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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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니 많이 혼란스러웠다. 소설이지만 현실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었고, 어쩌면 어디선가 이미 이런 작업들이 이뤄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무섭기까지 했다. 내가 이 소설의 주인공 프랑수아처럼 무교였다면 이슬람교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흡수했을까? 흡수하지 못했더라도 타인의 이야기일 뿐이라며 지난한 시선으로 그저 조망했을 것 같다. 하지만 프랑수아처럼 무교도 아닌 기독교인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난 뒤에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해보니 정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자연스레 이슬람 문화가 정착해가고 있는 시점에서, 개종을 조건으로 재임용은 물론 파격적인 보수와 여러 명의 부인을 얻어준다고 하면 누구나 한번쯤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라면 인간적인 마음으로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겠지만 개종을 하면서까지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데 결론을 내렸다.


  내게 닥친 문제도 아닌데 그런 결정을 내리고 나니 이상하게도 이 소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후련해졌다.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권태롭기까지 한 문학교수 프랑수아를 지켜보자니 내 마음에 쏙 드는 인물은 아니란 예감을 하면서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고민이 들었었다. 프랑스 소설가 위스망스 전공자로 권위도 있고 명성도 있지만 그의 내면은 피폐하기 그지없었다. 학기마다 자기 수업을 듣는 여학생들과 관계를 맺고 끊음을 반복하면서 그나마 미리암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적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육체적인 관계가 잘 맞아서 그런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이 권태롭기 짝이 없었다. 인생을 달관해버린 사람처럼 학문에 대한 열정도 사랑에 대한 적극적임도 없이 그냥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읽기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저자의 문체가 주는 흡인력과 곧 무슨 사건들이 터질 것 같은데 그 중심에서 프랑수아가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정의의 편에 맞서는 인물들을 좋아하는데, 프랑수아는 그런 인물처럼 보이지 않았고 급격하게 바뀌어버린 이슬람 정권에 대한 변화의 중심에서 과연 정의와 신념이 무엇인지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이슬람 정권이 폭력을 허용하면서 점령해가는 것과 신념이란 이유로 일부다처제 허용, 여성들은 히잡을 쓰고 사회생활이 금지되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기독교이고 여성이란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암묵적이면서 당당하게 그런 문화가 타 문화를 지배해버리는 것이 무서울 정도였다.


  프랑스 정부가 이슬람 정권으로 바뀌는 과정을 온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정치에 관심도 없고 흐름도 못 읽는 내가 복잡하고 섬세하게 그려진 프랑스와 이슬람 정치 상황을 완벽히 이해할 리가 없었다. 그런 내용이 나올 때마다 큰 그림으로 두루뭉술하게 그려내며 프랑수아의 시선에 더 신경을 쓰며 읽었다. 그런 변화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고 그를 통해서 어떻게 변해 가는지 듣는 상황이라 그의 내면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래서인지 한 나라의 정권이 바뀌어 버렸음에도 한정된 인물과 배경 묘사가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져서 아쉬웠다. 오로지 프랑수아의 시선으로, 피부에 와 닿는 변화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다 갑작스레 들어온 제안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결정을 해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195쪽)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철저한 관망자였음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과연 내가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확실한 어떤 것도 드러나지 않았다. 소설이 주는 메시지를 찾기보다 혼란스런 내 마음을 다스리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소설의 배경이 2022년이란 사실을 상기하면서도 그런 상황들이 멀지 않음을, 미래소설이 아닌 현실을 반영한 소설 같아서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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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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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었던 사람과 부부가 되어 함께 살아보니 어른들이 말한 ‘집안을 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집안을 보는 기준이 제각각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집안을 보는 으뜸은 화목인 것 같다. 모든 가족이 단일화되어 행복할 수 없듯이 나름대로의 어려움과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지혜롭게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늘 가족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건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어떨 땐 내가 이룬 가정의 자잘한 문제와 고민들만으로도 힘겨움을 느끼는데 거기에 친정과 시댁 문제까지 얽히면 가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다른 나라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특히나 너무 끈끈하게 얽혀있어 가끔씩 숨이 막힐 때가 있다고 말이다.


 

  나부터도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이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했는지 모르겠다. 칭찬하기보다 험담이 앞서고 다가가지 못하고 도와주지 못했던 나날들.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그래도 가족이라 생각하고 하는 말과 행동이라고 큰 오류들을 범했었다. 그냥 개개인으로 인정하고 때로는 그냥 지켜봐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이 스치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이 더 확고해졌고 저자의 말처럼 가족을 개인으로 치부하지 않고 혈연으로 묶어 소유하려 했기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불거지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고 ‘병’이라고 부르게 되는 극단적인 일들까지 일어나게 되는 건 아닐까? 오죽했으면 ‘가족은 생활을 함께하는 타인들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홀가분하다.(62쪽)’라고 했을까?


 

자신이 아닌 남에게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된다. 타인에 대한 기대는 낙담과 불평을 불러오는 최대의 요인이다. (48쪽)


 

  전적으로 이 말에 공감하는 것은 내가 남편에게 품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무조건 나에게 더 잘해주고 내 생각대로 움직이고 사고(思考)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니 낙담과 불평을 쉽사리 뱉어내고 만다. 내 생각대로 남편을 고치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서로 보완해 가야 하는데 소유물로 착각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드러나는 것 같다. 비단 남편뿐만이 아니라 자녀, 나아가서는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는 다른 식구들에게도 그런 마음을 품기 때문에 합의되지 못한 불화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다. 지금도 종종 아이들이 잠든 모습을 보면서 기도한다. 이 아이들을 내 소유물로 생각하지 말고 내 맘대로 키우게 하지 말아달라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고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한 여러 가정의 사례들과 자신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서 자식을 키우는 데 정답은 없고, 가족의 화목은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인지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한(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녀들이 왜 생겨나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가(지나친 사랑, 고생하는 게 싫어서, 자식이니까) 나에게도 있음이 드러났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부모에게 제대로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아마 내가 잔소리라 생각하고 흘려버렸으리라.) 단호한 모습보다 자식이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아서 가정을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대로 된 독립을 못하고 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모든 걸 다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온 가장 큰 이유는 타지에서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리고 돌아온 고향에서 엄청나게 많은 도움의 손길을 받았다. 이런 내가 내 자녀들을 강하게 키울 수 있을까? 벌써부터 마음이 아파오지만 가족이 ‘병’이 되지 않기 위해 분명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가족이란 말할 필요도 없이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의 문제인데.(168쪽)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가 가진 가족의 문제가 단박에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역시 해결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보고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를 더 고민하게 되었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해결이라기보다 그간 보아온 다양한 가족 문제와 그에 대한 느낌을 소소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 안에서 연륜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 중심을 잡고 삶을 대해야 한다는 걸 고스란히 보여준 것 같다.


 

자기 나름의 가치 기준이 없기 때문에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돌아보고, 친구나 지인의 가족과 비교하는 것이다.(80쪽)


 

  종종 내 가정을 두고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돌아보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럴 때마다 현 상황을 직시하고 분수껏 살아가자 다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룬 가정 안에서 늘 부족한 것들만 찾아내면서 이미 가진 행복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가족이 ‘병’이 되지 않기 위해 가치 기준을 확고히 하는 게 먼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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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과의 하루
디아너 브룩호번 지음, 이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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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벌써부터 이런 생각들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 나의 미래는 어떨지 상상해보곤 한다. 나는 어떻게 늙을까? 내 곁에 남편은 오래오래 있을까?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며 손자들도 볼 수 있을까하는 다소 민망하기도 한 먼 미래의 내 모습에 관한 상상. 내가 초등학생일 때 수업시간에 커서 뭐가 될 건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생각나는 대로 얼버무리긴 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서른 살의 내가 상상이 안 갔다. 당연했다. 그리고 서른이 넘은 지금은 10대 초반의 나를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러니 지금 나에게 30년 이후의 삶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전혀 상상할 수 없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고, 기꺼이 30년 후에 지금을 떠올리며 미소짓고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함께 늙어가는 노부부 알리스와 쥘. 어느 날 갑자기 한쪽이 세상을 떠나버렸고 그 광경을 목도했다면 어떤 기분일까? 알리스는 평소처럼 남편이 끓여놓은 커피 향을 맡으며 잠에서 깨지만 소파에 앉은 채 세상을 떠난 남편을 발견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놀란 가슴을 부여안고 즉각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시신을 인도했을 것이다. 알리스는 남편 쥘이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에 절망감을 느끼지만 아들이나 병원에 연락하기보다는 그런 남편 곁에 머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순간, 보통 사람과 행동하지 않았다는데서 오는 불안감이 어떤 결말로 이 소설을 이끌어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남편의 시신을 곁에 두고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 너무 사랑해서 떠나보내기 싫은 마음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알리스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오전 10시에는 항상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자폐아 다비드가 쥘과 체스를 두기 위해 방문한다. 평소보다 좀 더 일찍 오겠다는 다비드 엄마의 전화를 받고도 거절할 수 없어 다비드를 집안으로 들인다. 다비드도 쥘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쥘 할아버지는 가셨어요. 이건 쥘 할아버지의 껍데기예요.(89쪽)’ 인정하듯 한 사람의 시신이 있는 곳에 타인을 들여 하룻밤을 보내는 것을 지켜보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알리스가 쥘에게 중얼거리듯 내뱉는 말들을 듣고 있으면 왜 그녀가 그렇게 해야 했는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바라보게 되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먼저 내가 저런 상황이었다면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을 것이다. 그리고 숨이 빠져나간 시신을 남편이라 자각한 채 말을 붙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알리스의 말처럼 쥘의 죽음을 즉각 알렸다면 과연 그와 마지막 이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을까? 그녀의 말처럼 얼마 안 되어서 남편의 시신은 처리될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이별을 할 시간은 땅에 묻거나 화장하기 전 짧은 시간일 뿐일 것이다. 그녀의 행동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사랑해서 결혼했고 오랫동안 함께 살아 온 사람이 세상의 규율에 따라 이별할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한다는 건 애석하기 짝이 없었다. 단지 떠나보내기 싫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지만 남편의 불륜을 알면서도 발설하지 않았던 이야기, 신혼여행 중 호텔방에서 잃어버렸던 그들의 첫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쥘 과의 제대로 된 이별(알리스 혼자 고백하는 셈이지만)의 시간이 있어서 오히려 안도했다.


  그녀가 남편의 시신과 하룻밤을 보내는(혼자가 아닌 다비드란 소년과 함께) 이유가 너무 사랑해서, 혹은 아름다운 기억만 추억하기 위해서였다면 금세 식상해졌을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과 평생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결혼하고 나서 깨달았기 때문에 삶의 고비들이 담겨있는 알리스의 고백이 더 와 닿았다. 물론 행복한 부부, 행복한 가정을 드러냈다면 보는 이도 행복했을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현실감이 느껴져서 알리스만의 남편을 떠나보내는 행위에 어느새 빠져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짧으면서도 길었던 쥘과의 하루를 보내고 다비드와 함께 잠이 들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알리스는 이제 남편 없는 삶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것이 앞으로 그녀에게 주어진 삶일 것이고 어쩜 우리 모두가 겪는 인생의 고비를 넘어 다시 맞이한 평지가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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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코 씨, 영어를 다시 시작하다 - be동사에서 주저앉은 당신에게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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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에게 영어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보면 언어를 넘어서, 잘하고 싶지만 잘하지 못하고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그 무엇인 것 같다. 비영어권에 살면서도 영어에 열혈인 흐름도 싫었고 영어를 못하는 게 부끄럽지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영어를 못한다는 열등감도 약간은 내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동기부여만 된다면 나도 잘할 수 있을 거란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다만 그 동기란 게 문제였다. 당장 영어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 나에게 닥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영어와는 담 쌓고 지내고 있었는데 이 책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영어를 좀 알고 싶어졌다.


  내가 영어 공부를 섣불리 시작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모르는데서 오는 애매함도 있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되겠지 하는 나의 마음이 오산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깨달음 뒤에 내 수준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 영어를 이해하는데 조금 수월해졌다. 내 영어 실력은 지금 초등학생들보다 못하다. 나는 영어를 중학교 때 배웠기 때문에 초등학생과 비교할 뿐, 실제로는 유치원생보다 더 못하는 수준일 것이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드러내기는 싫어 이해하는 척, 어느 정도 아는 척 했던 것 같다. 이 책속의 미치코 씨처럼 그 부분을 인정하고 영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니 그제야 영어에 조금 흥미가 생겼다.


  이 책은 영어 입문 전에 읽는 입문서라고 되어 있다. 그 말이 맞는 것이 영어 공부를 하려고 하면 be동사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는데 말만 들어도 지루해지는 게 영어 공부를 딱 놓고 싶게 만든다. 미치코 씨가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는 계기하에 ‘영어는 주어 + 술어’부터 시작한다. 주어가 무엇이고 술어가 주어를 어떻게 받쳐주는지, 어순의 다름이 어떤 대화를 이끌어 가는지에 대해 묻고 알려주자 초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나같은 사람에게 충분히 흥미를 주었다. 또한 개수에 대한 영어의 정확함을 알고 나니 a와 s에 대해 좀 더 명확히 알게 된 것 같았고, 언어에도 성격이 묻어나는 만큼 각각의 성향과 특징이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그냥 읽고 넘어가면 아무것도 들어올 것 같지 않아서 노트에다 적어가면서, 하고 싶은 만큼 공부를 시작했다. 딱 5일 하고 멈춘 뒤에 한참이 지나서야 나머지 부분을 다 읽고 다시 처음부터 읽으면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여전히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들이 있었고, 반복하지 않으니 쉽게 잊혔다. 이것들을 기억하려면 반복해서 보는 수밖에 없다고, 그리고 인내와 끈기를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닫자 역시 공부는 쉬운 게 아니란 후회가 밀려왔지만 스스로 영어 공부를 해보려고 했던 그 마음만이라도 기특하게 생각하자 싶었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영어가 확 느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나처럼 영어를 좀 해보고 싶은데 동기부여도 없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문법책이 주는 딱딱함이 싫어서 아예 팽개쳐두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전적으로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으로 공부를 이어나가야 하지만 조금이나마 동기부여가 되어서 흥미를 느꼈다면 절반정도는 성공한 것 같다. 다음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이런 식으로 영어가 알고 싶어졌다. 미치코 씨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던 편집자가 갑자기 잡지 쪽으로 부서이동이 되었다며 마무리 되었지만 다시 돌아와서 미치코 씨에게 영어를 가르쳐 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나도 더 재미나게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이 책을 더 반복해서 읽어 보고 오래전에 사 놓은 초등학생 용 문법책과 단어장을 펼쳐 볼 엄청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부디 이 계획이 성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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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아툴 가완디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때문에 기억하고 있는 의사이자 저자다. 신간이 나왔다고 하기에 읽고 싶었는데 마침 지인이 책을 두 권 선물 하고 싶다고 해서 냉큼 이 책읋 골랐다.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하다.



2.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 존 버거


이 책도 분명 구입했는데 김탁환의 <읽어가겠다>에 소개된 글을 보고 읽고 싶어 찾아보니 없다. 그제야 지인에게 선물한 걸 기억해내고 이 책도 사달라고 해서 받았다. 가장 좋아하는 저자의 책들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선물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얼른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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