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내며
2004년 6월 22일 일명 '밀레니엄 버그'라고 불린 Y2K 문제를 경고하여 지난 1999년 한 해 내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로버트 베머(Robert Bemer)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컴퓨터의 기계언어 ASCII 코드를 공동 고안한 엄청난 공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공연히 공포에 떨게 했다고 해서 비난 역시 엄청나게 받았던 사람이다. 나는 이 책으로 인해 베머가 받았던 비난을 자처하려 한다. 베머의 경고는 결코 공연한 짓이 아니었다. 그의 경고 덕에 우리가 뒤늦게나마 철저한 준비를 하여 무사히 위기를 넘긴 것이었다. 화재경보기 소리가 시끄럽다고 꺼두었다가 정작 화재가 발생하면 어쩔 것인가? 양치기 소년의 거짓 경보가 어느 날 진짜로 판명되면 어찌할 것인가?
고령화 경보에 제발 겁먹기 바란다. 엉거주춤하다가는 졸지에 거대한 해일에 휩쓸리고 말 것이다. 보스턴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 로렌스 코틀리코프(Laurence J. Kotlikoff)는 그의 근저 『다가올 세대의 거대한 폭풍(The Coming Generational Storm)』(2004)을 읽다가 "책을 읽기에 앞서 편안한 의자에 앉은 다음 넥타이나 셔츠 단추를 풀고, 안정제나 우울증 약을 복용하길 바란다."라는 당부와 함께 시작한다. 나 역시 이 책에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예측이 빗나가 2020년이면 대한민국이 '고령 사회'가 아니라 '초고령 사회'가 될지도 모르며 그 영향은 가히 천재지변의 수준일 것이라며 한껏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마치 종말론을 내세우며 신도들을 현혹하는 사이비 교조처럼. 하지만 먼 훗날 공연한 일로 괜히 겁만 줬다고 나를 비난하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많은 사람 힘들게 했다고 꾸짖어도 좋다. 그때가 되어 나를 비난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무사히 고령화의 위기를 넘겼다는 얘기일 테니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비난을 받을 것이다. 섭섭함은 이담에 저승에 가서 베머와 함께 풀리라.
중략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은 너무나 자주 들어 감흥이 없는 말이 돼버렸다. 하지만 고령화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나는 이 말을 다시금 되새긴다. 지금 우리는 고령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대책도 나름대로 세우고 있다. 그러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대해 따로따로 대책을 마련하는 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고령화의 숲 전체를 봐야 한다. 나는 진화생물학자다. 진화생물학은 역사학이다. 다만 좀 긴 역사를 다룰 뿐이다. 과거를 알면 현재를 직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생물학적인 발상의 대전환을 도모하기 바란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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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서문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