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의 노래 - 어린이를 위한 인생이야기 7 어린이를 위한 인생 이야기 26
미스카 마일즈 글, 피터 패놀 그림, 윤태영 옮김 / 새터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여기서, 마치 이 생이 전부인 듯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에게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고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고요한 울림은 짧은 순간일지라도 우리의 삶의 방식을 흔들어 놓는다. 너희들은 정말 그렇게 사는 것이 좋은가? 라고 묻고 있는, 깨달은 자의 안타까운 바라봄이 느껴져 괜히 낯이 뜨거워진다.

애니의 노래는 내용이 많은 그림책이다. 아니 혹은 그림이 많은 이야기책이다. 내용 뿐만 아니라 그림이 단단히 한 몫을 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더 생생하고 더 친근하다. 나바호 인디언 소녀 애니의 집에는 애니와 할머니, 엄마 아빠가 단촐한 삶을 산다. 나무와 흙으로 만든 호간이라 부르는 집에 살고 농사도 짓고 카페트도 짜고 공예품을 만들어 팔기도 하면서 아메리카 서부의 한정된 땅에서 새로운 고요한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서 살아가고 있다.

스쿨버스를 타고 가는 학교에서 백인 선생님에게 지정된 교육을 받으며.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 홀로 뚝 떨어진 호간에서, 같은 사람들끼리, 호박과 옥수수가 익어가는 것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는, 인디언의 삶이 유지되는 삶을 산다. 가족간의 친밀함, 조용조용히 할 일들을 모두 알아서 하고 있는 지혜로움, 어머니인 대지에 깃들어 살아가는 모습들이 보인다.

어느날 할머니가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모두에게 알린다. '지금 짜고 있는 카페트가 완성될 무렵에는 어머니인 대지로 돌아갈 것이다.' '유품으로 간직할 만한 것을 하나씩 말해보아라.' 모든 일들이 진실함과 고요한 통찰 가운데 일어난다. 단지 애니만이 도저히 할머니와의 난데없는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다. 애니는 어머니가 묵묵히 짜고 있는 카페트를 그냥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다.

애니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엄마가 짜고 있는 카페트가 완성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는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부탁하지도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지만, 그리 성공적이지가 않다. 카페트는 무정하고 답답하게도 날로 높아만 간다. 마지막으로 밤마다 나가서 카페트를 날마다 조금씩 풀어헤치는 애니, 그러나 며칠 후 드디어 할머니가 그런 애니를 부른다.옥수수 밭을 지나 하늘과 사막이 만나는 아득한 곳을 바라보며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듣는다.

'애니야, 너는 시간을 돌려보려고 하는 거란다. 그러나 그렇게는 할 수 없단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대지로부터 생겨나 대지로 돌아가는 것이란다.' 애니는 그때, 신비로운 느낌으로 할머니도 애니도, 시들어가는 꽃잎도 모두 다 대지의 일부분이고 앞으로도 줄곧 그러하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판화인 듯 싶은 아름답고 고요한 그림들이 마치 정지한 순간에 사색을 요구하는 것처럼 펼쳐진다. 검정과 흰 색 외에 단 두가지의 색으로 만들어내는 절제된 풍요함도 인상적이다.

1971년에 미스카 마일즈가 'Annie and The old one' 이라는 원제로 만든 책이다. 일상적인 삶의 쳇바퀴에 한순간의 멈춤을 요구하는 듯한 그림책, 지혜로운 다른 삶의 양식을 잔잔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인상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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