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2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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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은 가씨 집안을 통한 무한한 셰계를 그려 볼 수 있었다면 2권은 좀 더 가씨 집안의 내부를 들여다 보는 시간이였던 것 같다.

우선 죽음의 장이라고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죽음이 많았고 그 만큼의 세대교체와 인물의 변화를 예감할 수 있었다. 가옥의 형수인 진가경이 죽고(책에서 진짜 이유는 나와 있지 않고 시아버지 가진과의 불륜으로 죽는다는 설명이 되어 있다.), 가옥의 글방 친구였던 진종과 그의 아버지도 죽고, 보옥의 아버지도 죽고, 희봉의 계락으로 가서도 죽는 그야말로 죽음은 순식간이였고 허무할 정도였다.

우리가 익숙해져 있던 죽음의 묘사도 없이 황천길로 떠나는 그들을 무덤덤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기에 죽음이라는 것이 일상사처럼 느껴졌고 안타까움은 더더욱 느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러한 묘사는 책을 즐겁게 읽을 수는 있으되 관찰자로써 그들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동떨어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건 아마 가씨 집안의 세세함을 엿보았기에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감정이리라 생각한다.

 

죽음으로 인한 허무함이 컸지만 그에 반해 또 다른 변화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재미에 빠져 들었다는 것이다. 희봉이 가경의 죽음으로 잠시 집안 살림을 맡으며 펼쳐보이는 큰 집 살림의 진풍경과 별채에서 벌어지는 가옥의 글재주를 묘사한 부분은 특히 재미나게 읽었다.

가씨 집안의 살림도 엄청나고 집도 크다보니 집안에서만도 일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런 집안이 심심하다며 보옥은 늘 집을 벗어나 놀 궁리만 하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집안의 움직임이 기울어가고 있다는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그 가운데 보옥의 누나 원춘이 귀비로 발탁이 된다. 그래서 귀비가 올 날을 맞아 집안에서는 별채를 짓고 그 집을 돌아 보면서 보옥의 아버지 가정은 편액 짓기를 시켜 보며 보옥의 공부를 시험해 보는 것이다. 가정은 보옥의 교육에 대해 크게 신경 써주지는 않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과연 공부하는 방법도 길을 열어갈 가능성도 재물이 있는 집에서는 다를 수 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큰 대관원을 둘러 보면서 편액짓기를 시키는 가정은 잠깐의 관심일 수도 있으나 그걸 지켜보는 독자는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꼭 그렇게 해야 큰 사람이 되며 지식이 쌓인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가능성을 좀 더 열어주는 계기가 된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분위기를 만끽하면서도 이제 어느정도 가씨 집안에 익숙해졌고 저자의 문체에도 익숙해져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래서인지 자잘한 모습에 관심을 갖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인물과 가씨 집안을 통한 인간사에 좀 더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서 조금은 멋쩍긴 하지만 그래도 그러한 재미 또한 쏠쏠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예를 들어 보자면 어디에나 부패가 없겠냐만은 돈과 권력을 이용해서 일처리 하는게 평준화 되어 있는 것과 차마시기를 좋아하는 모습, 좋은일이든 슬픈 일이든 잔치를 벌이며 나누는 모습등을 통해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보는 재미였다.

우리의 고전이라면 그래도 어디선가 보고 들은 기억이 있어 생경해도 낯설지가 않은데 홍루몽에서 중국의 옛 모습은 낯설지만 호기심이 가는 묘미가 있었다.

 

그러나 인물사전에 요약된 그들의 행보를 어느 정도 알다보니 긴장감이 조금 없어지는 면도 있었고 장편이다 보니 한사람 정도의 듬직한 면을 따르고 의지할 자가 없어서 그게 조금 아쉽다. 주인공은 보옥이지만 보옥을 믿고 따르기엔 아직 어리고 그의 기질은 제멋대로여서 마음이 조금 헛헛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부분에서 관찰자의 입장이라는 면이 부각되는 것 같다.

 

또한 대옥과의 뚜렷한 면이 아직은 없지만 설보채와 가옥, 대옥은 어쩔 수 없는 묘한 사이일 수 밖에 없고 그 가운데 대옥은 가옥의 마음을 믿지 못해 변덕스러운 면을 보이는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도 한다. 그들의 운명을 알고 있지만 이들의 사랑이 어떻게 진전 될지 주목하는 바이다.

이제 2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며, 이끌며 12권까지 써내려간 저자의 역량에 조금씩 기가 질리기도 하다. 꾸며 낼 이야기가 없을 법도 한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씨 집안의 안과 밖의 이야기는 타고난 이야기 꾼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 끝을 향해 나도 서서히 발돋움 하고 있는 것이라 믿고 끝까지 따라 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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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6
제프리 애쉬 지음, 안규남 옮김 / 실천문학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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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두께만큼이나 간디와의 만남이 길어졌던 책이다..
다른 책에 비해 크기가 작아 페이지는 금방 넘어가고 손에 잡기도 좋았지만 831페이지의 책이 그리 빨리 읽혀진 건 아니였다...
약 4개월동안 느긋하게 읽은 셈이였다.. 그 사이에 다른 책도 많이 읽어서 간디 평전의 내용이 처음부터 술술 생각나는 것은 아니지만 평전을 몇권 읽어서 그런지 평전에 대한 부담은 많이 없어진 편이다..
딱딱하고 어렵고 그럴꺼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의외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른 평전과는 다르게 간디 평전은 즐겁게 읽었다고 말하고 싶다...

간디하면 '비폭력'이라는 단어와 인도.. 그것 외에는 연상되는게 없었다.. 그래서 평전을 읽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교과서에 나온 인물이기에 막연하게 위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짙었다..
평전이라는게 객관적으로 씌여져야 한다지만 여기에서의 간디는 그 객관성 때문에 인도의 위대한 인물이라는 거리감이 아닌 편안한 할아버지를 만나는 느낌.. 외소하고 소박한 사람을 만나는 느낌이였다...(그의 삶과 그의 뜻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음에도....)
그런 편안함이 평전을 읽는 내내 지속되었으므로 그의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유지되는 계속성 속에서 그런 현상들에 휩쓸리지 않고 담담하게 대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그래서 긴 시간 책을 읽으면서도 괜히 우울한 부분이라 읽기 싫다는 느낌 한번 없이 언제고 책을 들추면 간디를 만날 수 있어서 또다른 안식처가 되었던 것 같다.. 그 안식처가 편해 더디게 읽어 갔지만 그 시간들은 간디와의 충분한 여행이 되었다...

내가 평전을 읽으려고 하자 평전을 읽기 전에 자서전을 먼저 읽어라는 충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앞에서 말했던 편안함이 너무 짙어 비록 쉰이 넘어서 쓴 자서전이라지만 그걸 먼저 일겅볼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분명 평전에도 간디의 내면을 보여주는 수많은 부분들이 있었지만 간디의 일대기를 엮어 나가는 부분으로 보였을뿐 간디의 내면을 솔직학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지 않았다..
오히려 타인에 의해 그려진 간디의 적나라함이 위대함 보다는 평범하고 외소하다는 느낌이 짙어서 간디를 너무 띄어 띄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평전을 다 읽고 그의 죽음을 알았을때 간디의 일개기가 스쳐지나 가면서 분명 위대한 일을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절제하고 불가촉천민들을 위해 노력하고 종교를 통하여 자신을 개발하고 연구하고 탐구하고... 종교로 인한 인도의 분쟁과 영국으로 부터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실천했던 사람이였다..
그러나 그런 노력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간디의 뜻과는 다르게 정치적 종교적인 의견을 좁히기 못해 진나가 선두가 되어 결국 무슬림 국가로 파키스탄이 인도에서 분리 되었다..
모든 무슬림들이 파키스탄으로 흡수 된 것은 아니였지만 여러개의 종교가 인도내에 실존했고 그 성지 또한 곳곳에 퍼져 있었다...
파키스탄의 땅이 되어버린 힌두 사원이 무슬림에게 반환이 되고..
간디의 단식으로 인도 정부가 파키스탄에 지불해야 할 돈이 확정되자 폭력단의 일원들이 간디에게 원한을 품었고 결국 그 폭력단의 일원인 고드세에게 총을 맞고 피살된다..
넓은 땅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 그리고 많은 종교들 언어들....
그 틈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를 희망하고 노력하였던 간디는 무슬림을 위해 노력하다 생을 마감하였다...
많은 종교를 직접 접해보고 그 안에서 많은 깨우침을 얻으면서도 장점들만 추려서 자신의 주관을 가지면서도 힌두교였던 간디는 그렇게 다른 종교를 위해 희생 되었던 것이다..
너무나 거대하고 복잡미묘한 인도는 간디에게 많은 해결점을 요구했지만 간디는 기꺼이 노력하고 봉사했다.. 자신의 삶과 인도의 목적으로 여겼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사리지 않았던 위대한 바푸였다...
작고 메마른 체구에 그런 열정이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이 놀라운 정도였다.. 그런 불가능을 더 많이 보아서인지 간디의 의지와 열정속에 묻어나는 적나라함이 왜소함과 맞닥트려 평범함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짙었지만..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간디는 역시 위대한 성자였다..

그의 일생과 뜻.. 그리고 인도의 기나긴 역사속에 그런 그를 발견하기에 혼란이 올지 모르지만 결국 그의 일생을 돌아보면 그 위대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감동.. 위대함.... 그리고 모든걸 뛰어넘는 희생..
보통사람이라면.. 보통의 열정이라면.. 결코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이기에.. 사람을 소홀히하고 적대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 인간미를 잊지 않기 위해 평전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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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 - 헤드폰 속의 명시감상 10
이상 지음 / 문학과현실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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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한 후 2년만엔가 서태지의 솔로 앨범이 나왔다.. 그 앨범을 들으며 서태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행복감에 마냥 눈물만 질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이번 앨범은 이상의 '오감도'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서점에 가서 이상의 '오감도'를 샀다.. 시집이 어떤지도 모르고 서태지가 영감을 얻었다는 그 연관성 하나에 기뻐하며 철없이 샀던 것이다...
서태지의 영감에 나도 공감하기 위해서 시집을 떡하니 펼쳐서 읽으려고 하는데 왠걸... 첫시가 '시제 1호'라는 시였는데 1부터 13까지 아해가 무섭다는 말만 반복하다 끝나는 시를 아무리 읽어 보아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두번째 시...
'시제 2호'라는 시를 읽었는데 띄어쓰기 없이 씌여진 시.. 숫자놀이 같은 '시제 4호', 도형놀이 같은 '시제 5호'까지 읽고 아마도 나의 인내를 견디다 못해 덮어버린 것 같다...
그 후에도 여러번 꺼내서 읽을 시도를 했지만 전진하지는 못하고 계속 제자리 걸음만 반복했다.. 문학에 문외한이였고 시 라고는 교과서의 시 들과 사랑시 몇편에 가슴 메이던게 전부이던 내가 이상의 시집 중에서도 난해하다는 '오감도'를 읽으려 했으니.. 게다가 서태지의 영감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이해하려고까지 했으니 그 진통이 훤했다..

이상의 '오감도'라는 시집은 자동기술법이라는... 의식이나 의도가 없이 무의식의 세계를 무의식적 상태로 대할 때 거기서 솟구쳐 오르는 이미지를 그대로 기록하는 방법으로 쓴 시들이라는데.. 내가 그 기법을 알지도 못했고 그 기법으로 씌여졌다는 사실을 안 지금에도 어떤 상태였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될뿐 막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934년 이상이 25살때(현재 나와 같은 나이군.. ㅡ.ㅡ'')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를 실었을때 난해하다는 이유로 물의를 빚어 연재를 마치지도 못하고 중간에 중단이 되기도 했다는 시다...
이해난 공감.. 더 광범위하게 나아가서 동일시되는 해석이 아닌 내 자신의.. 하나의 독자로서의 다양함을 추구하려는 목적도 없이 그냥 읽기로 했다..
온통 난해 난해 난해 투성이였고.. 띄여쓰기가 거의 없는 시를 읽는 것 자체가 힘이 들었지만.. 더디게... 그리고 아주 긴 시간을 할애해서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익숙해 지다보니 술술 넘어갈 때도 있었고.. 막연함이 희미함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언제부터 읽었는지 기억조차 없는 이상의 시집을 다 읽게 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속을 빠져 나오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시집을 읽는 동안의 시간은 소중했다..
일주일에 한두편 정도 읽는 수준이였기에 이해할 수 없어도 읽겠다는 의지와 이상의 세계에 대한 관심.. 그리고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담아보려는 감흥이 긴 시간 동안 나를 이끌어 주었다..
마치 나의 기분은 두꺼운 원고의 번역을 마친 기분이다..
여튼 그런 기분으로 이상 시집을 내려 놓는다..
나의 손에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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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2 (양장)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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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이어 2권도 재미있게 읽었다.. 1권에서 비추어진 없는 사람들에 대한 설움과 고통.. 우울에서 조금은 벗어나 익숙함으로 그런 부분을 커버하면서 읽었다.. 그랬더니 다른면의 색다른 묘미를 발견하면서 재미를 한층 더 부각시키면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전라도 특유의 사투리의 묘미(다른 지역사람들은 읽는데 곤역을 치렀겠지만...)그리고 지역 특색에 대한 설명.. 여러가지의 전통방식 등.. 이런 부분이 특히나 두드러졌던 책이였다..
그런 두드러짐이 있었기에 전진해가는 역사.. 인물들의 길이 덜 힘들어 보였다...
마치 장례를 치를때 노래도 불러주며 노잣돈등을 보태주면서 저세상의 길을 다독여 주고 위로해 주는 것처럼.. 그런 다양함이 그들의 길을 뒷받침 해주는 느낌이였다.. 그래서 서럽지만.. 두렵지만.. 그들은 가야할 길을 의당 가는 것 처럼 처연함이 위로되는 기분이였다..
그렇게 위로와 다독임으로 그들처럼 전진할 수 있었고 3권으로의 발걸음이 더디지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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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1 (양장)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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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태백산맥을 샀다.. 샀다는 개념보다는 '가지게 되었다','품게 되었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 하다...
나는 드디어 '태백산맥'을 품게 되었다..
'한강'과 '조정래 문학전집'을 읽고 나서 단박에 조정래님의 글에 사로잡혀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올초에 읽을 책에 대한 계획을 세울때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읽으려고 했는데 이제서야 태백산맥을 읽게 되었다.. 막상 태백산맥을 읽어보니 올해 두 장편을 읽는다는건 나는 올해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읽었다라는 결과의 산물에만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다큐멘터리를 통해 조정래님이 어떻게 대하소설을 완성시켰는지 그 과정을 본적이 있다.. 정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기울여서 쓴 작품들이였다.. 그 짧은 다큐멘터리만 보더라도 결코 조정래님을 이해한다는 발언조차 할수 없는 피나는 노력이였다.. 그 노력의 흔적을 조금은 알기에 태백산맥 1권을 읽고나니 벌써부터 10권을 다 읽기가 아까워진다...
1권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 정말 단아한 문체와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전개.. 그리고 술술 넘어가는 책장.. 딴 생각이 파고들 수 없게 만드는 집중력... 이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므로 나같은 백치도 단박에 조정래님 글에 매료된 것이다..
조정래 문학전집과 한강을 통해 조정래님의 글 세계를 조금은 파악할 수 있었지만 조정래님을 우뚝 서게 한 작품... '태백산맥'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은 항상 나를 괴롭혔다.. 태백산맥을 읽지 않고는 조정래님을 감히 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이 컸기에 태백산맥을 읽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뿌듯함이 밀려온다... 나는 태백산맥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때는 일본에게 해방이 되고 소련과 미국에 의해 남과 북으로 갈라 지면서 여전히 살기 팍팍해진 소작인들.. 그리고 뜻있는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여순사건을 벌교 중심으로 풀어가고 있는 배경이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공산당.. 빨갱이.. 란 의미가 철저한 이념으로 묶여진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없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허리 펴며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사회주의자가 된 사람이 대부분인 시대였다.. 꼬시면 넘어갈 정도로 사회주의자가 되는 시대였고... 그 반면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사회주의에 치를 떨며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태반인 시대였다...
지금에서야 사회주의가 논리로서는 통해도 엄연히 거대한 공동체는 있을지라도 분명 개인의 존재는 미미하다는 그리고 현 시점에서 보자면 고립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이론적으로 이상적인 국가라는 결론에 도달해 있다...(많은 나라들이 결국은 민주주의가 되어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북한은 오히려 그 마지막 국가라는 전제하에 고립이면서도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러므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조금이라도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일으킨 반란인데 그 반란아래 고통받는 사람들은 역시 가난한 소작인들 뿐이라서 가슴이 아팠다..
누가 무엇을 시작할 때에 실패를 예감하고 시작하겠는가..
그 확신아래 고통받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그러나 그런 반란이 있어도 없어도 여전히 살기가 팍팍한 세상이였다..
그래서 왜 그들이 그랬을까.. 사회주의는 결국 자기무덤을 파는 셈인데 라는 생각보다 배고픈 서민들이 안쓰럽고 일본으로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독립운동가가 빨갱이가 되어가는 그 시대적 배경이 씁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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