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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ㅣ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이 책의 부제를 보면 ‘1980년대를 추억하며’ 이다. 1980년대에 쓴 하루키 에세이도 재미나게 읽은 터라 이 책도 그럭저럭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억지로 공통점을 끌어내자면 1980년대 초반 생이라는 사실을 들먹이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1982년 봄부터(나는 1981년 가을 태생이다. 흠흠.) 1986년 2월까지 연재한 글이며, 왕창 보내주는 미국 잡지와 신문 가운데 재미있을 법한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해서 일본어로 정리해서 원고로 쓴 글이다.
그렇다 보니 짤막한 글이 읽기도 쉽고 부담 없으나 그 기사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 태생일지라도 당시의 사회 흐름을 이해하기엔 무리였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기사들을 보면서도 전혀 기억나는 게 없었고(너무 당연하다.) 지금이나마 조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많지 않았다. 특히나 일본이나 아시아 이야기도 아니고(그렇다고 해도 내가 많이 알았을 것 같진 않지만) 미국 잡지와 신문에서 스크랩한 이야기니 더더욱 알 리가 없다. 영어로 등장하는 지명들과 인물들에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로 낯선 이야기들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가십거리기도 하고 하루키 에세이로 분류해 본다면 소품 같은 작품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이 묶이게 된 의도가 작가의 말에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정말 신문 스크랩을 보듯 편하게 보면 된다. 당시의 기사가 실린 시대에 너무 어린 나이로 살아간 이가 아니라면 추억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이고 나처럼 너무 어렸거나 1980년대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좀 어리둥절할 수 있다. 무난하게 읽을 수 있지만 글 속에 드러나는 이야기들에 많은 공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제도 다양하거니와 그만큼 지금처럼 정보를 쉽게 전달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더 그럴지도 모른다. 거기다 미국식 유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상당부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하루키 에세이에 꽂혀 연속으로 읽고 있긴 하지만 잠시 쉬어가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두툼한『먼 북소리』를 읽고 이 책을 읽으니 잠시 길게 내던 호흡을 짧고 가볍게 낼 수 있었고 다시『하루키의 여행법』을 읽고 있다. 이렇게 읽고 있음에도 읽지 않은 하루키 에세이가 많다는 사실이 기대가 되면서도 한숨이 나온다. 얼른 읽어버리고 싶은 욕망과 천천히 음미해야 한다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키 에세이는 글의 퀄리티와 양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는 작품들이 있기에 기대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을 때 감격과 실망에 급격히 감정이 쏠리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처럼 편하게 읽을 생각이다. 아직도 읽어야 할 그의 글이 많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