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비룡소의 그림동화 5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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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거의 맨 먼저 알게 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작가가 존 버닝햄이다. 그만큼 작품이 널리 알려졌고 어린이들이 좋아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내 생각에는, 존 버닝햄의 책들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꽤 좋아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야 그들 나름대로 그림책을 맛보며 즐기는 것이고, 어른들은 이 작가의, 그림책 형식의 발언을 음미한다고 할까. 메시지를 되새기며 느껴지는 그 깊이를 즐긴다고 할까.

그는 그의 그림책이라는 것을 그림에서 드러내는 작가다. 많은 그림책에서 비슷한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현실과 아이들 내면에서나 가능한 환상의 세계가 번갈아 나타난다든가, 한면은 선으로 한면은 채색된 그림으로 배치한다든가, 햇살이 쫘-하니 퍼져나가는 그림이 자주 나온다든가, 거의 언제나 어른들이란 아이들의 환상과 소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이들로 나온다든가....

이 책은 그의 여러 작품들 중 내가 맨 처음 본 그림책이다. 지금도 나는 이 그림책을 처음 보았을 때의 놀라움과 기쁨, 선득한 느낌을 잊지 못한다. 아이는 기차놀이를 좋아한다. 잠자리에 들기 싫은데 내일 학교에 가야 하니 그만두고 자야 한다. 그리고.... 한밤 내 아이는 소원대로 밤새 혹은 몇날 몇일을 기차놀이만 있는 꿈같은 세상에서 보낸다.

기차놀이의 내용도 풍부하기도 하다. 소풍도 가고, 유령놀이도 하고, 강에서 헤엄을 치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연도 날린다. 비가 오면 우산 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도 참,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아닌가. 이렇게 한바탕씩, 해방과도 같은 놀이를 하고 기차로 돌아오면 하나씩 쭈뼛거리며 등장하는 동물들. 사람들이 온갖 자연상태를 다 파괴해가니 도대체 살아갈 수가 없다는 호소력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선 낯선 동물이 우리 기차를 침범하니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했던 친구들도 그 동물들의 호소에 금세 마음이 열리고 돕고싶어진다. '그럼 같이...' 이렇게 모든 등장하는 동물들이 친구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반복과 적당한 차이로 인해 아주 즐겁다. 넉넉한 품의 기차도 흐뭇하다. 여기, 이런 자연의 친구들이 자기 땅에서 더이상 못 살게 만드는 위험천만한 사람들은 역시 어른들이다.

지칠 줄 모르는 기차놀이도 끝나고 '내일 학교에 가야하는' 걸 기억하고는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다는 아이, 환상과 현실의 교차점을 지나 어느새 엄마가 곤히 자는 아이를 깨운다.'학교에 늦겠다'며. 엄마와 같은 어른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아이의 꿈에서나 가능할 한바탕의 놀이는 끝나고 다시 아침이 돌아온 것일까... 아쉬워라... 하는 생각이 드는데 웬걸, '그런데 우리 집에는 웬 동물이 이리 많은거니? 현관에는 코끼리가, 목욕탕에는 물개가, 세탁실에는 두루미가 계단에는 호랑이가, 그리고 냉장고 옆에는 북극곰이 있더구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라고 묻는 엄마의 뚱한 표정을 보면서 드는 생각, '에잉?'

존 버닝햄은 많은 작품에서 어른과 어린이를 철저히 가르는 작가다. 어른들은 모른다. 어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는게 마치 이 작가의 고정관념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작품에서가 아니라 많은 작품에서 그렇다) 어른들은 대개 아이가 알고 드나드는 환상의 세계를 드나들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이 책의 마지막에 아이의 엄마도 '그게 무슨 일이니?' 라고 묻는다.

하지만 이 대화를 나는 정말 좋아하는데, 엄마는 문 앞에 서서 마치 너의 그 세계를 들여다 보고 싶다는 듯,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기다리고 서 있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너는 알테니 내게도 알아듣게 얘기 좀 해주라는 듯. 그렇게 물어주는 엄마를 그려 준 것만으로도 어쩐지 어른에 대해 많이 배려해준 듯한 느낌으로 오는 것이다. 존 버닝햄의 그림책을 볼 때마다 어른인 나는 소외감을 느끼는데, 이 책에서는 드디어 조금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마저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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