸담고 있는 저자. 그런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좀 더 기댈 곳이 많아짐에 희망을 갖고 싶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책이었다. 의학책이 이렇게도 씌일 수 있다는 사실과 감성이 적절히 내포된 글은 문인들의 산문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무엇보다 의사로써 글쓴이로써도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의학이 감추고 있고, 곡해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오해가 풀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기보다 덜 완벽하며, 동시에 보기보다 더 특별’한 의학에 관해 있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다. 그 내면이 궁금하다면 편견은 조금 내려놓은 채 매력적인 저자의 글에 빠져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