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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 - 헤드폰 속의 명시감상 10
이상 지음 / 문학과현실사 / 1995년 5월
평점 :
품절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한 후 2년만엔가 서태지의 솔로 앨범이 나왔다.. 그 앨범을 들으며 서태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행복감에 마냥 눈물만 질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이번 앨범은 이상의 '오감도'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서점에 가서 이상의 '오감도'를 샀다.. 시집이 어떤지도 모르고 서태지가 영감을 얻었다는 그 연관성 하나에 기뻐하며 철없이 샀던 것이다...
서태지의 영감에 나도 공감하기 위해서 시집을 떡하니 펼쳐서 읽으려고 하는데 왠걸... 첫시가 '시제 1호'라는 시였는데 1부터 13까지 아해가 무섭다는 말만 반복하다 끝나는 시를 아무리 읽어 보아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두번째 시...
'시제 2호'라는 시를 읽었는데 띄어쓰기 없이 씌여진 시.. 숫자놀이 같은 '시제 4호', 도형놀이 같은 '시제 5호'까지 읽고 아마도 나의 인내를 견디다 못해 덮어버린 것 같다...
그 후에도 여러번 꺼내서 읽을 시도를 했지만 전진하지는 못하고 계속 제자리 걸음만 반복했다.. 문학에 문외한이였고 시 라고는 교과서의 시 들과 사랑시 몇편에 가슴 메이던게 전부이던 내가 이상의 시집 중에서도 난해하다는 '오감도'를 읽으려 했으니.. 게다가 서태지의 영감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이해하려고까지 했으니 그 진통이 훤했다..
이상의 '오감도'라는 시집은 자동기술법이라는... 의식이나 의도가 없이 무의식의 세계를 무의식적 상태로 대할 때 거기서 솟구쳐 오르는 이미지를 그대로 기록하는 방법으로 쓴 시들이라는데.. 내가 그 기법을 알지도 못했고 그 기법으로 씌여졌다는 사실을 안 지금에도 어떤 상태였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될뿐 막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934년 이상이 25살때(현재 나와 같은 나이군.. ㅡ.ㅡ'')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를 실었을때 난해하다는 이유로 물의를 빚어 연재를 마치지도 못하고 중간에 중단이 되기도 했다는 시다...
이해난 공감.. 더 광범위하게 나아가서 동일시되는 해석이 아닌 내 자신의.. 하나의 독자로서의 다양함을 추구하려는 목적도 없이 그냥 읽기로 했다..
온통 난해 난해 난해 투성이였고.. 띄여쓰기가 거의 없는 시를 읽는 것 자체가 힘이 들었지만.. 더디게... 그리고 아주 긴 시간을 할애해서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익숙해 지다보니 술술 넘어갈 때도 있었고.. 막연함이 희미함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언제부터 읽었는지 기억조차 없는 이상의 시집을 다 읽게 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속을 빠져 나오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시집을 읽는 동안의 시간은 소중했다..
일주일에 한두편 정도 읽는 수준이였기에 이해할 수 없어도 읽겠다는 의지와 이상의 세계에 대한 관심.. 그리고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담아보려는 감흥이 긴 시간 동안 나를 이끌어 주었다..
마치 나의 기분은 두꺼운 원고의 번역을 마친 기분이다..
여튼 그런 기분으로 이상 시집을 내려 놓는다..
나의 손에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