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달 위를 걷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3
샤론 크리치 지음, 김영진 옮김 / 비룡소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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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시 불붙은 성장소설에 대한 관심은 '청소년 문학선'이라는 문구만으로도 충분히 나를 설레게 했다. 막상 책을 받고 보니 생각보다 두꺼워 잠시 놀란 것도 잠시, 저자 이름이 낯이 익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저자의 또 다른 작품 <바다 바다 바다>가 떠올랐다. 그 책도 성장소설에 한참 관심 있을 때 만난 작품인데, 이렇게 우연히 재회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그러나 상을 받은 작품치고는 초반부터 흡인력이 너무 없었다. 그렇게 초반만 한참 뒤척이다 책을 덮어 버렸고, 어느 우울한 주말에 다시 책을 꺼냈다. 기분도 가라앉고 날씨도 후텁지근한 가운데 이 책이 현실을 잊게 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 엉뚱한 믿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작품이 왜 뉴베리 상을 받았는지에 대한 의심을 말끔히 지워 주었다.
 

  저자의 작품들은 충분한 과정을 만들어 주는 특징을 가졌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중간 중간 복선을 깔아주면서 독자가 책을 읽는 과정을 마지막에 가서 한껏 위로해 준다고나 할까. 조금 지루한 것도 잠시, 호기심이 충만할 때 꺼내들어 순식간에 읽어버린 것이 이상할 정도로 매력이 가득한 책이었다. 주인공인 13살 소녀 살라망카는 집을 떠나 버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충만해 있었다. 그러나 아빠는 엄마와 살던 집을 두고 낯선 도시로 이사를 왔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살라망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자동차 여행과 맞물리며 드러난다. 자동차 여행이 짧은 거리가 아닌 만큼 살라망카가 켄터키 주에서 오하이오 주 유클리드 시에서 겪은 이야기는 여행기간 동안 나눌 여담으로 제격이었다.

 

  살라망카의 갑작스런 이사도,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자동차 여행은 흔히 일어나는 평범한 일 같았다. 엄마가 떠나버린 집이 고통스러워 이사한 것과 할아버지 할머니와 조금은 특별한 자동차 여행을 한 것은 이 소설이 어떠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여행과 새로운 도시에서의 생활이 맞물리듯 펼쳐지는 이야기를 나 또한 의심하지 않은 채 읽어 나갔다. 엄마가 왜 집을 떠났는지, 그런 엄마의 흔적을 좇는답시고 조부모와 왜 여행을 하는지 궁금증을 일으켰지만 살라망카의 시선을 좇아나가는 것만으로도 나름 바빴다. 살라망카는 조부모에게 유클리드 시에서 겪은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거기에는 같은 반 친구인 피비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피비는 무척 독특한 아이였다. 극단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고, 그런 피비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살라망카에게는 약간의 고통이 따랐지만 피비와의 우정을 잘 쌓아간다. 피비의 이야기를 비롯한 유클리드 시에서 겪은 이야기는 자동차 여행의 장소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쉬어가는 양상으로 드러났다.

 

  초반에는 피비의 이야기에 빠져 자동차 여행에 대해 큰 의의를 두지 못했었다. 조부모와 3000여 킬로미터를 달리는 자동차 여행이 그다지 흥미진진할 거라 생각하지 못해서였다. 살라망카가 조부모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왜 그들이 자동차 여행을 하는 것인지 잊어먹기 일쑤였는데, 그들은 살라망카의 엄마가 여행했던 코스를 그대로 밟고 있었다. 복선만 깔아주었을 뿐, 왜 엄마의 뒤를 따르는지, 그렇게 따르다 보면 엄마를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확실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여행보다 피비의 이야기가 더 많은 중심을 차지했다.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피비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여행 과정에서 듣기엔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어갈 때 쯤, 저자는 여행의 목적보다 왜 피비 이야기를 중점으로 두었는지 자동차 여행의 종착지에서 충분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 책의 제목 <두 개의 달 위를 걷다>라는 제목을 설명하듯 무엇보다 살라망카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미국 속담에 '그의 모카신을 신고 두 개의 달 위를 걸어 볼 때까지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마세요' 란 말이 있다고 한다. 그 뜻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인데, 피비의 이야기는 살라망카의 입장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무척 독특한 소녀 피비의 이야기는 바로 살라망카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피비의 엄마도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떠나고, 살라망카의 엄마도 갑작스레 집을 떠났다. 그러나 피비의 엄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 반면, 살라망카의 엄마는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돌아올 수 없었다. 살라망카의 조부모는 그런 피비를 위해 엄마가 여행 기간 동안 보낸 엽서를 지도 삼아 엄마의 마지막 흔적을 좇아 함께 여행했다. 엄마가 집을 나가게 된 이유를 피비의 이야기를 통해 이해를 이끌어 냈고, 여행의 종착지에 다다라서야 조부모와 함께 먼 거리를 여행한 살라망카의 목적을 공감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가슴 아프고, 마음 찡하게 다가온 종착지의 실체는 살라망카의 처지를 위로하게 만들었다.

 

  여행지에서 할머니까지 잃어버린 살라망카에게 큰 좌절이 다가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빠가 왜 낯선 도시인 유클리드까지 오게 되었으며, 긴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를 알고 나자 한층 성숙됨을 느낄 수 있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에 부응하듯 새롭게 얻은 소중한 인연들이 있었다. 다시 엄마와 함께 살았던 집으로 돌아온 부녀는 유클리드 시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어 간다. 피비와 여행이야기가 전부일 거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13살 소녀의 모든 감정들이 내포되어 있었다. 자신을 좋아하는 소년과의 로맨스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도, 아빠의 결정에 대한 분노도 살라망카는 모두 드러낸다. 그 과정을 함께 지켜봤기에 살라망카의 앞날이 어둡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여행과 유클리드에서 보낸 기억은 새로운 힘이 되어 주었고, 성장기 소녀에게 꼭 필요한 과정으로까지 비춰졌다. 충분한 과정을 밟지 않고 늘 성급하게 결과만 보려 하는 현대인에게 살라망카의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가슴 아픈 반면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그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하고, 많은 감정을 함께 누릴 수 있어 마음이 풋풋해지는 시간이었다.

 

 

*오탈자

 

굉징한 버크웨이 선생님 -> 굉장한 <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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