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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바닷마을 다이어리 1~5 세트 - 전5권
요시다 아키미 지음, 조은하.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의 그 순간이. 몸이 몹시 아파 월차를 내고 쉬고 있을 때였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으로 보내버린 뒤 이대로 하루를 보내긴 너무 아쉬워 책이 읽고 싶었다. 평소라면 글씨가 가득한 소설책을 보았겠지만 그날은 왠지 부담 없고 기분을 좀 낫게 해줄 그런 책이 읽고 싶었다. 그래서 펼치게 된 책이 이 책이었다. 제목에서부터 뭔가 서정적인 느낌이 묻어났고 방바닥에 누워있는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줄 것 같았다.
그 느낌은 적중해서 아프다는 사실도 잊고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만화책을 거의 보지 않는 나로서는(만화책은 정말 문외한이다.) 신선한 도전인 셈이었는데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질 정도로 그 분위기를 끊고 싶지 않았다. 내용의 시작은 그리 경쾌(?)하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네 자매가 뿜어내는 분위기가 계속 궁금했다. 바닷가 마을 카마쿠라에 살고 있는 코다 가(家)의 세 자매에게 어느 날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전해진다. 아버지는 어릴 때 가족을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가버린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난 사람은 다름 아닌 이복동생 스즈. 그런 스즈에게 첫째 사치가 함께 살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꺼낸다. 어느 누구도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스즈는 이복언니들과 함께 살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바닷가 마을의 커다랗고 낡은 집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1권부터 3권까지 순식간에 읽었지만 4~5권은 1년 간격으로 출간되어 애간장을 태웠다.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기다리고 있으면 앞에 읽었던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다음 이야기를 읽다보면 희한하게 기억이 나서 다시 그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서정적이면서도 인생의 굴곡이 빠지지 않는 복잡다단한 삶의 이야기가 모두 들어 있었다. 네 자매가 등장하다 보니 성격도 외모도 제각각이라 이런저런 연애사도 많고 사건도 많고 자신들이 속한 곳에서의 이야기들도 넘쳐났다. 때론 불륜, 죽음, 진로문제 등 결코 좋은 내용들로만 채워졌다 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드러나 조금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그런 굴곡 없이 아름답고 서정적인 느낌만 가득했다면 오히려 밋밋했을지도 모르겠다.
특별하게 맺어진 네 자매 사치, 요시노, 치카, 스즈는 한 집에 살면서 조금씩 가족의 정과 힘을 느껴간다. 특히나 배다른 자매 스즈와 함께 살기로 결심하면서부터 어떠한 차별이 없어 어른스러운 스즈가 언니들에게 마음을 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스즈가 언니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고민도 털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이라는 게 언제든 변화를 맞이할 수도 있고 이렇게 끈끈해질 수도 있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되었다. 복잡하다면 복잡하게 얽혀있을 수 있는 가족관계 때문에 자잘하고 번거로운 일도 많았지만 서로 돕고 이해하려는 모습에서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자신이 속한 직장이나 학교에서 열심히 하려는 모습, 그리고 집에서는 소탈한 모습을 보이며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종종 일본의 정서적,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이 낯설게 느껴져 완전히 이해하고 몰입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렇지만 마음 깊이 들여다보는 시선과 인물들을 그 안에서 개성 있고 믿음직스럽게 엮어나가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까가 궁금한 것보다 그냥 그들이 계속 등장해서 이야기를 펼쳐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올해 6권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혹여 다음 이야기를 만날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문득 생각나면 다시 한번 꺼내서 읽어보고 싶은 편안함이 있다. 모든 게 곱씹어서 볼 내용은 아닐지라도 늘 소설책만 보다 새로운 책이 주는 신선함과 나와 다른 세계에서 뭔가 자유로우면서도 진지하게 살고 있는 네 자매의 이야기를 계속 만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