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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초엘리트 - 영국을 지배하는 이너서클의 습관, 약점, 그리고 악행
사이먼 쿠퍼 지음, 김양욱.최형우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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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80년대 옥스퍼드 대학의 풍경을 주로 묘사한다. 사이먼 쿠퍼에 따르면 80년대 옥스퍼드는 중세적 분위기 속에서 수학과 과학을 경시하는 분위기의 얕은 지식으로 ‘수사학’이 주를 이루고, 이튼 출신의 특권의식에 절어있는 ’교만한 학생들’로 가득차 있는 공간이었다. 화이트헤드를 배출했고, 9대 사립학교에 해당하는 슈루즈베리의 교장은 ‘자연과학은 교육의 기반이 될 수 없다’고 했을 정도로 사립학교들이나 옥스퍼드나 자연과학보다는 라틴어와 문학을 더 중시하는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의 어떤 부분은 ‘황색언론적인 편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건 당시 영국의 분위기이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얕은 지식으로도 글을 쓰고 이야기하며 밥을 벌어 먹고사는 방법을 옥스퍼드에서 너무 잘 배웠다”(35쪽)


사이먼 쿠퍼의 이 책은 옥스퍼드를 ‘삐딱하게 보기’를 통해 이튼을 거친 옥스퍼드 출신의 엘리트들이 얼마나 ‘모자라고 교활하며, 특권의식에 젖어 있는지’를 그들의 대학생활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면서 폭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책의 전반부는 주로 보리스 존슨에 관한 것이다. 그가 옥스퍼드 유니언에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했던 협잡들, 상대를 비꼬는 데 능숙한 화법들. 이후에는 데이비드 캐머런, 리즈 트러스, 리시 슈낙 등 옥스퍼드대학 출신들의 ’별 것 없음‘을 파헤치고, 브렉시트가 어떻게 옥스퍼드적 전통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영국을 통치하는 것은 그들의 계급이 가진 특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럽연합 정부에 있는 외부인이 이러한 특권에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렇게 보수당의 유럽 회의론은 어떤 면에서는 우버 택시에 맞서 싸우는 개인택시 기사들의 투쟁처럼 일자리 보호를 위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사립학교 출신 옥스퍼드 학새들은 그들이 통치할 나라를 그들 자신의 계급과 동일시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의 국력이 약해졌다고는 해도, 누군가 영국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것은 여전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132쪽) 


80년대 중반 옥스퍼드의 분위기, 엘리트 집단의 사고가 한 국가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읽고 있노라면, 브렉시트가 유럽연합의 ’분담금‘ 때문이라던가, 난민 수용에 대한 부당한 요구 때문이라던가, 독일과의 경쟁심 때문이라던가, 영국 내 노동계급의 일자리 부족 때문이라던가 하는 분석은 조금은 피상적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브렉시트와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은 ‘영국 귀족과 그들이 다닌 학교들에서 그들에게 심겨진 심성’이 만들어 낸 것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166쪽에는 이런 말도 있다. “작가 존 스칼지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성애자 백인 남성들은 난도가 ‘쉬움’으로 설정된 현실 세계라는 타이틀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성인이 되면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었다”. 여기서 그들은 보리스 존슨을 위시한 이튼 출신의 옥스퍼드 졸업생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기자 출신의 작가는 ‘인신공격적’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옥스퍼드 초엘리트를 비판하지만, 사실 이 책의 제목이 이 책을 오해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이 책의 원제는 ‘Chums'로 번역하자면 ’끼리끼리‘, 혹은 ’계-꾼들“ 혹은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는 ‘카르텔’ 같은 것이다. 작가가 옥스포드 카르텔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에는 이들의 카르텔이 단순한 이해관계에 입각한 ‘이익공동체’라기 보다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러니까 프렙스쿨을 거치고 세컨더리 사립학교를 거치며 만들어진 ’친구들끼리‘, 혹은 귀족 집단의 농담과 말을 이해하는 집단들끼리의 관계를 강조하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로 치면 정치인들이 치열하게 정책과 이념 등으로 모이고 싸우는 것처럼 ’겉으로‘ 보이더라도 알고 보면 경기고등학교에서부터 대학을 거치면서 이념/정책 따위와는 무관하게 서로 서로 어릴 때부터 친구로서 밀어주고 끌어주고 있는 관계를 만들고 있는 그런 관계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옥스퍼드 초엘리트’라는 제목으로 읽게 되면 ’chums'가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원리보다 보리스 존스나 데이비드 캐머런 같은 인물들의 보잘 것 없음에 지나치게 관심이 쏠리는 식의 독해를 하게 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인물들이 어떻게 그런 ‘끼리 끼리’ 집단에 들어가서 정치 거물로 성장하고, 그 집단이 어떤 위험한 국가적 결정을 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음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사이먼 쿠퍼는 옥스퍼드의 개혁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더이상 옥스퍼드 대학은 수사학적 토론 기술만 가르치는 대학도 아니고, 과학, 수학을 경시하는 얕은 지식인을 만들어 내는 대학도 아니고, 학생에게 직장 생활에 준하는 40시간의 학습을 요구하는 ‘학술적으로 성장한 대학’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공립학교 비율을 높이고, 노동계급 출신을 우대한다는 점에서 ’공정한 대학‘으로 변하고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노력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단언한다. 옥스브릿지대학에서 학부를 폐지하자는 것이다. 학부제 폐지 주장은 옥스브릿지가 ’chums'를 형성하는 플랫폼으로 작동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지, 초엘리트들에 대한 개인적 반감 때문이 아닌 것이다. 1억에 육박하는 이튼 등록금을 내고도 옥스브릿지에 가지 못한다면, 옥스브릿지에 가는 것이 오히려 그 등록금이 방해한다면 'chums'는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 책의 분석과 제안, 서술방식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정‘이 이뤄지는 공식적 입장이 아닌 비공식적, 사적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훔쳐 보는 것이 주는 즐거움을 준다. 정말로 재밌는 책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보리스 존슨과 이튼, 옥스퍼드의 힘은 비슷한 수준에 라이벌 구도를 그린다고 알려진 리시 슈낙, 해로우, 캠브리지의 힘보다 훨씬 더 강하고 무서운 것이라 쉽게 해체하기도 힘들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옥스퍼드대학 출신이 쓴 이 책은 ‘끼리끼리’ 문화에 대한 일종의 내부 폭로다. 이 책은 서울대 출신, 검사 출신, 의대 출신의 ‘chums'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물론 내게는 영국 교육에 대해서, 영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성찰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옥스퍼드 유니언을 연구한 피오나 그레이엄은 ”영국적인 관념에서 괴짜는 사회를 비판하며 사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산이 사회의 필수적인 부분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녀는 괴짜는 일반적으로 신념에 순응하며, ‘태도, 옷차림, 언행, 눈치 같은 외형적인 방식’에서만 괴팍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119쪽)


이 책의 이해를 위해.

1) 영국의 세컨더리 스쿨은 우리로 치면 중고등학교를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건 퍼블릭스쿨, 그래머스쿨, 스테이트스쿨로 분류해서 이해하면 쉽다. 스테이트 스쿨이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가 운영하는 공립학교이다. 퍼블릭스쿨은 공립학교로 번역되지만, 국가가 비용을 내는 학교가 아니다. 그래머스쿨은 스테이트스쿨의 하나이지만 퍼블릭스쿨에 못지 않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교로 우리로 치면 공립 특목고에 해당한다. 퍼블릭스쿨은 이튼, 해로우, 윈체스터 같은 곳들로 우리로 치면 민사고 같은 곳이다. 등록금과 기부 등으로 학교가 운영되는 영국의 사립학교들로 영국 내 수백 곳이 있고, 국내에 있는 덜위치 같은 곳이 이런 학교들의 프랜차이즈 브랜치이다. 퍼블릭은 개인 튜터링 학습과 반대된다는 의미에서 퍼블릭을 의미하는 것이지, 공공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2) 책 속에 소개되는 벌링던 클럽은 영화 ’라이엇 클럽‘을 보면 실상을 좀더 실감있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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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다시 읽기 2 - 회상과 대화 / 최종 강의 서경식 다시 읽기 2
하야오 다카노리.리행리.도베 히데아키 엮음 / 연립서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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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다시 읽기2>, 연립서가

연립서가 최재혁 선생님으로부터 서경식의 정년 퇴임을 기념하는 의미로 <서경식 다시 읽기>라는 책을 기획하신다는 메일을 처음 받았을 때 솔직한 생각은 ’좀 이르지 않나‘.. 그런 생각이었다. 이제 서경식은 대학에서 은퇴하고, 더 왕성한 글쓰기를 할텐데 움직이는 과녁에 활을 쏘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예상은 완전히 틀리고 말았다. 예기치 않게 서경식은 일찍 세상과 등졌다. 연립서가에서도 예상한 일은 물론 아니었겠지만, 최재혁, 박현정 두 대표의 기획 덕분에 서경식의 사상을 한국과 일본에서 나름대로 조망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서경식의 텍스트로만은 다가가기 힘들었던 서경식을 둘러싼 컨텍스트, 이를테면 서경식을 만든 역사적 사건, 사람들,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고, 또 그 서경식이 한국에서 여러 층위에 어떤 컨텍스트가 되었는지 그려낼 수 있었다.
특히 <서경식 다시 읽기2>는 서경식이 일본에서 만난 동료들과의 대담과 에세이를 실은 우정의 기록이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서경식을 나름 읽어온 나로서도 이 책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정말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70-80년대를 규정지은 형제 구원활동, 90년대 책임 논쟁, 자이니치 그룹을 지배했던 민족 논쟁, 2000년 즈음 대학 교수로 활동하며 본격화된 프리모 레비에 관한 연구, 고립을 감내한 리버벌의 허위의식에 대한 투쟁 등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디아스포라‘나 ‘월경’이 지닌 낭만적 느낌으로 서경식을 읽는 것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정말로 잘 보여준다.
특히 모토하시 데쓰야 선생은 서경식의 재일조선인사를 대략 서기 1000년 경부터 시작된 식민주의에 대한 반식민주의 투쟁의 서사에 기입한다. 시부야 도모미 선생은 서경식이 인간의 추악함, 사실은 우리 자신의 추악함을 들여다보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 안의 식민주의를 발견하도록 도와주었다고 고백한다. NHK PD였던 가마쿠라 히데야는 서경식과 방송을 만들며 쌓아온 우정을 통해 ‘친절한 서경식’을 보여준다. 사키마 미술관장인 사키마 미치오씨와 서경식의 대화는 서경식이 일본 사회 내에서 소외된, 내부식민지화된 이들과 어떤 연대를 펼치려고 했었는지를 그려낸다. 그밖에도 최덕효, 리행리, 조경희 등 여러 젊은 연구자들과의 대화는 서경식 본인이 그토록 하려고 했던 일, 즉 서경식을 분절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저는 에세이를 통해 스스로를 관찰하고 이야기합니다. ’자명한 자신‘ 혹은 ’나란 이런 사람이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분절화해서 관찰하며 그것을 이야기하는 작업 방식을 언젠가부터 갖고 있습니다“(330쪽) 그래서 우리는 <서경식 다시 읽기2>를 통해 역설적으로 서경식은 자명하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되고, 그것이 서경식임을 이해하게 된다.

”나 자신을 규정하고 나누고 있는 여러 개의 구분선을 바라보며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향해 가는지, 왜 이런 상황인지, 그런 맥락을 가능하면 지적으로 분절화해서 자기 이해를 하려고 애써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 나갈 작정입니다“. (334쪽)

어쩌면 서경식이 일생동안 해오려 했던 일과 이 책의 서술방식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서경식은 이런 이해를 자신에게만 했던 것이 아닌다. 여러 개의 구분선으로 분절하여 민족을, 일본을, 예술을 이해하려고 했다. (분절적이란, 단지 분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민족이라는 단일선, 젠더라는 단일한 구분선만으로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이항대립적일 수밖에 없음을 조선반도와 일본을 걸쳐서 살아애했던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인식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조선 내부에 침투하는 일본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해부하는 것과 같은 작업“이라고 했던 말의 의미이기도 하다.
얼마 전 춘천에 가서 이종찬 선생님을 찾아 뵈었다.
어느 단체에서 이종찬 선생께 서경식에 관한 연속 강좌를 부탁했다고 한다. 그 부탁에 대해 이종찬 선생은 ”서경식을 잘 이해하기 위한 목표라면 제 강의를 들을 필요가 있으실까요? <서경식 다시 읽기2>를 읽어보시면 됩니다“라고 답하셨다고 한다. 그 강의가 성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종찬 선생의 강의라면 물론 좋을 것이다. 그러나 서경식을 촘촘하게 읽고 이해하려한다면, 어쩌면 재일조선인에 대해서, 자이니치에 대해서, 우리가 외부화했던 그들에 대해서, 우리 안의 식민주의에 대해서 살펴보고 싶다면, 서경식의 책들과 함께 <서경식 다시 읽기2>는 꼭 읽어봐야 하는 것이라 권한다. 특히 우카이 사토시 선생의 글과 서경식의 응답, 시부야 도모미의 글은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서경식을 입문하는 최적의 글이라 생각한다.
[추가]
내가 깜박 놓친 것도 있어서 내용을 좀 더 보태고자 한다. 서경식이 교수직 은퇴 후 집중하려 했던 일 중 하나는 '소설쓰기'였다. 이는 소명출판에서 나온 <대담집>에도 실려 있다. 그리고 그가 소설쓰기의 전범으로 여긴 작품은 프리모 레비가 쓴 '아르곤', 또 <릴리트>였다. 이 작품은 일종의 인물전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만나 함께 귀환했던 이들을 포함해 아우슈비츠라는 독특한 공간, 단적으로 '디아스포라적이라는 의미에서의 국제적 유대인 집합소'에서 만난 다양한 인물들을 조형했고, 그 때의 인물 탐구를 자신의 소설 내지 에세이에 담았다. 서경식 역시 그런 인물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확신할 순 없지만 서경식은 아사히 신문에서 출판한 <20세기 천 명의 인물>에서 대략 마흔 명의 사람들에 대한 인물전을 썼던 것이(국내에는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프리모 레비와 같은 형식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뜻과 만났을 것이다. 특히 <대담집>에서 소개한 자신의 이모부, 서경식은 그야말로 '디아스포라적이죠'라고 한 적이 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이토록 길게 쓰는 것에는 <서경식 다시 읽기2>에서 일종의 인물전이 등장하고, 마치 소설 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인터뷰 '서경식, 저작을 말하다'에 담긴 내용으로 153쪽부터 이후 시작되는 내용은 한편의 소설로 봐도 무방하다. 야스에 료스케, 고자이 요시시게, 히다카 로쿠로, 이바라키 노리코와 같은 전후 지식인에 대한 선생의 스케치는 그의 표현을 약간 활용해서 말하자면 <선한 일본 혹은 일본인>을 보여준다. 나는 이 책에서 네 명에 대한 서경식의 글을 서경식의 소설 초안처럼 읽었다.

"야구에 비유한다면 야스에 선생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몰린 팀의 포수 같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포수는 팀이 위기에 내몰리더라도 냉정함을 유지하며 "지금은 어떻게 해도 한점 줄 수밖에 없나, 이러다가는 지겠구나."라는 식으로 누구보다 빨리 상황을 파악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괜찮아, 괜찮아!"하며 팀원의 용기를 복돋아야 하죠.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함께 갖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야스에 선생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166쪽)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참여한 <서경식 다시 읽기1>이 서경식이 한국 사회에 다소 문화적인 관점에서 수용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금은 소프트한 책이라면, <서경식 다시 읽기2>는 일본에서 서경식이 뼈를 깎으며 싸우면 조탁한 운동론, 디아스포라론을 보여준다.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서경식을 만날 수 있는 책인 것이다.
서경식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도, 소외된 자들의 싸움에 관심이 있는 이들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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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집 : 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
김용규 외 엮음, 김석범 외 인터뷰이 / 소명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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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출판에서 나온 <대담집-디아스포라의 목소리>를 읽었다.
최덕효, 정영환 선생의 대담에서는 오랜만에 정말로 큰 지적 도전을 느꼈다. 책에서 3세대로 분류한 이 역사학자들이 벌이는 ‘대담한 기획’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최덕효 선생의 박사 논문은 존 다우어의 ‘패배를 껴안고’에 대한 일종의 카운터 내러티브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나는 이 책이 일종의 일본의 자기기만이라고 느꼈는데, 어쩌면 역사상 단 한번도 가난해본 적이 없는 나라의 가난 서사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최덕효 선생의 논문 작업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내가 존 다우어의 책에 느낀 불편함의 이유를 알아챘다. 이 책에는 ‘재일조선인’이 빠져 있었다. 패배가 아니라, 패배의 패배를 껴안고 살았던 이들의 목소리는 배제되었다. 최덕효 선생의 기획은 한편으로 서준식의 ‘옥중서신’에 대한 카운터 내러티브기도 했다. 서준식은 옥중 소감에서 한반도가 본류, 자이니치는 지류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최덕효는 자이니치 중심의 역사 서술을 기획한다. 실로 대담하고 놀라운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정영환 선생의 논문에 대해서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는 재일조선인사를 자이니치의 시각에서 새롭게 서술하고자 한다. E.P 톰슨과 에드워드 사이드를 계승하며 제3세계와 재일조선인을 연결하고, 유럽중심주의자인 에릭 홉스봄과 대결하려 한다. 김용규 선생님의 잘 준비된 질문과 풍부한 사전 조사, 이재봉 선생님의 예리한 질문이 돋보였다. 특히 김용규 선생님의 질문은 두 학자의 작업 세계를 이해하는 큰 얼개를 그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서경식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3세대 학자들과의 대담보다는 훨씬 더 어두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2023년에 있었던 두 번째 대담은 선생의 악화된 건강 탓인지 몰라도 다른 인터뷰나 강의에서 느끼기 어려웠던 냉소적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리고 인터뷰는 늘 그런 것이라 해도, 서경식의 답변은 질문을 조금씩 빗겨 가기도 하고, 질문의 의도를 되묻는 방식으로 우회하기도 한다. 질문과 답 사이의 묘한 어긋남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것이 불편하기 보다는 흥미로웠던 이유는, 인터뷰어들과 친밀한 관계였다는 점을 되새겨볼 때 선생님의 사적 대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읽을 때보다 두 번째 읽을 때 의미가 좀 더 다가왔는데, 다시 읽었을 때 선생님의 발언에 선생님의 억양과 말의 스타일이 비로소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 책에 또 다른 인터뷰어인 서민정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책이 만들어지기 전에 선생님의 발언을 검토하시겠냐는 물음에 서경식 선생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고 한다. 즉 두 편의 대담에 대해서 다시 읽거나 고쳐쓰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김상봉 선생님과 대담을 하셨던 <만남>에서 자신의 발언을 되짚고, 혹시나 실수를 하실까봐 나 같은 사람에게 녹취를 맡기자고 제안하셨던 것에 비하면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선생님은 대담해지신 것일까, 아니면 조금은 지쳐계셨던 것일까.
물론 그 때문에 가장 서경식의 목소리에 가까운, 그래서 책의 제목인 재일조선인의 목소리를 실현하고, 또 서경식의 목소리를 귀에서 재생시키는 그런 대담이 되었다. 단, 높은 수준의 주의력이 독해에 요구된다는 것도 그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22쪽 이후의 서경식 선생이 말하는 ‘조국’-론은 서경식의 디아스포라-론으로 읽힌다. 정말로 흥미롭다. 특히 144쪽.
“그런데 그것만 보면 안 되죠. 이 사람이 서양을, 서양 르네상스를 우리와는 다른 어떤 시점으로 보고 있는 것인가를 보게 되면, 이 사람의 독창성이라고 할까, 특징을 볼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앞으로 재일조선인에 대한 연구도 그런 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를 연구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재일 조선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고 있는지를 자신에 비추어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서양이 그런 경향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재일조선인에 대한 연구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봅니다”
나로서는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서경식이 유럽과 아메리카를 다니며 인문기행과 미술관 다니며 음악회를 다닌 또 하나의 이유를 알게 되는 지점이자, 여러 선생님들과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어떤 방향으로 꾸려가야 할지에 중요한 단서가 되는 구절이었다. 서경식 선생님과의 2부 대담은 나로서는 너무나 값진 대화의 기록이었다.
책을 읽으며 발견한,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남겨둔다. 아무래도 대화를 녹취로 풀다보니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맥락상 이상한 것들이 꽤 있다. 내가 가장 이상했던 부분은 90쪽이다.
”아까 얘기했던 귀화 안 해서 반갑다든지 하는 그런 이야기라기보다, 저는 문제적인 발언일 수 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디보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였으면 귀화를 거부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내가 충분한 주의력을 기울이지 않아서인지, 나는 인용한 부분의 마지막 문장을 몇 번을 곱씹어 읽었다. 대화의 맥락상, 일본이라는 나라가 재일조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였다면 귀화를 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문제적인 발언을 예고했다면 더더욱이 그렇다. 그런데 이 구절만 보면, 귀화를 거부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는 귀화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가 된다. 즉 일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라면 귀화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는 거다. 논리적이지 않은 연결인데, 서경식 선생님이 이렇게 실제로 말씀하신 것이면 앞서 말했듯이 수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편집 과정에서 이런 부분은 확인이 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잘못 독해했을 가능성도 물론 있다. 다른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외에도 271쪽, 김용규 선생님의 발언에도 모호한 점이 있었다.
”디아스포라라든지 ‘제3의 길’, 이런 것은 서경식 선생님도 별로 좋아하시지는 않는 것 같던데, 그래도 한편으로는 2세대, 3세대의 경우, 재일조선인의 특수한 경험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있는 디아스포라의 경험들과의 공통성 등도 함께 고민하면서 자신들만의 특성들을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디아스포라를 서경식 선생님이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시 녹취과정의 실수일 수도 있고, 많은 부분이 생략되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서경식 선생님은 9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디아스포라 담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셨고, 이 개념을 해체해 서경식이 다시 재발명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서경식은 디아스포라의 경험들과 공통성을 중심으로 연대를 추구했는데 그가 이를 싫어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시 편집 과정에서 좀 더 살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책의 자잘한 실수들.
사실 녹취를 풀어낸 책의 특성상 굉장히 많을 수밖에 없긴 한데, 몇 가지만.
1) 262쪽 ”정체성을 대신 증명하고나“-> ”정체성을 대신 증명하거나“
2) 263쪽 ”에릭 홉스봄 Eric Hobsbawn"- > "Eric Hobsbawm'
어마어마한 품이 들어간 책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부록으로 실린 최덕효 선생의 ’월경하는 재일‘은 꼭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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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의 아들 - 나의 선택 테드북스 TED Books 1
잭 이브라힘.제프 자일스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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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테러리스트의 아들

  • 나의 선택


  1.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시는가요?

 

 엘사이드 노사이르는 1990년 11월 5일 뉴욕 매리어트 호텔 연회장에서 연설을 마친 메이르 카하네를 암살했습니다. 메이르 카하네는 호전적인 랍비이자 유대인 방위연맹의 창립자였는데요, 카하네를 총으로 쏜 아랍인은 달아나면서 한 노인의 다리에도 총을 쏘았고, 호텔 앞에서 기다리던 택시에 급히 올라탔지만 우연히 그 자리를 지나던 우체국 청원경찰과 총격을 주고 받다가 결국 길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랍비 카하네와 암살자 둘 다 목에 총상을 입어 어느 쪽도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TV에서는 이 테러 사건을 끊임 없이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랍비 카하네에게 총을 쏘았고, 다시 총을 맞아 쓰러진 엘사이드 노사이르는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책의 저자인 잭 이브라힘의 아빠입니다.


2. 그러니까 책의 저자가 테러리스트의 아들인 건가요?


 네, 맞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만들고, 잭 이브라함이 쓴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책입니다. 지난 주에 제가 이 코너에서 소개했던 책을 기억하시는지요? 수 클리볼드가 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이었는데요, 수 클리볼드는 바로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중 하나였던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였습니다. 엄마인 수가 가해자의 엄마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아들 딜런이 왜 그런 일을 저지르고 말았는지를 탐색하고자 쓴 책이었는데요, 오늘은 시점이 그와 반대인 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테러리스트 아빠를 둔 아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고통을 어떻게 뚫고 지나왔는지를 소개하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총기난사 사건의 가해자 아들을 둔 엄마가 쓴 이야기에 이어 테러리스트 아빠를 둔 아들이 쓴 이야기라니 오늘도 지난 주처럼 마음이 아픈 이야기일 것만 같습니다. 저자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보통은 테러리스트 가족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교육 수준도 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책의 저자인 잭 이브라힘의 아버지는 이집트 출신의 산업기사였고, 어머니는 미국인 교사였습니다. 그러니까 비교적 중산층이라 할 수 있는 집인데요, 잭의 어머니는 본래는 카톨릭이었는데,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사제에게 질문을 했는데, “이런 질문을 하다니, 너는 신앙심이 하나도 없구나!”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대학 도서관에 꽂힌 이슬람에 대한 책을 발견하고 지역의 모스크를 찾아갔는데 상상과는 아주 다른 아주 포근하고 화목한 무슬림 공동체를 만났다고 해요. 보통 무슬림이라고 하면 쌀쌀맞고 차갑고 남성적인 이미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러지 않았던 거죠. 잭의 어머니는 거기에서 잘 생긴 남자를 만납니다. 금속전문가였던 남자는 배를 설계하는 것부터 목걸이 디자인도 식은 죽 먹기로 했냈구요, 미국에 온 지 1년만에 보석상에 일자리를 얻어 결혼할 여자를 위해 직접 약혼 반지를 디자인하고 제작도 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오늘 소개해드리는 책의 저자와 한 살 아래 동생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놀이 공원에 아빠와 가서 함께 놀기도 한 기억을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기억할만큼 책의 저자는 테러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행복했다고 합니다.


4. 그러면 지난 주의 딜런 가족처럼 잭의 가족도 우리가 생각하는 테러리스트의 가족의 이미지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는 거네요. 그러면 왜 잭의 아버지는 테러리스트가 된 건가요? 원래부터 이슬람 근본주의자였고 테러를 목적으로 미국으로 가게 된 건가요?


 그렇죠. 잭의 아빠도 원래는 미국에 대해 호감이 있어서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라고 해요. 잭의 아빠가 미국에 대해서 마음이 돌아서게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세부적인 사건이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바바라라는 여자가 집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고 해요. 잭의 엄마는 미국인 여성을 대상으로 이슬람교를 전도하는 활동을 했는데, 그러다가 갈 곳 없는 여인이 있다면 가끔 가족의 침대를 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 것이 이슬람교의 전통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 바바라라는 여자가 주변에 잭의 가족이 바바라의 방에서 옷을 훔치고, 잭의 아버지를 강간범으로 고발을 했습니다. 그런 일이 없었음에도 돈을 뜯어내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5. 그런 일이 있었군요. 


결국 무죄로 드러나긴 했지만, 아마 잭의 아빠에게 이 일은 알라에 대한 신앙적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온 자신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 일을 계기로 아버지는 더욱 독실한 무슬림 신앙인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80년대 말 당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내 이슬람 공동체에서도 미국에 대한 저항이 고조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무렵부터 잭의 아빠는 모스크를 다녀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고, 지하드를 위해 준비한다며 롱아일랜드의 사격장에 가서 사격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6. 그러면 잭의 아버지는 그런 일들을 겪고 나서 유대인 랍비에 총을 쏜 거군요. 


 그렇습니다. 잭의 아빠인 노이사르가 카하네를 총으로 쏜 이후부터 잭의 가족이 살던 클리프사이드파크로 한번도 돌아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학교로도 돌아기지 못했구요. 지난 주에 클리볼드 가족이 딜런의 총격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리틀턴에서 살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지요? 여러 곳으로 이동하며 수차례 전학을 해야 했던 잭은 어딜가나 학교에는 적응을 하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 동네와 학교가 조금 편해지려고 하면 전학을 해야 했으니까요.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잭의 집이 비워진 사이 누군가가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은 모두 가져가 버리고 컴퓨터 키보드 위에 칼을 놓아두고 갔다고 합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처음 등교한 날 아이들이 몰려와 물었다고 합니다. “네 아빠가 랍비 카하네를 죽였니?”.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하는 어린 아이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런데요, 잭의 아버지 노이사르와 잭의 가족이 영영 떨어지게 된 사건은 이 사건이 아닙니다. 다른 사건이 있었던 거죠.


7. 그러면 노이사르가 다른 범죄도 저질렀다는 건가요?


 노이사르는 카하네에게 총을 쏜 혐의로 재판을 받았는데, 노이사르가 카하네에게 총을 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어요. 결국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잭의 가족에게는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이 사건은 미국 내에서 아랍인들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잭은 학교 폭력에서, 땅딸막하다는 이유로,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 없다는 이유로 얻어 맞았다고 합니다. 잭의 엄마도 그런 일을 겪기 비일비재였다고 해요. 머리쓰개와 베일을 썼다고 유령이나 닌자로 불렸습니다. 노이사르는 카하네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노이사르가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폭발이 일어났는데 거기에 가담한 혐의로 다시 체포된 겁니다. 그 이후로 유죄판결을 받은 노이사르는 50건의 혐의 중 48건에 대한 유죄판결을 받아 무기징역에다 15년간 가석방 금지를 당했고 가족은 산산조각 나고 맙니다.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수신자부담 전화를 받을 수 없었고, 결국 아버지와 인연을 끊게 됩니다. 오늘 책의 저자 이름이 잭 이브라힘이라고 말씀드렸죠? 이 일이 있은 후 모든 가족이 성을 바꾸게 됩니다. 아버지로 인해 받은 차별, 그리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이름을 바꿔 버린거죠. 그 이후로 잭은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8. 잭의 가족사를 들으니 잭도 정상적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떨까요? 이런 상황에서라면 정서적인 충격이 상당했을 것 같은데...


 잭도 강한 무슬림 신앙이 있던 가족 탓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이 자신의 사고체계에 슬며시 스며들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그래엄 벨이 전화를 발명했다”나 “파이는 3.14다”와 “유대인은 모두 사악하며 동성애는 죄악이다”를 하나의 사실로 같은 선상에서 받아들였다고 해요. 아버지는 늘 중동에 집착했고 유대인이 악당이라는 이야기를 상기시켜 토를 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 잭이 자신의 생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미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더 데일리쇼>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스튜어트는 독단적인 것을 증오했다고 합니다. 반전운동과 동성애자의 권리를 비롯해서 모든 것을 파고들어 의문을 제기하고 관심을 쏟는 모습을 보고, 그는 새로운 아버지를 만났다고 해요. 놀랍게도 스튜어트라는 그 진행자는 유대인이었구요. 


9. 코미디 방송 하나가 독단에서 깨어나게 한 거군요.


 어쩌면 코미디 방송이 당연한 것을 뒤집는 것이니, 코미디 방송에서 상식이 뒤집어졌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잭은 아버지의 범죄로 인한 가정 파탄, 학교에서의 왕따 피해 등 온갖 어려움을 당했는데 이런 일을 겪으며 증오보다는 공감이 힘이 세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편견이야말로 테러리스트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잭은 이 책에서 구조적 가난, 광신, 교육 박탈로 인해 차별과 폭력을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상기 시킵니다. 우리의 독단과 편견이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죠. 잭은 열 여덟살 이후로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린 <테러리스트의 아들>은 지식 공유 프로그램인 테드 강연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 강연 마지막에 잭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버지가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하면서 눈가에눈물이 맺히는데요, 거기에는 여러 의미가 있을 겁니다. 더 이상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편견 속에서 살고 싶지도 않고, 우리의 편견에도 도전하고 있는 거지요. 책의 제목이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것과는 대조적이죠.


10. 이 책이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를 한번 정리해주세요.


 네, 우리는 누군가가 뚱뚱하다고, 동성애자라고, 가난하다고, 혹은 타고 다니고 입고 다니는 옷으로, 직업으로, 학교로, 인종으로, 종교로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는가요? 여성이라는 혐오하고,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차별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도록 이 책은 요구합니다.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율은 5%도 채 되지 않습니다. 난민이 들어오면 테러 위험이 증가하고 경제적인 부담이 된다는 건데요, 그런 생각이 세상을 더 증오로 가득차게 만듭니다. 결국 급증하고 있는 테러의 원인은 이슬람의 호전적 성향이라기 보다, 이슬람을 호전적으로 만든 구제국주의 국가들의 인종주의적 편견과 차별, 지배가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반성도 이뤄지지 않고 있지요. 이 책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 우리 자신의 좁은 시각에 대해서 성찰해보는 기회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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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
정영환 지음, 임경화 옮김, 박노자 해제 / 푸른역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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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누구를 위한 오독인가


지금 보니 박유하 교수 본인이 자기 책을 오독하고 있는 것 같다. 업자만이 법적 책임이 있다고 <제국의 위안부>에 분명히 적혀 있는데도 박유하 교수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업자도 책임이 있다고 썼다고 한다. 자신의 책을 오독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센다 가코가 하지도 않은 주장을 주장이라고 써놓고선 이제와 자신의 해석이었다고 한다. 센다가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오독이라고 일갈해놓고선 그건 자신의 해석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나 오독한 사람이 많았던 것은 역시나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길윤형 기자가 쓴 글처럼 나도 누구보다 한일화해를 바라고,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고, 위안부에게는 소녀상민으로 표현되지 않는 다양한 모습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모두 제국의 위안부의 논점에 대한 부분이고 공감하는 편이다. 심지어 법적 책임 묻기 곤란하다는 주장도 왜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이해한다. 아마 박교수 책을 지지하는 많은 지식인들은 그런 취지에 공감하는 쪽일 것이다. 이들은 박교수 비판자들이 1) 책도 읽지 않고 선입견에 근거하고 있거나 2) 읽었더라도 '동지적 관계'와 같은 오해가 많을 수 있는 말들을 오해 내지 오독했거나 3) 박교수가 재판 중인데도 비판하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박교수의 책을 옹호한다. 문제는 이들이 2)에 해당되지 않는 이들을 1)이라고 비판하고, 설령 2)에 해당되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도 자기와 다르게 읽은 사람이 있다면 2)라고 비판하는 것에 있다. 나는 책도 읽었고, 고진을 번역한 박유하 교수에게 오히려 호감이 있었던 편이었고, 동지적 관계도 맥락상 나올 수 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박교수의 책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런 종류의 비판 대신 박교수의 책과 박교수의 독해를 문제삼는 부분들에 대해서 좀 더 응답해야 한다. 정영환 선생이 제기하는 문제들과 같은 <제국의 위안부>에서 박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불확실한 논거와 다양한 오류가 해명되지 않으면, 특히나 '동족으로서의 군인'과 같은 표현에 대해서와 같은 부분들, 어쩌면 의도적인 곡해로 읽히는, 만약 무의식적인 오독이라면 더 무서운 부분들에 대한 해명이 없다면 주장의 진정성이 훼손되고 정영환 선생이 제기하는 질문,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업자만이' 법적 책임이 있다고 썼다가 이제와서 '업자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말을 바꾸면, 제국의 위안부가 누구를 위한 화해를 말하는 책인지 분명하지 않게 되지 않겠는가.(아래의 포스팅 참고) 잘못된 근거로 화해를 하면 피해자는 2차 가해를 입게 된다. 할머니들은 바로 그 점을 문제시하고 있는 것 아닐까?


박유하교수의 기자간담회(7월11일)에서의 반박에 대하여 (정영환 교수의 응답)

https://www.facebook.com/notes/%EC%A0%95%EC%98%81%ED%99%98/%EB%B0%95%EC%9C%A0%ED%95%98%EA%B5%90%EC%88%98%EC%9D%98-%EA%B8%B0%EC%9E%90%EA%B0%84%EB%8B%B4%ED%9A%8C7%EC%9B%9411%EC%9D%BC%EC%97%90%EC%84%9C%EC%9D%98-%EB%B0%98%EB%B0%95%EC%97%90-%EB%8C%80%ED%95%98%EC%97%AC/1731933963744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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