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 나무 위의 줄리
웬들린 밴 드라닌 지음, 이지선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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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느낌, 이런 감정 참으로 오랜만이다.

분위기에 홀려 앉은 자리에서 책을 순식간에 읽어 버린 것도 오랜만이고 이 느낌을 잊어 버리기 싫어 늦은 밤 펜을 들고 있는 것도 실로 오랜만이다.

책을 읽는 순간이 마치 꿈결처럼 지나갔고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어서 책을 읽는 짜릿함 또한 느낄 수 있는게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순간은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줄리가 아닌 내가 된 느낌이다.

나는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며 줄리와 브라이스를 통해 순수를 배워 가고 있다.

 

이 책의 형식은 독특하다.

편지로만 되어 있는 아모스 오즈의 '블랙박스'를 읽는 적이 있어 낯설지는 않았지만 줄리와 브라이스의 각각 입장에서 쓴 글의 반복이 더욱 더 재미났다. 둘의 만남과 대화는 각자의 시각에서 다르게 표현되었다.

그러면서 색다른 느낌이 배어 있었고 공통된 둘의 모습보다 하나의 개체로 중점을 둔 시선이였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이 둘을 동떨어지게 한다기보다 그들의 이야기는 점점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6년동안 옆집에 살며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줄리는 브라이스를 좋아하지만 브라이스는 첫 만남부터 줄리를 싫어하며 많은 상처를 주엇다.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서 본 풍경을 같이 보고 싶었던 사람도 브라이스였을 테고 그 나무가 잘려 나갔을 때도 브라이스에게 위로 받고 싶었었을 텐데 브라이스는 줄리의 주위만 멤돈다.

그리고 계란 사건으로 인해 브라이스의 있는 그대로의 면모를 줄리에게 보여주게 된다.

그것도 모자라 겁쟁이 브라이스는 줄리네 삼촌을 비난하는 친구한테 아무말 못하고 동조해버린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줄리는 브라이스를 좋아할 자신이 없어진다.

 

이러한 감정의 반복을 보며 중학교 2학년의 삶이 왜이리 팍팍하며 상처 투성이일까 한탄하면서도 줄리의 밝은 모습이 좋았다.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 순수하게 브라이스를 좋아하는 모습까지 나무 위의 줄리가 본 아름다운 세상은 줄리의 마음속에서 서서히 피어난다.

하나 하나 삶을 헤쳐가고 배워가는 가운데 잃지 말아야 할 모습과 진통을 한꺼번에 떠 안으며 충실히 살아가는 줄리는 내면이 아름다운 아이가 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줄리를 싫어하던 브라이스도 그러한 줄리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해가며 줄리를 좋아하게 된다.

그 마음이 뒤늦지 않도록 줄리네 앞마당에 스스로 플라타너스 묘목을 심어놓고 자신의 변화를 줄리에게 보여주며 집으로 돌아간다.

 

마지막은 참으로 감동적이였다. 하도 나를 울고 웃기기에 줄리와 브라이스의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기도 했었는데 마지막 장면을 보며 내가 서둘렀다는 걸 알면서 부끄러웠다.

나의 바램은 외적인 결합이 중점이였을 뿐 내적인 결합은 무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줄리가 내적인 브라이스의 면모를 발견해서 힘들어 하는 것을 보았음에도 말이다.

 

브라이스가 심어놓은 줄리네 앞마당의 나무가 커서 꼭대기의 풍경을 누가 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풍경을 기다리지 않아도 이미 나는 줄리를 통해서 보았다.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흉하게 변한 나무였지만 줄리가 그 나무였고 꼭대기의 풍경은 누구도 뺏어갈 수 없었다.

그것은 줄리의 희망이였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성장소설, 사랑얘기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그들을 통해 보여주는 세상이 너무 다양하다. 아름답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상처 받을 때도 있지만 그들을 통해서 그들의 희망을 꿈꾸어 보게 되었다.

'내가 줄리의 나이였으면' 이라는 막연한 연민이 아닌 순수함을 닮아가고 찾으려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상처를 주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아물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플라타너스 나무 위의 풍경으 줄리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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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듀본의 기도 - 아주 특별한 기다림을 만나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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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나는 현실이 아닌,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는 오기시마 섬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그 섬의 모습을 부정하기엔 뚜렸한 것이 너무나 많다라기 보단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 흐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신비의 섬이였지만 섬의 실체는 외부와 크게 다를바가 없었다. 자칫 겉으로 드러나는 미래를 보는 허수아비 유고, 살인 허용된 남자 사쿠라등이 독특해서 딴 세상의 느낌을 주었지만 분명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는 모습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인 외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유는 이런 연유에서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 섬이 독특한건 사실이다.

놀랄만한게 한 두가지가 아니라서 그냥 다 놀래 버리면 될 정도다.

100년이 넘도록 외부인이 들어온 적이 없는 오기시마 섬에는 유고라는 허수아비가 있다. 허수아비에게 무슨 이름이? 라고 생각하는 순간 허수아비는 말을 한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때 허수아비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노라며 나는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편의점 강도 미수로 잡혀 경찰차에서 탈출한 뒤 이 섬에 도착해 있는 이토의 현실은 이랬다.

이 모든 것을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더군다나 자신이 이 섬에 들어온 두번째 외부인이다.

그렇다면 첫번째 외부인은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라고 의문을 갖는 순간 자신을 안내해주는 히비노는 첫번째 외부인은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그 사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토는 부정하고 싶지 않다.

짧은시간 동안 알게 된 놀랄만한 것들이 수북한 이 섬에서 이토는 편안함을 느낀다.

'이 섬에 결여된 것을 외부인이 가지고 온다'라는 전설속의 인물이 이토라 생각하며 이토의 활약상을 기대했던 내게 이토는 평범함을 잃지 않는다.

 

무언가 이 섬에 크게 결여 된 것이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리얼리티 정도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이토 앞에 커다란 폭풍이 훑는다.

이토가 도착한 다음날 100년이 넘도록 논 한가운데서 미래를 내다보지만 미래를 말하지 않는 허수아비 유고가 살해 된 것이다.

이토는 자신의 존재 여부를 조금씩 느끼면서 유고가 살해된 이유와 범인 그리고 수없이 일어나는 살인사건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더군다나 유고의 유언이라 할 수 있는 '오듀본에 대해서 들어라','자전거를 몰아라','편지를 써라' 등 서서히 실행을 하지만 이토에게 특별함이 묻어 나는 것은 아니다.

소설 속의 탐정이라든지 결여된 무언가를 가져다 준다는 것은 더더욱더.

 

두꺼운 양이 이에 적합하다는 듯이 쉴새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많은 의문들은 서서히 풀려 나간다. 그러한 의문의 풀림은 끝을 향해 갈수록 이 소설은 끝에서부터 씌여졌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미래를 보는 허수아비 유고가 자신이 살해된 이후 섬의 미래를 교묘히 만들었듯이 저자는 과거를 내려다보며 소설을 쓰고 있는 느낌이였다. 그러면서도 유고를 따라 미친듯이 미래를 내다보도록 함정에 빠트려 놓고서 말이다.

 

유고를 죽인 이유는 무엇이며 이토가 이섬에 온 이유는 무엇이고 오듀본이라는 조류학자의 이야기를 왜 들어야만 했을까.

100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미래를 내려다보며 미래를 말할 수 없는 유고는 그만 쉬고 싶었다. 그리고 이토가 이 섬에 온 이유는 특별히 무어라 말할 수 없지만 섬에 결여되어 있는 무언가는 서서히 옮기는 역할을 어느 정도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오듀본이 100년전 나그네 비둘기의 멸종을 염려하며 그린 새도감이 첫번째 외부인을 이곳에 이끌어 왔다.

이미 멸종되어 버린 나그네 비둘기 한쌍이 오기시마 섬에 나타난 것이다. 오듀본의 소망이 오기시마 섬에서 이루어질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유고가 없는 섬은 서서히 바깥 세상과의 개방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유고는 이 섬을 지킬 수 없다고 하였고 오래전 이 섬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도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겉모양은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과 크게 다를바 없지만 100년이 넘도록 외부와 단절된 섬이다. 그 첫 오류부터 섬의 모든것 그리고 제임스 오듀본이라는 사람에서부터 섬의 단절이 시작된 곳까지 진정 그들이 걱정했던건 사랑하는 무언가가 다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오래도록 그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오듀본에게 그것이 나그네 비둘기 였다면 섬 사람들에겐 유고가 혹은 섬 그 자체가 될 수도 있고 이토에게는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으로 지킨다는 사명속에 오류가 무엇인지 서서히 오기시마는 깨어가고 있다.

유고가 타살이 아닌 자살이였다는 것 그리고 100년이 넘게 해온 그 역할에서 내려오고자 했던 것부터 자신이 미래를 말해주지 않아 고통과 원망을 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과하를 하고 싶었던 것.

그것 부터가 서서히 자연스러운 흐름을 얘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이 두꺼워서 지레 겁먹고 오기시마의 믿기지 않는 현실 속에서 헤멜때 어느새 책은 끝나 있었다. 그리고 신기루처럼 오기시마는 사라져 버렸다. 존재할 수 없는 섬의 존재가 이미 결여를 만들어 냈듯이 나는 한낱 꿈 속의 섬을 본 것 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오기시마를 부정할 채움을 나는 가지고 있을까?

진지하게 오기시마를 보았다면 그 진지함으로 세상을 볼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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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소리 - 옛 글 속에 떠오르는 옛 사람의 내면 풍경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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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는 깨달음 없이 그저 독서 목록만 추가하는 '도능독徒能讀'의 독서였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더 큰 확신이 생겼다.

올 한해 나의 독서를 돌아보며 느끼는 감정은 허무감이였다.

작년보다 많은 책을 읽고 나름 대로 열심히 독서했다라고 생각했지만 부족함에서 오는 진부함, 그리고 도능독의 독서 때문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내년에는 더 많은 책을 읽으리라 다짐했던 시간은 쉬엄 쉬엄 하자는 마음으로 굳혔고 사색하며 독서 하기를 갈구하고자 내년의 독서 양은 목표를 잡지 않으려고 한다.

 

이러한 나의 독서를 비웃기라도 하듯 옛 선인들의 독서는 상상을 초월한다. 독서라기 보단 암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한권의 책이 수 백권의 책을 능가한다는 걸 알기에 선인들의 독서에 감히 반기를 들 수가 없었다.

양이 아닌 질이 중요하다는 것에 어찌 책도 예외가 아니겠는가.

책을 통째로 외우되 무작정 책 내용만 줄줄이 늘어 놓는 것이 아닌 책 속에 담겨 있는 진리와 깨달음을 위해 평생 학문에 정진하는 옛 선비들의 모습은 처연하면서도 칼칼한 감동을 주었다.

 

평생 하는 일이 학문탐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선비들이 책과 함께 정진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을까. 그 정도의 독서와 탐구는 당연한 것 아니겠냐며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런 선비들의 모습을 보며 학문은 양반들과 지식층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파생의 것이 그 외의 신분들이였다.

그 외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겐 배부른 소리고 서러움과 다가갈 수없는 소유일 수도 있다. 지식이 소유일 수 있겠냐만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옛날 처럼 책은 지식층의 소유가 아니고 학문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여전히 앎에서 오는 과시는 현존하기에 소외의 대상에 내가 포함되어 있어 책 내용과는 멀게 씁쓸함이 든 것도 사실이였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잠시 제쳐두고 선인들의 독서와 그 안에 깃든 내면의 모습과 고전과 현대를 이어 보려는 저자의 의도속을 좀 더 여행해보자.

 

총 3장으로 나뉜 책 속의 선인들과 고전 그리고 그에 얽힌 수 많은 이야기와 의미는 내게 참 신선했다.

책의 겉모습만 보고, 책을 대충 훑어보고 바로 고리타분함을 느낀 내게 '책'이라는 그 자체가 나를 이끌어 읽었던 것인데 한국 고전과 옛 것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 역할의 가장 큰 묘미는 저자의 정갈한 해석과 문체였을 것이다.

우리가 위해하기 쉽게, 현 시류에 맞게 펼쳐놓은 고전은 나를 책 속에 빨려들게 만들었다.

고전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옛 선인들 속에서 내가 얻을 수 있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게 많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책을 읽는 즐거움이 밀려왔다.

 

공자는 독서의 유익함 가운데에서 근심과 번뇌를 없애 준다고 하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즐거움에 풍덩 빠졌던 것이다.

깊은 밤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이 책을 읽었고 독서에 심취하였던 선인들을 보며 동질감을 느낀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그들이 책을 통해 얻는 기쁨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즐거움을 느낀 것이다. 그 주역은 책이였고 책을 통한 생각의 흘러옴이였다.

책과 일치된 내면의 아름다움은 책 그 자체였고 때론 그 보다 더한 넘침이였다. 그 넘침을 주워 담는 것만도 행복에 겨웠으니 책을 멀리 할 수가 있을까?

 

책의 2장 3장은 내가 느끼었던 감동에서 조금씩 벗어나 책 속의 소소한 느낌과 선인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였지만 자연스레 동화되어 간다. 오히려 책 속에서 그렇게 많은 걸 발견하며 전달해주며 즐거움을 선사하는 저자가 고마울 정도였다.

고전은 좋아하면서도 외국의 고전에만 빠졌을 뿐 우리의 고전은 고리타분하고 어렵다는 말도 안되는 편견 속에서 멀리 하였던게 사실이였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도 우리고 가장 사랑할 사람도 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전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도와준 선인들의 독서는 한국의 고전을 사랑할 수 있는 만남의 장까지 열어주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고전에 대한 관심과 즐거움이 지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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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콘서트
데이비드 나이븐 지음, 임성묵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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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오직 계획하고 준비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계획도 준비도 노력도 하지 않는데 그럼 건강하지 않는 것일까?

건강에 관해서 나는 늘 자신이 없기에 순간 마음이 약해진다.

몸이 먼저 날씨를 알아차리고 나쁜 시력에 무릎 관절이 자주 시려 건강에 관해서라면 늘 이렇듯 자신이 없다.

특별히 아픈 곳 없고 밥도 잘 먹는데 나는 왜 이럴까 노력을 안해서인가 라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본다면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습관적인 노력을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내가 건강에 대한 노력이라고 인식하지 못할뿐 본능도 곧 노력인 것이다.

이러한 본능이든 아니면 자꾸 인식하려는 관심이든 이 책에서는 스스로의 습관과 태도를 점검해 건강한 삶을 누리라고 말한다.

무려 100가지의 소제목 속에 수 많은 건강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100가지의 이야기를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어 당장 건강해 질수 있다는 요량으로 눈을 번뜩이며 살펴 보지만 읽으면서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경험하기 전에 예방할 것. 그리고 조금만 신경쓰면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

 

각 제목마다 비교적 짧막한 글과 다시 한번 인식시키도록 만들어 주는 요약 정리와 통계는 강한 메세지로 전달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100개나 되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전혀 모르고 인지하지 못한것들도 있지만 충동적인 긴박감을 주진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큰일날 것 같은 긴박감은 건강에 대한 관심을 높여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충동적인 감정은 빨리 잊고 식어버리기 일쑤다.

그런 약점을 파고들 듯 100가지나 되는 엄청난 양임에도 간단하고 강하되 자극성은 주는 것이 아니라 차분한 가운데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스스로 판단하고 점검해 보라는 저자의 의도는 어느 정도 따라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의문이 들 것이다.

무엇이 그리 많길래 100여가지나 될까.

얼핏 생각해 보아도 100여가지는 도저히 나올 수 없을 것 같은데 막상 접해 보니 가능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건강이라는 단어 속에 내포되어 있는 요소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나의 '몸'만이 주체가 아니라 몸에 연결되어 있는 내면 즉 정신과 하루 하루 꾸려 나가는 삶까지도 포함되는 것이다.

너무나 광범위하게 나아가고 이런 것도 포함이 될까 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포옹을 하라든가, 명절 잘 보내기, 애완 동물이 미치는 영향, 잔디깎는 기계의 위험성까지 총집합하는 모습 때문이였다. 건강과 관련되어 있다기 보다는 우리 몸을 보호하고 정신적인 건강을 추구하는 것 같이 보였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건강의 폭은 그만큼 좁았고 전문가들의 말하는 건강의 폭은 넓었다.

그랬기에 100가지의 주의와 경고가 나올 수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우리는 헤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말을 포용하고 있는게 이 책이 아닌가 싶다. 건강했을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기쁨과 삶에 대한 충만감까지 건강에서 비롯되는 것은 수백 수만가지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신체의 건강이 아닌 그 많은 것들을 만족시키고 건사하려면 얼마나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려워 보여도 그렇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외부와 내부에 깔려 있는 틀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고 보호하는 것이 아닌 흥청 망청 낭비해 버린다면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고 많은 것을 잃어 버릴 수 있지만 그것을 자각했다면 지금부터 하면 되기 때문이다.

 

신체, 정신 삶의 영위까지 폭 넓게 생각하고 크게 한번 숨 쉬어 보라. 상쾌함이 흐를 것이고 미래의 밝은 모습이 상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언제든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때론 의도하지 않는 일들로 나의 건강이 위협 당하고 망가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지 않더라도 그 전에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가꾸냐에 따라 닥치지 않을 일도 어느 정도는 헤쳐나갈 정신력과 가능성의 기질을 만들 수 있냐 없냐는 건강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건강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건강을 잃고 뒤늦은 후회를 하는 사람들을 남일 보듯이 하는 것이 아닌 그것은 언제든 나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절대 멀리 있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 늘 잠재되어 있다.

다시 한번 나의 건강을 돌아 보고 사색하며 앞으로 살아갈 삶은 건강하게 꾸려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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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동화 - 삶의 지혜가 담긴 아름답고 신비한 허브 이야기
폴케 테게토프 지음, 장혜경 옮김 / 예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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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까지 그 책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없다는 걸 이번에 또 깨달았다.

호기심, 추측, 혹평까지 읽기 전에 느끼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건 책을 읽고 난 후다. 이 책을 읽기 전 나의 느낌은 겉표지도 어둡고 동화라고 하지만 식물?이라는 의문으로 별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래서 전혀 기대 없이 읽은 책인데 의외로 괜찮은 책이여서 서론이 길었던 것 같다.

 

우연찮게도 이 책을 읽기 전 다른 책을 읽는 중이였고 허브차를 우려내서 마시고 있던 중이였다. 이 책을 읽을 거라는 계획이 없었기에 마셨던 차였고 다른 책을 읽었던 것인데 책 속의 허브들이 내가 마시던 차의 향으로 유혹을 한 탓인지 자연스레 식물동화에 손이 갔다. 결국 마시려던 차는 다 식어버렸지만 식물동화는 내게 정복(?)이 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상상력의 독특함이였다.

영어명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낯선 이름들의 대부분이라 향을 기억하기도 힘들고 효능을 알고 있기란 더더욱 기대하기 힘든게 사실이다. 그런데 저자는 17가지의 허브에 효능과 향의 특징을 살려 동화를 엮어갔다.

그 상상력만으로도 놀라운데 이야기는 재미있기까지 하다.

이야기에 빠져 어떤 식물을 이야기 하는지 기억조차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에는 자칫 억지스러운 면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부분이 이 책이라고 왜 없겠냐만은(더욱이 동화니까) 작가는 살짝 귀엽게 솔직함을 밀고 나간다. 괄호를 이용해 독자의 시작되는 의문을 지긋이 눌러주는 그런 방법으로 말이다.

알면서도 눈감아주게 되는 귀여움이 배어난 식물 동화는 그렇게 순식간에 읽혔다.

 

식물의 효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 많아 비슷한 내용도 있었고 비슷해 보이는 식물들도 있었다. 식물 설명을 따로 해주는 부분에서 따로 체크해 두었지만 두번 세번 읽는다면 조카나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이야기해 줄수도 있을 것 같았다.

또한 허브의 특징은 우리의 생활에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생활의 지혜까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니 다독했을 경우 이점이 많아질 것 같았다.

무슨 책이든 두번 세번 읽었얼때 얻는 것도 많고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겠지만 더 즐거워 질수 있는 다독은 이 책이 아닌가 싶다.

앞에서 말한 비슷함 덕분에 헷갈려 버릴 수도 있겠으나 우선은 책을 통한 즐거움 만끽이 우선이니 그 점은 우려하지 않아도 될듯하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저 식물을 본적이 있을까 저 향을 맡아본적이 있을까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고 음미하게 되니 책을 통한 재미와 저자의 상상력에 제대로 걸려든 셈이다.

꼭 밤하늘의 별자리를 볼때처럼 사색에 잠기기도 했었다.

어린시절 우연히 획득한 별자리 공을 보며 밤마다 마당을 서성이며 별자리를 찾으며 그 별자리에 얽힌 전설을 떠올렸던 기억이 스르르 떠올랐던건 왜였을까.

저자가 만들어 내는 각각 허브에 얽힌 사연은 별자리를 볼때마다 전설이 떠오르는 것처럼 허브에 대한 저자의 상상력은 이제 전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였을 것이다.

소소하지만 허브처럼 그 향만은 오래도록 남아 각각의 식물들에 얽힌 이야기는 스르르 퍼져나갈 것이다.

그럴때에 하찮은 식물이 아닌 생활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인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고 유치하다 생각하더라도 동심으로 돌아가 잠시 즐거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젠 허브차를 마실때 괜히 이 책을 들춰보며 차 한모금 이야기 한모금을 마시겨 향긋하고 배부른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즐겨갖는 티타임이 더욱 더 즐거워 질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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