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여행자, 윤대녕, 2003

 

내가 품절도 안 된 윤대녕의 책 감상을 페이퍼에 쓰다니... 이거 제대로 읽었으면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 같다. 요즘 머리가 좀 복잡한 관계로 열흘도 더 걸려서 힘들게 여정에 동행했더니, 마구 헷갈린다.

어떤 식당인지 카페에서 매운 커피를 마셨다는, 그래서 다 못 마시고 나왔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 얘기가 조금 이해가 된다.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커피는 마치 한약을 탄 것처럼 쓰다. 묽디 묽어 커피맛은 약하게 느껴지는데 써서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켁 켁' 밭은 기침을 하게 된다.

 

왜 윤대녕은 그렇게 자꾸 여행을 떠나는 걸까?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이라는 소설은 사막에 다녀와서 쓴 거였고, 이 <눈의 여행자>는 일본의 니이가타, 아키타 등지를 보름간 여행한 후 아키타현의 요코테에 다시 보름간 처박혀서 초고를 완성한 거란다.

 

아무튼... 인상깊은 한 구절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하련다.

나는 요코테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남원집 청년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여러 날을 머물다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가 조용하고(슈퍼마켓의 블루 펑크는 빼고) 말들이 없었다. 얼굴은 대개 무표정해 보였으나 사나워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처럼 한결같이 뭔가 절대적인 것에 의지하고 또 수긍하고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바로 눈이라는 걸 나는 깨달았다. 눈이 꺼끔할 때면 도시 전체에 음악이 울려 퍼지곤 했다. 무슨 소린가 싶어 나가보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일제히 사람들이 몰려나와 눈을 치우고 있었다. 그렇듯 일 년의 반을 이들은 눈과 함께 살아야만 했다. 좋든 싫든 이들은 눈이 없으면 존재하기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애초에 그렇게 눈사람들로 태어난 것이다. 에스키모나 가마쿠라 눈사람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태어나 사는 사람들은 자연에 순종적일 수밖에 없다. 사나울 수가 없는 것이다. 요코테에 와서 내가 편안함을 느꼈던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이들은 눈의 침묵 속에서 그 헤아리기 힘든 신성을 느끼며 살고 있는 것이었다. 눈을 닮은 순수한 아이들만이 그 침묵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재잘거리며 깔깔대고 있음이었다. - 200쪽

하고 많은 구절 중에서 정의를 내리는 듯한 답답한 글귀에서 내 눈이 멈춘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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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2-08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방금 주문 마쳤는데, 부르르르르

하루(春) 2006-02-08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책이 전반적으로 평이 아주 좋다고 할 순 없습니다. 저는 그저 윤대녕이라면 껌뻑 넘어가니까 좋다고 입 헤, 벌리고 있는 거죠. 그러니 다음에도 사실 마음이 생긴다면 그 때 하심이 좋을 듯하군요.

하이드 2006-02-08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눈'에 껌뻑 넘어가겠는데요

하루(春) 2006-02-08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가 많아요. 제가. 하하하
며칠 전 하이드님이 일본 다녀온 후에 페이퍼 쓰신 것 중 제가 인용한 구절과 비슷한 내용이 있어서 이 책을 말하지 않은 걸 후회했었죠. 하지만, 이제서야 말하자니 그래서 미루다 보니까... -_-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