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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손가락 ㅣ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을 살펴보면 여름을 맞이해서 특별히 읽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추리 소설을 읽어대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다보면 미묘한 상관관계에 의해 비슷한 책들을 찾아 읽게 되는데, 최근에 읽은 미야베 미유키의 <퍼펙트 블루> 덕에 비슷한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꺼내 들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가 내게 인식될 무렵 꺼내들었던 <붉은 손가락>은 사건의 내용이 우울해 덮어 두었던 책이었다. 그러다 추리 소설의 열기를 이어가고 싶어 꺼내들었는데, 그 손길이 마냥 고마울 뿐이다.
내가 책 읽기를 그만두었던 시점은 14살 소년 나오미가 7살 여자아이를 목 졸라 살해한 사건 이후부터다. 살해 동기도 어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들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무척 짜증이 났다. 그렇게 큰 일이 일어났으니 당황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해도 무조건 아이만 감싸 도는 엄마, 모든 것이 짜증스러운 아빠의 태도를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그 사건의 결말은 완성되지 못한 채 나의 뇌리에 한 구석에 머물고 있었는데, 다시 꺼내든 손길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이야기는 완성되어 갔다.
나오미의 아빠는 자수를 하자고 설득했지만, 나오미의 엄마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 절대 그럴 수 없노라고 고집을 피웠다. 그래서 의논한 끝에 시체 유기를 하기로 하고, 화단에 놓여 있는 아이의 시신을 골판지 상자에 싸서 공원 화장실에 버린다.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자 경찰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사촌 지간인 가가와 마쓰미야 형사가 이 사건을 맡게 된다. 아무런 흔적이 없는 상태에서 추적한다는 사실이 어렵게 느껴졌지만, 뛰어난 감각을 가진 가가 형사는 아이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에서 범인의 흔적을 유추해 낸다. 아이의 몸에 묻어 있던 잔디와 스티로폼 조각으로 인해 아이가 어떤 상태에서 옮겨 왔는지를 추측하고 초동수사로 근처에 잔디가 있는 주택들을 조사한다.
한편 경찰이 자신의 집에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나오미의 가족은 살해된 아이의 사건으로 인해 경찰이 방문하자 큰 위기에 몰린다. 잔디체취의 목적으로 또다시 경찰이 방문하자 나오미의 부모는 들킬 것에 대비해 다른 스토리를 짜게 된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고 제멋대로인 나오미 외에도 치매에 걸린 노모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 존재의 드러남으로 이들 부부가 노모를 이용할 것으로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이 눈치를 채고 있음을 안 부부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경찰을 불러 범인이 노모라고 말한다. 상태가 저렇다 보니 아이를 죽여 놓고도 사실을 알지 못하며, 시체 유기는 자기가 했노라고 밝힌다.
나오미 부부는 아이의 몸에 붙어 있던 잔디의 성분으로 범행을 유추했다고 생각했지만, 가가형사는 두어 번 들른 나오미의 집에서 전혀 다른 것으로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 간다. 하나씩 조각을 맞춰가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건의 전말을 살펴가는 가가형사의 능력에 감탄을 금한 것도 잠시, 사건의 해결은 독자가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가가 형사는 그들이 사건의 모든 경위를 밝히도록 유도하고, 스스로가 진실을 토로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노모가 수갑에 채워 끌려갈 상황에 처하자 모성을 빌미로 그들의 자백을 받아낸다. 나오미가 아이를 죽였으며, 어머니는 죄가 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가가형사는 진실로 사죄해야 할 사람은 어머니라며 그들이 전혀 알 수 없었던, 독자인 나도 방심하느라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이면을 드러낸다. 사건이 일어난 날 죽은 아이의 동선을 살핀 결과 범인이 이미 나오미라고 안 가가형사는 나오미 부부가 회개할 여유를 준 것인데, 단순히 어머니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가가형사를 통해 저자는 인간으로써 잊고 있던 양심을 뛰어 넘어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근본적인 도리를 깨우치게 만든다. 가정 안에서 곪아터진 문제가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켰음에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던 나오미 가족이 충격적이었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날카롭게 지적하는 문제의 화살은 우리에게도 향한다. 드러내지 않은 우리의 내면에도 나오미 가족의 기이한 행태가 자리 잡고 있지 않다고 부정할 수 없다. 결말에 가서야 폭포수처럼 많은 메시지를 전해 주는 <붉은 손가락>은 소설 속에서만 머물지 않고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빌미를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내가 속해 있는 곳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