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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수저 - 윤대녕 맛 산문집
윤대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 MC의 입을 통해서, 자막을 통해서 infotainment라고 떠들어대는 오락 프로그램을 보다가 부아가 나서 채널을 돌려 버린 일이 있었다. '1% 위원회'라고 거창하게 이름붙인 그 꼭지는 도대체 어떤 정보와 오락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잘 나가는 여성 MC가 2억 원짜리 다이아반지를 끼고 "이거 사주세요." 라며 남성 MC에게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걸 보고 웃음은커녕 화가 난 건 비단 나 뿐은 아니었던 것 같다. 혹시나 싶어 시청자 게시판을 보니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시청률에 울고 웃는 PD들, 인기여부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는 연예인들에게 진정한 ‘정보+오락’ 프로그램을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인 것도 같은데 전파만 낭비하는 이런 프로그램을 대체할 수 있는 게 바로 문학작품이 아닌가 싶다. 늘 하기 힘들다면 가끔이라도 허공에 하릴없이 전파만 쏘아대는 TV를 끄고 이런 책 한 권 읽으면서 머리를 맑게 해줄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윤대녕은 산문집을 다양하게 냈다. 여행 산문집, 연작 산문집을 거쳐 이번에는 맛 산문집이다. 여행 산문집인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과 함께 이 책은 제대로 된 정보와 재미를 선사한다. 아주 흥미진진하다. 어디 가서 내가 우리나라 먹을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 싶다. 옛 문헌 등을 참고로 했고, 그에 작가 자신의 입맛, 경험과 더불어 어부의 이야기까지 더해졌으니 글은 모두 생생하다. 펄떡펄떡 뛰는 생선 같다. 작가 자신이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터라 더욱 그러하다.
윤대녕의 작품세계를 보통 ‘존재의 시원으로의 회귀’라고 한다. 윤대녕의 작품을 많이 읽긴 했지만, 책장을 덮으며 “아~ 좋네. 다음엔 어떤 내용일까?” 한두 마디 내뱉고 끝인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공감하기 어려웠는데, 이 책을 다 덮고 나니 ‘존재의 시원으로의 회귀’가 문득 떠올랐다.
수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마지막에 다시 수저와 어머니를 함께 떠올리는 글은 명상을 한 듯 평온하게 만든다.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 이만큼 자랐으니 다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갈 순 없을지라도 고단한 삶을 사신 어머니를 위해 정갈한 밥상을 대접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고, 보람일 것이다. 어머니께 따뜻한 차라도 한 잔 타드리고 싶은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