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낀 분노만이 유일한 분노는 아니다>
- 폭력시위/평화시위라는 이분법에 대해

나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연일 보도로 나오고 있다. 이 정부가 이런 일까지 했단 말인가.. 기가 막힌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며칠 전에도 놀라운 보도를 접했다. 청와대 유력 인사가 최순실이 자주 가는 성형외과의 중동진출을 타진해달라는 요청을 한 컨설팅 업체에 했었는데, 이 업체는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해 요청을 반려했다. 그 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컨설팅 업체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를 포함해 일가족, 친인척이 운영하는 회사 모두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다. 서른 명도 되지 않은 회사였다고 한다. 게다가 남편은 한직으로 좌천되었고, 공사로 해외 근무 중이던 동생은 국내로 들어와야 했다. 이 업체 사장이 일을 반려한 이후 이 일을 관할했던 조원동 수석은 자리를 떠나야 했다.

청와대가 이렇게 세심하게 한 개인의 사익을 챙겨주려 노력했고, 찌질하게 권력을 이용해 시민 한 사람을 괴롭혔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나는 이 업체 사장과 일가족들이 느꼈을 분노에 대해 생각했다. 이들은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한 가족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압박해온다고 느낄 때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아마 국가 조직의 위세에 공포심을 느꼈겠지만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나로서는 가늠조차 하기 힘든 무게의 ‘억울함’을 느꼈을 것이다. 억울함은 분노를 낳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성공단 폐쇄가 비선에 의한 즉흥적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아버린 개성공단 사업주들은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군사적 이유도, 아니 그보다 더 졸렬한 정치적 이유도 아닌 비전문가 집단이 하룻밤 사이에 두고 내린 결정 때문에 생활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은 뉴스를 보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생업을 팽개치고 삭발까지 하게 만든, 조용한 마을을 분열시킨 주범인 사드도 비선의 결정이었고 거기에 무기상까지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의 기분은 또 어떨까?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당원과 당직자들의 기분은? 헌법재판소에서의 옥신각신은 ‘연극’에 불과했고, 비선에 의해 짜여진 각본에 의해 해산되었다는 것을 듣고 그들이 느꼈을 감정은 나와 같은 것이었을까? 무엇보다 세월호 유족들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렴풋이 밝혀지고 있는 마당에 비선에 의해 국정이 마비되어 버린 탓에 구조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 유족들은 어떤 기분일까. 억울함을 느꼈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이들은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폭력시위/평화시위라는 이분법적 구도는 시위에 나온 대중들의 분노의 질과 수준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JTBC와 한겨레에 보도된 믿을 수 없는 뉴스에 느낀 허탈감과 상실감에 기초한 분노와 세월호 유족들과 개성공단 사업주들이 느끼는 억울함에 기초한 분노는 질적으로 다르다.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그 분노의 정당성에 대해서 말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의한 피해는 간접적인 경우에서부터 직접적인 경우까지 광범위한 만큼 분노의 질과 폭도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폭력시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화시위가 아니면 안된다는 주장을 비판하려는 것이다. ‘평! 화! 시! 위!’라는 외침, ‘평화시위가 아니라면 전략적으로 옳지 않다’는 믿음, ‘시위에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는 판단, 그런 외침, 믿음, 판단은 그저 그것이 체제 내화의 결과여서거나 폭력시위에 대한 강박증적 거부의 증상이여서가 아니라 ‘평화시위라는 미명으로’ 다양한 분노의 수준을 단선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억울한 사람들에게 그 억울함을 견디도록, 분노한 사람에게 그 분노를 억누르게 하는 것이야말로 ‘폭력적’이다. 따라서 ‘비폭력’이 이데올로기화되면 비폭력은 전도된 폭력으로 그 사회의 가장 억울한 자를 억압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자면, 나는 폭력시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시위에는 여러 종류의 분노를 가진 사람의 다양한 전선이 있어야 하고, 우리는 시위를 위해 광장에 모인 대중들이 그 과정에서 서로의 분노에 대해 공감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믿는다. 폭력시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시위만을 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각자의 분노가 자유롭게 시위에서 표출되고,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를 해결할 실마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광장에서의 논의가 진행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각자의 분노, 억울함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비폭력 평화 시위가 어쩌면 JTBC뉴스를 시청하고 분노한 사람들의 이해와 감정표출 방법만을 대변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비폭력도 전략이고 역사적으로 ‘맥락’에 따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폭력도 전략일 수 있다. 단순한 치기와는 구분해야겠지만, 만약 세월호 유족과 성주군민들이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기로 한다면 나는 말릴 마음이 전혀 없거니와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동참할 것이다. 꼭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도 레비나스 말을 빌리자면,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일은 목숨을 건 도약이다. 지금 폭력 시위/평화 시위를 두고 벌어지는 토론은 우리가 타자에 대해 어디까지 응답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일 수 있다.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폭력이야말로 신화적 폭력을 중지시키는 신적 폭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어느 누구도 단순한 치기로 폭력을 일삼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철두철미 강박적 자기 검열로 “평! 화! 시! 위!”라고만 외치지 않을 것이다. 외신과 언론으로부터 칭찬받고 스스로도 자부할만한 일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 이 시위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면 말이다.


어쩌면 시위란 그 자체로 이미 폭력적인 것이다. 시위는 사회를 중지시키고, 에너지가 분출되고, 단지 모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기도 한다. 시위를 통해 공유지식이 형성되면 모인 사람들의 뇌 속에서 집단적 연대가 생겨나고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향하면 그것만으로 폭력이 된다. 하지만 뇌의 전기 신호 조차도 똑같은 강도로 일어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내가 느낀 분노만이 유일한 분노가 아니다. 일자리를 잃었고, 꿈을 상실했고, 가족이 다쳤고, 아이가 죽었다. 국정이 농단되었다는 기막힌 사태에 대한 분노 수준으로는 결단코 치환될 수 없는 일들. 우리는 이런 일에도 비폭력을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억울함에 빗대는 것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억울함을 겪고 있을 이들에 대한 상상력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햄릿에게 참으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삼촌의 만행이 드러난 이상 햄릿만이 대문자 질문 -'To be or not to be?'-에 답할 수 있다. 아버지 유령의 명령을 상속할지, 삼촌에게 복수를 할지, 아니면 죽은 듯 없는 사람처럼 살아갈지..햄릿 외에 그 결정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은 없다. 폭력인가 평화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억울하게 죽고, 일자리를 뺏기고, 삶을 빼앗겨버린 이들에게 응답할 수 있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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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최순실'

순실한 마음으로 받은 은택

 고전적인 정의 관념은 공허하긴 하지만 정의가 무엇인지를 사유할 때 늘 전제가 된다. 고대 그리스의 사람들은 정의(dike)가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특권이란 각자가 얻어야 할 몫 이상의 몫을 자신의 지위와 권한, 누군가와의 관계를 이용해 취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지위, 권한, 관계를 이용하는 것이 '의식적인 경우'에만 특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부지불식 간에, 아무런 의식 없이 '이 정도는 괜찮겠지', '사소한 것에 불과한 것이지'라며 '자기 몫 이상의 몫을 자기의 몫'으로 생각하는 모든 행위와 태도가 '특권'에 해당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 몫 이상의 몫이 공공의 것일 경우에 '특권'은 공공에 대한 위협으로, 공화국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게 보자면, 동향 사람이라고 박근혜를 뽑았고, 같은 대학 출신이라고 후배를 승진시키는 것, 친분이 있는 관계라면 비판/비평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나 병원에서 내 아이를 받아준 의사라고 좋은 자리에 임명하고, 아버지 어머니 잃고 힘들 때 함께 있어준 사람이라 국정까지 관할하게 하는 것은 양적인 차이라면 몰라도 질적인 차이는 조금도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특권을 욕망하는 태도다. 과연 나라면, 만약 내가 정치인이라면, 내가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자동차 할부 이자를 0.3% 깎아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을 것인가? 나는 나와 친분이 있는 작가, 선생님들을 향해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는가? 내게 그럴 용기가 없었다는 것은 나 역시 '부지불식' 간에 박근혜와 아는 사이였고, 차은택 혹은 정유라와 아는 사이였다면 내 몫보다 더 많은 몫을 주겠다는 제안을 내 몫으로 생각하고 수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박근혜와 아는 사이라니 생각만 해도 근사하지 않은가? 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학벌주의, 연고주의, 지역주의, 친분주의처럼 무슨 '주의'라는 말을 붙이기 전에 우리 사회에서는 사적 관계를 우선시하는 것은 하나의 마음의 습속 같은 것이라서 우리는 모두 조금은 '최순실적'이고 '박근혜적'이다. 특히 대구 경북에서 박근혜를 지지했던 많은 이들은 '불쌍한 공주에 대한 동정'으로 포장된 사이비 윤리 속에 '우리가 남이가' 식의 특권적 이해관계를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물론 내가 우리 모두가 최순실이고 특권을 욕망하는 자들이니까 최순실, 박근혜, 차은택에게 면죄부를 줘야 한다는 값싼 대속 논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유야무야 특권을 향유하고, 특권을 향유하길 바라는 사실상 '공화국의 적대자'라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왕처럼 지위와 권한, 관계를 이용해 내 몫을 넘어서는 몫까지 자신의 몫으로 취하려는 태도와 의식이 공공의 것을 사유화시키고 공동체를 근본적으로 침식시킨다.


  프리모 레비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수용소의 포로들 중 작은 특권을 누리던 자들을 '회색지대'에 있던 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죽 0.5리터를 더 얻기 위해 같은 포로들을 배신하고, 조금 더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나치에 협력했다. 그것은 포로들 사이의 협력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고, 적대의 선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수용소에서까지,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 자명했던 수용소에서조차 특권을 쫓는 자가 있었다는 것은 작은 특권에 도취되는 것이 인간성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런 인간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작은 특권에 대해서조차도 두려워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단두대는 공화국을 세우는 효과적인 전략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길로틴 떨어지는 소리가 '부지불식' 간에 내 몫을 넘어서는 몫을 내 것으로 취하는 것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상기시켰을 것 아닌가.




철학자 김영민 선생이 <동무론>에서 서늘한 관계를 우정으로 형상화했던 것이 떠오른다. 차갑지도, 그렇다고 뜨겁지도 않은 기분 좋은 서늘한 관계를 만드는 데 미숙한 우리의 태도가 지금의 사태를 만든 것이다. 공동체, 공화국을 사유하는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가 없다면, 아니 의식의 변화를 불러올 대전환이 없다면 제2의 차은택, 제2의 최순실, 제2의 박근혜, 제2의 그 성형외과, 제2의 산부인과는 얼마든지 있다. '순실한 마음으로 권력자와 사귀어 은택을 입은 것'이라 우겼다고 하더라도, 그 순실한 마음, 순실하게 베풀어준 은택 속에서 조용히 사회는 침식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적 일이 하나 떠오른다. 학생회장으로 일할 때다. 성탄절을 기념해 불우이웃돕기를 위한 모금을 해달라는 학생과장 선생의 요청에 따라 캠페인을 했고, IMF 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저마다 십시일반 500원, 1000원을 꺼내 놓았다. 그렇게 전교생을 통해 거둔 돈이 50만원 정도가 되었고 예년보다 많은 금액에 학생회 간부들은 성공적이라 환호했다. 그 돈을 학생과장과 2학년이던 후배 부학생회장을 데리고 교장선생님께 전달하러 갔다. 당시 교장선생님은 내가 다녔던 중학교의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아버지셨고, 아버지 사업 부도로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돈을 들고 들어가자 교장은 내게 "네가 가져라"고 했다. 당황했지만 그 때 나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 돈을 들고 나왔다. 절대 나는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처럼 내가 그 돈을 먹으려고 한 사업이 아니었다. 순실한 마음으로 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조금도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학생회장이고, 교장과 내가 아는 사람이기에 이 돈을 내가 받게 된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 말이다. 나는 아마도 우리 학교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 중 하나였고, 그렇기에 심지어 내가 받을 권리까지 있다고도 생각했다. 물론 내가 그 돈을 받았다는 것을 그 자리에 있었던 몇 사람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불우이웃돕기로 학생회가 모금한 돈은 학생회장이 가졌다는 것, 어쩌면 그 일이 내가 특권에 길들여지게 된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시간이 오래 지나 용서받을 수 있다는 교묘한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인할 수 없이, 나 역시 내가 그동안 누리고 있었던 많은 것이 권한을 가진 자의 은택을 순실한 마음으로 받은 것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있고 나서야 뒤늦게 솔직하게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 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 특권에 길들여지게 된 개인적 역사를 마음 속에 숨겨두고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역, 학교, 친분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이뤄지지 일들이 이뤄지지 않고, 그런 관계를 넘어서 혼자 뭔가를 이룩해내겠다는 것은 무모한 것으로만 취급되기 때문이다. 유행이던 해외 학부 유학이 인기가 없어진 이유가 해외대학의 수준이 낮아져서인가? 대학 수준보다 더 중요한 학벌 때문이지 않은가?

 부디 바라건대 이 사태가 순실한 마음으로 은택을 받는 행위, 그런 은택을 바라는 모든 태도가 공동체에 대한 부인할 수 없이 중대한 범죄이며, 더 나아가 김영란법의 경제적 손실 운운하기 전에, 특권을 욕망하고, 향유하고, 확장시키는 것에 무디고 무딘 마음을 예민하게 만드는 마음의 혁신으로 이어져 김영란 법의 내실을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면 한다. 박근혜 하나 하야로 끝날 일이 아니다. 특권을 가진 자들의 착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줄 기회가 되어야 한다. 라거의 회색지대에 있었던 자들의 종말은 결국 '죽음'이었다. 단두대는 한번으로 충분하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명예로운 혁명이 되길, 아둔한 자가 많지 않길 빌 뿐이다.

- 이 글은 본색 소사이어티 영화제 '씨네 노마드 2016' 뒷풀이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으로 이정기씨의 요청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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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디얇은 치졸함. 세심한 비열함

셀레브와 인맥 쌓기에 열을 올리는 것과 자기 주변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은 반비례하는 것 같다. 예전에 친구는 내게 전화해 대학원 같은 학과에서 공부하던 한 지인이 이름난 지식인들과의 친분을 위해 공금을 동의없이 사용하고 심지어 유용까지 했고, 셀레브와의 관계를 과시하는데 급급하다며 한참을 비난했다. 그 지인은 내가 보기엔 조금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동의가 되지 않았다. 친구는 그 학과 사람들 모두 그 지인과 등을 졌다며 지인을 믿지 못할 사람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친구가 지인을 모함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다시 말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지인은 정말 그런 류의 사람이었고, 친구의 말이 맞았다. 사람 일에는 겉으로 다 드러나지 않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점들이 있다. 태블릿 컴퓨터라도 발견되지 않으면, 누군가의 추가적인 고발이나 항변, 폭로라도 없으면 믿기지 않는, 결코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공감 받을 수 없는 그런 '세심한 비열함'과 '얇디얇은 치졸함' 같은 것. 그런 것들이 있다. 최순실의 치졸이나 비열도 그런 종류의 것이라 친박계 인사들이 지인을 옹호하려 든 나처럼 멍청하게 최순실을 옹호하려 들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순실처럼 위악적인 인간보다 말로는 공공, 정의, 선을 외치는 위선적인 인간들의 진심을 알기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너무나도 세심하고 얇디 얇지만 도무지 참을래야 참을 수 없는 종류의 비겁함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아마 지인을 비난했던 친구의 심정도 그랬을 것이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겹다는 느낌. 역겨움을 견디지 못했던 친구는 외로운 삶을 살아가지만, 역겨움에 겨운 그 지인은 수많은 동정표를 얻고 공정하고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로 자기 소원대로 셀레브들 주변을 멤돌며 셀레브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셀레브들과 잘 지내고 있다. 역겨운 지인만큼이나 역겨운 현실인데, 박근혜 주변을 멤돌며 박근혜와 친분을 과시하며 박근혜와 잘 지낸 최순실의 몰락을 보니 역겨움을 심판하게 될 일말의 가능성이 아직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의 외로움도 보상을 받을 날이 올 것이고, 셀레브를 쫓아다니며 온갖 유명한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페친을 맺고 셀레브의 간지러운 곳을 핥아대는 지인도 심판 받을 날이 올 것이다. 
힘을 내자.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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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서재 (3) 수태고지와 방사능의 공통점은? 

다니엘 아라스의 “서양미술사의 재발견”


 원근법을 뜻하던 ‘코멘수라티오’(commensuratio)라는 말은 ‘측정할 수 있는’, ‘같은 단위로 잴 수 있는’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회화에서 원근법이란 거리감을 바탕으로 대상을 조화로운 비례에 따라 표현하는 기법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런 기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15세기에 왜 ‘코멘수라티오’라는 말이 원근법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는지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니까 원근법은 인간이 세계를 측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등장했다. 15세기, 유럽인들은 더 이상 세계를 측정불가능할 정도로 큰 무한한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측정가능한 것’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도제작을 하면서 공간을 재고, 시계를 가지고 시간을 측정했다. 피렌체 대성당의 돔 설계자이자 원근법 발명자인 브루넬레스키가 뛰어난 시계공이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원근법과 시계로 공간과 시간을 측정하고자 한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다니엘 아라스의 <서양미술사의 재발견>이라는 책은 서양미술사를 다룬 여러 책 중에서 내가 특히나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이 책은 천재 미술사학자였던 다니엘 아라스가 프랑스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했던 강의를 녹취한 내용인데, 그림을 단 한 장도 직접 보여줄 수 없는 라디오 방송에서 이렇게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강연을 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더 놀라운 일도 있다. 그림 한 점 보여주지 못하는 라디오 미술 방송이 프랑스에서는 큰 인기까지 얻은 것이다.




이 책은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전환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두 시점을 중점적으로 논의하는데 그 중 하나가 18세기 인상주의의 등장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원근법의 등장이다.  다니엘 아라스는 우리가 원근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5세기에 수태고지를 주제로 그려진 작품들을 살펴봐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원근법을 사용했던 초기 작품들은 거의 다 수태고지, 즉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를 잉태할 것을 알려주는 성서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두스가 말한 것처럼 수태고지는“신이 인간으로, 무한이 유한으로, 비척도가 척도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남자를 알지 전혀 알지 못하는 동정녀가 신의 아들을 잉태하는 신비를 표현하는데는 원근법이 적합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근법은 세계를 ‘측정할 수 있는 유한한 것’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여러 점의 수태고지에서도 원근법이 사용되고 있다. 코르토나에 있는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1433년 경에 그려진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 보면, 천사 뒷 편으로 보이는 방의 커튼과 침대가 지나치게 가깝게 그려져 잘못 그려진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1450년 경에 그려진 산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수태고지의 경우에도 뭔가 모르게 어색하다. 천사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마리아가 아주 크게 그려져 있는데다 마리아 뒷 편으로 보이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아주 작게 그려져 있어, 마리아가 이 문을 통과해 방으로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프라 안젤리코는 원근법을 사용하는데 기술적으로 미숙했던 것일까? 다니엘 아라스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원근법은 세계를 측정하는 것인데 동정녀의 몸의 신비는 이 모든 측정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프라 안젤라코가 ‘의도적으로’ 원근법의 규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성육신의 신비는 원근법으로도, 시계로도 측정되지 않는다! 이것이 프라 안젤리코가 수태고지에서 원근법의 규칙을 따르는 동시에, 원근법의 규칙을 위반한 이유였다.


원근법에 대해 다니엘 아라스가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흡사 셜록 홈즈가 현장의 몇 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범죄 상황을 재구성하는 것이 연상된다. 프라 안젤리코는 다니엘 아라스의 추리대로 수태고지를 표현하는데 원근법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그는 정말 의도적으로 원근법을 위반했던 것일까? 알고 지내는 한 저명한 미술사학자에게 견해를 물어보니 그는 프라 안젤리코가 단지 원근법을 표현하는데 미숙했던 것으로 보는 편이 낫다고 했다. 어느 쪽 의견이 맞는지 천국에 가서 프라 안젤리코에게 물어보기 전까지는 단언하기 어렵겠지만 내 생각에는 다니엘 아라스의 접근 방식이 작품의 의미를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책에서 다니엘 아라스가 보여주는 집요할 정도의 추리 과정을 힘겹게 쫓아가면서 나는 내 나름대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법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일단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작품의 구석 구석을 살펴보며 표현방식을 살펴본다. 그리고 제목이나 작품 옆의 간략한 설명을 참조하여 작품의 주제와 내용을 확인하고, 내용과 표현 방식이 어떤 논리로 결합되어 있는지를 따져보기 시작한다. 언제나 좋은 작품은 작품의 주제를 표현 방식이 가두지 않는다. 오히려 표현 방식이 작품의 주제가 지니는 의미를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반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는 그의 표현 방식 때문에 단지 해바라기를 그린 것이 아니라 태양과 같은 강렬한 열정까지 그린 것으로 평가 받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사진작가 정주하와 여럿이 함께 쓴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을 읽었다. 정주하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자력 발전으로 폐허가 된 후쿠시마를 찾아 사진으로 기록하고 후쿠시마를 포함한 일본 전역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그의 사진에 재현된 후쿠시마는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장소처럼 평온한 모습이다. 들도, 산도, 강과 바다도 제목을 보지 않고 사진만 봐서는 방사능에 오염되었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이 책에 실린 정주하의 사진을 보면서 다니엘 아라스의 이 책이 떠올랐다. 





 이제 원근법으로 측정불가능하고 표현불가능한 것은 ‘수태고지’의 신비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신비 대신 또 다른 측정불가능한 것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인간의 삶이 80년 정도 지속된다 할 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해는 측정가능한 것일까?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는 수백년, 수만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척도를 완전히 넘어서 있다. 방사능의 영향은 후쿠시마라는 지역적 범위를 완전히 초과해 어디까지 피해를 주고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측정불가능하고 설명불가능한 것을 ‘신비’라고 한다면 우리는 ‘수태고지의 신비’를 ‘방사능의 신비’로 대체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도 역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정주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척도를 완전히 넘어서는 방사능의 파괴력을 보여주고자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 장면을 찍는 대신 방사능 유출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는 후쿠시마의 모습만 찾아서 촬영했던 것은 아닐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거나 구태의연한 예술이다. 프라 안젤리코가 거장인 까닭은 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신비를 보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척도 자체가 없는 방사능의 신비를 보이게 만든 정주하의 작품도 분명 예술이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와 같은 신비가 도처에 있다는 것이 우리의 비극이 아닐까? 미세먼지가 불러오는 피해는 측정 가능한 것일까? 미세먼지가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보도가 매일 같이 나와도 학교에서는 체육대회를 열고, 아이들은 미세먼지를 힘껏 들이마시며 축구를 하고, 공사장 인부는 마스크도 없이 계단을 오르내린다. 미세먼지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까지 영향을 주는 것일까? 그 피해는 언제 나타나게 될까? 월성과 고리 원전이 가까운 경주에 지진이 일어 났다고 하는데 방사능의 신비가 우리와 상관 없는 이웃 나라의 이야기이기만 한 것일까? 수태고지도, 방사능도, 미세먼지도 원근법적 질서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원근법적 규칙을 따르는 것으로 표현불가능한 것은 이제 “구원의 신비”가 아니라 “파멸의 신비”다. 영혼의 구원 대신 안락만을 구원으로 믿었던 우리에게 방사능은 생명 대신 죽음을 고지하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을 수태할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뤄어지도록 하소서”라고 답했다. 방사능이 우리에게 ‘죽음’을 잉태할 것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원근법을 넘어서는 신비’, 즉 모든 척도를 넘어서는 위험 앞에서 이제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해기사 협회 잡지, 해바라기 10월호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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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의 지루함 (2016.10.21 한국일보에 쓴 글)

아이 엄마의 출산 휴가가 끝이 났다. 이제 낮 동안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은 책을 읽어 주거나, 잠시 산책을 하고, 목욕을 시킨다. 아이가 자는 동안은 젖병을 씻어 소독하고, 설거지하고, 빨래를 널기 전 널었던 빨래를 가져와 개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고, 쌓여 있는 쓰레기를 정리하고 밥을 짓고 요리를 한다.

<출처 한국일보>

글로 쓰면 이렇게 매끄러운 일이지만 실제로는 조금도 매끄럽지 않다. 설거지하고 뒤돌아서면 조금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머그컵이 집안 곳곳에 있다. 다시 설거지한다. 뒤늦게 아이 유치원 가방에서 간식통을 발견하면 다시 설거지한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 번 해야 겨우 설거지가 끝난다. 세탁실도 하루 평균 10번은 넘게 드나들어야 한다. 큰 아이가 유치원 다녀온 후 벗어둔 옷을 세탁실에 가져다 둔다. 욕실 수건에 냄새가 나서 세탁실로 다시 갔다. 백일이 지난 아이가 입은 옷은 따로 세탁하기 위해 세탁실로 다시 간다.

살림살이가 이토록 지루한 반복이었을까. 나는 살림을 시작하고 나서야 아이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 “컵 없어?” “빨아야 할 것 없어?”라고 물었던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아이 엄마처럼 설거지하기 전에 먼저 각 방과 거실을 살피고 빈 그릇과 컵을 먼저 설거지통에 가져다 놓는다면 이렇게 몇 차례나 설거지를 반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빨랫감도 미리 챙겨 둔다면 몇 번만 세탁실에 들어가도 충분할 것이다. 말하자면 내게 그런 요령이 없었던 것인데, 요령이 없기 전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말일 것이다. 나는 내가 쓴 컵을 설거지통에 가져다 두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 정도만으로도 칭찬을 들었기 때문에 방마다 들어가 빈 컵을 챙겨올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최소한 집안 살림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나 자신만 생각할 뿐 전체를 보는 시야가 부족했던 것이다. 살림하기 전에는 살림은 그냥 되는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이렇게나 많은 디테일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처럼 여러 번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일의 순서를 지켜야 한다.

얼마 전에는 아이 엄마와 크게 다퉜다. 내가 외출한 사이 집에 들어온 엄마가 내게 전화를 해 대뜸 화부터 냈다. 내가 가스 밸브를 잠그지 않은 채 나갔고, 끓여둔 국을 냉장고에 넣지 않아 모두 상해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고의로 한 일이 아닌데도 이렇게까지 혼이 나야 하는 일인지 납득이 되지 않아 같이 성을 냈다. ‘신경 좀 써 달라’는 아이 엄마의 말에 화를 내다 얼마 전에 한 잡지와 했던 인터뷰가 떠올랐다. 기자는 육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서 내게 “그러면 집안 살림에는 얼마나 동참하고 계시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육아에 동참하는 것으로 살림에 동참하고 있고, 설거지나 청소에는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집안 살림은 엄마의 몫이고, 아빠는 돈을 벌어다 주고 아이와 놀아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살림은 노동인 반면에 살림을 빼고 아이와 놀기만 하는 일은 내게는 하나의 취미 생활에 불과하다는 것은 최근에나 와서야 깨달은 것이다.

조지 소로우는 ‘월든’에서 ‘살림을 잘하는 사람’은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 잘하는 살림만이 아니라 죽은 것을 되살아나게 하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기르고 만들고 나누면서 스스로 몸과 마음과 영혼을 지켜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돈을 벌어주는 것으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것은 아닐까. 죽은 것을 되살리는 것은 오직 지루한 살림살이뿐이라는 것은 그동안 알지 못했다. 오늘은 설거지하기 전에 집안부터 둘러봐야지. 내 빨래를 넣기 전에 아이 빨랫감은 없는지도 봐야겠다. 시장에 가기 전에 이번에는 내가 아이 엄마에게 물어봐야지. “마트 갈 건데 필요한 것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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