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정원에서 리네아의 이야기 1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지음, 레나 안데르손 그림, 김석희 옮김 / 미래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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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리네아가 이번에는 모네의 정원으로 간다니. 리네아는 아파트 윗층에 사는 블룸 할아버지 댁에서 모네의 그림과 책을 보는 게 즐겁다. 이 책의 두 주인공 중 한 사람인 블룸 할아버지는 옛날에 정원사였단다. 내가 보기엔 리네아와 얼마나 죽이 잘 맞는지 모른다. (이런 할아버지가 가까이에 계시는 리네아는 얼마나 행복한가! 또 리네아 같은 아이를 옆에 두고 있는 할아버지는 얼마나 행복할까..)

보고싶다, 는 생각이 발전해서 드디어 프랑스의 모네 기념관까지, 모네의 생가까지 가게 된다. 그렇게, 설마 싶다가도 가만 생각하면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겠다 싶은 여행 이야기가 이 책이다. 이들은 아마 정말로 이 여행을 다녀와서 이 글을 썼겠지, 라고 철썩같이 믿는다.

'모네'를 만나러 가는 길. 모네의 그림이 많이 있는 마르모탕 미술관, 클로드 모네의 집이었던 기념관과 오랑제리 미술관을 다니면서 모네의 흔적을 밟는다. 그 과정에 생기는 소소한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아주 중요한 이야기거리들이다. 예를 들어, 에스메랄다 호텔 이야기라든가, 뤼 강가의 멋진 소풍, 열차... 수리중이라 폐쇄된 오랑제리 미술관 입구에서 울음을 터뜨린 바람에 특별히 관장의 허락을 받아서 걸작을 보게 되는 일, 살아있는 모네의 후손과의 만남 등등.

집에 돌아와서 리네아는 언제나처럼 멋진 게시판을 만든다. 거기에는 파리 여행에서 가져온 그림 엽서, 입장권과 차표, 비둘기 깃털 한 개와 장 마리 툴구아 할아버지의 사진 들이 핀으로 꽂혀있다. 우리는 그 게시판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이런 방식의 기행문은 어른인 나뿐 아니라 리네아 또래의 아이들에게도 정말 좋은 자극이 되리라 생각한다.

또다른 리네아 이야기인 꼬마정원을 보고 나와 내 딸, 아들이 함께 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올여름 방학이 되면 우리 가족도 이런 여행기를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너무너무 재미있는 여행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정말 사랑스런 리네아, 모든 아이들이 리네아가 누리는 것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그들의 삶은 반짝일까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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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할머니 중앙문고 45
파울 마르 지음, 유혜자 옮김, 프란츠 비트캄프 그림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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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하는 울리의 첫 기차여행! 두시간 동안 슈투트가르트 역에서 뮌헨 역까지 가야한다. 옆에는 누가 앉을 것인가? 제발 내 또래 아이나 아니면 멋있는 젊은 사람이랑 같이 가게 되면 좋겠는데...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할머니 옆에 앉게 된다. 울리는 기분이 좋지 않다. 그리고 두 시간의 기차 여행동안 대체 울리와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울리는 뮌헨 역에 마중나온 안네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안네 '너 굉장히 심심했겠다. 계속 저런 노인이랑 같이 타고 왔으니.'
울리 '심심해? 천만의 말씀!' '노인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놀아주시는데. 집에 갈 때도 저런 할머니랑 같이 타고 갈 거야.'

울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할머니는 아주 멋지고 자상하고 더없이 재미있는 분이다. 처음 기차를 타서인지, 울리는 기차표를 찾지 못해 허둥댄다. 차장은 당장 표를 찾아야지, 하고 채근한다. 할머니는 천천히, 하면서 차장에게 다른 곳에 먼저 갔다 오라고 한다. 그 사이에 찾아놓겠다면서. 그래놓고 차근차근 울리의 기억을 더듬어 벗어놓은 겉옷에서 울리의 기차표를 찾아주신다. 멋진 분이다.

울리는 그런 할머니에게 금세 마음이 열린다. 그렇게 울리가 마음을 열자 할머니는 마치 '그래 울리, 기다렸어-' 하시듯 재미있는 이야기를 끝없이 들려주신다. 할머니가 어릴 때 하셨다는, 울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은 사실 얼마나 재미있나. 게다가 할머니가 알고 계시는 놀이도 무궁무진하다.

말짓기 놀이는 이 책을 통해 나도 브뤼크너 할머니에게 배운 놀이이다. 할머니는 어릴 때의 기억을 되살려 동시도 들려주시고 신기한 거울놀이도 보여주신다. 울리는 이렇게 할머니에게 푹 빠져버린다. 아마 할머니는, 마음을 열고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도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실 것이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아마 들려주고 싶어도 들려주실 수 없겠지...

울리는 중요한 걸 알게 된 거다. 이 책을 보는 누구나 그걸 깨닫게 되겠지.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귀찮은 일도 아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로, 아직 내게는 할머니라 하면 저 먼 후일의 이야기로 생각되지만, 어느새 나도 할머니가 되겠지.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을 생각할 때, 이 이야기책에서 받은 할머니의 인상은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알고 그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무궁무진한 이야기거리를 그 삶을 통해 가지게 된 멋진 할머니. 실로 나이든다는 것은, 늙어서 쇠잔해 가는 것이 아니라 생의 경험을 차곡차곡 더해가는 것이리라. 나도 나중에 브뤼크너 할머니처럼 여유롭고 멋진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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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비룡소의 그림동화 5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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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거의 맨 먼저 알게 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작가가 존 버닝햄이다. 그만큼 작품이 널리 알려졌고 어린이들이 좋아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내 생각에는, 존 버닝햄의 책들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꽤 좋아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야 그들 나름대로 그림책을 맛보며 즐기는 것이고, 어른들은 이 작가의, 그림책 형식의 발언을 음미한다고 할까. 메시지를 되새기며 느껴지는 그 깊이를 즐긴다고 할까.

그는 그의 그림책이라는 것을 그림에서 드러내는 작가다. 많은 그림책에서 비슷한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현실과 아이들 내면에서나 가능한 환상의 세계가 번갈아 나타난다든가, 한면은 선으로 한면은 채색된 그림으로 배치한다든가, 햇살이 쫘-하니 퍼져나가는 그림이 자주 나온다든가, 거의 언제나 어른들이란 아이들의 환상과 소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이들로 나온다든가....

이 책은 그의 여러 작품들 중 내가 맨 처음 본 그림책이다. 지금도 나는 이 그림책을 처음 보았을 때의 놀라움과 기쁨, 선득한 느낌을 잊지 못한다. 아이는 기차놀이를 좋아한다. 잠자리에 들기 싫은데 내일 학교에 가야 하니 그만두고 자야 한다. 그리고.... 한밤 내 아이는 소원대로 밤새 혹은 몇날 몇일을 기차놀이만 있는 꿈같은 세상에서 보낸다.

기차놀이의 내용도 풍부하기도 하다. 소풍도 가고, 유령놀이도 하고, 강에서 헤엄을 치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연도 날린다. 비가 오면 우산 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도 참,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아닌가. 이렇게 한바탕씩, 해방과도 같은 놀이를 하고 기차로 돌아오면 하나씩 쭈뼛거리며 등장하는 동물들. 사람들이 온갖 자연상태를 다 파괴해가니 도대체 살아갈 수가 없다는 호소력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선 낯선 동물이 우리 기차를 침범하니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했던 친구들도 그 동물들의 호소에 금세 마음이 열리고 돕고싶어진다. '그럼 같이...' 이렇게 모든 등장하는 동물들이 친구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반복과 적당한 차이로 인해 아주 즐겁다. 넉넉한 품의 기차도 흐뭇하다. 여기, 이런 자연의 친구들이 자기 땅에서 더이상 못 살게 만드는 위험천만한 사람들은 역시 어른들이다.

지칠 줄 모르는 기차놀이도 끝나고 '내일 학교에 가야하는' 걸 기억하고는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다는 아이, 환상과 현실의 교차점을 지나 어느새 엄마가 곤히 자는 아이를 깨운다.'학교에 늦겠다'며. 엄마와 같은 어른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아이의 꿈에서나 가능할 한바탕의 놀이는 끝나고 다시 아침이 돌아온 것일까... 아쉬워라... 하는 생각이 드는데 웬걸, '그런데 우리 집에는 웬 동물이 이리 많은거니? 현관에는 코끼리가, 목욕탕에는 물개가, 세탁실에는 두루미가 계단에는 호랑이가, 그리고 냉장고 옆에는 북극곰이 있더구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라고 묻는 엄마의 뚱한 표정을 보면서 드는 생각, '에잉?'

존 버닝햄은 많은 작품에서 어른과 어린이를 철저히 가르는 작가다. 어른들은 모른다. 어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는게 마치 이 작가의 고정관념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작품에서가 아니라 많은 작품에서 그렇다) 어른들은 대개 아이가 알고 드나드는 환상의 세계를 드나들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이 책의 마지막에 아이의 엄마도 '그게 무슨 일이니?' 라고 묻는다.

하지만 이 대화를 나는 정말 좋아하는데, 엄마는 문 앞에 서서 마치 너의 그 세계를 들여다 보고 싶다는 듯,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기다리고 서 있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너는 알테니 내게도 알아듣게 얘기 좀 해주라는 듯. 그렇게 물어주는 엄마를 그려 준 것만으로도 어쩐지 어른에 대해 많이 배려해준 듯한 느낌으로 오는 것이다. 존 버닝햄의 그림책을 볼 때마다 어른인 나는 소외감을 느끼는데, 이 책에서는 드디어 조금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마저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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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읽어주는 남자 - 오페라 속에 숨어 있는 7가지 색깔의 사랑 이야기 명진 읽어주는 시리즈 2
김학민 지음 / 명진출판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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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점점 더 재미있어진다. 문화유산 제대로 보게 도와주는 학자, 신화 읽어주는 소설가, 그림 읽어주는 여자, 건축읽기, 영화 더 재밌게 보기, 재즈 이야기 등등 궁금했던 걸 모두모두 친절하게 풀어주는 사람들이 나온다. 드디어 오페라를 읽어주는 남자도 나왔다. 이런 책을 읽다보면, 이런 저런 조언들을 들으면서 한번 그 세계를 엿보는 경험을 하고 돌아나오게 된다. 잘 쓰인 책들은 향기도 강하고, 그 여운이 오래 가서 실로 책을 통해 만난 그 세계를 3차원의 현실세계에서 겪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오페라 읽어주는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한번도 구경 못한 오페라 구경이 하고 싶어진다. 내가 사는 이곳 시골에서는 오페라 공연이라고는 일년내 한번도 구경하기 어렵지만, 마음 단단히 먹으면 가까운 도시로 오페라 나들이를 할 수도 있는 곳이다. 하지만, 오페라가 어디 그리 호락호락 우리에게 그 즐거움을 나눠주기나 할 것인가?

무슨 내용인지 말이 통해야 알아듣지... 무대나 의상같은 볼거리도 있고, 음악이 있으니 완전히 외국말로 하는 부조리극 같은 수준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디 지존의 오페라가 그 속내를 나같은 문외한에게 드러내 줄건가 말이다... 하면서 오페라 구경은 뒷전이었다. 오페라가 나를 거부한 건지 내기 오페라를 거부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지.

그래도 클래식 음악 듣기를 좋아하고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첨부터 끝까지 씨디로 들은 것만도 수십번이리라. 내용은 대충 알고, 누가 노래하는지 알고, 실제로 무대에서 공연되는 것은 한번도 본 적 없지만 수록된 노래들은 노랫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지던가! 하여 오페라 읽어주는 남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 같다. 아름다운 오페라, 어떻게 하면 그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을까 하여.

이 책은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오페라도 마음 먹으면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준다. 즐길 수 있을 만큼의 훈련만 거치면 그야말로 거침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환상(?)도 준다. 오페라의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배경과 돌아가는 이야기를 알고 거기 나오는 노래를 알고 나면, 뭐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오페라를 여러 연출가와 여러 가수들로 만날 수 있다면 더더 재미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노래라는 것은 좀 아는 걸 들어야 즐겁지 않던가.

이 책은 오페라의 사랑 이야기를 작가의 생각대로 풀어주고 있는데, 그 보편적인 사랑이야기가 나와 같은 오페라'치'에게도 오페라를 흥미롭게 여기게 만들어 준다는 걸 어떻게 간파했을까?

많은 영화나 연극들이 사전 준비가 없이도, 일상을 살아나가는 것만으로도 언제 어느때나 불쑥 즐길 수 있는 것이지만, 오페라는 조금의 준비만 한다면 역시 한껏 즐길 수 있는 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학민씨의 안내로 오페라 공연장에 발 들여놓을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에 한 즐거움을 더해줄지도 모르는 이런 시도가 반가웠고, 이렇게 재미나게 더 많은 오페라를 준비작업으로 우선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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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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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건축사인지라 집에서 굴러다니는 잡지들을 어깨넘어 보는데, 완전히 문외한인 이 분야가 어쩐지 흥미가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 그 분야에 문외한이든 아니든, 우리는 하여간 온갖 건축물 안에서 살고 있지 않나. 알든 모르든 그 안에서 우리의 삶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거다. 아마 그때부터, 건축물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 설계를 한 사람이 건축물을 통해 하고 있는 말, 이런 것들에 관심이 갔을 것이다.

마침 건축과 교수인 지인이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한때, 일반인을 위한 건축에 대한 책으로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면서. 잘됐다, 하면서 구해서 보았다.

정말, 일반인을 위한 건축 해설서이다. 문외한인 내게도 감이 오도록 쓰여져 있다. 비례, 공간이 나오고 벽돌, 콘크리트, 유리 등의 소재가 나오고 구조가 나온다. 특히 흥미로왔고 환상적으로까지 느껴진 부분은 빛과 그림자의 이야기였다(그 부분은 거의 시와 같다). 이어 건축과 이데올로기라는 장에서는 건축물이나 디자인의 그 일차적 해석을 넘어선 숨은 이야기로 이어진다.

건축가가 해설해주는 건축의 이데올로기! '건축가들이 철저히 가치 중립적인 공간, 단지 시각적인 매력을 갖는 공간만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건축이 사람을 담는 그릇이라고 표현되는 것척럼 공간은 단지 바라보기 위한 대상이 아니다.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과 생활, 그리고 그 사회의 부대낌을 담는 그릇이 된다. 이리하여 건축은 건축가가 공간으로 표현하는 시대정신이 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그 시대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잘 지어졌다는 총독부 청사도 민족의 정기를 흐리기 때문에 허물어야 된다면서 일단 허물어버린다. 일단 허물고 난 건축물은 나중에 그 진가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더라도 다시 살려낼 수 없는 법이다.

아무리 '오히려 뼈아픈 역사를 담아내고 있는 교훈적인 건물, 언제나 그 시대의 아픔을 철저히 곱씹어볼 수 있는 산 교육장으로서의 가치를 고려하자'는 이야기가 쏟아져나와도, 그러나 이 사회는, 충분히 심사숙고해야 될 일도 일단 흥분상태에서 밀어붙이고 만다. 여러가지 반론, 서로 다른 의견들, 이런 논의가 생략된 채 성급히 이루어지는 이런 일들이 건축물의 생사를 규정짓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을 보다보니 그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내게 있어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이 책이 아주 감미롭고 향긋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건축을 이야기하는 글쓴이의 나즉나즉하되 깊은 내공이 실린 안내들은, 그의 빼어난 문학적 소양의 힘을 빌어 그대로 향기로운 글이 된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라는 그의 조언은, 오히려 그의 건축에 대한 책, 이 책을 마치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고, 시처럼 느끼게 만들기까지 한다.

적재적소에 명쾌하게 실린 사진들은 그의 말을 드러내는 간단 명료하고 더할 것 뺄 것이 없는 도구가 되어준다. 이 책의 저자가 설계했다는 빛의 교회의 사진을 보며 지은이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그대로 느낌으로 왔다. 빛의 교회의 사진은 이 책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사진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 책을 보고나서 건축가 김석철이 쓴 몇권의 책과 가우디에 대해 나온 몇권의 책들을 이어 읽으면서 건축은 점점 내게 그 맛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건축을 눈여겨 보라고 하면서 제일 먼저 권해주는 책은, 언제나 한결같이 이 책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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