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히르벨이었다 일공일삼 13
페터 헤르틀링 지음, 고영아 옮김, 에바 무겐트할러 그림 / 비룡소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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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페터 헤르틀링의 책으로는 세번째로 읽은 책이었는데 역시 그이의 글이로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와 <욘 할아버지>, 그리고 <히르벨>. 그리고 결코 지나친 감상에 빠지지 않는 담담한 목소리.

이 책 <히르벨>에서는 병원과 아동 보호소를 오가는 약한 아이 히르벨을 통하여, 그런 아이들이 있다는 것과, 좀 더 자세히 히르벨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어떻게 하면 히르벨과 같은 아이가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를 함께 생각해보게 된다면 좋겠다는 희망을 말한다.

분명히 히르벨은 우리같은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건강하지 못하고 오갈 데도 없는 아이이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같은 일반인과 다른, 자신의 독자적인 삶의 양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히르벨은 양떼들에 둘러싸여 아프리카를 느끼고 온순한 사자들에 둘러싸인 채 편안한 잠을 잔다. 아이들을 괴롭히고 싫어하는 쇼펜슈테허를 몇번인가 계획을 세워 곯려먹는다. 다시는 자기를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놀랍도록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히르벨은, 자신만만한 오르간 연주자 쿤츠씨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한다. 히르벨의 노래는 오르간 반주가 필요없이, 오직 히르벨의 목소리만으로 완성된다. 히르벨이 그토록 적응하기 어려워했던 일들은, 적응하지 않음으로써 간단히 해결되어버린 것이다. 다행히 사람들은 끝까지 적응시키려 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히르벨은 다정한 카룰루스 의사선생님에게 양아들로 가고 싶어서 여러가지 노력을 한다. 물론 세명이나 되는 양 아이들을 이미 데리고 있는 다정한 의사선생님은 더이상 히르벨을 받아들일 처지가 아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히르벨은 더이상의 꾀병을 포기하고만다..

어느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집을 나선 히르벨은, 결국 경찰관에 이끌려 병원으로 간다. 그리고 또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고... 보호소의 남은 아이들은 히르벨 이야기를 한다. 한참 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히르벨을 귀여워 했던 마이어 선생님은 히르벨을 기억한다. 마음 속으로 '그애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 책의 끝이다.

그리고 덧붙여지는 저자의 후기. 저자는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히르벨 같은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진정으로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관심을 가져야 한단다' 라고. 그런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그런 아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이 책을 덮으며 나도 저자와 같은 마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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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의 노래 - 어린이를 위한 인생이야기 7 어린이를 위한 인생 이야기 26
미스카 마일즈 글, 피터 패놀 그림, 윤태영 옮김 / 새터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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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마치 이 생이 전부인 듯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에게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고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고요한 울림은 짧은 순간일지라도 우리의 삶의 방식을 흔들어 놓는다. 너희들은 정말 그렇게 사는 것이 좋은가? 라고 묻고 있는, 깨달은 자의 안타까운 바라봄이 느껴져 괜히 낯이 뜨거워진다.

애니의 노래는 내용이 많은 그림책이다. 아니 혹은 그림이 많은 이야기책이다. 내용 뿐만 아니라 그림이 단단히 한 몫을 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더 생생하고 더 친근하다. 나바호 인디언 소녀 애니의 집에는 애니와 할머니, 엄마 아빠가 단촐한 삶을 산다. 나무와 흙으로 만든 호간이라 부르는 집에 살고 농사도 짓고 카페트도 짜고 공예품을 만들어 팔기도 하면서 아메리카 서부의 한정된 땅에서 새로운 고요한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서 살아가고 있다.

스쿨버스를 타고 가는 학교에서 백인 선생님에게 지정된 교육을 받으며.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 홀로 뚝 떨어진 호간에서, 같은 사람들끼리, 호박과 옥수수가 익어가는 것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는, 인디언의 삶이 유지되는 삶을 산다. 가족간의 친밀함, 조용조용히 할 일들을 모두 알아서 하고 있는 지혜로움, 어머니인 대지에 깃들어 살아가는 모습들이 보인다.

어느날 할머니가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모두에게 알린다. '지금 짜고 있는 카페트가 완성될 무렵에는 어머니인 대지로 돌아갈 것이다.' '유품으로 간직할 만한 것을 하나씩 말해보아라.' 모든 일들이 진실함과 고요한 통찰 가운데 일어난다. 단지 애니만이 도저히 할머니와의 난데없는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다. 애니는 어머니가 묵묵히 짜고 있는 카페트를 그냥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다.

애니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엄마가 짜고 있는 카페트가 완성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는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부탁하지도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지만, 그리 성공적이지가 않다. 카페트는 무정하고 답답하게도 날로 높아만 간다. 마지막으로 밤마다 나가서 카페트를 날마다 조금씩 풀어헤치는 애니, 그러나 며칠 후 드디어 할머니가 그런 애니를 부른다.옥수수 밭을 지나 하늘과 사막이 만나는 아득한 곳을 바라보며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듣는다.

'애니야, 너는 시간을 돌려보려고 하는 거란다. 그러나 그렇게는 할 수 없단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대지로부터 생겨나 대지로 돌아가는 것이란다.' 애니는 그때, 신비로운 느낌으로 할머니도 애니도, 시들어가는 꽃잎도 모두 다 대지의 일부분이고 앞으로도 줄곧 그러하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판화인 듯 싶은 아름답고 고요한 그림들이 마치 정지한 순간에 사색을 요구하는 것처럼 펼쳐진다. 검정과 흰 색 외에 단 두가지의 색으로 만들어내는 절제된 풍요함도 인상적이다.

1971년에 미스카 마일즈가 'Annie and The old one' 이라는 원제로 만든 책이다. 일상적인 삶의 쳇바퀴에 한순간의 멈춤을 요구하는 듯한 그림책, 지혜로운 다른 삶의 양식을 잔잔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인상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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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의 딸 로냐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11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이진영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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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재미있었다. 린드그렌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참 명성이 자자한 작가는 그냥 그 명성을 얻는 것이 아니구나, 작품으로 평가받을만 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책, <산적의 딸 로냐>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혼잡한 세상을 훌쩍 벗어나 온갖 상상의 신기한 생물들(회색난장이, 비트로나, 룸프니스, 요물..)이 예사롭게 등장하는 깊은 숲속 요새에서,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두 무리의 산적들, 게다가 로미오와 줄리엣인 양 원수의 집안의 자식들, 이 정도만으로도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가 넘친 것 같다. 그러나 그뿐일까? 절대!!

숲을 사랑하는 숲의 아이 로냐와 비르크, 사려깊고 순수하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들의 모습이 책을 읽는 내내 얼마나 나를 흐뭇하게 해 주었는지 모른다. 어찌할 바 없는 원수의 집안이건만, 아이라고는 그들 단 둘 밖에 없는 환경에서 그들은 필연적으로 가까와진다. 게다가 숲의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라!

두려움을 가지고는 가까이할 수 없는 숲과, 험난하고 외딴 그들의 삶터인 요새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서로의 생명을 구해줄 만큼의 강인함을 지녔다. 그 강인함은 나중에 로냐와 비르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어른들의 반목을 훌쩍 벗어나, 숲에서의 생활을 택할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기도 하다. 역시나 자연의 아이들, 로냐와 비르크는 반목, 질시, 불화, 투쟁 이따위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설령 알게 되더라도 그들은 그 부조리한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버지일지라도! 로냐와 비르크는 사랑하는 그들의 터전, 그들의 요람을 떠난다. 그들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부조리한 삶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우리는 맹목적인 증오를 원치 않는다고.

로냐가, 산적이 어떤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그 아이는 이렇게 묻는다. '그러면 자기들의 것을 빼앗긴 사람들이 괴로와 하지 않나요?' 물론 그렇지! 라고 하자, 로냐는 자기가 더이상 그런 삶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말할 수 없이 다감하고도 사려깊고, 야생마처럼 자유롭고, 숲을 휘도는 폭포만큼 강인한 아이, 로냐. 그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들여다 보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두 산적 패거리는 아이들로 하여 자기들의 길을 튼다. 결투 끝에 화합의 방식을 찾고, 함께 공존의 길을 간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신들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고... 그리고 봄이 온다. 푸른 덤불마다 생기가 넘치고 아이들도 생기가 넘친다. 재잘대는 새소리, 흐르는 시내의 소리, 여기저기서 들리는 거친 봄의 소리마냥 로냐와 비르크도 거친 봄의 아이들이다. 로냐는, 숲 속 저 멀리멀리까지 울려 퍼질만큼 크게, 봄의 함성을 지른다.

린드그렌의 책에 도맡아 그림을 그린다는 비클란드가 표현한 로냐와, 숲과, 숲 속 생물들과 곰굴... 들은 얼마나 이 책을 더 빛나게 하는지 모른다. 작가와 삽화가, 이 두사람들에 힘입어, 산적들도 사랑스럽고, 로냐의 아빠인 거친 산적 두목 마티스와 현명하고 다정한 엄마 로비스, 말라깽이 페르까지도 싱싱한 생명을 얻고 살아나는 것 같다. 읽는 내내, 어떻게 이 거친 산적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우아하고도 고귀하게 들리는지 믿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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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
J.K.피터슨 지음, 박병철 옮김, Deborah Kogan Ray 그림 / 히말라야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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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았을 때, 마치 지금 저 앞에 붉은 노을이 저녁 하늘을 물들이고 있듯이( 내 방 창에서 해지는 서녘 하늘이 보인다), 내 몸 내 마음이 저렇게 붉은 노을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말할 수 없이 신비롭고, 고요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조용조용 내동생은... 이라고 말하고 있는 그, 특별한 동생에 관한 이야기.

많은 이들에게 청각장애아의 일상을 너무나 특별하게 아름다운 방식과 지혜로운 태도로 보여주어서, 그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어린아이의 입을 통하여, 직설적이고도 단순하게. 글을 쓴 이와 그림을 그린 이들의 조화도 놀랍다. 이 글과 그림에는 완전히 몰입하게 하는 특별한 힘이 있는 듯하다. 정말 그림과 글의 이야기가 더없이 조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글을 쓴 이나 그림을 그린 이에 대한 설명 하나 없는 책에 대해서는아쉬움이 남는다. 번역도 너무나 시적이었고, 전반적으로 책의 느낌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지만, 출판사 쪽의 배려로 책 뒤에 덧붙여진 원문을 보다가 보니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번역은 너무 아름답다. 하지만 가끔... 간결한 원작의 맛을 넘어서버리는 게 아닐까.

예를 들어, 내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하지만 너무나 사랑스런/ 동생이 있습니다. 원문에는 이랬다.I have a sister. / My sister is deaf.

번역자는 분명 의도적으로 <사랑스런> 부분을 부가했겠지만, 그렇게 해서 더 좋아진 걸까? 원작자의 의도는 고려했을까? 많은 글들에서 자상하고 친절한 설명은 내게서 여운의 묘를 앗아가 버린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조금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원본을 실어서 함께 볼 수 있게 해준 출판사 쪽에 대해서는 특별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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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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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거인의 세계... 맑고 고요하고, 순수한 세계. 그들의 피부에는 그들의 역사가 그려진다. 그들의 피부는 대기의 미세한 변화에도 반응한다. 살랑거리는 미풍에도 몸을 떨고, 금갈색 태양 빛에도 이글거리고, 호수의 표면처럼 일렁거린다. 그들은 피부로 말을 할 줄 모르는 루트모어, 작은 인간을 한없이 애처롭게 여긴다. 거인의 삶은 거인의 피부에 그대로 축적이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그림은 거인의 세계를 신비롭게 보여준다. 정말 거인이 살고 있는 곳, 저 먼 곳, 끝간데 없이 뒤적거리는 작은 인간들을 피해 고요와 평화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곳. 보는 것 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탈라의 깊이 모를 심연의 목소리,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별을 꿈꾸던 아홉명의 아름다운 거인과 명예욕에 눈이 먼 못난 남자, 의 이야기이면서 결국은 어머니인 이땅, 지금도 가쁜 숨은 토해내며 끊임없이 신음하고 있는 초록별, 그 생명의 근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땅이 가진 원래의 생명력과 그 생명의 노래들을 서서히 잠재우려는 눈먼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렇게 장엄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로 들려줄 수 있다니... 그 신비로운 이야기의 비극적 결말이 또 하나의 눈먼 인간인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지금도 땅과 대기와 강, 곳곳에서 그 미지를 파헤쳐진 채 쓰려져있는 마지막 거인들의 아픔이 가득 울린다. 우리의 먼 눈은 언제, 어떻게 떨어질 수 있는 걸까. 더 많은 사람들이 거인의 아픔을 보았으면, 많은 사람들이 자연에다 자신이 찍고 있는 발자국을 뒤돌아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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