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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인 이병헌(김 실장)이 초콜릿 무스를 먹고, 각설탕을 넣은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이 하나에 마음이 움직였다면 너무 뻥이 세다고 할까?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리뷰를 읽어도 무슨 얘긴지 눈에 쏙쏙 박히지 않는다. 그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극장으로 향했다. 말쑥하게 꾸며도 폐인 같은 김지운 감독의 새로운 도전도 매우 궁금했다.
조용한 가족 -> 반칙왕 -> 장화, 홍련 -> 그리고, 달콤한 인생이라니... 이 사람 영화 이력이 참 다이나믹하다.
달콤한 인생
영화의 절반 이상을 주도하는 음악은 La dolce vita이고, 선우가 죽음을 맞는 공간은 la dolce vita라는 곳이고, 이 영화의 영어제목은 a bittersweet life이다. 다 달콤한 인생인데, 영어제목은 우리나라말로 하면 달콤씁쓸(혹은 쌉싸름)한 인생이 된다.
인생의 단맛을 보기도 전에, 쓴맛만 진창 즐겨야 할 처지가 된 김선우. 그 바닥에서 어찌 보스의 어린 애인을 넘보는 게 용서가 된단 말인가! 자신과 같은 급의 조직원에게 명령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당당한 그가 생사를 넘나드는 과정을 보는 건 내내 괴로웠다.
그러나, 상황이 반전되어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자기를 외면한 아줌마를 의자에 묶어둔 모습을 보는 건 즐거움의 하나였다. 하나 더, 백 사장(황정민 분)과 같은 조직의 넘버 2(김뢰하 분)에게 복수 - 4발씩을 쏘아 서서히 말단(발 혹은 다리)부터 죽여가는 - 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면 나에게 미쳤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빛의 대비
영화의 전체를 감싸는 분위기는 검은색과 밝은 조명의 대비다. 밤 장면과 어두운 실내가 주된 장소이긴 하지만, 희수네 집 거실의 자연광조차 미로를 지나오는 것처럼 꺾여서 들어온다. 총기구매상을 만난 흙먼지나는 공터의 색감은 <트랙픽 Traffic>의 한장면(그러고 보니, 이 제목의 뜻은 밀거래다)이 생각나게 한다. 빛을 잘 사용한 우리나라 영화로는 최고로 꼽고 싶다. 이 영화 이전에는 <살인의 추억>이라 생각했는데...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는 연기조화
역할의 경중을 떠나 조화를 이룬 배우들의 연기는 마치 이창동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병헌 : 이 사람의 연기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중독>에서의 모습이었다. 사랑에 미쳐서 앞뒤 안 가리고 형수를 차지하려는 그의 모습이란... 이번 영화에서 가장 돋보인 건 반듯한 몸매와 얼굴표정이었다. 배우는 역시 아무리 뛰어나도, 감독을 잘 만나야 폼이 제대로 산다.
김뢰하 : 플란다스의 개를 거쳐 살인의 추억, 연극배우에서 영화배우로 거듭난 최고의 조연배우. 대학로의 어느 극장 앞에서 본 적 있는데, 싸인 못 받은 게 안타깝다.
황정민 : 이 사람은 주된 역할을 맡아야 할 사람인데, 역시 대단하다. 이 사람의 영화 중 <로드무비>를 아직 못 봤는데, 얼른 보고 싶다.
오달수(명구)와 러시아인(미하일)의 콤비 : 코엔형제의 영화 <파고>의 한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우왕좌왕하다가 사고를 내는 장면은 가장 웃기고 재밌었던 것 같다.
선우가 납치되어 매달려 있던 곳은 실제 수산물 공판장이라는데, 그 곳 특유의 분위기도 모자라 구더기까지 데려왔단다. 밤이 되면 기온이 떨어져 구더기가 활동을 안 해 별 소용은 없었다지만... 우리나라 영화 감독들의 완벽성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느와르 액션 분야의 최고가 아닌가 싶었다.
김지운 감독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 La dolce vita>를 보지 않았고, 미국의 30-40년대 느와르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는데, 어떻게 이렇게 멋진 볼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단, 흠을 잡자면 에릭이 맡은 역할은 이해가 안 간다. 왜 그 놈이 김실장을 처단하는지... 단순히 그도 복수를 한다는 설정인가? 또, 에릭이 맡은 역은 무명 혹은 연기력 뛰어난 조연배우가 맡았어야 더 옳지 않았을까. 에릭이 총을 돌리면서 들어오는데, 웃음이 나왔다.
김지운의 말 :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를 두편밖에 안 했다는 생각도 든다.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 이렇게 한편.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이렇게 한편. 두편씩 같은 성질의 영화들인 거다. --> 어떤 기준으로 자신의 영화를 이렇게 짝지었을까? 모르겠다. 내가 이 사람의 영화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구나.
설탕을 안 넣어서 달콤하진 않지만, 우유를 넣어 목넘김이 부드러운 카푸치노를 마시며, <달콤한 인생>의 감상을 적는 모습. 그럴듯 해 보이지 않는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