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달째 극장에 안 가고 있다. 이 지독한 거부반응은 두 달 넘게 지겹도록 계속되고, 그 간의 영화관람은 겨우 얼마 전에 컴퓨터로 본 우디앨런의 <Anything Else>와 갖고 있는 DVD 관람이 전부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영화 <...ing>

작년 봄엔가 우연히 라디오에서 이 영화에 쓰인 것 중 '그녀입니다'를 들은 적 있었다. 그리고 간간이 <...ing>에 대한 좋은 기사를 접하긴 했으나, 오늘 드디어 내 눈에 들어오게 됐다. 기쁘다. ^0^

내용은 매우 진부하다. 하지만, 진부하다는 이유만으로 이 영화를 미워할 수 없는 건 잘 포장한 감독의 솜씨 덕분이다.

발레리나를 동경하고, 순정만화 같은 그림을 쓱쓱 그려내고, 사시사철 왼손에 하늘색 벙어리장갑을 끼고 다니는 고등학생 민아.
그 아랫집에 이사온 사진학과에 재학중인 영재.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이제 다시 또 가슴 저린 이별을 앞두고 있는 꿋꿋한 엄마 미숙.

마치 숲처럼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3층 빌라에 사는 민아.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하늘에서 우산을 내려 보내고, 2층에서 3층으로 도넛을 올려 보내고, 지포라이터를 구실삼아 닐 & 암스트롱을 인질로 보내고, 1시간 후에 창밖에서 만나자고 해놓고 몰래 숨어서 사진을 찍고...

그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서서히 서로에게 물들고 있었고, 편안함을,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영화가 예정대로, 예상대로 그렇게 끝나버리다니... 이 영화의 백미는 바로 영재가 민아의 병실에서 토막잠을 자다 부시시 깨어난 후,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을 것으로 예상되는) 찍은 사진이다. 미숙이 민아의 손을 잡고 있는 그 컷이 그렇게 눈부시게 보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민아의 손목에는 영재가 걸어준 팔찌가 걸려 있었으니...

이렇게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이 험한 세상도 뭐 살아볼만 하겠다만, 슬프게도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눈물만 주르륵 흘렸다.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맑은 영화 한 편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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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6-01-15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토요일 조조로 혼자서 봤었죠. 맑은 영화. 라는 말씀에 공감. 참 예쁜 영화였어요. 눈물도 주르륵. ^^

하루(春) 2006-01-15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집에서 이거 보고 오늘 발동 걸려서 '왕의 남자' 보고 왔어요.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