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꼭 하루키 책을 들고 간다. 장거리 여행을 할 땐 책 선택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데 경험을 통해 소음 속에서도 집중이 잘 되는 책이 최고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껏 욕심을 부려 무겁고 지루하더라고 읽고 있는 책을 늘 들고 갔었는데 한 페이지도 못 읽은 경우도 허다했고 책 선정을 잘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하루키 책은 어떤 순간에도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을 발견한터라 과감히 읽고 있는 책을 제쳐두고 이 책을 뽑아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왕복 6시간의 기차 안에서 느긋하게 음악도 듣고 창밖도 구경하고 멍 때리면서 이 책을 모두 읽어 버렸다.

  하루키 소설은 유명한 작품부터 만나다보니 거부감이 들어(나의 정서와 다름으로 인해) 오랫동안 다른 작품을 읽지 않았다. 그러다 초기작부터 다시 읽어 올라오니 그의 소설 방향도 조금씩 감지되고 차근차근 읽어나간다는 뿌듯함도 생겼다. 원래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두 권의 소설을 더 만나야 하지만 도서정가제로 인해 지인에게 부랴부랴 추천 받아 구입한 책이라 어쩔 수 없이 먼저 읽게 되었다. 그래서 해설에서 번역가가 이야기한 다른 작품과의 연계성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여주인공 스미레가 사라지기 전까지의 내용은 마치 여자 하루키가 쓴 것처럼 섬세해서 17세 연상의 여인 뮤를 사랑하는 동성애를 주제를 하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거북하지 않게 빠져들 수 있었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성(性)에 관해서 조금만 포장하거나 묘사가 덜 한다면 거부감이 덜 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꼭 감추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나의 상식에 어긋나는 표현과 생각들을 드러낼 때의 불편함은 어쩔 수가 없다. 현실에서는 그러한 소식들을 질리게 들으면서도 유독 문학작품에서는 좀 더 포장되었으면 하는 이상한 바람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간 하루키 소설에서 만나 온 거부감보다는 강도가 약해서 불편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동조할 수 없는 동성애 이야기에도 오로지 여주인공의 내면에 안착해 그녀를 따라갔을 정도였으니까.

  그런 그녀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한 해외출장 겸 여행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리자 유일한 이성 친구가 그 이야기를 이어준다. 뮤의 부탁으로 스미레가 사라진 그리스의 섬까지 간 그는 스미레를 좋아하고 있지만 그녀의 사랑 또한 존중하는 이였다. 그 모든 사실들을 감지하고 있기에 갑작스럽게 그리스의 외진 섬까지는 가는 것도, 그녀의 이야기를 대신 전해주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차분해서 스미레의 행방의 결론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아니라(물론 그녀의 행방에 대한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몹시 궁금하긴 했지만)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스미레와 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소설이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같은 착각이 일 정도의 현실감을 유지했기에 스미레가 사라지고 스미레를 찾는 과정에서 환상을 보고 그녀가 다른 세계로 가 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기까지의 과정은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루키의 다른 작품에서 익히 보았던 상세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하루키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세계의 존재. 스미레는 그런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사라졌던 시간동안 누구도 그녀의 행방을 알 수 없어 그간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지만 꿈처럼 묘사되던 그녀와의 재회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루키 소설의 묘한 매력은 현실이 아님에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그런 세계가 존재할 것 같은 환상을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야기 속의 다른 이야기를 비유를 들기도 하고 직설적으로 툭 던져놓기도 하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현실의 나는 잠시 잊게 된다. 그리고 소설에 온전히 코를 박고 있다 책장을 끝까지 덮고 나서야 정신이 차려지는 것이다. ‘만약 불완전한 인생에서 모든 낭비가 사라져 버린다면 그것은 불완전함마저도 없어져버리게 되는 것이다.(9쪽)’라는 말처럼 끝이 없는 낭비의 목마름 속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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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30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꼭 하루키와 잘 만나고 말겠다...다짐하면서..감사히 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