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부모 세대는 조상님들에 대해 뭔가 특별한 감정을 항상 갖고 사신다. 얼굴도 모르는 증조, 고조의 제사를 정성껏 모시고, 설이나 추석 등의 명절에도 그 정성은 각별하다. 조상님이 안 계셨다면 네가 지금 이렇게 배 따뜻하게 살 수 있었겠니? 다 조상님들 은공이지. 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을 나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대학 공부한답시고 부모님과 떨어져 살며 돈만 축내던 나이에 시집와서 당신께 주어진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순종하시는 그 마음의 기저를 나는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다. 세대간의 격차는 태평양만큼이나 커서 이제 막 결혼하고, 결혼하자마자 분가해서 사는 세대는 제사나 차례 따위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여자는 시집(우리 사회는 꼭 여자에게는 '결혼'이라는 단어 대신 시집을 즐겨쓴다)가면 그 집에 뼈를 묻어야 한다는 뿌리깊은 신념은 나를 항상 혼란스럽게 한다. 당신의 부모님이 묻힌 산소에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하면서 뭐 그렇게 조상을 따지는지 모르겠다.

"생물의 계통을 밝히는 연구에서는 철저하게 암컷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간다. 부계혈통주의는 생물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느 과학자의 주장이 호주제 폐지에 커다란 기여를 했고, 많은 소외된 여성들의 소망대로 호주제 폐지가 현실로 다가왔다. 호주제 폐지는 여성의 존재를 문서로 인정해주는 첫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거창하게 '여성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여성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건지, 한 가정에 시집와서 어떤 중요한 일을 하고 가는지는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그래서 머리가 아프다. 생각은 열심히 했지만, 어떤 결론도 쉽게 내리지 못하는 나 자신이 싫기도 했다. 대체 무엇이 몇십 칸이나 되는 공허한 종가(宗家)를 지키게 하는 힘이었는지... 결국 자멸하고 마는 조씨 일가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허해진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을 일부 인용하려 한다. 다시 읽지 않고는 못 배길 끌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뜨겁게. 여한 없이 뜨겁게. 어차피 한 번 왔다 가는 세상 뜨겁게.

가슴의 뜨거움조차 잊어버린 쿨한 세상의 냉기에 질려 버렸다. 맹렬히 불타오르고 재조차 남지 않도록 사그라짐을 영광으로 여기는 옛날식의 정열을 다시 만나고 싶다. 그것이 요즘 유행하고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라 해도. 아직 젊은 사람이 지레 늙어 버렸느냐고 핀잔을 받더라도. 이 소설 속에 혹시라도 독자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무리하고 과장된 일면이 있다면, 그 역시 내가 절실하게 추구했던 뜨거움의 일부로 용서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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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01-18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재미있게 읽고 있다가 다른 책 읽는 바람에 맥이 끊겼어요. 왜 한권씩 차례대로 못 읽는건지.....

하루(春) 2006-01-18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아픈 책이에요. 슬퍼요. 다 읽은지 이틀이 지나서야 슬퍼져요.

2006-05-19 0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春) 2006-05-20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땡님, 이 책을 안 보셨을 리가 없을 것 같은데... 선물용인가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