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1 - 청소년 성장 장편소설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1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깊은 새벽,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책장을 둘러보고 말았다. 그 시간에 책장을 둘러 본 다는 것은 지금 당장 읽을 책을 찾는다는 뜻인데, 500권의 책 속에 어떤 책이 간택(?) 될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침대에서 뒤척이기 전까지 성장소설 한편을 읽은 뒤였고, 며칠 전에 읽은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 소설의 영향을 받은 탓에 이미 어떤 책이 선택될지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성장소설과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 소설에 나왔던 야구를 접목시키자면 일 년 전쯤 책장에 자리 잡은 '배터리'가 제격이었다. 6권짜리지만 책이 작고 얇아 큰 부담 없이 펼쳤는데, 읽고 난 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 피곤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새롭게 만난 이 사랑스러운 소설을 어찌해야 할지 미소만 지어졌다.
 

  내가 성장소설을 좋아한다고 하자 지인이 선물해준 책이었는데, 적절한 시기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야 꺼내들게 되었다. 이런 푸념은 책장에 즐비한 책들을 만날 때마다 하게 되는데, 정말 괜찮은 책들을 만나면 푸념이 더 길어지고 만다. 한참 성장소설 읽기에 불이 붙었을 때 꺼내들었다는 점, 야구에 관한 추리소설을 읽은 터라 야구가 더 알고 싶었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최고라고 할 만큼 시기적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정이니 어떻게 <배터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야구와 함께 얽혀가는 소년들의 우정과 성장을 통한 삶의 이면이 내제되어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재료로 가득한데.

 

  책은 다쿠미가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해 가족과 함께 외할아버지 댁으로 이사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도시에 살다가 지방도시 닛타로 오게 되는데, 다쿠미는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에 불과하지만 야구 투수로서 자질이 특출했다. 초등학교시절 리틀 야구단에서 굉장한 실력을 보여줬던 투수였고 미래가 기대되는 아이였다. 지방으로 이사를 오긴 했지만 야구를 그만 둘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고, 몸 관리를 위해 이사 온 첫 날부터 러닝을 시작한다. 그러다 신사 근처에서 나가쿠라 고라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고는 다쿠미의 경기를 관람한 적이 있었기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쿠미는 고를 처음 본 순간 그가 포수라는 위치를 알아낸다. 그렇게 두 소년의 만남은 운명처럼 다가왔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오로지 야구에 열정을 쏟아 붓기에 여념이 없었다.

 

  둘의 만남이 운명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다쿠미는 자신이 던지는 공이 최고라고 할 만큼 옹골진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아무나 자신의 공을 받을 자가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고는 자신의 공을 섬세하게 받고 있었다. 둘은 호흡이 잘 맞는 배터리(야구에서, 짝을 이루어 경기를 하는 투수와 포수.)가 될 수 있다고 예감했다. 고는 경기장에서 지켜보았던 다쿠미의 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 버렸고, 다쿠미는 그런 고를 기꺼워하면서도 자기만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큰 등치에 비해 섬세하면서도 푸근한 성격을 지닌 고에 비해 다쿠미는 내면이 틀어질 대로 틀어져 있었다. 오로지 야구 밖에 관심이 없었고, 자존심이 강해 타인에게 다가가거나 배려심이 부족했다. 그런 모습은 책의 곳곳에서 짜증스러울(?) 정도로 자주 드러난다. 다쿠미가 일상생활에서 가족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얼마나 그들의 존재를 귀찮아하는지 혼잣말을 듣다 보면 냉혈한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다. 이제 중학생이 된 소년에 불과했지만, 그 만큼 다쿠미는 야구에 미쳐있었고, 자신 밖에 믿지 않았다.

 

  그런 다쿠미에게 고의 존재는 호흡이 잘 맞는 배터리 상대이자, 강퍅한 마음을 풀어주는 친구가 되어 주기도 했다. 야구를 좋아하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시골의 생활에도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한 때 고등학교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던 외할아버지도, 연약하지만 상냥한 남동생 세하도, 자신과 야구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부모님보다 고와 뒤엉키는 시간이 많았다. 다쿠미가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너무 자신만만했지만, 실력에 대한 무시를 할 수 없기에 미워할 수 없는 소년으로 비춰진다. 작은 공 하나를 던졌을 뿐인데 타인에게 야구에 대한 열망을 끌어올릴 뿐 아니라 다쿠미가 가진 실력과 열정을 사모하게 만든다. 가장 들뜬 존재는 역시나 고였다. 새벽에 다쿠미를 불러내 캐치볼을 하고, 공부를 하라는 엄마의 성화에도 야구를 순수하게 좋아했다. 다쿠미의 강퍅한 성격 때문에 가끔 다투기도 하고, 사소한 문제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둘 사이에는 야구라는 존재가 있기에 끈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중학교에 들어가 야구부원으로 활동하게 되면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궁금할 정도로 깊은 호감을 불러 일으켰다. 둘이 함께 한다면 어떠한 경기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1권에서는 다쿠미가 고를 만나고, 서로의 능력을 알아보며, 시골 생활에 적응해 가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어디까지 번져갈지 알 수 없었다. 야구에 얽힌 두 소년의 우정에 더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도리가 없다. 순식간에 읽어버린 이야기만큼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다쿠미와 고의 활약상이 보고 싶어 못 견딜 정도니 어서 다음 권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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