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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상 -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8 ㅣ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8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2학년때 나의 독서에 싫증이 나 소설들을 제껴두고 소위 문학을 읽어 보겠다고 도서실을 들락거리며 이름은 수없이 들어 봤음에도 읽어 보지 않은 작품들을 하나씩 섭렵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겨울 방학때 죄와 벌 두권이 걸려 들었는데... 방학전 나의 야침찬 계획은 죄와 벌 외에도 여러권의 책을 읽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막상 방학이 끝나고 보니 읽은 책이라곤 죄와 벌 달랑 두권.. 그것도 너무 어렵고 지루하고 난해해서 포기하지 않고 다 읽었다는 인내와 끈기에 대한 보상심리 밖에 없었다...
'줄거리는 단순한데 이게 왜 이렇게 길까'라는 의문을 남긴채 나의 독서 수준이 낮다는걸(소위 명작이라고 하는걸 이런 식으로 읽었으니.. 후에 명작이라는 이름보단 나의 느낌에 더 치중하게 되었지만...) 깨달으며 도스또예프스끼는 어려운 작가다라는 낙인을 찍은 후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렇게 도스또예프스끼와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2004년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열린책들에서 나온 18권의 도스또예프스끼 전집을 보게 되었다.. 우선 죄와 벌 외에도 이렇게 많은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대단한 분량의 전집을 번역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전집중에 '백야' 라는 단편집이 끌려 읽게 되었는데 그 책으로 인해 도스또예프스끼 전집을 하나 하나 읽어가게 되면서 어느새 도스또예프스끼의 열렬한 독자가 되어 버렸다. 너무나도 힘들게 읽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죄와 벌... 그리고 도스또예프스끼... 그때는 내가 이렇게 도스또예프스끼에 빠지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한번 읽은 책은 잘 읽지 않는 나의 독서 습관 때문에(굳이 핑계를 대자면 여러권의 책을 읽고 싶어서.. ㅋ 그래서 책을 읽을때 최대한 집중해서 읽으려 노력한다... 책은 한번뿐인 인생과도 같다기에..)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초기작을 읽으면서 죄와 벌을 읽을까 말까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전집을 읽어 나가면서 번역이 잘 되어 있음을 느끼고 죄와 벌을 읽을 차례를 설레임으로 기다리기도 했다...
읽고 보니 그 설레임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것과는 판이한 분위기.. 그 안에서 난해하고 지루하기 보단 흥미로우며 다른 생각들을 집어 넣을 틈이 없이 즐겁게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만감을 교차 시켰다....
라스꼴리니꼬프의 끔찍한 살인은 책의 초반에 나온다..
동기도 확실치 않은 살인이 너무 빨리나와 남아있는 방대한 분량을 보며 당황하기도 했다.. (상)을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라스꼴리니꼬프는 살인을 저질렀고 살인자 임에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태연한 반응이다라는 것이였다.. 그 부분부터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고 라스꼴리니꼬프의 내면의 행보에 주목하게 되었지만 심한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진 것에 비해 행동은 평상시와 별 다를바가 없어 내가 더 안절부절이였다... 마치 내가 살인을 목격하고 살인자를 한명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을 정도였다.. 쓸모없는 인간을 죽였다는 생명 존중 사상 결여의 라스꼴리니꼬프였지만 그 살인을 저질러 놓고도 정작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그리고 한낱 꿈처럼.. 이론처럼 치부해 버리는 그가 의아스러운 반면 나도 점점 라스꼴리니꼬프처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되어지는 전향이 되어가고 있었다....
훔친 물건도 제대로 모른채 쓰지도 않고 처박아 두는 행동만 보더라도 살인에 대한 동기부여가 확실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라스꼴리니꼬프라는 인물에 점점 빠져든다...
마치 내가 라스꼴리니꼬프가 되어 작가의 의중 사이를 오가며 하는 심리전도 흥미로웠고 라스꼴리니꼬프 주위 많은 인물들과 에피소드 그리고 라스꼴리니꼬프를 통해 인간 그 자체.. 이중성의 끝없는 질주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살인자임에도 라스꼴리니꼬프는 잔인하고 냉혈한이라고 비난할 수 없는게 소설 내내 보여주었던 보통 사람과 조금은 다르다라는 인상을 지워가며 오히려 더 솔직한 인간상과 죄에 대한 고뇌보단 양심이라는 것에 대한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끝내는 인간의 도를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인부터가 잘못된 것이지만 주변 사람들과 소냐를 통해 미쳐버릴지도 모를 비양심에 빠지지 않고 죄값을 치르는 아슬함을 보여주었지만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끝내는 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켰기 때문에.. 어쩜 그런 이중성은 우리에게도 늘 존재하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음의 갈라짐에서 헤메고 있기에 그를 비난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라스꼴리니꼬프는 그런 마음의 갈라짐을 실행했고 나는 간직하고 있었다는 차이일뿐.. 그가 오히려 솔직하다라고 역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늘상 품고 있는 마음이였기에 자신의 죄를 드러내고 싶지 않고 죄값을 치르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라스꼴리니꼬프지만 결국은 헤메임 속에서 어긋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죄값을 치른다는 것.. 어쩜 시간 죽이기 밖에 안되겠지만.. 그냥 시간 죽이기 만을 하지 않으려는 갈림길에 서 있는 라스꼴리니꼬프가 늘 죄를 꺼내지 않으려는 나와 같아.. 혹은 닮아 있어 마음의 병을 같이 안고 나아감이 느껴지니 안쓰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안쓰러움이 자칫하여 자신의 죄를 별거 아니다라는..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라는 강요까지 가버리는 실수를 당연하게 생각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 당연함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라스꼴리니꼬프의 이중성을 나에 잣대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잣대를 늘상 생각하다 보니 나도 라스꼴리니꼬프가 될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 그러나 라스꼴리니꼬프처럼 주변인의 도움을 많이 받을 자신이 없었다...(뽀르피리와 소냐의 도움으로 살인죄임에도 8년형밖에 언도 받지 않았던 시대적,인간적 상황...)
라스꼴리니꼬프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수도 있지만 훨씬 나쁜 삶을 살수 밖에 없다는 걸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늘 양심과 부딪히며 죄를 꺼내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지만 라스꼴리니꼬프는 언제든지 나의 상상속의 죄악이 될수 있다는 사실도 배제하지 않을수 없었다..
처절하게 바닥까지 내면을 파고드는 저자.. 그리고 친숙하게 이끌려 가는 주인공.. 그 틈에 이젠 나도 합류하여 우린 삼각관계가 되어버렸다.. 어디까지 나를 지킬 수 있을지 나도 모르지만 그 한계를 본터라 나를 솔직하게 그러나 괴롭지 않게 지켜야 겠다라는 생각이 든다....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은 그냥 소설일 뿐이라는 견해가 나와 아주 가까이 있다라는 섬뜩함이 들기도 한다.. 생각의 차이겠지만 라스꼴리니꼬프는 결코 나와 거리가 먼 사람이 아니다.. 내가 한순간 무너지면 닿을 수 있는 인물... 그 헤메임의 끝이 오히려 낭만적인 인물일 뿐인 것이다...
고등학교때 읽었던 죄와 벌과 지금의 죄와 벌.. 판이하게 틀리지만 그때 제대로 못 읽었기 때문에 다시 제대로 읽을 기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번에 제대로 읽으면 되겠지만 미성숙으로 인한 결여니 내 자신을 내가 이끌 수 밖에.. 그 당시에는 절대 흥미롭게 읽을 수 없었던 도스또예프스끼...
당연했다.. 색안경을 끼고 이해하려는 생각보다 오히려 내 스스로가 이해시키려는 경향이 강했으므로.. 그의 내면을 알고 그의 스타일을 알아가니 그가 순식간에 좋아하는 작가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죽음의 집의 기록'을 읽은 후라서 라스꼴리니꼬프의 시베리아 감옥생활이 이해가 쉽게 되었다. 그런 이해와 도스또예프스끼의 작가적 성숙을 보기 위해 전집 초반부터 읽어나가는 것이지만 그런 의도를 경험하고 알아가니 그런 재미 또한 보람차다...
이제 읽어야할 도스또예프스끼 전집이 9권 남았다.. 얼른 읽어 버리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지만 반면 빨리 읽어버리면 왠지 도스또예프스끼와의 만남이 단절되는 것 같기도 해서 남아 있는 작품을 읽기가 아까워 진다...
아껴서 소중히 읽어야 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랑과 애정이 도스또예프스끼 뿐만이 아닌 모든 것들에게 퍼져 나가길 소망한다..
사랑의 독서가 되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