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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 여자, 당신이 기다려 온 ㅣ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1
노엘라 (Noella)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이미 수많은 책들이 있어서 나름대로 그림을 보여주고 음악을 들려준다. 잘 보고 잘 들을 수 있도록 그림도 '읽어주고' 음악도 '읽어준다'. 그런데 노엘라는 한걸음 더 나간다.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이란다. 말이 그렇겠지, 진짜 그럴까? ^^
들어가보면, 아주 즐거운 체험이다. 노엘라는 음악인이면서 글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림은 또 언제? 싶은데 그것도 만만찮다. 왠 재능이란 말인가..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지만 ㅠㅠ , 그런 노엘라의 재능을 이 한 권의 책으로 즐길 수 있는 내 입장도 운이 좋은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직업으로도 음악하는 사람, 미술을 하는 사람들이 꽤 여럿인데, 그들을 통해 직접 음악과 미술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에는 특별한 재미가 있다. 음악하는 사람은 음악을, 미술하는 사람은 미술의 세계를 신선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들을 통해 나는 그 둘 다를 즐긴다. 당연히 내 안에서 그 두 가지는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다. 애호가들은 뭐든지 폭넓게 수용할 수 있다. 전문적이지 않아도 되고, 취향도 자유롭다. 어디에 매일 필요도 전혀 없다. 전문가들은 한 방향으로 깊겠지만 애호가들처럼 자유로이 즐길 수 있을까? 나는 애호가로서의 내 처지가 썩 맘에 든다. ^^
노엘라가 추천하는 대로 듣고 본다. 음악가와 미술가를 엮는 솜씨가 대단하다. 같은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들 중에서, 이렇게 골라내서 엮을 수 있다는 게 뒤로 갈수록 신기했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히 음악가와 화가에 공통점이 있다고 여겼는데, 뒤로 갈수록 필연만 같았다.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 말고도, 방대하고 섬세한 조사 끝에 이루어지는 필연.. 노엘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로 다른 화가와 음악가 그러나 서로 비슷한 메시지를 전하는 그들의 작품과 인생을 알아나가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 호기심으로 시작한 이 작업은 하면 할수록 마치 모래 속 숨은 보석을 발견한 것 같은 희열을 주었다.
화가와 음악가들의 인생과 작품을 연구하고 곱씹는 관정에서 나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인생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고 되돌아보게 되었다. 또한 예술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하고 반문했다.
그가 미국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바이올린에서 활로 표현하는 기법인 레가토, 스피카토, 등의 연주법을 학생들이 좀처럼 소화해내지 못하길래 생각끝에 내놓은 아이디어가 바로 ' 그 활을 붓이라고 생각하고 종이에다 연필로 그 연주기법을 그려보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활기차게 그 작업을 해냈고, 그렇게 그림그리기가 끝난 뒤에 다시 연주를 해보라고 했더니 놀랍게도 학생들의 기법이 한층 늘어 있었다고 한다. 소리를 시각으로 표현하니 이해가 더 잘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체험은 '음악을 전공하고 미술을 애호하는 작가인' 자신에게 새로운 시도를 하게 했을 것이다. 음악에서 그림을 느끼고 그림에서 음악을 느낄 수 있는 데다가 글로 표현하는 데 익숙한 노엘라의 새로운 시도가 이 책이다. 세 가지 모두 '애호'하는 내게는 그의 이런 시도가 반갑기 그지없다.
모네와 드뷔시가 엮이고, 에곤 실레와 베르크가 어우러진다. 그들은 동시대를 호흡한 사람들이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가 한 물결을 탄다. 이만큼이나 시간이 지난 뒤에 마치 역사를 반추하듯 거슬러 그런 현상들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다. 그들, 화가와 음악가의 공통점이 그 시대에는 거론되었을까? 어쩌면 그 시대에는 그들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한 물결을 타고 그러다보면 여러 익숙한 공통점 중의 그저 하나일 뿐이었을까? 노엘라가 소개하는 여러 조합들이 다들 동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이어서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도 떠올랐다. 대체 고야와 베토벤은 서로 자신들이 그렇게 비슷한 점이 많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을까?
베토벤과 고야의 시대는 나폴레옹의 시대였다. 베토벤의 역작인 영웅교향곡은 바로 나폴레옹을 대상으로 하여 열정적으로 작곡된 것이다. 결국 혁명의 영웅이기보다는 새로운 군주가 되어버린 나폴레옹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으로 그 작품은 새로운 제목을 달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이 왕위에 오른 뒤인 1808년, 스페인을 점령하고 반발하는 민중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고야는 <1808년 5월 3일>이라는 작품에서 나폴레옹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다. 시대가 만든 음악이고 그림인 셈이다. 베토벤도 고야도 처음부터 혁명적인 작품을 만들었던 예술가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초기 작품들은, 베토벤의 음악은 고전음악적인 듣기 편하고 차분한 것이었고 고야의 그림은 로코코 회화 양식의 밝고 행복한 특징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18세기 후반이라는 격동의 시대가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흐름에서 이 둘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각각 따로였을 때보다 훨씬 강렬하고 의미있게 다가왔다.
적지 않은 화가와 음악가를 동시대의 공통점으로 엮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노엘라의 작업은 그런 점에서 돋보였고 흥미로왔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스스로가 소개하고 있는 작품들과도 긴밀하게 맞물리고 있는데, 그런 개인적 경험들이 바로 노엘라라는 지금의 작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어린 시절부터 유학길에 올라 외로웠던 경험, 음악이라는 쉽지 않은 여정, 젊은 시절의 풋풋하고도 뜨거운 사랑의 경험, 그리고 아픔의 기억들... 이런 삶의 궤적이 지은이에게 녹아 있는 것이어서 이 책은 풍성하지만, 반면 그 기억들이 그대로 그의 이야기 속에 드러나는 것이 다소 넘치는 느낌이 들었다. 지은이가 작품에 대한 체험과 개인적 경험의 기억들 속을 넘나드는데 그게 썩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과잉으로 느껴졌다. 마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자니 내가 그리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까지 듣는 듯한.. 사람마다 달리 느끼겠지만, 내게는 화가와 음악가의 조합이라는 것만으로도 아주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지은이의 개인적인 체험의 이야기 방식이 조금만 더 절제되었더라면, 이 책과 함께였던 시간이 내게는 훨씬 더 기분좋게 몰입할 수 있는 순간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