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심리학 / 꿈꾸는 20대, 史記에 길을 묻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울의 심리학 -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관한 심리 치유 보고서
수 앳킨슨 지음, 김상문 옮김 / 소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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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다보면 언제나 존재하는, '지금의 내 상태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난해한 문제들. 분명 다른 누군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 내게는 문제다. 혹은 지금의 나라면 문제도 되지 않겠지만 그때의 내게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였다. 물리적으로 시간과 공간에 예속된 삶을 살아가는 내게는 그렇게 언제나 '지금의 나로서는' 풀지 못할 문제들이 있다. 지금 내가 속한 상황 자체가 힘들어서, 지금 내가 가진 지혜가 보잘것없어서, 혹은 지금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저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일들에 대한 무력감에서 자주 나는 지치고 우울해진다.  

그러니 분명 오늘날 우리, 일반인들도 여러 가지 형태의 깊거나 얕은 우울을 겪는다. 내 남편, 내 아이, 내 부모 등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부터 비롯되기도 하고 내가 이루고 있는 여러 사회적인 관계들- 온갖 가지 다른 목적으로 연결되는 많은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일도 많다. 그 뿐이랴, 내가 속한 사회의 방향이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무력감이 삶의 우울을 깊게 하기도 하고, 이 무모하고 소모적이고 폭력적인 인류의 방향이 결과적으로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게 가하고 있는 위협이 그러하기도 하다. 암울한 미래에 대한 전망은 내 평범한 삶마저도 수렁에 빠뜨리거나 수렁의 언저리를 위태롭게 걷게 하는 것이다. 

만일, 어렵지만 피해갈 수 없는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 문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누군가는 그 문제의 속으로 들어가 이해하고 풀어서 돌파하려고 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그 문제를 보자기로 둘둘 싸서 눈에 안 보이게 덮어버리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물론 그 보자기는 다시 풀리기도 하고, 그러면 또 다른 방식으로 묶어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물론 아니지만, 내 힘으로 그 문제의 속으로 들어가 그걸 풀려고 한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힘들고, 누구나 그럴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그러니 자꾸 튀어나오는 이 문제는 그저 단단히 봉인해버리면 되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완벽한 방법은 없는지, 이쪽이 뚫려 간신히 막으면 다시 저쪽에서 솟구친다. 번거롭고 힘들기는 하지만 이 문제를 깨버릴 수 없는 내게는 이 방법이 그래도 효과적이다. 문제 자체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은 솔직하게 그것을 시인하고 들어간다. 

 

 "삶은 공평하지 않아!"  우울한 사람들은 이렇게 소리친다.  

 

맞다! 삶은 공평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불평한다고 해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 우리의 계획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우리는 유년시절에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그렇다. 학대를 받았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삶을 살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을 뿐이다. 진정으로 우리 삶이 달랐더라면 하고 끊임없이 불평하면서 단 한 번의 기회를 날려 버리고 싶은가. 복수를 꿈꾸고 불가능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과연 우리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가? 정의를 바라는 것은 이치에 맞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그 정의가 절대 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정의를 포기하든가, 계속해서 그것을 기다리든가.    

 

마지막 부분까지 이렇게, 해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현실적인 대처법이라는 것을 독자에게 알려주는 이 책은, 정말 실용서이다. 우울의 여러 가지 원인에 대한 탐구가 이 책의 주제는 아니다. <우울의 심리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어서 마치 우울증의 심리 저변에 관한 탐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철저히 우울증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만일 내가 심각하게 우울한 상태를 겪고 있거나,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불안한 상태라면 이 책은 바로 그 우울증이라는 험난한 수렁을 빠져나오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한 개의 밧줄일 수도 있겠다. 수렁에 있다는 것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우니 지나치게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선 빠져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 이 줄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보자... 그러다보면 어느새 수렁을 벗어나 있기도 하다는 것. 최소한 그 밧줄을 잡고 수렁을 뒤돌아보며 올라가고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작은 것부터, 한 가지씩, 행동계획을 가지고.

우리의 문제점에 대해 현실적인 관점을 갖고.  

나와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과 함께 서로 격려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생각의 차트를 적어가면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만들고, 심지어 걱정하는 데 보내는 시간을 일정하게 정하면서.   

 

이 책은 이토록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일들로 빼곡하다. 너무 세세한 실천 방안들로 가득차서 처음 이 책을 보는 도중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이란? 본질은 중요하지 않고 현상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인가?’ ‘어른들을 향해 이만큼 시시콜콜 방법을 알려줘야 할 만큼 우울증은 벗어나기 어려운 것인가.’ '왜 너는 그렇지 않은데 나는 우울한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단 말인가.‘    

 

 이 책을 마지막까지 다 보고 덮었을 때도 나는 이런 의문들에 대해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내가 <우울의 심리학>이란 책을 받아들고 기대했던 것은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왜 그다지도 우울해지는가?” 였다면, 이 책이 내내 이야기하는 것은 “당신이 만일 깊은 우울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면, 이렇게 해서 벗어나보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지은이가 보여주고자 하는 그 길에 나란히 나있는 옆길에서 그 길을 바라다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의아하다. 나 자신도 ‘제목과 내용의 엇갈리기’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진다지만, 그보다 먼저 대체 이 책의 제목은 어째서 <우울증 벗어나기>가 아니라 <우울의 심리학>이란 말이냐. 왠지 심통이 나서 이제야 다시 보니 원제는 <Climbing out of Depression>이로군... 실용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제목이다. 한국어판에서 제목을 틀어버린 게 아닌가. 속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 어쩔 수 없다. 뭐가 <우울의 심리학>이란 말이냐. 이 제목이 이 책의 내용을 대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옮긴이나 출판사가 몰랐을 리는 없다. 마치 실용회화 책에다가 영어의 이해라는 제목을 갖다 붙인 듯 어색하고 심지어 교묘하다. 이 책의 실용적인 내용은 이 겉도는 제목 때문이 아니라 생생하고 풍부한 경험에서 비롯된 그 실질적 효용성으로 그 나름대로 빛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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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혜 창비아동문고 233
김소연 지음, 장호 그림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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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성적 인물들이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시련을 겪고 성장한다. 빼어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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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칼을 거두고 평화를 그려라 - 반전과 평화의 미술
박홍규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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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 속에서 열망처럼 깊고 뜨겁게 빛나는, 기억하고 싶은 메시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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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즐거움의발견>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 - 우울한 현대인이 되찾아야 할 행복의 조건
스튜어트 브라운 & 크리스토퍼 본 지음, 윤미나 옮김, 황상민 감수 / 흐름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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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제대로 놀고 있는가? 21세기 성공과 행복의 비밀은 바로 '플레이'다!'  

라는 카피를 달고, 그저 '잘 놀아야 행복해지고 성공도 할 수 있다'라고 하는 책이 나왔다. 행복해지긴 할 것 같은데 성공까지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할 사람들을 위해 생물학, 심리학, 진화론, 개인적 경험, 현자들의 지혜 들을 자유자재로 들이밀면서 놀이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설파한다. '미국 놀이연구소'라는 걸 설립했다든가, '미국 최고의 놀이 행동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평생 '놀이'연구에만 매달려왔다는 스튜어트 브라운 박사의 '놀이론'이다. '노는 거라면 늘 하는 건데?' 라는 사람에게보다, '나도 좀 제대로 놀 수 있으면 좋을텐데..'라는 사람이나 '놀기만 하면 성공은 언제?'라는 사람에게 확 안겨주고 싶은 책이다. 이런 책을 보고 잘 놀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역시나 노는 물도 좋아지고 놀 바닥도 넓어질 거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가장 크게 다가온 한 마디가 바로 공자 왈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이거니와, 아무래도 나는 '노는 거라면 늘 하는 건데?'라는 쪽에 가깝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깨달은 건 '내가 살면서 느끼는 근거없는 행복감의 정체가 혹시 노는 걸 좋아하기 때문?' 이라는 거였다.  내게 뭐 결코 성공까지는 제공하지 않더라도, 행복은 제공해준 놀이의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걸 보고 공감하며 왠지 '이쪽 방면으로는 이만하면 잘 살고 있다'는 뿌듯함이 느껴져서 맘껏 행복했다. ^^  증명이 되든 안되는 그렇게 믿고 살 수도 있을 거 같다.   

놀이란? '즐거움을 주고, 자의식과 시간 개념을 정지시키며, 목적이 없어 보이는 활동이다. 또한 놀이는 자꾸만 또 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게 만드는 활동이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노는 것'은 그러니까 아이들의 것만이 아니라 실은 인간의 평생에 필요한 것이다. 사실 우리는 '논다는 것'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던 것일까? 이 책에서 보여주는 '놀이의 효과', '놀이의 심리',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놀이의 의미'에 대한 여러 사례와 풀이를 들어보면 '이미 잘 놀면서 사는 사람'이나 '이제라도 잘 놀면서 살고 싶은 사람'에게도, 더욱 '노는 게 대체 뭐라고?'라는 사람에게는 꼭 짚고 넘어가야만 할 내용들이다. 사실상 앞으로의 생의 반짝임이 그 내용들에 달려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러 사례들, 여러 증명들 가운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생연장'이라는 거다. 인간의 유년기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유난히 길다. 내가 아이였을 적에는 몰랐는데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워보니까 아니 이건, 왜 이렇게 오래 손이 가야하는 거야? 도대체 언제가 되어야 독립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며 절로 탄식이 나왔다. 어쩌다보니 인간은 이렇게 오랫동안 돌봐줘야 하는 쪽으로 정착이 되었나 하고 불만이 컸었는데, 지은이가 '유생연장은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다'라고 한 말을 듣고 그 이면을 보게 되었다.  

인간의 유년기는 길다. 유년기의 연장은 인간의 기술적, 정신적인 능력을 숙달된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인간은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평생 놀이를 계속할 수 있는 본성을 갖게 되었다. 평생의 놀이는 인간의 복지와 적응, 사회적인 결속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유생연장은 문명, 예술, 음악의 발전을 촉진했다.  

인간은 모든 동물을 통틀어 제일 잘 노는 종이라고 한다. 물론 유생연장이라는 것도 유연하지만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인간이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이라면 그 특징이 가져다주는 장점을 즐기면 되는 것이겠지. 어린 시절은 무조건 놀고, 커서는 일하면서 놀고, 늙어서는 정리하면서 끝까지 놀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 그러니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다. 놀이가 일에 병행될 수만 있다면 그 능률과 효과는 최대한 커진다는 것도 여러 면에서 이미 증명이 되어 있다.  

그렇게 뭔가를 제대로 잘 하기 위해서도 놀이란 건 중요하다지만, 더 중요한 건 생에서 느끼는 행복감, 충만감 때문에 놀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깊은 교감, 진정한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도 놀이는 꼭 필요한 것이다.  

놀이가 결핍된 관계는 에베레스트 산의 산소가 부족한 구역을 오를 때처럼, 인내를 시험하는 장이 된다. 놀이의 기술이 없으면, 관계를 맺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스트레스를 처리할 방법도 거의 없다. 놀이가 없는 관계에 충성스러움, 한결같은 믿음, 책임감, 의무감 등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관계를 경쾌하고 만족스럽게 유지해주는 활기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 활기, 활기야말로 놀이의 핵심 요소다. 희열에 넘치는 순간 우리의 생은 반짝이고 의미는 배가된다. 생을 즐기고 있을 때 타인과의 유대를 위한 긍정의 손길을 내밀게 된다. 이 책이 말하는 바, "놀이의 효과를 제대로 알게 되면 인생에 흥분과 모험을 되살리고, 놀이를 중심으로 일을 연장시키고, 세상과 충만한 교감을 나누는 법을 배울 수 있다."라는 데 깊이 공감한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또 행복하게 만드는 문제에 대한 답으로 가는 길은 여럿이겠지만 이 길이 그 중에서도 '꽤 유용하고 다소 쉬운데다 제법 즐겁기까지 한' 길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이 책과 함께 찾아나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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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 여자, 당신이 기다려 온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1
노엘라 (Noella)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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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수많은 책들이 있어서 나름대로 그림을 보여주고 음악을 들려준다. 잘 보고 잘 들을 수 있도록 그림도 '읽어주고' 음악도 '읽어준다'. 그런데 노엘라는 한걸음 더 나간다.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이란다. 말이 그렇겠지, 진짜 그럴까? ^^ 

들어가보면, 아주 즐거운 체험이다. 노엘라는 음악인이면서 글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림은 또 언제? 싶은데 그것도 만만찮다. 왠 재능이란 말인가..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지만 ㅠㅠ , 그런 노엘라의 재능을 이 한 권의 책으로 즐길 수 있는 내 입장도 운이 좋은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직업으로도 음악하는 사람, 미술을 하는 사람들이 꽤 여럿인데, 그들을 통해 직접 음악과 미술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에는 특별한 재미가 있다. 음악하는 사람은 음악을, 미술하는 사람은 미술의 세계를 신선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들을 통해 나는 그 둘 다를 즐긴다. 당연히 내 안에서 그 두 가지는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다. 애호가들은 뭐든지 폭넓게 수용할 수 있다. 전문적이지 않아도 되고, 취향도 자유롭다. 어디에 매일 필요도 전혀 없다. 전문가들은 한 방향으로 깊겠지만 애호가들처럼 자유로이 즐길 수 있을까? 나는 애호가로서의 내 처지가 썩 맘에 든다. ^^ 

노엘라가 추천하는 대로 듣고 본다. 음악가와 미술가를 엮는 솜씨가 대단하다. 같은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들 중에서, 이렇게 골라내서 엮을 수 있다는 게 뒤로 갈수록 신기했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히 음악가와 화가에 공통점이 있다고 여겼는데, 뒤로 갈수록 필연만 같았다.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 말고도, 방대하고 섬세한 조사 끝에 이루어지는 필연.. 노엘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로 다른 화가와 음악가 그러나 서로 비슷한 메시지를 전하는 그들의 작품과 인생을 알아나가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 호기심으로 시작한 이 작업은 하면 할수록 마치 모래 속 숨은 보석을 발견한 것 같은 희열을 주었다.  

화가와 음악가들의 인생과 작품을 연구하고 곱씹는 관정에서 나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인생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고 되돌아보게 되었다. 또한 예술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하고 반문했다.  

그가 미국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바이올린에서 활로 표현하는 기법인 레가토, 스피카토, 등의 연주법을 학생들이 좀처럼 소화해내지 못하길래 생각끝에 내놓은 아이디어가 바로 ' 그 활을 붓이라고 생각하고 종이에다 연필로 그 연주기법을 그려보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활기차게 그 작업을 해냈고, 그렇게 그림그리기가 끝난 뒤에 다시 연주를 해보라고 했더니 놀랍게도 학생들의 기법이 한층 늘어 있었다고 한다. 소리를 시각으로 표현하니 이해가 더 잘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체험은 '음악을 전공하고 미술을 애호하는 작가인' 자신에게 새로운 시도를 하게 했을 것이다. 음악에서 그림을 느끼고 그림에서 음악을 느낄 수 있는 데다가 글로 표현하는 데 익숙한 노엘라의 새로운 시도가 이 책이다. 세 가지 모두 '애호'하는 내게는 그의 이런 시도가 반갑기 그지없다.  

모네와 드뷔시가 엮이고, 에곤 실레와 베르크가 어우러진다. 그들은 동시대를 호흡한 사람들이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가 한 물결을 탄다. 이만큼이나 시간이 지난 뒤에 마치 역사를 반추하듯 거슬러 그런 현상들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다. 그들, 화가와 음악가의 공통점이 그 시대에는 거론되었을까? 어쩌면 그 시대에는 그들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한 물결을 타고 그러다보면 여러 익숙한 공통점 중의 그저 하나일 뿐이었을까? 노엘라가 소개하는 여러 조합들이 다들 동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이어서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도 떠올랐다. 대체 고야와 베토벤은 서로 자신들이 그렇게 비슷한 점이 많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을까?  

베토벤과 고야의 시대는 나폴레옹의 시대였다. 베토벤의 역작인 영웅교향곡은 바로 나폴레옹을 대상으로 하여 열정적으로 작곡된 것이다. 결국 혁명의 영웅이기보다는 새로운 군주가 되어버린 나폴레옹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으로 그 작품은 새로운 제목을 달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이 왕위에 오른 뒤인 1808년, 스페인을 점령하고 반발하는 민중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고야는 <1808년 5월 3일>이라는 작품에서 나폴레옹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다. 시대가 만든 음악이고 그림인 셈이다. 베토벤도 고야도 처음부터 혁명적인 작품을 만들었던 예술가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초기 작품들은, 베토벤의 음악은 고전음악적인 듣기 편하고 차분한 것이었고 고야의 그림은 로코코 회화 양식의 밝고 행복한 특징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18세기 후반이라는 격동의 시대가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흐름에서 이 둘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각각 따로였을 때보다 훨씬 강렬하고 의미있게 다가왔다.  

적지 않은 화가와 음악가를 동시대의 공통점으로 엮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노엘라의 작업은 그런 점에서 돋보였고 흥미로왔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스스로가 소개하고 있는 작품들과도 긴밀하게 맞물리고 있는데, 그런 개인적 경험들이 바로 노엘라라는 지금의 작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어린 시절부터 유학길에 올라 외로웠던 경험, 음악이라는 쉽지 않은 여정, 젊은 시절의 풋풋하고도 뜨거운 사랑의 경험, 그리고 아픔의 기억들... 이런 삶의 궤적이 지은이에게 녹아 있는 것이어서 이 책은 풍성하지만, 반면 그 기억들이 그대로 그의 이야기 속에 드러나는 것이 다소 넘치는 느낌이 들었다. 지은이가 작품에 대한 체험과 개인적 경험의 기억들 속을 넘나드는데 그게 썩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과잉으로 느껴졌다. 마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자니 내가 그리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까지 듣는 듯한.. 사람마다 달리 느끼겠지만, 내게는 화가와 음악가의 조합이라는 것만으로도 아주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지은이의 개인적인 체험의 이야기 방식이 조금만 더 절제되었더라면, 이 책과 함께였던 시간이 내게는 훨씬 더 기분좋게 몰입할 수 있는 순간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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