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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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을 살펴보면 여름을 맞이해서 특별히 읽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추리 소설을 읽어대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다보면 미묘한 상관관계에 의해 비슷한 책들을 찾아 읽게 되는데, 최근에 읽은 미야베 미유키의 <퍼펙트 블루> 덕에 비슷한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꺼내 들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가 내게 인식될 무렵 꺼내들었던 <붉은 손가락>은 사건의 내용이 우울해 덮어 두었던 책이었다. 그러다 추리 소설의 열기를 이어가고 싶어 꺼내들었는데, 그 손길이 마냥 고마울 뿐이다.

 


  내가 책 읽기를 그만두었던 시점은 14살 소년 나오미가 7살 여자아이를 목 졸라 살해한 사건 이후부터다. 살해 동기도 어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들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무척 짜증이 났다. 그렇게 큰 일이 일어났으니 당황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해도 무조건 아이만 감싸 도는 엄마, 모든 것이 짜증스러운 아빠의 태도를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그 사건의 결말은 완성되지 못한 채 나의 뇌리에 한 구석에 머물고 있었는데, 다시 꺼내든 손길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이야기는 완성되어 갔다.

 


  나오미의 아빠는 자수를 하자고 설득했지만, 나오미의 엄마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 절대 그럴 수 없노라고 고집을 피웠다. 그래서 의논한 끝에 시체 유기를 하기로 하고, 화단에 놓여 있는 아이의 시신을 골판지 상자에 싸서 공원 화장실에 버린다.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자 경찰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사촌 지간인 가가와 마쓰미야 형사가 이 사건을 맡게 된다. 아무런 흔적이 없는 상태에서 추적한다는 사실이 어렵게 느껴졌지만, 뛰어난 감각을 가진 가가 형사는 아이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에서 범인의 흔적을 유추해 낸다. 아이의 몸에 묻어 있던 잔디와 스티로폼 조각으로 인해 아이가 어떤 상태에서 옮겨 왔는지를 추측하고 초동수사로 근처에 잔디가 있는 주택들을 조사한다.

 


  한편 경찰이 자신의 집에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나오미의 가족은 살해된 아이의 사건으로 인해 경찰이 방문하자 큰 위기에 몰린다. 잔디체취의 목적으로 또다시 경찰이 방문하자 나오미의 부모는 들킬 것에 대비해 다른 스토리를 짜게 된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고 제멋대로인 나오미 외에도 치매에 걸린 노모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 존재의 드러남으로 이들 부부가 노모를 이용할 것으로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이 눈치를 채고 있음을 안 부부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경찰을 불러 범인이 노모라고 말한다. 상태가 저렇다 보니 아이를 죽여 놓고도 사실을 알지 못하며, 시체 유기는 자기가 했노라고 밝힌다.

 


  나오미 부부는 아이의 몸에 붙어 있던 잔디의 성분으로 범행을 유추했다고 생각했지만, 가가형사는 두어 번 들른 나오미의 집에서 전혀 다른 것으로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 간다. 하나씩 조각을 맞춰가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건의 전말을 살펴가는 가가형사의 능력에 감탄을 금한 것도 잠시, 사건의 해결은 독자가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가가 형사는 그들이 사건의 모든 경위를 밝히도록 유도하고, 스스로가 진실을 토로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노모가 수갑에 채워 끌려갈 상황에 처하자 모성을 빌미로 그들의 자백을 받아낸다. 나오미가 아이를 죽였으며, 어머니는 죄가 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가가형사는 진실로 사죄해야 할 사람은 어머니라며 그들이 전혀 알 수 없었던, 독자인 나도 방심하느라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이면을 드러낸다. 사건이 일어난 날 죽은 아이의 동선을 살핀 결과 범인이 이미 나오미라고 안 가가형사는 나오미 부부가 회개할 여유를 준 것인데, 단순히 어머니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가가형사를 통해 저자는 인간으로써 잊고 있던 양심을 뛰어 넘어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근본적인 도리를 깨우치게 만든다. 가정 안에서 곪아터진 문제가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켰음에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던 나오미 가족이 충격적이었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날카롭게 지적하는 문제의 화살은 우리에게도 향한다. 드러내지 않은 우리의 내면에도 나오미 가족의 기이한 행태가 자리 잡고 있지 않다고 부정할 수 없다. 결말에 가서야 폭포수처럼 많은 메시지를 전해 주는 <붉은 손가락>은 소설 속에서만 머물지 않고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빌미를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내가 속해 있는 곳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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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3 - 청소년 성장 장편소설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5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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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리뷰를 쓰는 속도보다 책 읽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말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한 번 잡으면 끝까지 다 읽어야 책을 놓게 만드는 흡인력 덕분에 리뷰를 위해서 숨을 돌리기가 힘겨울 정도다. 그대로 쭉쭉 읽어나가고 싶지만, 다음 이야기를 더 재미나게 읽기 위해서 정리를 해 둘 필요가 있다. 더욱 더 흥미진진해져 가는 야구와 함께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기에.

 

  닛타히가시 중학교 야구부가 활동 중단된 것 때문에 다쿠미와 고 뿐만 아니라 감독인 마코토 선생님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3학년 선배들이 마찰을 일으킨 것 때문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다쿠미와 고는 조금씩이나마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토무라이(마코토 선생님 별명이니 그렇게 부르도록 하자!) 감독은 뜬금없이 둘 가운데 나타나 포수로써 다쿠미의 공을 받아 본다. 그 일로 활동 중단에 대한 약간의 마찰이 다쿠미와 오토무라이 감독 사이에 있었지만, 다행히도 교장은 여름방학이 끝남과 동시에 활동 재개를 허락해 주었다. 아이들도 오토무라이 감독도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활동에 임하는데 오토무라이 감독은 첫 연습에서 이상한 제안을 한다. 갑작스런 홍백전을 펼치고 홍군은 3학년을 중심으로 한 주전 팀, 백군은 1,2학년을 중심으로 게임을 하라는 것이다.

 

  닛타히가시 중학교 야구부가 그렇게 잘한다고 할 수 없지만, 오토무라이 감독은 홍백전을 통해서 아이들을 제대로 파악해보려는 의도가 있었다. 아이들이 경기를 통해 실력과 잠재력은 물론 경험을 쌓아보는 계기를 노린 것도 있었다. 3권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있는 홍백전은 무척 흥미진진했다. 3학년과 1,2학년으로 팀을 나눠 놨으니 실력 차가 클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과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아이들도 있었고, 여전히 다쿠미와 마찰을 일으킨 3학년 선배들은 껄끄러웠다. 그러나 모두 성실하게 게임에 임했고, 경기는 예상을 뒤집으며 백군의 승리로 끝났다. 그 경기로 인해 같은 팀끼리 서로를 알아가는 계기가 되어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오토무라이 감독은 또 다시 이상한 제안을 한다. 전국대회 4강까지 나간 요코테 중학교 야구부와 연습게임을 할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교장도 허락하지 않고, 물의를 일으킨 3학년 아이들이 야구부를 탈퇴하고 어수선한 가운데 주장 가이온지는 요코테 쪽에서 연습게임을 제안하도록 유도한다. 요코테의 에이스인 가도와키를 다쿠미의 실력으로 자극해서 제안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가도와키는 다쿠미와 고를 만나 간단히 게임을 해 본 후, 연습게임을 해준다면 퍼펙트게임을 하겠노라는 다쿠미의 말에 승낙을 한다. 그러나 다쿠미가 고를 믿지 못한 일이 생기고 고는 다쿠미와 또 사이가 틀어진다. 투수가 포수를 믿지 못하는 것, 투수 혼자서 팀워크를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공만 내세우는 것으로 잔소리를 듣게 되지만 그들 앞에는 더 큰 일이 벌어졌다. 요코테와의 경기를 해야 하고 퍼펙트게임을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홍백전을 통해 자신감이 충만해진 아이들은 상대가 요코테인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이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야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내게도 전해져 옴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중학생인 아이들이 야구에 빠져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부럽고 기특했다. 국어 담당인 여교사가 야구부의 팬이 될 정도로 아이들의 모습은 열정으로 넘쳐났다. 그 열정이 너무 뜨거워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트러블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 야구에 모든 것을 걸려는 아이들을 더 단단하게 해줄 거라 믿는다. 무언가에 그토록 빠져본 경험이 없는 터라 나이를 불문하고 열정이 부러웠고,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삶에서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이 이토록 흥분되고 자신을 불태울 수 있는 거라는 사실을 중학생 소년들이 알아간다는 것이 뿌듯했다. 아직 아무것도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다쿠미와 고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니타히가시 중학교의 야구부를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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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2 - 청소년 성장 장편소설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4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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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을 읽은 여운이 사라질까 두려워 서둘러 2권을 꺼내들었다. 책장에서 6권을 모조리 꺼내 머리맡에 쌓아두니 어찌나 든든하던지, 그야말로 책 내용을 모조리 빨아들일 사람처럼 기를 쓰며 읽었다. 역시나 꼼짝할 수 없을 만한 흡인력을 발휘했고, 3권을 읽고 싶어 몸이 근질거릴 정도다. 그러나 다음 권을 읽기 전에 정리해 두지 않으면 이야기가 엉켜버릴 것 같아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2권의 내용을 되돌아보고 있다. 저자는 1996년부터 2007년까지 6권을 써냈다고 하니 이 정도의 심호흡은 해주고 읽어야 예의일 것 같다.

 

  드디어 중학교에 들어간 다쿠미와 고는 그들의 활약상으로 학교를 뒤흔들 거라 생각했다. 그들도 책을 읽는 나도 의심치 않은 사실이었으나 다쿠미는 야구부에 들어가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 다름 아닌 야구부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지워낼 수 없어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야구 때문에 중학교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인 그들만큼 야구부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야구를 사랑하고 야구에 대한 열정은 어느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었기에 야구부에 들어간다. 그러나 다쿠미의 올곧은 성격과 지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야구부에 들어가기 전부터 약간의 문제가 생긴다. 야구공을 소지한 것 때문에 교장실로 불려가고, 야구부에 들어가서부터 다쿠미는 선배들의 눈에 난다.

 

  그도 그럴 것이 오로지 자신이 던지는 공만 믿었고, 고가 있다면 문제 될게 없다 생각해서 명령만 내리는 감독도, 거들먹거리는 선배들을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었다. 감독과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쿠미의 실력을 확인하지 전까지 1학년 주제에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드디어 고와 배터리가 되어 실력을 뽐내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들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다쿠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아 여러 사람과 충돌을 일으킨다. 야구부원과 감독이라면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환상의 호흡이라고 할 수 있는 고와의 틀어짐은 아슬아슬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야구도 잘 할 수 있다는 고의 충고에 다쿠미는 냉랭하게 반응했고 그로 인해 고는 상처를 입었다. 다른 친구들과의 우정을 쌓아가며 농담을 하며 즐겁게 놀 때는 영락없는 중학교 소년인데, 야구에서만큼은 애늙은이가 되어 버리는 다쿠미 앞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다쿠미는 고와의 연습과 충돌로 인해 서서히 그를 믿어간다. 믿기보다 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가 없으면 안 된다고 뼈저리게 느끼지만, 그것만으로 야구를 시원스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뻣뻣한 태도로 선배들을 대한 탓에 다쿠미는 린치를 당하고, 그때마다 고가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체육관에서 당한 린치는 다쿠미에게 육체적 상처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친구인 사와구치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감독인 마코토 선생님이 부상을 당하고, 그 일로 인해 3학년 선배들이 큰 곤경에 빠질 거라 생각했는데 학교의 입장은 강압적이다. 그런 일을 숨기고 싶어 했고 야구부의 탓으로 돌리고 야구부 활동을 중지 시켜 버린다. 더 큰 어려움에 닥친 다쿠미를 비롯한 야구 부원들은 그 난관을 어떻게든 해쳐나가야 했다.

 

  다쿠미의 머릿속에 온통 야구가 들어차 있는 것처럼 책의 전반에 야구의 흔적이 곳곳에 드러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감칠맛 나듯 드러나는 중학교 생활과 친구들과의 우정, 가족들의 걱정 속에서 성장해 가는 다쿠미를 엿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다쿠미의 실력은 흠잡을 데 없었지만, 어느 누구와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모든 것에 부딪히려 하는 모습이 답답해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늘 충돌이 일으키고, 문제만 만드는 다쿠미의 진정성은 조금씩 빛을 발해가고 있었다. 야구부 활동 중지로 인한 문제 해결과 경기 출전 여부가 남았기에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씩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고 때로는 타인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지만, 그런 다쿠미를 지켜보는 것이 조마조마 하다. 다쿠미를 좌절 시키려는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 희망을 접어버릴 까봐 되레 내가 겁을 먹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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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달 위를 걷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3
샤론 크리치 지음, 김영진 옮김 / 비룡소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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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시 불붙은 성장소설에 대한 관심은 '청소년 문학선'이라는 문구만으로도 충분히 나를 설레게 했다. 막상 책을 받고 보니 생각보다 두꺼워 잠시 놀란 것도 잠시, 저자 이름이 낯이 익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저자의 또 다른 작품 <바다 바다 바다>가 떠올랐다. 그 책도 성장소설에 한참 관심 있을 때 만난 작품인데, 이렇게 우연히 재회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그러나 상을 받은 작품치고는 초반부터 흡인력이 너무 없었다. 그렇게 초반만 한참 뒤척이다 책을 덮어 버렸고, 어느 우울한 주말에 다시 책을 꺼냈다. 기분도 가라앉고 날씨도 후텁지근한 가운데 이 책이 현실을 잊게 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 엉뚱한 믿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작품이 왜 뉴베리 상을 받았는지에 대한 의심을 말끔히 지워 주었다.
 

  저자의 작품들은 충분한 과정을 만들어 주는 특징을 가졌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중간 중간 복선을 깔아주면서 독자가 책을 읽는 과정을 마지막에 가서 한껏 위로해 준다고나 할까. 조금 지루한 것도 잠시, 호기심이 충만할 때 꺼내들어 순식간에 읽어버린 것이 이상할 정도로 매력이 가득한 책이었다. 주인공인 13살 소녀 살라망카는 집을 떠나 버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충만해 있었다. 그러나 아빠는 엄마와 살던 집을 두고 낯선 도시로 이사를 왔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살라망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자동차 여행과 맞물리며 드러난다. 자동차 여행이 짧은 거리가 아닌 만큼 살라망카가 켄터키 주에서 오하이오 주 유클리드 시에서 겪은 이야기는 여행기간 동안 나눌 여담으로 제격이었다.

 

  살라망카의 갑작스런 이사도,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자동차 여행은 흔히 일어나는 평범한 일 같았다. 엄마가 떠나버린 집이 고통스러워 이사한 것과 할아버지 할머니와 조금은 특별한 자동차 여행을 한 것은 이 소설이 어떠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여행과 새로운 도시에서의 생활이 맞물리듯 펼쳐지는 이야기를 나 또한 의심하지 않은 채 읽어 나갔다. 엄마가 왜 집을 떠났는지, 그런 엄마의 흔적을 좇는답시고 조부모와 왜 여행을 하는지 궁금증을 일으켰지만 살라망카의 시선을 좇아나가는 것만으로도 나름 바빴다. 살라망카는 조부모에게 유클리드 시에서 겪은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거기에는 같은 반 친구인 피비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피비는 무척 독특한 아이였다. 극단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고, 그런 피비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살라망카에게는 약간의 고통이 따랐지만 피비와의 우정을 잘 쌓아간다. 피비의 이야기를 비롯한 유클리드 시에서 겪은 이야기는 자동차 여행의 장소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쉬어가는 양상으로 드러났다.

 

  초반에는 피비의 이야기에 빠져 자동차 여행에 대해 큰 의의를 두지 못했었다. 조부모와 3000여 킬로미터를 달리는 자동차 여행이 그다지 흥미진진할 거라 생각하지 못해서였다. 살라망카가 조부모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왜 그들이 자동차 여행을 하는 것인지 잊어먹기 일쑤였는데, 그들은 살라망카의 엄마가 여행했던 코스를 그대로 밟고 있었다. 복선만 깔아주었을 뿐, 왜 엄마의 뒤를 따르는지, 그렇게 따르다 보면 엄마를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확실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여행보다 피비의 이야기가 더 많은 중심을 차지했다.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피비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여행 과정에서 듣기엔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어갈 때 쯤, 저자는 여행의 목적보다 왜 피비 이야기를 중점으로 두었는지 자동차 여행의 종착지에서 충분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 책의 제목 <두 개의 달 위를 걷다>라는 제목을 설명하듯 무엇보다 살라망카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미국 속담에 '그의 모카신을 신고 두 개의 달 위를 걸어 볼 때까지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마세요' 란 말이 있다고 한다. 그 뜻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인데, 피비의 이야기는 살라망카의 입장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무척 독특한 소녀 피비의 이야기는 바로 살라망카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피비의 엄마도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떠나고, 살라망카의 엄마도 갑작스레 집을 떠났다. 그러나 피비의 엄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 반면, 살라망카의 엄마는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돌아올 수 없었다. 살라망카의 조부모는 그런 피비를 위해 엄마가 여행 기간 동안 보낸 엽서를 지도 삼아 엄마의 마지막 흔적을 좇아 함께 여행했다. 엄마가 집을 나가게 된 이유를 피비의 이야기를 통해 이해를 이끌어 냈고, 여행의 종착지에 다다라서야 조부모와 함께 먼 거리를 여행한 살라망카의 목적을 공감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가슴 아프고, 마음 찡하게 다가온 종착지의 실체는 살라망카의 처지를 위로하게 만들었다.

 

  여행지에서 할머니까지 잃어버린 살라망카에게 큰 좌절이 다가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빠가 왜 낯선 도시인 유클리드까지 오게 되었으며, 긴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를 알고 나자 한층 성숙됨을 느낄 수 있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에 부응하듯 새롭게 얻은 소중한 인연들이 있었다. 다시 엄마와 함께 살았던 집으로 돌아온 부녀는 유클리드 시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어 간다. 피비와 여행이야기가 전부일 거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13살 소녀의 모든 감정들이 내포되어 있었다. 자신을 좋아하는 소년과의 로맨스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도, 아빠의 결정에 대한 분노도 살라망카는 모두 드러낸다. 그 과정을 함께 지켜봤기에 살라망카의 앞날이 어둡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여행과 유클리드에서 보낸 기억은 새로운 힘이 되어 주었고, 성장기 소녀에게 꼭 필요한 과정으로까지 비춰졌다. 충분한 과정을 밟지 않고 늘 성급하게 결과만 보려 하는 현대인에게 살라망카의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가슴 아픈 반면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그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하고, 많은 감정을 함께 누릴 수 있어 마음이 풋풋해지는 시간이었다.

 

 

*오탈자

 

굉징한 버크웨이 선생님 -> 굉장한 <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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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1 - 청소년 성장 장편소설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1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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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새벽,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책장을 둘러보고 말았다. 그 시간에 책장을 둘러 본 다는 것은 지금 당장 읽을 책을 찾는다는 뜻인데, 500권의 책 속에 어떤 책이 간택(?) 될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침대에서 뒤척이기 전까지 성장소설 한편을 읽은 뒤였고, 며칠 전에 읽은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 소설의 영향을 받은 탓에 이미 어떤 책이 선택될지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성장소설과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 소설에 나왔던 야구를 접목시키자면 일 년 전쯤 책장에 자리 잡은 '배터리'가 제격이었다. 6권짜리지만 책이 작고 얇아 큰 부담 없이 펼쳤는데, 읽고 난 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 피곤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새롭게 만난 이 사랑스러운 소설을 어찌해야 할지 미소만 지어졌다.
 

  내가 성장소설을 좋아한다고 하자 지인이 선물해준 책이었는데, 적절한 시기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야 꺼내들게 되었다. 이런 푸념은 책장에 즐비한 책들을 만날 때마다 하게 되는데, 정말 괜찮은 책들을 만나면 푸념이 더 길어지고 만다. 한참 성장소설 읽기에 불이 붙었을 때 꺼내들었다는 점, 야구에 관한 추리소설을 읽은 터라 야구가 더 알고 싶었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최고라고 할 만큼 시기적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정이니 어떻게 <배터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야구와 함께 얽혀가는 소년들의 우정과 성장을 통한 삶의 이면이 내제되어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재료로 가득한데.

 

  책은 다쿠미가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해 가족과 함께 외할아버지 댁으로 이사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도시에 살다가 지방도시 닛타로 오게 되는데, 다쿠미는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에 불과하지만 야구 투수로서 자질이 특출했다. 초등학교시절 리틀 야구단에서 굉장한 실력을 보여줬던 투수였고 미래가 기대되는 아이였다. 지방으로 이사를 오긴 했지만 야구를 그만 둘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고, 몸 관리를 위해 이사 온 첫 날부터 러닝을 시작한다. 그러다 신사 근처에서 나가쿠라 고라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고는 다쿠미의 경기를 관람한 적이 있었기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쿠미는 고를 처음 본 순간 그가 포수라는 위치를 알아낸다. 그렇게 두 소년의 만남은 운명처럼 다가왔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오로지 야구에 열정을 쏟아 붓기에 여념이 없었다.

 

  둘의 만남이 운명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다쿠미는 자신이 던지는 공이 최고라고 할 만큼 옹골진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아무나 자신의 공을 받을 자가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고는 자신의 공을 섬세하게 받고 있었다. 둘은 호흡이 잘 맞는 배터리(야구에서, 짝을 이루어 경기를 하는 투수와 포수.)가 될 수 있다고 예감했다. 고는 경기장에서 지켜보았던 다쿠미의 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 버렸고, 다쿠미는 그런 고를 기꺼워하면서도 자기만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큰 등치에 비해 섬세하면서도 푸근한 성격을 지닌 고에 비해 다쿠미는 내면이 틀어질 대로 틀어져 있었다. 오로지 야구 밖에 관심이 없었고, 자존심이 강해 타인에게 다가가거나 배려심이 부족했다. 그런 모습은 책의 곳곳에서 짜증스러울(?) 정도로 자주 드러난다. 다쿠미가 일상생활에서 가족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얼마나 그들의 존재를 귀찮아하는지 혼잣말을 듣다 보면 냉혈한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다. 이제 중학생이 된 소년에 불과했지만, 그 만큼 다쿠미는 야구에 미쳐있었고, 자신 밖에 믿지 않았다.

 

  그런 다쿠미에게 고의 존재는 호흡이 잘 맞는 배터리 상대이자, 강퍅한 마음을 풀어주는 친구가 되어 주기도 했다. 야구를 좋아하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시골의 생활에도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한 때 고등학교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던 외할아버지도, 연약하지만 상냥한 남동생 세하도, 자신과 야구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부모님보다 고와 뒤엉키는 시간이 많았다. 다쿠미가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너무 자신만만했지만, 실력에 대한 무시를 할 수 없기에 미워할 수 없는 소년으로 비춰진다. 작은 공 하나를 던졌을 뿐인데 타인에게 야구에 대한 열망을 끌어올릴 뿐 아니라 다쿠미가 가진 실력과 열정을 사모하게 만든다. 가장 들뜬 존재는 역시나 고였다. 새벽에 다쿠미를 불러내 캐치볼을 하고, 공부를 하라는 엄마의 성화에도 야구를 순수하게 좋아했다. 다쿠미의 강퍅한 성격 때문에 가끔 다투기도 하고, 사소한 문제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둘 사이에는 야구라는 존재가 있기에 끈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중학교에 들어가 야구부원으로 활동하게 되면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궁금할 정도로 깊은 호감을 불러 일으켰다. 둘이 함께 한다면 어떠한 경기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1권에서는 다쿠미가 고를 만나고, 서로의 능력을 알아보며, 시골 생활에 적응해 가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어디까지 번져갈지 알 수 없었다. 야구에 얽힌 두 소년의 우정에 더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도리가 없다. 순식간에 읽어버린 이야기만큼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다쿠미와 고의 활약상이 보고 싶어 못 견딜 정도니 어서 다음 권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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