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부제를 보면 ‘1980년대를 추억하며’ 이다. 1980년대에 쓴 하루키 에세이도 재미나게 읽은 터라 이 책도 그럭저럭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억지로 공통점을 끌어내자면 1980년대 초반 생이라는 사실을 들먹이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1982년 봄부터(나는 1981년 가을 태생이다. 흠흠.) 1986년 2월까지 연재한 글이며, 왕창 보내주는 미국 잡지와 신문 가운데 재미있을 법한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해서 일본어로 정리해서 원고로 쓴 글이다.

  그렇다 보니 짤막한 글이 읽기도 쉽고 부담 없으나 그 기사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 태생일지라도 당시의 사회 흐름을 이해하기엔 무리였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기사들을 보면서도 전혀 기억나는 게 없었고(너무 당연하다.) 지금이나마 조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많지 않았다. 특히나 일본이나 아시아 이야기도 아니고(그렇다고 해도 내가 많이 알았을 것 같진 않지만) 미국 잡지와 신문에서 스크랩한 이야기니 더더욱 알 리가 없다. 영어로 등장하는 지명들과 인물들에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로 낯선 이야기들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가십거리기도 하고 하루키 에세이로 분류해 본다면 소품 같은 작품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이 묶이게 된 의도가 작가의 말에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정말 신문 스크랩을 보듯 편하게 보면 된다. 당시의 기사가 실린 시대에 너무 어린 나이로 살아간 이가 아니라면 추억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이고 나처럼 너무 어렸거나 1980년대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좀 어리둥절할 수 있다. 무난하게 읽을 수 있지만 글 속에 드러나는 이야기들에 많은 공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제도 다양하거니와 그만큼 지금처럼 정보를 쉽게 전달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더 그럴지도 모른다. 거기다 미국식 유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상당부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하루키 에세이에 꽂혀 연속으로 읽고 있긴 하지만 잠시 쉬어가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두툼한『먼 북소리』를 읽고 이 책을 읽으니 잠시 길게 내던 호흡을 짧고 가볍게 낼 수 있었고 다시『하루키의 여행법』을 읽고 있다. 이렇게 읽고 있음에도 읽지 않은 하루키 에세이가 많다는 사실이 기대가 되면서도 한숨이 나온다. 얼른 읽어버리고 싶은 욕망과 천천히 음미해야 한다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키 에세이는 글의 퀄리티와 양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는 작품들이 있기에 기대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을 때 감격과 실망에 급격히 감정이 쏠리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처럼 편하게 읽을 생각이다. 아직도 읽어야 할 그의 글이 많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바닷마을 다이어리 1~5 세트 - 전5권
요시다 아키미 지음, 조은하.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의 그 순간이. 몸이 몹시 아파 월차를 내고 쉬고 있을 때였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으로 보내버린 뒤 이대로 하루를 보내긴 너무 아쉬워 책이 읽고 싶었다. 평소라면 글씨가 가득한 소설책을 보았겠지만 그날은 왠지 부담 없고 기분을 좀 낫게 해줄 그런 책이 읽고 싶었다. 그래서 펼치게 된 책이 이 책이었다. 제목에서부터 뭔가 서정적인 느낌이 묻어났고 방바닥에 누워있는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줄 것 같았다.

 

 

  그 느낌은 적중해서 아프다는 사실도 잊고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만화책을 거의 보지 않는 나로서는(만화책은 정말 문외한이다.) 신선한 도전인 셈이었는데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질 정도로 그 분위기를 끊고 싶지 않았다. 내용의 시작은 그리 경쾌(?)하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네 자매가 뿜어내는 분위기가 계속 궁금했다. 바닷가 마을 카마쿠라에 살고 있는 코다 가(家)의 세 자매에게 어느 날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전해진다. 아버지는 어릴 때 가족을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가버린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난 사람은 다름 아닌 이복동생 스즈. 그런 스즈에게 첫째 사치가 함께 살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꺼낸다. 어느 누구도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스즈는 이복언니들과 함께 살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바닷가 마을의 커다랗고 낡은 집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1권부터 3권까지 순식간에 읽었지만 4~5권은 1년 간격으로 출간되어 애간장을 태웠다.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기다리고 있으면 앞에 읽었던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다음 이야기를 읽다보면 희한하게 기억이 나서 다시 그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서정적이면서도 인생의 굴곡이 빠지지 않는 복잡다단한 삶의 이야기가 모두 들어 있었다. 네 자매가 등장하다 보니 성격도 외모도 제각각이라 이런저런 연애사도 많고 사건도 많고 자신들이 속한 곳에서의 이야기들도 넘쳐났다. 때론 불륜, 죽음, 진로문제 등 결코 좋은 내용들로만 채워졌다 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드러나 조금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그런 굴곡 없이 아름답고 서정적인 느낌만 가득했다면 오히려 밋밋했을지도 모르겠다.

 

 

  특별하게 맺어진 네 자매 사치, 요시노, 치카, 스즈는 한 집에 살면서 조금씩 가족의 정과 힘을 느껴간다. 특히나 배다른 자매 스즈와 함께 살기로 결심하면서부터 어떠한 차별이 없어 어른스러운 스즈가 언니들에게 마음을 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스즈가 언니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고민도 털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이라는 게 언제든 변화를 맞이할 수도 있고 이렇게 끈끈해질 수도 있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되었다. 복잡하다면 복잡하게 얽혀있을 수 있는 가족관계 때문에 자잘하고 번거로운 일도 많았지만 서로 돕고 이해하려는 모습에서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자신이 속한 직장이나 학교에서 열심히 하려는 모습, 그리고 집에서는 소탈한 모습을 보이며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종종 일본의 정서적,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이 낯설게 느껴져 완전히 이해하고 몰입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렇지만 마음 깊이 들여다보는 시선과 인물들을 그 안에서 개성 있고 믿음직스럽게 엮어나가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까가 궁금한 것보다 그냥 그들이 계속 등장해서 이야기를 펼쳐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올해 6권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혹여 다음 이야기를 만날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문득 생각나면 다시 한번 꺼내서 읽어보고 싶은 편안함이 있다. 모든 게 곱씹어서 볼 내용은 아닐지라도 늘 소설책만 보다 새로운 책이 주는 신선함과 나와 다른 세계에서 뭔가 자유로우면서도 진지하게 살고 있는 네 자매의 이야기를 계속 만나고 싶은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좋아하는 지인을 갖는다는 게 어렵기도 하지만 나와 취향이 맞는다는 건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독서취향이 맞는 지인이 있다. 아무 때나 툭 책 얘기나 일상 얘기를 꺼내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이런 저런 수다를 떠는 시간이 참 좋은 지인이다. 서로 읽는 책이 많아 책 추천은 의외로 가끔 하게 되는데 그런 지인에게 요즘 일본 문학 중에서도 고전에 빠져 있다고, 사고 싶은 책이 있는데 고민이라고 하자 그냥 지르라고 하면서 이 책도 함께 추천해 주었다. 일본 고전은 아니지만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무척 좋았다고 했다. 냉큼 이 책을 주문하고 책이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꺼내서 읽었다. 첫 번째 단편「환상의 빛」을 읽는데 어쩜 묘사가 이렇게 섬세하고 마음을 아리게 할까 싶어 감탄하고 말았다. 첫 번째 단편을 다 읽기도 전에 저자의 팬이 될 것 같은 예감은 정확히 들어맞았고 저자의 다른 책까지 주문하고 말았다.

 

  태어난 지 세 달 된 아이와 자신을 두고 철길 위에서 자살한 남편에게 쉼 없이 읊조리게 되는 유미코. 집 주인의 소개로 자신이 살던 곳과 멀리 떨어진 어촌으로 다시 시집을 갔지만 상대방이 마음에 들었다는 현실적인 이유보다 남편의 흔적을 견딜 수 없어서 머나먼 곳으로 떠나게 되었다. 다행히 남편과 딸린 아이도 모두 사이가 좋아 그럭저럭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죽은 남편에 대한 회한과 원망 섞인 넋두리는 멈출 수가 없다. 자살할 이유를 전혀 가늠할 수 없어 유미코의 괴로움과 넋두리는 더 짙어 갔는지도 모른다. 끝내 남편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아내지 못하지만 새 남편은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 싶어지는 법이라고 말한다. 유미코는 사람의 혼을 빼가는 병에 걸려 전 남편이 그런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유미코가 전 남편과의 첫 만남, 추억이 깃든 곳, 함께 살았던 추억들을 떠올리고 새로운 곳에 정착하며 살면서 그곳의 지명과 배경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음에도 낯선 느낌 없이 그 모든 풍경이 그대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때때로 낯선 지명들이 흐름을 방해하기 마련인데 유미코의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가 그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그 모든 풍경을 눈으로 보고 마음속에 간직한 비밀들도 조심히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눈발마저 날려 버리는 강한 바람 속에서 전남편에게 읊조리는 그녀의 마음, 새 남편을 비롯해 어느 누구에도 털어놓지 못한 그녀의 깊은 속내가 마치 내가 겪은 일 같아서 시리도록 아픈 슬픔과 고독 가운데서도 폭삭 무너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환상의 빛」이외에「밤 벚꽃」「박쥐」「침대차」에는 모두 죽음이 등장한다.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이혼하고 홀로 아들을 키웠지만 사고로 잃고(밤 벚꽃), 중학교 때 독특한 추억을 가지고 있던, 친하다고 할 수 없었던 친구의 죽음 소식을 듣고(박쥐), 출장 가는 기차 안에서 옆 칸에 앉은 할아버지의 울음소리를 듣고 어릴 때 함께 놀던 친구의 죽음을 떠올린다. 네 편의 단편 속에 죽음이 모두 등장하자 처음엔 이 죽음의 의미가 어떤 특별한 뜻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저자는 죽음을 등장시키면서 색다른 의미를 드러내기 보다는 어쩌면 우리가 늘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쉽게 지나치는 일상의 상실에 대한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가족이든 친하지 않던 사람이든 우리는 늘 죽음의 소식을 듣고 겪는다. 그러면서도 살아남아 있는 우리는 죽은 이들에게 어떠한 이유를 붙여 삶을 지속시키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책감과 무기력감으로 떠나간 사람을 마음속에 내내 품고 있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단편 속에 스며들어 있는 그런 죽음은 특별히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인물들에게 마음속을 들여다봄으로써 죽음으로 인한 내면의 변화를 상세히 들여다보게 한다.「환상의 빛」이 묘사도 뛰어나고 섬세하게 마음을 드러내고 있어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밤 벚꽃」도 20년 만에 조우한 남편과의 추억과 함께 왜 그를 한 번이라도 용서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후회와 함께 덧입혀 지는 마당의 벚꽃, 그 벚꽃 때문에 우연찮게 신혼부부를 하룻밤 재우게 되는 이야기가 잔잔했다.「박쥐」와「침대차」는「환상의 빛」처럼 묘사가 충분히 드러내지 않지만 저자의 또 다른 문체를 보는 것 같아 색다른 맛이 있었다. 이제라도 저자를 알고 그의 작품을 읽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린 겨울이라서 이 작품들이 나에 마음에 더 쏙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저자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기분까지 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리미 2014-12-21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좋아하는 지인이 곁에 있다니 부럽네요^^ 저도 책 얘기 맘껏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옆에 있었음 참 좋겠다 싶을 때가 많거든요.

안녕반짝 2014-12-23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리는 멀어서 주로 메신저로 이야기 하지만 그래도 그런 친구가 있으니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가까이 있음 더 금상첨화겠지만요^^
 
피터래빗 시리즈 10 : 티미 팁토스 이야기 베아트릭스 포터 베스트 콜렉션 10
베아트릭스 포터 글.그림, 김동근 옮김 / 소와다리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며칠 전 아이에다 조카 둘을 데리고 일이 있어 당일치기로 먼 거리를 다녀왔다. 혼자 다녀오는 것도 힘든데 아이 셋과 함께 움직이려니 더 힘이 들고 체력이 달렸다. 볼일을 보면서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고 14시간 만에 도착한 집에 오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 가장 편한 곳은 우리집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집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낀 그런 외출이었다.

 

  여기 아주 사이좋은 다람쥐 부부가 있다. 다람쥐 부부는 겨울이 지나고 먹을 열매를 저장하기 위해 열심히 모으고 있다. 나무 밑동에 열심히 열매를 저장하다 그곳이 꽉 차자 딱따구리 할아버지가 살던 빈 나무 구멍에 열매를 저장하기 시작한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열매를 보면서 다람쥐 아줌마는 구멍이 작아 열매를 꺼내지 못할까 걱정을 한다. 티미 팁토스 아저씨는 겨울이 지나면 배가 홀쭉해져 있어 충분히 열매를 꺼낼 수 있을 거라 안심을 시키지만 정작 그곳에 자신이 갇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새들의 노래 때문에 오해를 받고 다른 다람쥐들에 의해 나무 구멍에 갇힌 티미 팁토스 아저씨. 자신이 열매를 쌓은 구멍에 떨어진 아저씨는 정신을 잃고 그 사실을 전혀 알 리 없는 아줌마는 돌아오지 않는 아저씨를 기다린다. 숲으로 아저씨를 찾으러 갔지만 다른 다람쥐들은 아저씨를 여전히 오해하고 아줌마를 쫓아 버린다. 온 숲을 뒤지며 아저씨를 찾아다니지만 정신을 잃고 쓰러진 아저씨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편 티미 팁토스 아저씨는 정신을 차려보니 줄무니 다람쥐 치피하키 아저씨에 의해 침대로 옮겨져 있었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자 살이 찌면 구멍을 통과 못할 거라 염려했지만 자꾸 권하는 음식을 거절할 수 없어 계속 먹게 된다.

 

  한편 돌아오지 않는 아저씨를 마냥 기다릴 수 없어 혼자서 열매를 모으기 시작한 다람쥐 아줌마는 아저씨가 있는 나무 구멍에는 열매를 넣지 않았다. 다음에 꺼낼 수 없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여전히 나무 밑동에 열매를 가득 넣었는데 그곳에서 치피하키 아저씨의 부인을 만났다. 그리고 서로의 남편이 소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새의 도움으로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어 함께 찾으러 간다. 한바탕 그곳에서 남편의 확인작업(?)을 하게 되지만 티미 팁토스 아저씨는 그 사이 살이 쪄 구멍을 빠져 나오지 못한다. 치피하키 아저씨는 충분히 빠져 나올 수 있었지만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는지 여전히 그곳에 머무르고 비가 들이닥친 어느 날 다람쥐 아줌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람쥐 부부는 열매저장고에 열쇠를 채운다. 새들의 노래 때문에 오해를 받았기 때문에 새들이 노래를 불러도 훠이 훠이 쫓아 버릴 뿐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수리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노래 가사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베아트릭스 포터 베스트 콜렉션 마지막 권이라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10권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이 이야기는 개연성이 조금 부족해 그렇게 재밌게 읽지는 못한 것 같다. 문득문득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 노래로 오해를 해 티미 팁토스 아저씨를 가두고 그곳에서 만난 치피하키 아저씨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이유들이 조금 의아했다. 내 시선에서가 아닌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지 못해생긴 느낌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조금 아쉬움이 들지만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상상력은 참 신선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아닌 다른 존재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요일의 카페
프란세스크 미랄례스.카레 산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혼자라고 느낄 때가 있다. 긍정적인 느낌도 있지만 혼자라는 건 왠지 쓸쓸하고 고독한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런 느낌에 절망이 곁들어지면 이 세상의 어느 것도 다 쓸모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내가 잃을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드는데, 내 곁에 사랑하는 가족마저 없다면 정말 세상을 살아갈 힘이 날 것 같지 않다. 반대로 가족이 있기에 쓰잘데기 없고 섣부른 생각, 즉 나는 이 세상에 혼자이기 때문에 외롭고 쓸쓸하고 쓸모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적어도 내가 속한 가족 구성원을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순간 이 세상을 등지려했던 이 책의 주인공 이리스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녀가 저지르려했던 행동에는 결코 동조할 수 없지만 그녀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감은 충분히 느껴졌다. 갑자기 사고로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부모님, 사랑하는 사람은커녕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보고 하고 있는 일은 전혀 보람이 없는 그런 상황에서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그녀에게 우연히 '이 세상 최고의 장소는 바로 이곳입니다'란 이름을 가진 카페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그곳에서 루카라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리스의 삶은 이전보다 더 팍팍한 삶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루카라고만 소개하고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남자. 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읽고 편안하게 해주는 그 남자에게 이리스는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신비스러운 카페, 마법사 같은 주인장이 있어 뭔가 석연치 않으면서도 이리스는 그 만남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퇴근길에도 매일 들를 만큼 루카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그가 안내하는 카페 안의 테이블의 사연과 이리스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생각들에게서도 매력을 느낀다.

 

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육만 가지 생각을 한다고 해. 긍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 하찮은 생각, 심오한 생각, 그걸 이렇다저렇다 판단해선 안 되지. 생각은 흘러가는 구름 같은 거야. 우린 행동에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생각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어떤 생각 때문에 괴로울 땐 그냥 ‘생각’일 뿐이라고 마음먹고 흘려버리는 거야. (24쪽)

 

  루카의 말은 이리스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나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그렇게 많은 생각들 가운데 부정적인 게 하나라도 걸려 나를 휘어잡을 땐 그 여파가 여러 모습으로 다가오기에, 생각을 생각이라고 치부하지 않으면 늘 삶이 팍팍하다고 느낀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는 루카라는 남자에게 끌리는 이리스는 그가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줄 거라 생각하지만 루카는 가타부타 확실한 말이 없었다. 이리스가 꿈꿔온 이상형에 가까운 남자지만 꼭 어딘가 떠나야 하는 사람처럼 구는 루카. 루카의 정체를 알고 나자 왜 자신에게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또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아 왔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를 이리스는 그제야 깨닫게 된다.

 

  삶은 행복보다 시련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느끼게 된다. 특히나 시련은 꼭 다른 시련과 겹쳐서 행복은 나와 거리가 멀다고 느낄 때가 많다. 이리스에게도 그랬다. 혼자 남겨지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나날들. 하지만 루카를 만나고 새로운 생각과 마음가짐을 통해 조금씩 자신에게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추억이 깃든 집을 팔기로 용기를 얻고, 직장을 관두고, 연애도 하고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루카를 그리워하면서 떠나보내는 등 이리스에게 절망만이 다가온 건 아니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잘 견딜 수 있었던 계기에 루카의 영향이 컸지만 루카가 왜 자신에게 오게 되었는지를 깨닫는 순간부터 이리스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은 매우 중요해서 바닥난 것 같은 삶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힘을 가질 정도였다.

 

  내가 이리스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이리스의 상황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땠을까? 무조건 힘을 내라는 말도, 혹은 영화처럼 펼쳐지는 희망찬 미래가 있다고 보장할 순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평소에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사랑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곁을 떠났지만 자신을 사랑했던 가족, 그리고 앞으로 사랑하게 될 누군가를 만날 가능성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이 절망으로 그득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일단은 머릿속에 드는 온갖 생각들. 특히 쓰잘데기 없고 도움이 안 되는 생각들은 생각으로 치부해버리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