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람이야
리쯔룽 글, 쉬원치 그림, 김은신 옮김 / 키득키득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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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쌀쌀해진 날씨 덕분에 밖에 나가기만 하면 칼바람을 맞는 요즘이지만 나는 바람을 좋아한다. 겨울바람은 너무 차가워서 좋아하지 않지만 아주 가끔 상쾌한 기분을 느낄 정도로 각각의 바람 냄새를 알고 있다. 특히 비가 오기 전에 부는 바람에서 나는 냄새를 좋아한다. 온갖 냄새를 내포하고 있지만 이상하게 비가 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바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봄이나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좋아 일부러 산책 삼아 걸었던 적도 많았다. 그런 길을 걸었던 곳은 대부분 시골이었고 지금은 조금만 걸어도 자동차 매연과 소음으로 그런 여유를 만끽할 수 없어 외출을 해도 볼 일만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게 바람을 한참 동안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아이 책이 있는 책장을 훑어보다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 꺼내보았다. 그리고 글과 그림이 마음에 들어 이 책 좋네 라며 혼잣말까지 하게 됐다.

  아이들 책, 특히 그림책을 보고 있으면 주제와 이야기가 너무나 다양해 내 마음에 드는 책보다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는 책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커 가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려는 심산이 아닐까 싶은데 어른인 나의 시선에선 이러한데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늘 궁금하다. 아직 말을 못하는 아이에게 물어볼 수도 없으니 어서 말을 해서 엄마랑 같이 동화책을 읽고 이야기도 나누자고 부추기지만 알아먹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다 우연히 꺼내서 읽은 이 책에서는 어른인 내 마음까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 바람을 좋아했던 옛 추억까지 꺼내들게 되었다.

  바람이라고 스스로를 밝히고 나무와 풀잎, 꽃, 구름, 호수 등이랑 장난을 치며 논다며 어떻게 노는 지 상세하게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즐거운 모습들을 보여주다가 종종 우울할 때가 있다고 말하는 바람. 소리, 색깔, 향기, 모양이 없는 모습에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고민까지 털어놓는다. 나는 어디 있는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하는 모습에서 실재하지만 종종 존재감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런 바람은 우울할 때 어느 창가를 찾아간다고 했다. 그 창가에는 우울한 표정의 아이가 있고 바람은 그 아이와 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 유리창을 두드리고 꽃향기를 보내도 반응이 없다. 그러다 어느날은 아이가 열어 둔 문으로 잽싸게 들어가 그 아이에게 자신의 존재를 낱낱이 드러냈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날리고 들고 있던 악보가 날렸지만 아이는 우울해하지 않고 웃음을 터트리며 바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바람아! 바람아 안녕! 가지 말고 기다려 줘! 나는 너랑 놀고 싶어!

  냄새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자신이지만 그 아이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바람은 기뻐한다. 그리고 아이가 자신을 부르면 단숨에 달려가 아이의 미소를 따라 춤을 추고, 머리카락 사이에서 훌훌 장난을 치며 논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바람의 이야기와 함께 섬세한 수채화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단순히 아이를 위해 억지로 읽고 마는 동화가 아니라 아이보다 오히려 내 맘 속에 더 오래 남을 것 같은 이야기로 느낀 것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들, 그 위에서 행복한 듯 노는 곤충들과 하늘이며 호수며 모두 바람이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마치 저자와 그린이가 한 사람인 듯 글과 그림이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책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글과 그림이 일치하는 책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을 더 오랫동안 바라봤고 글과 그림 모두 내 마음 속에 담으면서 바람을 좋아했던 내 모습을 기억해 냈는지도 모른다. 따스한 햇살 속에서 내 뺨을 간질이던 바람. 그런 바람과 함께 스르르 잠이 들고, 그런 바람을 친구 삼아 책을 읽던 순간들. 왜 그런 순간들을 잊고 살았으며 나이가 들어서는 바람이라고 하면 먼지를 일으키고 차가운 것이라고만 인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내 마음 속의 차가운 바람의 이미지를 부드럽고 따스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아 이 책이 참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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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루.석별.옛날이야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서재곤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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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은『인간 실격』을 읽은 게 전부다. 개인적으로 내용이 우울해서 다른 작품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 우울한 작가라는 낙인 아닌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모리 오가이의『아베 일족』을 읽게 되었고 일본 고전이 더 읽고 싶었다. 책장을 뒤져보니 다자이 오사무의 이 책이 있어 약간 긴장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밌고 저자의 다른 면모를 본 것 같아 신선했다. 모든 일에 그렇겠지만 책은 동기가 부여될 때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책장에 꽤 오래 묵혀뒀음에도 이런 계기가 아니었다면 저자의 작품을 언제 꺼내들지 전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레 동기부여가 되자 두툼한 책도 거리낌 없이 읽히는 걸 보며 다시 한 번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했을 정도다.

  「쓰가루」는 저자의 고향을 여행하면서 쓴 기행문이라 정확히 어디쯤인지 알고 싶어 검색해 보았으나 바로 지명이 뜨지 않았다. 일본 전체 지도를 검색해서 대강 아오모리 현의 북단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읽어 나갔다. 의뢰 받아서 고향을 여행하긴 했지만 꼭 다시 한 번 고향을 둘러보고 싶었던 저자의 목적이 분명해서인지 부담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종종 목적의식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저자가 머문 곳의 역사를 꽤 상세히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는 지명이 낯섦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저자의 동선을 따라가며 읽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추억이 깃든 곳이라 인연이 있는 지인들을 만나고(지인과의 만남에서 빠지지 않고 과할 정도로 마시게 되는 음주가 눈에 띄었다!) 데면데면한 가족과의 조우, 그리고 어릴 때 자신을 길러 주었던 유모를 찾아가는 과정은 괜히 나까지 설레게 했다. 분명 나도 자라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런 나와 다르게 누군가를 기억하고 만나고 싶다는 목적으로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저자의 행동이 과감하면서도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석별」은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 센다이 의학전문학교 유학생 시절이던 이야기를 수기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소설에는 루쉰이 아닌 저우 씨로 명명되는데 동기생이었던 ‘나’가 신문기자의 취재를 받으면서 그 시절 함께 보냈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루쉰의 소설을 몇 편 읽었지만 개인사는 거의 모르던 터라 일본에서 의학 공부를 했다는 사실 조차 생소했다. 그제야 검색을 통해 대략이나마 생애를 알게 되어서인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가 허구인지 구별할 능력이 내게는 없지만 굳이 구분을 위한다기 보다는 당시의 일본 사회에 녹아든 듯 그 시절의 배경이 잘 드러났다. 소설이지만 왜 루쉰이 일본까지 유학을 왔는지, 의학 공부에 전념하다 중퇴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작가가 됐는지, 또 그 시절의 일본과 중국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았다. 더불어 내가 역사에 얼마나 취약한지도 알게 되었고 전혀 관심을 갖지 않던 역사에 대해 이런 문학작품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게 되었다.

문학이 없으면 세상은 빈틈투성이입니다. 문학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그런 불공평한 빈틈을 자연스럽게 채워가는 것입니다. (314쪽)

  마지막으로 ‘옛날이야기’를 패러디 한「옛날이야기」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으로 시작된다. <우라시마>는 거북의 등을 타고 용궁을 여행한 인간의 이야기라 <혹부리 영감>의 재미를 이어갈 수 있었다. 원작을 잘 알고 있을 때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인지 두 이야기는 그럭저럭 읽을 수 있었지만 <부싯돌 산> <혀 잘린 참새> <모모타로>는 일본에서 유명하다고 해도 나에겐 생소해서 패러디 문학의 묘미를 느끼기에는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옛날이야기」를 읽으면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독특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인지해 나갔다.

  「인간 실격」과 같은 수기 형식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세 편의 이야기는 저자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편견을 깨주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저자가 이 작품들을 쓴 시기에 대한 통찰력을 내가 드러낼 순 없지만 모두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작품도 읽어 보고 싶었다. 다행히 책장에『달려라 메로스』가 있어서 이런 나의 바람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작품까지 마음에 들면 천천히 저자의 전작을 찾아서 읽어 볼 생각이다. 요즘 일본 고전에 빠져 있는데 이 열기가 식기 전에 최대한 많이 흡수하고 싶은 마음이다. 책은 묵혀야 제 맛이라는 엉뚱한 지론을 가진 탓에 책장에 일본 고전이 그래도 꽤 있는 것에 스스로 감탄(?)하며 그 책들을 차례차례 만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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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일족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5
모리 오가이 지음, 권태민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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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 책장을 보면서 놀랄 때가 있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 놀람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첫 번째는 책 욕심으로 인해 읽은 책보다(오로지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으로 봤을 때) 안 읽은 책이 더 많다는 것. 그러다보니 언제 내가 이 책을 들였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우연히 다른 책을 통해서 내 책장에서 재발견 하는 경우다. 거기다 한 가지를 더하자면 똑같은 책을 또 사는 어수룩함도 놀람에 포함이 될게다. 모리 오가이 작가의 작품을 바로 손에 들고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책장에서의 재발견 때문이었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에세이를 읽다 또 다시 언급된 모리 오가이를 보며 그 순간 바로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들었다. 책장에 들인지 꽤 됐음에도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보면서 내가 궁금해 하던 그 작가의 책이라는 사실을 내내 잊고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순식간에 이 책을 읽어 버렸다. 아무런 계기도 없이 그냥 읽어볼까 하고 책을 꺼내들었다면 언제 다 읽을 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히라노 게이치로를 통해 꽤 오래전부터 궁금해 하던 작가였고 다른 책에서도 그의 단편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면서 이번이 기회라는 것을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갈증이 오랫동안 묵혀 빨아들이듯 책을 읽어나갔다. 오히려 히라노 게이치로의 에세이는 잠시 제쳐두고 이 책을 먼저 읽었고, 이 책으로 인해 일본 문학이 궁금해 두툼한 다자이 오사무의 책까지 꺼내들었다. 거기다 욕심까지 더해져 가와바타 야스나리 책까지 주문하고 말았다. 상당히 충동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으나 그만큼 이 책이 오랜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고 나름 좋았기에 이런 행보도 순식간에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총 네 편의 단편 중 다른 책에서 언급이 많이 되었던「무희」와「기러기」가 가장 궁금했다. 책을 순서대로 읽는 걸 좋아해 바로 그 단편들로 가지 않고 착실하게「아베 일족」부터 읽어 나갔다. 자신이 따르는 무사가 죽으면 할복으로 함께 따라죽는 무사들의 이야기에 절대적인 공감도 할 수 없었고 그들의 이름이 헷갈려 집중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무조건 이해할 수 없다고 무심코 넘겨버릴 수도 없었다. 그 당시의 문화와 풍습을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한 부분을 관찰하는 느낌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명예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명예롭게 죽지 못했다고 수군대고, 사소한 실수와 오해가 한 가족의 몰살을 야기하는 이야기에서 비극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절대 공감할 순 없지만 당시의 처지와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비극을 말이다.

 

  「무희」와「기러기」는 조금은 신파라고 느낄 정도의 결말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무희」는 독일 유학시절이라는 배경의 신선함은 있었지만(저자의 경험이 바탕이 된 탓도 있겠지만 당시에도 그러한 배경으로 쓰인 작품은 신선했을 것 같다.) 성공을 위해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버리고 귀국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절망의 순간에서 딱 멈춰버린 듯 했다.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정신을 놓아버리는 여자. 태어날 아기도, 여자도 지키지 못한 채 일본으로 돌아오는 남자의 이야기가 순수한 사랑으로 순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는 뜻이다. 거기다「기러기」는 여주인공의 섬세한 심리변화는 흥미로웠지만 고리대금업자의 첩이라는 사실, 첩을 들여놓고도 뻔뻔하게 아내에게 거짓말하는 남편, 그런 남편에게 순종하고 고마워하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지만 엇갈림으로 인해 고백조차 못하고 어긋나버리는 여주인공. 우연히 던진 돌에 목숨을 잃은 기러기가 등장함으로 인해 그간 공들여 읽고 있던 이야기와 분위기가 한 순간에 찬물을 끼얹듯 끝나 버렸다. 그래서 신파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흡인력만은 대단해서 저자의 다른 작품을 더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국내에 번역된 작품 중에 읽을 만한 작품이 없어 다른 일본 작가의 책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충동적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꺼내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책을 주문했던 것이다.

 

 

  마지막에 실린 짤막한 단편「다카세부네」는 이 소설집의 마무리는 하는 느낌이 들었고, 유배되어 가는 죄인이 아니라 마치 이승을 떠나 다른 세계로 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죄인, 딱 잘라 결론 낼 수 없는 진실, 그에 반해 희망에 부풀어 있는 인물로 인해 더욱 더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쓰인 이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국적이면서도 당시의 배경이 잘 녹아 있는 작품이라 공간이동을 한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역시 일본 문학도 고전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흥분이 언제 가라앉을지 모르겠으나 당분간은 일본 문학이든 또 다른 나라의 문학이든 고전에 관한 관심이 진득하게 갔으면 하는 바람까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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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3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저는 일본, 중국문학 고전보다는 서양 쪽을 선호해요. 그래서 책 좀 읽는 사람들도 한 번쯤 읽었을 <삼국지>도 안 읽어봤어요. 오늘자 중앙일보에 삼국지 번역에 관한 기사에 반짝님의 글을 읽고나니 동양고전 쪽으로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안녕반짝 2015-02-01 07:51   좋아요 0 | URL
저도 <삼국지>는 여전히 읽지 않았는걸요. 전 웬만한 장편소설은 다 소장하고 있는데 읽지 않은 책이 더 많고 특히 전 역사소설은 굉장히 약합니다. ㅜㅜ 전 해외소설을 더 좋아하는데 예전에는 나라별로 많이 읽긴 했는데 요즘은 그냥 책 속에서 많이 언급된 작품들 위주로 읽는 것 같아요.^^
 
지우개
권윤주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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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책장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꺼내들었다. 저자의 책을 모두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이 덩그러니 안 읽은 책장에 꽂혀 있었던 것이다. 다른 목적으로 책장을 살펴보다 꺼낸 책을 다시 덮을 수 없어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동무 삼아 밥을 먹었다. 밥 한 숟갈 뜨고 눈으로 쓰윽 보며 책장을 넘기는 행위가 오래전부터 있던 규칙인양 그렇게 밥 먹는 속도에 맞춰 책을 읽어 나갔다.

  일러스트로 채워진 책을 읽는다는 표현이 좀 안 어울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글이 현저하게 적기 때문이란 이유보다 그림으로 드러나는 의미들을 읽는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처음 이런 종류의 책을 접할 때는 오로지 활자에만 집중해서 금방 읽으니 좋다는 식으로 해석하곤 했는데 몇 번 접하다보니 꼭 글이 없어도 그림에서 전해지는 의미들을 내 나름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 의미들이 대단하거나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지만 책을 읽고 보면서 만들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고 나만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충분한 것들이다. 그런 의미를 조리 있게 드러내는 건 나의 능력 밖이지만 비스 무리한 느낌이라도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읽은 책에 대한 리뷰(지극히 개인적인)를 남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파리 이야기나 뉴욕 이야기가 좋아서 그런 비슷한 책을 기대했지만 이 책에서는 공통된 배경이나 공간이 없이 자유롭다. 그래서 어떤 그림과 글은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갸우뚱 하면서 본 것들도 있었다. 공감을 하기도 하고 의문을 갖기도 하면서 책장을 멈추지는 않았다. 분명 다른 이야기인데 뭔가의 흐름에 이끌리듯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며 책장을 넘겼던 것 같다. 그러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지우개에 관한 부분을 보면서 잠시 시선이 멈춰졌었다. 지우개로 자신을 조금씩 지워가며 희미해진 자신이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그런 모습을 갈망하면서도 의도하지 않게 그런 순간들을 맞이했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존재하지만 존재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 나는 존재하는데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무리 속에 섞여 있던 순간들. 어쩔 수 없이 지우개로 나를 지워가는 순간에는 그렇게 쓸쓸한 기억들만 떠오르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저자처럼 ‘지우개는 신기하다.’라고 밝은 의미로만 공감할 수 없었다. 그 문장 속의 저자의 의미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 같다. 다만 나에게 와 닿는 의미는 쓸쓸했기에 그런 신기함마저도 슬프게 들렸던 것이다. 또한 필요할 때만 찾아오는 친구 아닌 친구의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내가 그랬던 적도 있고 내가 당했던 적도 있었던 기억들도 희미하게 떠올랐다. 아무래도 감정이 말랑말랑한 새벽녘에 읽어서인지 낮이라면 지나쳤을 곳에 이상하게 몰입이 되면서 기분이 조금은 감상적이 되어버렸다. 마음가짐과 환경에 따라 책이 다르게 다가옴을 몸소 체험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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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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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꼭 하루키 책을 들고 간다. 장거리 여행을 할 땐 책 선택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데 경험을 통해 소음 속에서도 집중이 잘 되는 책이 최고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껏 욕심을 부려 무겁고 지루하더라고 읽고 있는 책을 늘 들고 갔었는데 한 페이지도 못 읽은 경우도 허다했고 책 선정을 잘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하루키 책은 어떤 순간에도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을 발견한터라 과감히 읽고 있는 책을 제쳐두고 이 책을 뽑아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왕복 6시간의 기차 안에서 느긋하게 음악도 듣고 창밖도 구경하고 멍 때리면서 이 책을 모두 읽어 버렸다.

  하루키 소설은 유명한 작품부터 만나다보니 거부감이 들어(나의 정서와 다름으로 인해) 오랫동안 다른 작품을 읽지 않았다. 그러다 초기작부터 다시 읽어 올라오니 그의 소설 방향도 조금씩 감지되고 차근차근 읽어나간다는 뿌듯함도 생겼다. 원래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두 권의 소설을 더 만나야 하지만 도서정가제로 인해 지인에게 부랴부랴 추천 받아 구입한 책이라 어쩔 수 없이 먼저 읽게 되었다. 그래서 해설에서 번역가가 이야기한 다른 작품과의 연계성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여주인공 스미레가 사라지기 전까지의 내용은 마치 여자 하루키가 쓴 것처럼 섬세해서 17세 연상의 여인 뮤를 사랑하는 동성애를 주제를 하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거북하지 않게 빠져들 수 있었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성(性)에 관해서 조금만 포장하거나 묘사가 덜 한다면 거부감이 덜 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꼭 감추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나의 상식에 어긋나는 표현과 생각들을 드러낼 때의 불편함은 어쩔 수가 없다. 현실에서는 그러한 소식들을 질리게 들으면서도 유독 문학작품에서는 좀 더 포장되었으면 하는 이상한 바람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간 하루키 소설에서 만나 온 거부감보다는 강도가 약해서 불편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동조할 수 없는 동성애 이야기에도 오로지 여주인공의 내면에 안착해 그녀를 따라갔을 정도였으니까.

  그런 그녀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한 해외출장 겸 여행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리자 유일한 이성 친구가 그 이야기를 이어준다. 뮤의 부탁으로 스미레가 사라진 그리스의 섬까지 간 그는 스미레를 좋아하고 있지만 그녀의 사랑 또한 존중하는 이였다. 그 모든 사실들을 감지하고 있기에 갑작스럽게 그리스의 외진 섬까지는 가는 것도, 그녀의 이야기를 대신 전해주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차분해서 스미레의 행방의 결론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아니라(물론 그녀의 행방에 대한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몹시 궁금하긴 했지만)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스미레와 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소설이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같은 착각이 일 정도의 현실감을 유지했기에 스미레가 사라지고 스미레를 찾는 과정에서 환상을 보고 그녀가 다른 세계로 가 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기까지의 과정은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루키의 다른 작품에서 익히 보았던 상세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하루키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세계의 존재. 스미레는 그런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사라졌던 시간동안 누구도 그녀의 행방을 알 수 없어 그간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지만 꿈처럼 묘사되던 그녀와의 재회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루키 소설의 묘한 매력은 현실이 아님에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그런 세계가 존재할 것 같은 환상을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야기 속의 다른 이야기를 비유를 들기도 하고 직설적으로 툭 던져놓기도 하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현실의 나는 잠시 잊게 된다. 그리고 소설에 온전히 코를 박고 있다 책장을 끝까지 덮고 나서야 정신이 차려지는 것이다. ‘만약 불완전한 인생에서 모든 낭비가 사라져 버린다면 그것은 불완전함마저도 없어져버리게 되는 것이다.(9쪽)’라는 말처럼 끝이 없는 낭비의 목마름 속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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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30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꼭 하루키와 잘 만나고 말겠다...다짐하면서..감사히 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